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7. 누구나 빙의될 수 있다

기른장 2020. 6. 28. 21:00

누구나 빙의될 수 있다(1)

 

막 시작될 무렵, 4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아이의 이름은 명규라고 했다.

 

‘그렇게 튼튼하던 애가 지난 봄부터 영 기운이 없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헛소리를 해대는 바람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혼인한지 15년이 지나 서른여덟에 본 외아들이라 나를 찾아온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그렇잖아도 자손이 귀한 집이라 온갖 정성을 들였는데 난데없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그 어머니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던 것이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얼굴이 푸석한 것이 핏기가 적고 좀 야위어 있었지만 명규는 또렷한 이목구비에다 근골이 탄탄하고 입매가 야무진 것이 한눈에도 병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초점이 풀린 눈이며 얼른 알아볼 수 없지만 가늘게 떨리고 있는 손끝 등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봄볕이 좋았던 어느날 아이가 하도 졸라서 서울 근교의 야외로 나간 것이 화근이었단다. 아지랑이가 피오르는 논둑길을 뛰어가던 명규가 갑자기 풀썩 쓰러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돌부리에 발이 걸려 그랬거니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단다. 더구나 잠시 엎어져 있던 아이가 울지도 않고 툭툭 털면서 금방 일어나는 바람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꼬박 일주일을 앓더군요. 감기몸살쯤으로 여겨서 처음에는 약국에서 약을 먹였는데 차도가 없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답니다. 병원에서도 감기몸살 일거라고 해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어요.’

 

병원에서 조제해 준 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는 일주일 만에 자기를 털고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명규가 통 먹지를 못하는 거예요. 제딴에는 식욕이 나는지 먹을거리를 찾는데 막상 챙겨주면 몇숟갈 뜨지도 못하고 그만두는 겁니다. 용하다는 한의원을 다 찾아다니며 보약을 먹였지만 도무지.....’

 

그동안의 사연을 얘기하면서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어머니와는 달리 명규는 초점이 풀린 눈으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선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어머니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어 나는 좋은 말로 그녀를 달랬다.

 

‘잘 오셨습니다. 그동안 너무 마음고생이 심하셨어요. 이제 괜찮을 겁니다. 아무 걱정마시고 명규가 수련하는 걸 지켜보고만 계세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어머니가 놀라면 명규가 수련을 계속 할 수가 없으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다짐을 주었다. 명규는 빙의되어 있었는데 아들이 빙의되어 있는 것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나면, 그녀가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행동을 보일까 적이 염려스러워서였다. 

 

명규는 순순히 수련에 응했다. 나는 한편으로 아이의 어머니에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아이에게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별로 묻지 않은 아이라서 그런지 명규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기감을 감지했다. 몸전체에 서서히 진동이 오기 시작하더니 차츰 호흡이 가빠졌다. 그러더니 앉은 상태에서 무릎을 가슴으로 당겨서는 웅크린 자세로 오들오들 떠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시나무 떨듯하던 아이는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고 앉아서 비오듯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영혼: 선생님! 나 좀 보내줘요.

 

명규 어머니의 눈이 커지는 걸 보며 나는 손짓으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익히 알고 있는 아들의 음성이 아니라 여자아이의 목소리여서 그녀의 놀라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나: 넌 누구냐? 왜 이 아이의 몸에 들어왔니? 응?

 

영혼: 얘가 너무 부러워서 그랬어요.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원하는 것은 엄마아빠가 무엇이든 다 해주잖아요.’

 

빙의된 영혼은 포천에서 태어난 두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티켓다방에서 일하는 여자가 어머니였는데 티켓다방이란 곳이 커피를 팔기보다는 원래 윤락이 본업이라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만 덜컥 임신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은 처음에는 타고난 모성애로 어떡하든 아이를 키워보려고 했는데 채1년을 버티지 못했단다.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던 겨울 새벽에 그녀는 쪽지 한 장과 함께 아이를 보육원 문앞에 버려둔 다음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지하 사글세방으로 돌아와 감춰놓은 농약을 먹고서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었다. 

 

영혼: 너무너무 춥고 배고팠어요. 아무리 울어도 내다보는 사람도 없고…

 

아이는 그때의 고통을 되새기는지 울고 있었다. 실제 명규의 얼굴은 새파랗게 얼어 있었고 쉴새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보육원의 사람들이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지만 아이의 몸은 이미 싸늘히 식은 뒤였단다. 

