본서 <그리스도 요가>는 나의 지난 책, <히말라야를 넘어서 Beyond the Himalayas>의 후속편이다. 이 책에는 내 스승과 함께 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들, 잠사르로의 여행과 내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고자 소위 문명 세계라 부르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 요가의 영광스러운 계시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다가오는, 사랑과 지혜로 충만한 시대의 기초이다. 오늘날의 문명은 과거의 문명들의 운명이 그러했듯 한줌의 재가 될 것이다.
링쉬라 은자와 헤어지고 나서, 우리는 그리스도 요가의 수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잠사르에 있는 내 스승의 고요한 암자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떠나 그곳으로 향했다. 여행 동안 우리는 길 위에서 서로의 우정을 나누었다. 그 여정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내게 있어서 계시의 과정이 되었다.
창포(대 브라마푸트라) 강을 건넌 뒤 우리는 그날 밤 강가의 한 동굴에 쉴 자리를 마련했다. 거기서 우리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찾아 불을 활활 피운 뒤 그 위에 우리가 가져온 음식을 요리해 먹었다. 밤이 깊도록 우리는 불을 계속 피우며 은자님과 그의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곯아 떨어졌고, 태양이 떠오르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날씨는 추웠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활력으로 상쾌해졌다.
씻기 위해 강가로 내려갔다. 돌아와 보니 아침이 준비돼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 나서 라사행 무역로를 따라 디킬링까지 갔다. 거기서부터 랑추 강을 따라 좌측으로 난 길로 갔고 거대한 얌드록초 호숫가를 따라 이어져 있는 무역로로 들어섰다. 얌드록초 호수는 그 색깔 때문에 팔티 호수 또는 터키옥 호수라 불린다.
우리는 이곳까지 오는데 사흘이 걸렸다. 길은 몹시 험했고 폭이 2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무역로에 도착했다. 이것은 비교적 편한 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작은 촌락 페데종에 도착하자 내 스승은 그가 잘 아는 촌장의 집을 찾아갔다.
촌장은 우리에게 조랑말 두 마리를 내주었다. 잠사르까지 가고 돌아오는 길 내내 듬직한 티베트 조랑말을 탈 수 있어서 나는 기뻤다.
내 조랑말은 종마였다. 온 몸이 검은 칠흑빛이었고 아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놈을 '검은 왕자'라 불렀다. 그놈은 처음에는 조금 제멋대로인 듯 보였지만 서로 정이 들면서 차츰 안정되었다. 말을 타는 것은 나의 재능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나는 어릴 때부터 말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검은 왕자라는 이름의 아주 거친 검은 종마가 있었다. 아무도 그놈 근처에는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나는 막사 안으로 들어가 아마인 찌꺼기를 먹이곤 했다. 그놈은 그걸 맛있게 씹어 먹었다.
어느 날 내가 말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을 보신 부모님이 너무 놀라,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그러나 나는 그놈을 사랑했고, 그놈 역시 나를 물거나 발로 차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천부적으로 말을 잘 다루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마부의 언어'라는 것을 가졌다고나 할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비밀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부의 언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다만 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반응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티베트 조랑말을 보고 있노라면 검은 왕자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놈에게 '검은 왕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내 스승과 나는 길을 걷는 동안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들만을 나누었다. 잠사르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의 본격적인 공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수마일 동안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의 머릿속에는 종종 링쉬라 은자의 암자와 거기서 내가 거기서 받은 가르침에 대한 상념들이 흘렀다. 내게 있어서 은자님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생생했다.
길을 가는 동안 그의 많은 말들이 나의 마음속에 펼쳐졌다. 종종 나와 내 스승의 생각이 상당히 일치하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흘 째 되는 날 우리는 터키옥 호수에 도착하였다. “여기가 얌드록초 호수군요.” 내가 말했다. 그곳은 내가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에 있는 호수와 쏙 빼닮았다. 호숫가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섬이 하나 있고, 그 너머에 눈 덮인 산들이 펼쳐져 있었다.
