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14. 영혼과의 약속을 어기지마라

기른장 2020. 6. 28. 21:55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신용이다. 내가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신뢰하고 있어야만 원만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로가 신뢰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호간에 약속을 지켜야 한다. 사소한 약속이라 할지라도 서로가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큰 신뢰가 쌓여가기 마련이다.

 

사람과 영혼간의 약속도 사람과 사람간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사람과 영혼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서는 사람이 영혼을 달랠 수가 없고, 따라서 천도를 시킬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영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내가 고통을 당한 경우를 소개한다.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키는데 드는 비용은 항상 일정치 않다. 영혼이 빙의되어 있는 사람의 입을 통해 액수를 말해 주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내가 빙의된 영혼과의 교감을 통해 액수를 정하기도 한다.

 

몇년 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 아이의 천도재를 지낸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어릴 때 죽은 아버지의 여동생 영혼이 빙의되어 있었는데, 아이가 기수련을 하자 빙의된 고모의 영혼이 나타나서는 오빠를 제외한 4남매와 부모까지 각 가구별로 108만원씩 내서 재를 올려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총합이 540만원이 된다.

 

아이의 몸에 빙의된 영혼이 일찍 죽은 자기 여동생임을 직접 확인한 아이의 부모들이 그 사실을 형제들에게 전했음은 물론이다. 거기다가 나는 이상한 예감이 들어 따로 아이의 집에 전화를 걸어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다짐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그 가족들은 자기끼리 상의를 한 끝에 나와 잘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이 문제를 의논했는데 그분은 나에게 일언반구도 의논도 없이 300만원이면 된다고 말해 버렸다. 그러자 그 가족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금방 300만원을 마련해서는 그 사람에게 전해 주면서 나에게 잘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었다.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안 내가 그러면 안된다고 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분이 이미 돈을 받아 버렸으니 물릴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 이었다. 물리고픈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내가 그렇게 하면 그분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고, 그대로 하자니 영혼과의 약속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오래 고심을 하던 나는 하는 수없이 그돈으로 재를 지내야만 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곤경에 빠지는 것보다는 내가 감당하는 게 나으리라 생각해서 였다. 결국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천도재를 지냈는데 평소와는 달리 너무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아이에게 기수련을 하게 하면서 빙의된 영혼을 아이의 몸에서 빠져 나오게 했는데 아주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키고 나자 나는 다리를 벌벌 떨릴만큼 녹초가 되어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자주 가는 한증막에 가서 쉬기로 했다. 그런데 한증막에 들어간지 10분채 되지 않아서 갑자기 전신에 빨간 열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아파오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그냥 한증막에서 자리를 깔고는 누웠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은 더 심해지는 것이었다. 고통으로 끙끙대던 나는 불현듯 그날 천도한 아이에게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 아이의 몸에 빙의되었던 영혼은 결국 저승으로 갔다가 다시 쫓겨와서는 다시 그 아이의 몸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내 몸에 가해지는 고통보다는 사태가 이렇게 어그러진 사실이 더욱 황망스러웠다. 이 일을 어찌할 거나, 그 아이를 어찌할 거나. 나는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기도에 들어갔다.

 

그렇게 내 죄를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서는 이 육신의 고통과 빙의되었던 영혼에 대한 죄책감에서 좀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내가 그렇게 몸이 아픈 것은 그 아이의 몸에 빙의된 영혼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질서를 관장하는 거대한 에너지가 날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혼과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고통을 겪고서 새벽이 되자 차츰 고통의 강도가 덜해졌다. 마침내 아침햇살이 동쪽으로 난 창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일 때쯤 땀으로 범벅이 된 내가 갈증으로 냉수를 한잔 마시는 순간에 그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었다. 나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그대로 잠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좀더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아이의 몸에 다시 돌아와 있는 영혼을 천도시키긴 했지만 당시에 내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영혼과의 약속은 사람 사이의 계약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