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12. 제 몸과 영혼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어디서 오는가

기른장 2020. 6. 28. 21:44

더위가 좀체 가시지 않는 오후 두 사람이 나를 찾아 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작은 키에 아주 강단있는 얼굴이었고, 같이 온 아이는 그녀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열네살이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정신지체아였다. 골격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크고 단단했고 살결이 희고 매끄러워 보였으나, 벌린 입이며 완전히 초점을 잃은 눈이 그 아이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눈길을 주자 그 아주머니는 아이를 끌어 옆에 앉히더니 아주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두세살이 될 때까지는 몰랐지요. 먹고 사느라 원체 바쁘기도 했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처음부터 정박아였거나 지능이 낮았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위로 딸이 둘이어서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온 집안의 경사였다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들이 저렇게 시작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얘를 출산할 때 우리집 암소가 역시 새끼를 놓다 잘못돼서 죽었는데 혹시 그때문이 아닌가 해서..’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내 얼굴을 살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무당들이나 하는 말을 여기서 할 생각은 버려. 그렇다면 이 아이는 날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정상적으로 살아 본적이 없어야 해. 아주 어렸을 때는 정상적이었다며?’

 

내가 하대하며 소리를 버럭지르자 그녀는 움찍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병원에 한번 가보기라도 했어?’

 

‘....................’

 

‘보통 사람이라면 아들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병원 한번 가지않고 무당한테만 매달리지는 않아. 내가 보기에는 당신한테 문제가 있어. 아니,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해! 자신이 귀신들린 거 알고 있지? 그래서 병원갈 생각은 않고 무당한테 간 거지?'

 

나의 호통에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도대체가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이제 이 아이는 어떡할거야?

 

‘....................’

 

나는 구석에 앉아 히죽히죽 웃으며 두눈만 멀뚱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찍 병원에 데려갔다고 해서 그 아이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미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봐야하는게 아닌가 말이다. 아무리 제 몸이 빙의되어 있는 걸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무작정 무당에게만 의존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아이를 제쳐두고 먼저 그녀를 그 자리에서 수련시키기로 했다. 이미 자신이 빙의되어 있는 걸 알고 있다면 평소에도 빙의되어 있는 영혼의 작용을 스스로가 알고 있을 터였고 그렇다면 굳이 수련실까지 들어갈 필요까진 없을 것 같아서였다.

 

수련을 시키자 마자 짐작했던대로 그녀는 아주 빠르게 기감을 느꼈다. 그러더니 채 1~2분이 지나지 않아 빙의된 영혼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고, 더구나 가끔씩은 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며 겸연쩍은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자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빙의된 영혼을 가까이 느껴왔으며, 그것에 의해 얼마나 자신의 삶이 휘둘려 왔는지를, 게다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놀라웠던 것은 빙의된 영혼이 그녀의 입을 통해 퍼부어대는 악다구니였다. 

 

영혼: 워매, 참말로 징한 년이여. 내가 이년 몸속에 들어온 지 올해로 꼭 30년인디 참말로 징하네

 

나: 넌 누구냐? 왜 이 여자의 몸에 들어온거야. 응?

 

나는 한눈에 그녀의 몸에 빙의된 영혼이 한둘이 아닌 걸 알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온갖 잡신이 다 들어 있을 정도면 단순하게 천도를 시켜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혼을 천도시키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녀의 경우는 그 뒤에 따를 충격이 만만치가 않아서였다. 

 

영혼: 선상님이시구만요. 난 아무것도 아니지라. 우리 대장은 이 안에 따로 있응께. 아, 이 썩을년이 그렇게 잡신을 많이 받아들일 줄 알았으면 진즉에 안 들어왔을 것이오. 참말로 징허네. 참말로 징해.