물은 청록색이었다. 이 물빛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을 터키옥 호수라고 불렀다. 바람 한 점 없었다. 호수의 표면은 고요했다. 나는 조랑말에서 내려 호숫가로 내려갔다. 수많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낚시꾼의 눈빛으로 물고기들을 노려보았다. 낚싯대와 낚싯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낚시꾼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군요!” 나는 내 스승에게 말했다.
“맞아.” 그가 대답하였다. “네 눈빛이 반짝이는군. 하지만 낚시할 시간 없어.”
그곳은 해발 1만 4천 피트였다. 햇빛이 빛나고 있었지만 서늘했다. 호숫가에는 야생화들로 덮여 있었고 온갖 색상들이 어우러져 알록달록했다.
"정말 멋진 풍경이군요." 내가 말했다. 호수 위에는 수 백 마리의 야생 오리와 거위들이 있었다. 돌멩이를 하나 집어 그놈들 근처에 던졌다. 그러자 꽥꽥거리며 반 마일가량 떨어진 섬으로 날아갔다.
나의 가슴은 환희로 가득 찼다. 생명으로 충만한 그곳의 풍경은 너무도 황홀했고, 우리 여정의 가장 힘든 부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온종일 호숫가를 따라 말을 몰았다. 도중에 야크 떼와 짐을 실은 나귀 떼가 수차례 오갔다. 한 번은 5백 마리도 넘는 야크 떼가, 또 한 번은 150 마리의 나귀 떼가 지나갔다.
페데종 마을은 호수 안쪽으로 불쑥 들어간 곶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끝에는 낡은 성채가 하나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스코틀랜드 인버니스 주에 있는 네스 호수 곶에 있는 글렌 우르쿠하트 성이 떠올랐다. 폐허 주위에는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있었다. 거기에는 청색과 자색의 참제비고깔, 용담 같은 야생화들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우리는 길을 가는 도중에 두 번 쉬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 먹은 뒤 침낭 속에서 잠을 잤다. 나를 괴롭히는 유일한 것은 모기들이었다.
우리는 호숫가를 따라 여행했고, 냡소라를 가로지른 후 마침내 창포 강에 다시 이르렀다. 해발 1만 6천 피트의 이 준령 아래로 창포의 협곡이 내려다 보였다. 도도히 흐르는 창포 강의 좌우로 늘어선 녹색, 적색, 갈색의 경작지들이 협곡을 시선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양쪽 강변 구릉지대에는 붉은 색 지붕의 집들이 점점이 산재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눈 덮인 웅장한 산맥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었다. 잠시 풍광을 보면서 넋이 나가 있었는데, 내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그는 이미 한참 앞서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가요.” 내가 대답했다. 내 목소리가 계곡 아래로 메아리쳐 들려왔다. 그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자니 그때의 느낌이 다시 살아난다.
우리는 5천 피트 가량 되는 지그재그의 고갯길을 내려왔다. 이윽고 매우 비옥한 협곡에 이르렀다. 2피트가 넘는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나는 그토록 화려한 색채를 본 적이 없다. 청색과 자색의 참제비고깔, 앵초, 용담, 대황, 양귀비 등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길을 따라 창포에 이르자 강폭이 1/4 마일도 넘었고 물살도 무척 빨랐다. 넘실대는 강물 속에 나뭇조각을 하나 던져 넣어 보았다. 그러자 그것은 시속 30 마일의 속도로 떠내려갔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의 눈들이 녹아내리고, 최근 며칠 동안 내렸던 폭우로 인해 창포 강은 범람하고 있었다. 우리는 창다종에서 쉬었다. 내 스승은 무역로를 따라 늘어선 마을들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창다에서 우리는 촌장 도르창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거기서 우리는 융숭한 음식 대접을 받고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는 강변을 따라 내려가 착삼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통나무를 엮어 만든 나룻배를 타고 안전하게 강을 건넜다. 이 시기에 강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겨졌지만 안전하게 건너편 기슭에 닿았다. 출발 지점에서 반 마일도 더 아래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여기서 강폭은 수 마일 늘어나 모래 황무지를 뚫고 거세게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이제 강 저편의 길은 지그재그를 그리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때로 강보다 높았다가 다시 강기슭으로 내려앉았다가를 반복했다.
