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8. 영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도 빙의될 수 있다

기른장 2020. 6. 28. 21:03

나를 찾아온 사람 중에 아주 곱상하게 생긴 아가씨가 있었다.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카운터 일을 보고 있기에는 좀 아깝다 싶을 만큼 미모가 눈에 띄는 아가씨였다. 같이 온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마음씨도 고왔고 무엇보다 성실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실하게 직쟁생활을 하던 그 아가씨가 어느날 퇴근길에 갑자기 혼절을 해서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정밀검사를 했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한채 이틀만에 퇴원을 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은 그날부터 그 아가씨는 온몸에 기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전혀 맥을 못추는 데다 실성기까지 보인 것이었다. 아가씨의 어머니는 용하다는 병원을 다 찾아다니고 한의원에서 진맥을 받아 원기를 돋우는 보약까지 먹었지만 전혀 차도가 없자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초점이 없었다. 멍하니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는 폼이 영락없이 얼이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제 한몸도 겨우 가누는 그녀를 벽에 기대게 하고는 수련을 시작하자 마치 기다렸다드는 듯 빙의된 영혼들이 셋이나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날 길가에서 쓰러질 때 세 개의 영혼이 동시에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내가 영혼들의 신상을 물었더니 셋 모두 같은 대학의 산악반 반원들이었다. 그들은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에 설악산 등반길에 나섰다가 조난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하나는 여자의 영혼이었고 나머지 둘은 남자의 영혼들이었는데 여자는 자신의 집이 강화도 어디라는 얘기까지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처녀 어머니의 뜨악해하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곱상하기만 한 딸에게서 그런 영혼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 어머니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수련원을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항상 배가 더부룩하고 물 이외에는 제대로 삼키질 못해서 피골이 상접한 딸을 데리고 어디서 속을 끓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