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에 빙의되는 영혼은 반드시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한 영혼이 몸속에 들어와 있게 되면 다른 영혼들이 더 쉽게 모여들 수 있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속인들이다. 무당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그들의 신당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속인들의 신당에는 자신의 모시고 있다는 영혼의 상들이 줄줄이 놓여 있게 마련이니까.
무속인은 그야말로 귀신이 들린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람의 몸에 빙의된 영혼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상대의 영혼을 투영시켜 그 영혼의 이야기를 재현해 내기도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영혼들을 쉽게 불러올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속인들이 빙의된 그것도 아주 심하게 빙의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이 영혼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빙의되어 있는 영혼은 쉽게 다른 영혼을 알아볼 수가 있다.
내가 운영하는 수련원에는 정식회원도 아니면서 자주 들러 밥도 먹고 가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노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있다. 그 사람은 한때 영험하기로 인근에 평판이 자자했던 무당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위 말하는 神氣가 떨어져 점사도 볼 수 없고 굿을 더욱 할 수 없는 그야말로 퇴락한 무당이었다.
언제부턴가 자꾸만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갈수록 영험이 떨어지는 걸 안 그녀는 조급한 마음에 그 동안 번 돈으로 자신을 위한 굿판을 벌이느라 이제는 거의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반평생을 무당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남은 것은 초라한 육신과 회한뿐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항상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응접실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다가 회원들이나 나에게 몇마디 물어보고는 올때처럼 조용히 돌아가곤 했다
나의 수련원은 야심한 시각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누구라도 올 수 있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언제라도 나갈 수 있는 곳이 나의 수련원이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스님이건 무당이건 간에 나를 그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마땅히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당: 나 같은 사람도 여기서 수련을 하면 정말 괜찮아질 수 있습니까?
나: 물론이지요. 하지만 독하게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아주머니를 무당으로 만들었던 영혼들이 그리 쉽게 물러나려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는 매번 그런식으로 묻기만 했지 정말 수련을 하려고 마음먹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항상 영험이 넘쳤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에게 수련을 하라고 권유하지도 않았다. 몸에 빙의된 영혼에게 반평생을 휘둘리며 살아 왔으면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녀에게 나는 더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가로 말을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녀는 가끔씩 밭에 나가 채소를 추려오기도 하고, 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건네면서 끊임없는 호기심을 보였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끝없이 주저하기만 했다. 그녀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그렇게 빙의된 영혼에 시달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세습무당이 아닌 내림무당은 거의가 비슷한 과정을 통해 무당이 된다. 먼저 필수적으로 무병의 과정을 거치는데 대부분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을 두고 그 무병에 대항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들, 일가친척들에게 까지 그 화가 미친다. 부모형제가 죽거나 친지들 중의 누군가가 횡액을 당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무당을 내세워 내림굿을 받게 되고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무당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당은 빙의되어 있는 영혼의 힘을 빌려 다른 사람의 점사를 봐주기도 하고 맞든 틀리든 예언을 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을 점령하고 있는 빙의된 영혼에게 한없이 휘둘리고 있는 존재이다. 그들은 옷도 빙의된 영혼의 지시에 따라 골라 입어야 하며, 부부간의 잠자리도 몸속의 영혼이 허락해야 할 수가 있다. 무당들이 아침에 한 말과 해가 중천에 떴을 때 하는 말이 틀리고 심지어 점사까지도 무당들마다 틀린 것은 그들이 빙의된 영혼에 한없이 휘둘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무속인은 다른 이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영혼을 천도시킬 수 없다.
자신의 몸에 내린 영혼을 어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어루만질 수가 있겠는가. 다만 무속인에게 깃든 영혼의 영적 에너지가 상대방의 몸에 들어온 영혼의 영적 에너지보다 훨씬 강할 경우 상대의 빙의된 영혼을 억눌러 약화시키거나 숨어 있게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영혼을 저승으로 천도하지는 못한다. 일반인들이 무당을 청해 굿을 하더라도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다시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기적으로 굿을 되풀이하는 사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속인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주의해야 할 점은 굿을 잘못할 경우 더 많은 영혼들을 그 사람에게 불러모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림굿을 받은 무당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몸주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계속해서 다른 영혼이 무당의 몸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무당을 만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기가 사는 꼴이 하도 답답하여 무당에게라도 의지하려는 사람을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의지를 바로 세우기보다는 걸핏하면 무당을 찾아가 거기에 모든 것을 의지하려는 자세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인간은 제 삶을, 자기 앞에 놓인 운명을 개척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그런 인간이 빙의된 영혼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과 앞날을 모두 맡겨놓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귀신이 귀신의 영혼을 천도시킬 수는 없다.
무속인들도 진오귀굿을 통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종의 제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렇게 굿을 한 사람도 나를 찾아오면 그 혼령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속에 아직 자리하고 있음을 여지없이 확인할 수가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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