마침내 우리는 키추 강에 이르렀다. 이 강의 폭은 창포만큼이나 넓었다. (키추는 행복의 강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거대한 두 개의 강이 만난다. 키추는 라사에서 흘러내리고 있다. 창포 강이 여기서 키추 강과 합류한다. 눈이 녹아 흐르는 이 거대한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물살은 엄청나게 요동쳤다.
폭이 수 백 피트나 되는 소용돌이들이 불어난 물에 의해 더욱 거센 기세로 빙빙 돌고 넘실거렸다. 이 얼음물의 급류 속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1분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듯 보였다. 얼음과 눈이 녹아 흐르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배라도 꿀꺽 삼킬 기세였다.
우리는 두 강의 물줄기가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이 무시무시한 투쟁을 지켜보았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런 장관은 없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그래.” 내 스승이 동의하였다. “이런 장관은 세계의 비경 중 하나지. 하지만 외국인 중에서 이 모습을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두 강은 이제 하나가 되었고, 직각으로 꺾여 흘렀다. 그것은 여전히 대 브라마푸트라였다. 키추 강을 삼켜 하나가 된 이 강은 티베트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을 관통하면서 바다로 흘러간다.
강의 양 옆으로 비옥하게 경작된 밭들이 저 멀리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이 지역 곳곳에는 많은 나루터들이 있었다. 첫 번째 나루터는 도르제트라에 있었고 그 다음은 아래 쪽 치티시오종에 있었으며, 또 게르바에도 있었고, 티멘에도 또 하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40~45마일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이 일대를 방문한 서구인은 아직껏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라마의 법복을 입고 있었다. 법복 덕분에 많은 혜택을 받았다. 나의 스승이 대화를 주도했고, 나는 질문을 받았을 때에만 티베트어로 대답하였다. 나는 끝없이 흐르는 대화에 빠지지 않도록 자제하였다. 여행 도중에 우리는 몇 명의 라마승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의 스승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현인으로 여겼다. 내 친구는 어디서나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
다음 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인 드레풍 사원에 도착했다. 나의 스승은 그곳의 승원장들과 잘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내 스승은 그들에게 나의 사명과 내가 티베트에 체류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였다. 이것은 원장들 사이에서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문두(그의 이름은 이렇게 발음되었다)라는 이름의 라마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인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영국에 가서 광산 공학을 공부했다. 그는 쾌활한 친구였다.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활기찬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나는 드레풍 사원의 규모에 놀랐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도시라 할 수 있었다. 자급자족을 했고 9천 명이 넘는 라마들이 살고 있었다. 본당은 일시에 6천명 이상의 라마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기도 바퀴들은 내가 티베트에서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컸다. 그것들은 직경이 약 10피트가 넘었으며 톱니바퀴로 움직였다. 하나의 손잡이가 거대한 바퀴를 돌리면 그것은 차례대로 다른 바퀴들을 움직였다. 기도바퀴가 일회전 할 때마다 징이 울렸다. 징 소리는 기도 바퀴가 설치된 입구 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사람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상징이다.
의식과 법구들은, 내가 <히말라야를 넘어서>에서 언급했던 다른 사원들의 것들과 대동소이했다. 나는 편안한 숙소와 좋은 음식을 제공받았다. 드레풍에서 우리는 하루만 묵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잠사르에 있는 나의 스승의 암자로 가능한 빨리 가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관료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라사의 포탈라를 방문한 뒤 갈 길을 서둘러 가기로 했다. 원장들은 우리의 결정에 의아해 했다. 그들에게 있어 관료와의 관계는 무척 중요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라사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노변에 앉아 있던 한 무리의 거지들과 만났다. 그들은 돈을 구걸하면서 미리 감사의 표시로 혀를 내밀고 있었다. 그들은 직업 거지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어떤 일도 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들은 <히말라야를 넘어서>에서 언급했던 산적들 밑에 있었다. 그들은 산적질과 구걸행위가 신사적인 직업이라고 믿었다.