 

나: 언제부터 명규에게 들어와 있었니?

 

나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참으며 물기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영혼: 작년 늦봄에 들어왔어요. 얘를 따라다닌 지는 꽤 오래 전부터였고요. 얘가 돌잔치를 하던 날부터 줄곧 따라다녔으니까요.

 

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명규한테 있을거야?

 

아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머뭇거렸다. 내가 두세번을 채근하자 그제서야 결심한 듯 겨우 입을 열었다.

 

영혼: 이제 가야죠. 여긴 너무 어둡고 답답해요. 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또 내 몸도 아니고. 그러니 선생님이 좀 도와주세요. 제발 날 여기서 나가게 해주세요.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울며 매달렸다. 나는 명규의 어깨를 다독이며 잘 생각했다고, 이제 네가 들어가 있는 몸이 네것이 아닌걸 알았으니 됐다고, 아무 걱정 말고 며칠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내가 널 천도시켜주겠다고 달랬다.

 

명규는 그로부터 3일이 지나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킬 때까지 매일 내가 운영하는 수련원에서 수련을 했다. 빙의된 여자 아이영혼의 사연이 너무 슬퍼 명규의 어머니까지 덩달아 훌쩍이는 바람에 내가 난감한 적도 있었지만, 아이의 영혼을 위한 천도재는 아무 탈 없이 치러졌다.

 

천도재를 치르던 날 명규의 몸을 빠져 나온 아이의 영혼은 명규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말을 오래 되풀이 했다. 그리고는 곁에 앉아 있던 명규 부모의 손을 한번씩 잡아보고는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멀어져 가는 것이었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서 모여 있던 사람들의 눈에 그 아이의 영혼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영혼이 손을 잡아 준 명규의 부모는 한순간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감촉이 자신들의 두 손을 감싸쥐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누구나 빙의될 수 있다(2)

 

다른 영혼이 몸에 들어오는 데 일정한 절차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자기와 원한이 있어서 자신의 몸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즉 영혼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데는 특별한 법칙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아무에게나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영혼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에게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일찍 이승을 떠난 영혼의 경우 구천을 떠돌든 그 영혼은 부모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아이가 너무 부러워서 그 아이의 몸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 아이의 몸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아이의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이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금방 사람 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영혼이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의 영적 에너지가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그 사람을 줄기차게 쫓아다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그 사람의 영적 에너지가 떨어질 때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려고 기를 썼던 영혼도 막상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그게 아닌 걸 알게 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깃들어 있는 영혼의 작용도 있어서 빙의된 영혼은 그 사람의 몸을 온전히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몸속으로 들어간 영혼은 다시 몸밖으로 나오려 해도 나오는 방법을 모르고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또 영혼은 자신이 선택한 그 몸의 주인을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도울 수가 없다. 영혼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움을 줄래야 줄 수가 없고 도움을 받을래야 받을수가 없으므로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영혼이 빙의된 경우에 나타나는 증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몸은 건강하지만 심리적으로 괜히 자식들이나 배우자가 미워지거나,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는 경우, 자신이 느끼기에도 ‘도대체 내가 왜 이러지?’ 싶을 만큼 일관성이 없고 변덕이 심한 경우, 또 몸이 아주 아픈 경우도 있다. 병원에 가봐도 정확한 병명을 알 수가 없어 더욱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일단 사람의 몸속에 들어온 영혼은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특정한 부위 이를테면 머리, 폐에 자리를 트는 경우도 있지만 여자들의 경우 주로 자궁에 숨고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위에 숨어 있다. 그곳이야말로 가장 깊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빙의된 상태가 심할 경우 뭘 먹질 못한다거나 속이 항상 더부룩하다거나 생리가 불순하고 밤마다 속이 사르르 아파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시경 검사나 기타 현대 의학적인 소견으로는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현상이기 때문에 신경성 또는 긴장성 질환이라는 애매한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빙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아무 증상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빙의된 줄도 모른채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와중에서 빙의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알게 모르게 몸에 들어온 영혼의 조종을 받으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빙의된 영혼과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이 빙의되는 사람도 많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이승을 떠날 수 없는 원혼들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수록 빙의된 사람의 수도 많아져 심하면 늘 지나다니던 길을 걷다가도 빙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