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몸에 빙의되어 있는 영혼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생김새나 성격이 똑같은 사람들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과 장소와 사연이 저마다 다르다 보니 빙의되어 있는 영혼을 천도시키는 사연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경우를 하나만 소개하기로 한다.
초겨울의 어느날이었다. 오후들어 간간이 진눈깨비가 뿌리고 있는데 갑자기 수련원의 대문께가 왁자지껄하더니 한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50대 후반의 아주머니를 등에 업고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얼른 상태를 직감하고서 놀란 회원들을 진정시키고는 수련실의 문을 열었다.
아주머니를 업고서 들어온 청년의 말을 빌리면 벌어진 일의 처음과 끝은 이랬다. 그 아주머니는 어느 절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 조카의 49재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했다. 죽은 조카의 부모는 물론이고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서는 죽은 아이의 명복을 비느라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은 아이의 큰어머니인 그 아주머니가 쓰러진 것이었다. 잠깐 혼절을 했다가 깨어난 큰어머니에게서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의 목소리가 실려나오자 올리던 재는 중단되고 말았단다. 그 난리법석인 중에 마침 수련원의 회원이 있어서 그 사람의 권유로 무턱대고 여기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지쳤는지 가만히 누워있는 아주머니를 일으켜 앉혔다. 빙의되어 있는 영혼이 이미 드러나 있었으므로 수련을 시킬 필요도 없었다.
나: 자,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얘길 해봐. 하고 싶은 얘길하면 되는거야. 근데, 넌 누구지?
영혼: 나는 응수입니다. 서응수.
빙의된 영혼이 제 이름을 밝히자 모여든 사람들로 시끌시끌하던 수련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들 휘둥그레진 눈길을 아주머니에게만 보내고 있었다.
나: 언제 죽었어? 왜 죽은거야.
영혼: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요. 난 죽지 않았어요. 이렇게 살아 있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 어머니, 누나와 동생들도 저기 있잖아요. 난 안 죽었어요.
빙의된 영혼은 정확히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을 눈으로 가리키며 또박또박 말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아무리 타이르고 달래면서 응수라는 아이는 죽었다고 말을 해도 빙의된 영혼은 한사코 자기가 죽지 않았다고 우겼다. 그러자 수련실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무엇보다 응수라는 아이의 부모가 아주머니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고 이어 주위에 둘러서 있던 친지들이 오열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응수라는 아이는 서울대 법대 4학년 학생이었는데 고시를 2차까지 합격해놓고 면접만 앞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 어렵다는 서울대에서도 법대에 진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한데 고시까지 패시했으니 온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고도 남을 만했다. 면접과 사법연수원의 과정만을 남겨두고서도 응수는 공부를 계속했다고 한다. 죽던 날도 응수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기숙사로 돌아왔고 마침 출출하던 참이라 만두를 끓여먹고는 잠이 들었는데 그만 그 길로 세상을 떴다고 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였다는 것이다.
응수의 가족이나 친척에게도 이 어이없는 죽음이 너무나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문제는 정작 죽은 응수의 영혼이 자신이 그렇게 죽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빙의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심장이 좋지 않고, 가슴께가 칼로 저미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나에게 이야기하면서도 자기가 죽은 걸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영혼은 아무리 달래도 알아듣지를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는 시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빙의된 상태로 일정한 시간이 흘러서 자신이 죽어 남의 육신에 빙의된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하는 수없이 죽은 아이의 가족들에게 그런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빙의된 응수의 영혼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군요.
죽은 아이의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 나는 깊은 자괴감으로 자정이 넘도록 내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응수의 가족들이며 친지들이 남기고 간 깊은 슬픔의 그림자를 내 마음에서 걷어낼 수가 없어서였다.
나는 아직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경지에 이르러 마음의 눈을 뜨고, 이 우주의 섭리를 겨우 안 것에 불과한 사람이지 모든 것에 도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경우의 빙의된 영혼들을 즉시로 천도시킬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와 같이 다소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심한 자괴감에 휩싸인다. 왜 내가 이런 경우까지도 제압하고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자괴감에서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더욱 기도에 정진할 수 있게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뭔가 한계상황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삶에서 극복해야 할 목표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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