라사 교외에서 보니, 햇빛 속에 반짝이는 금색 지붕들을 머리에 인 포탈라가 위풍당당하게 보였다. 포탈라는 거대한 암반 위에 세워졌다. 그것은 아메리카가 알려지기 훨씬 오래 전에 지어졌고 17층 높이였다. 아마도 포탈라는 단일 건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일 것이다.
우리는 허가증을 가지고 포탈라로 갔다. 당시 티베트는 섭정이 다스리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망명하여 인도의 다르질링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티베트의 종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신비가들의 정원, 달라이 라마의 무덤, 그의 옥좌 등 그들의 종교를 구성하는 많은 중요한 것들을 대부분 보았다. 나는 종교의 본질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은 종교적 감명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거지에게 동전을 던져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자비라고 부른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자신이 대단한 존재, 고결한 존재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고결한 행위인가? 우리는 모두 인간적 황폐함 속에 비극을 품고 있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늙은이, 장님, 불구, 환자들을 날마다 본다. 이 웅장한 석조 건물들 안에는 부가 넘쳐난다. 그러나 그 바깥 세계에서 우리는 온갖 비참한 현상들을 본다. 사람들은 소름끼치도록 처참한 상태에서 썩어 죽어가도록 방치돼 있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의 업적에 우쭐해 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만든 비참한 상태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기성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종교는 이 비참한 상태들에 대한 책임을 지닌 사회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라사는 거지들의 도시요, 오물과 음모의 도시이다. 이곳에는 위생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건 여자건 개처럼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볼 일을 본다. 전염병이 퍼지지 않는 것은 단지 추운 기후 덕분이다. 죽은 개들이 길 위에 방치돼 있고, 살아 있는 개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걸을 수 없을 정도이고 몸에는 온통 상처투성이이다.
내게 총이 있었다면, 저 가엾은 동물들을 쏴서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을 정도였다. 살아 있는 개들은 죽은 개들을 먹었다. 그것이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먹이였기 때문이다. 새끼 강아지들은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하게 야윈 암놈한테서 태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성소들 중 하나의 중심지에서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에 대한 경시 풍조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티베트인들은 '죽은' 종교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생명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거의 갖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의료품조차 심각하게 부족하다. 우리는 지난 달라이 라마들의 주검 위에 세워진 황금 지붕을 머리에 인 웅장한 건물과 사원들을 보았다.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적인 자비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종교들 안에 사랑이 어디 있는가? 전혀 없다! 가장 뛰어난 종교 속에서조차 사랑과 생명은 없고 차가운 교리만이 존재하였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여자들이 운영했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구멍가게였다. 사실상 티베트에서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사업 수완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체국에 들렀을 때 우리는 거기서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라마를 만났다.
그는 인도에서 교육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요한네스버그에 살고 있는,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소중한 벗, 댄 원버그에게 편지를 부쳤다. 그의 아내 테디는 지금도 그 편지를 귀한 물건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라사라는 이름은 '신들의 장소'를 뜻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사원인 조캉 사원을 방문하였다. 사원의 황금 지붕은 햇살 속에 빛나고 있었다. 이 사원은 서기 650년에 지어졌는데, 송첸 감포 왕의 부인들이 가져온 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925년에 천연두가 라사에 창궐했고 약 8천명이 죽었다. 시신들이 무더기로 쌓였고, 라사 교외에서 불태워졌는데,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악취가 너무도 끔찍했다고 한다.
조캉 사원을 지나다가 우리는 거지들과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사원 앞 오물 속에서 기도를 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걷는 것을 신성모독이라 여겨 배로 기어다녔다. 인간의 손으로 지어진 건물을 숭배하게 될 때 인간의 마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들은 넝마차림으로 기어다니며 살아 있는 신의 진정한 사원, 즉 인간의 혼 자체를 경시하게 된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아주 역겨워졌다. 그리고 위대한 포탈라의 존재 자체도 내게 모든 의미를 상실하였다.
