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고)은 실제가 아닌 것(생각이나 감정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흐르는 곳이며..
에고(자아)는 그 자체가 실제가 아니면서도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것(에고)은 마치 자신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생각이나 감정과 같은 실제가 아닌 것들(느낌 흐름에 불과한 것들)을 분류하고 관리하고 이용한다.
마치, 하나의(때로는 다중인격과 같이 여러개의) 자의식(같은 것)이 있는 AI(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자의식이 없는 다른 프로그램들을 자동적으로 관리하듯이 말이다.
그러고는 그 에고(하드웨어에 저장된 인공지능과 같은 그것)는 실제가 아닌 프로그램(생각과 감정)들을 실제와 같이 취급하고 정당화하며 그 모든 과정들을 통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고 자신)의 존재까지도 실제인 것 마냥 정당화한다. 그것에 곧 에고(마음)의 기능이다.
즉, 자신이 관리하는 프로그램들을 마치 실제성이 있는것마냥 정당화하고 이어서 자기 자신까지 실제인 것처럼 정당화를 하는….
그래서 에고(마음)은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애초에 그 자신(에고 자신)이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에고 그 자체)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 자신을 실제처럼 여기고 정당화하는 것이 그것(에고)의 기능이기 때문에.. 설령 그 자신이 살아있다고 믿더라도(믿으려 애쓰더라도) 애초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그것(에고) 이전에는.... 그것(에고)을 모든 순간에 보면서도.. 순진하게도 그것(에고)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살리려 애쓰면서도.. 그것(에고)에 의해 오염되지 않고 손상되지 않고(본성과 기능이 변하지 않고).. 그것(에고)과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것(의식이라 부를만한 그것)으로부터 에고는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하고 지키려하기 때문에....
거기에 더해서 그 모든 것들 이전에는.... 몸과 마음(에고)과 의식이 실제이거나 혹은 실제가 아닌 홀로그램 같은것이라 하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존재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유일한) 기반이자 근원인 하나의 그 무엇(진정 신이라 부를 수 있는 그것)이 있다.
어떻게 보면 에고(마음)은 신(하나의 근원)과 서로 반대의 방향에 있는 듯 하다.
물론 신을 실제로 여긴다면 에고(마음)은 실제와 가장 거리가 먼 것(환영)일테고.. 이것은 어디에서 보느냐(마음을 통해 들여다 볼 것인가 아니면 신으로 말미암아 볼 것인가)에 따라서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실제가 아닌지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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