 

그렇게 시작된 영혼과 대화는 빙의된 영혼의 일방적인 악다구니와 푸념과 그녀에 대한 원망으로 일관했다. 차마 글로는 표현 못할 욕설과 그녀의 친정과 시댁의 조상들에 대한 분노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수련을 중단시켰다. 듣고 있기에 민망하기도 하거니와 더 이상 수련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어서였다. 빙의된 영혼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그녀의 친정도 그렇지만 그녀가 시집온 집안도 조상대부터 그렇게 악행을 저질렀던 모양이었다. 그 죄과가 쌓이고 쌓여 그녀는 물론이고, 그녀의 자식에게까지 죄업이 내려 왔다는 것이다.

 

온갖 잡신에게 빙의되어 있는 사람의 경우 웬만하면 그를 구제하려는 영혼이 따라 들어오는 법이다. 주로 자신과 인연이 닿아 있는 영혼이 들어오는데 보통은 조상들의 영혼이 따라온다. 결혼한 여자는 친정이나 시댁의 조상들이 도와주려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도와주는 영혼조차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렴풋이 그런 영혼의 작용이 있을 거라고 느꼈을 때부터 줄창 무속인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것도 한 무당을 정해 놓고 단골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인근의 무당은 물론이고 법사라고 불리는 무속인까지 찾아다니며 굿은 물론 안해 본 치성이 없을 정도로 정성을 바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무속인은 그녀에게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 그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누차 얘기했다고 한다. 

 

그녀가 무속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여러 무속인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사악한 영혼들이 숱하게 그녀의 몸안에 자리를 잡게 된 데 있었다.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영혼들이 그녀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고 들쑤셔대니 어떻게 그녀의 삶이 순탄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당신은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키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뒤가 더 큰문제야.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받아야 해. 그러려면 가족들의 이해와 동의가 꼭 필요한데 할 수 있겠어?’

 

나는 처음과는 달리 되도록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서 말했다. 조상들이 지은 죄업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 저렇게 고통을 당해야 하는 그녀의 처지가 너무 가엾고 불쌍해서였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내림굿을 받으면 무당으로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몸에 온갖 영혼들이 들어와 있으니 무당으로서의 기본기를 익히기만 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아들의 일은 몰라도 최소한 자신만이라도 그 끔직한 고통에서 벗어 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빙의된 사람을 천도시키고 나면 일종의 영계의 에너지가 들어오는데 보통은 그 에너지가 원체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 에너지를 내가 제압하면 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만신들이 들어와 있는 사람에 있어서, 그 영혼들을 천도시켜도 영계의 에너지가 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지는데 그 에너지를 일단 받기 시작하면 열사람이 한명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파워를 내게 된다. 그럴때는 하는 수 없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서 약물로 그 힘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필히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빙의된 영혼의 천도가 끝난 후 그런 증상이 보이면 곧바로 입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그렇지 않았다가 평소에 멀쩡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천도를 시킨 후 갑자기 실성을 했다고 할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멀쩡한 사람을 갑자기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보통사람의 능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당하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생각해 볼 사람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천도시킨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얘기해주고 나서 가족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빙의되어 있는 영혼들을 천도시키겠다고 하자, 그녀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남편의 얘기를 꺼냈다. 도저히 남편이 그런 것까지 양해를 하지는 못할거라는 거였다. 나로서는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안타까운 처지를 봐서는 내가 병원도 예약해 주고, 그녀의 가족들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려주면서 양해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는 뭔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더니, 영문도 모른채 헤벌쭉 웃고만 있는 아들을 데리고 조용히 돌아갔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남편에게 차마 말을 못했던지, 그냥 이 모든게 제 팔자려니 하고 견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병에 걸린 사람이 취하는 행동은 대개 두가지이다.
자신이 병에 걸렸음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병의 원인을 밝혀 완치될때까지 치료를 받는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주위에는 병을 숨긴채 평생동안 고통을 겪으며 견뎌 나가는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은 자기 아닌 다른 그 누가 나서서 지켜주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간절한 마음으로만 지킬 수 있다. 자신이 진정 간절히 원하면 비록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도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서 제 영혼의 병을 숨긴채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그녀가 내내 마음에 걸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