우리는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다이아몬드와 보석들로 치장된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불상일 것이다. 그 불상 주변에는 황금 램프들이 놓여 있었다. 그 버터 램프들은 수 백 년 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원들도 들렀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묘사하려면 그것만으로 책 한 권이 될 것이다.
내가 꼭 언급하고 싶은 사원은 팔덴 라모이다. 팔덴 라모 불상은 힌두교 시바신의 아내 칼리와 같은 여신이다. 거기에는 두 개의 상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불상은 팔덴 라모를 섬뜩한 괴물로 묘사하고 있었다. 여신은 제물로 바쳐진 인간들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고, 인간의 두개골에서 골을 먹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여신 주위에는 질병과 죽음의 상징물, 무서운 가면, 온갖 종류의 잔혹한 살인 도구들이 있었다. 여신의 얼굴은 너무도 무시무시하여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기만당하고 있는 가엾은 사람들이 숭배해야만 하는 상이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 종교라면 가능한 빨리 없애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차라리 공산주의자들이, 이른바 이 '거룩한 도시'를 점령하여 종교라는 것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여기서 종교는 음모를 먹고 자라왔고, 속임 당한 가엾은 많은 신자들이 아무런 자비나 보호, 사랑 없이 그런 쓰레기 더미에 던져져 왔다. 다음 장에서 나는 포탈라에서 본 것들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묘사할 것이다.
오늘날 티베트의 농법은 수천 년 전의 방식과 꼭 같다. 농부들은 아직도 원시적인 쟁기로 땅을 갈고 있었다. 그러나 토양을 분쇄해 주는 겨울 서리가 없다면 이런 쟁기질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쟁기를 끌고 있는 야크나 조(숫야크와 암소와의 교배종)의 깊은 워낭 소리가 매혹적인 그림에 풍취를 더해주었다. 그것은 비록 원시적이지만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치마를 무릎 위로 넉넉히 걷어 올린 아낙들이 맨발로 쟁기 뒤를 따라 걸으며 씨앗들을 뿌렸다. 그러면 곧 그 위를 원시적인 써레가 흙으로 덮었다. 써레는 통나무로 만들어지는데, 불로 지져 만든 구멍들 속에 딱딱한 나뭇살들이 끼워져 있다.
묘목들이 나오자마자 느가파, 즉 주술사가 많은 진흙구들을 가지고 온다. 그는 땅 위에 주문을 외우고 나서, 가장 가까운 언덕꼭대기에 올라가 다양한 정령들에게 기도를 드린다. 티베트에서 흔한 우박과 싸락눈을 동반한 폭풍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해달라고.
지평선 위로 구름이 일면, 주술사는 오른손 약지를 뻗어 사람의 넓적다리 뼈로 만든 나팔을 불어제끼면서 폭풍이 물러가도록 명한다. 만약 폭풍이 그의 명령을 듣지 않고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지면, 그는 발광하듯 염주를 돌리며 주문을 반복해서 외운 뒤 이 마법의 진흙구들을 한줌 집어서 폭풍우를 향해 던진다.
우박이 농작물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지나가면, 주술사는 농부들로부터 찬사와 경배를 받게 된다. 그러나 작물이 해를 입게 되면 주술사는 삯을 몰수당할 뿐만 아니라 정부에 의해 부과된 벌금을 내야만 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미신이 아닐 수 없다.
수확기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농작물을 거둬들인다. 그들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작물을 베고 탈곡한다. 적당한 장소를 마련한 뒤 황소들을 끌고 가 곡물을 밟게 하여 알맹이를 낸다.
마무리 탈곡에는 도리깨가 사용된다. 도리깨는 두 개의 나뭇조각을 야크 가죽끈으로 묶어 만든다. 탈곡 후 곡식의 껍질과 낟알이 분리 된다. 껍질은 따로 모아 겨울철 소 양식으로 이용된다.
추수가 끝나면 흥겨움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춤을 추고, 비틀거릴 정도로 술을 거나하게 마신다. 추수 감사제는 노래와 춤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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