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약 2100여 년 전 지금의 경주 지역에는 여섯 촌장이 있어 각기 자신의 부락을 다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여섯 촌장 중 한 사람인 B촌장과 그 부인은 숲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인은 인근 숲에서 신비스런 광채가 일렁이며 퍼져 나오고 있음을 알았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부인은 빛이 퍼져 나오는 수풀 속으로 들어갔고, 이내 찬란한 무지개 빛을 사방으로 방사하면서 누워있는 갓난아이를 발견하였다. 조심스레 접근하여 아이를 손끝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또 안아도 보았지만 주위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부인은 이것이 그 아이를 맡아서 키우라는 하늘의 계시임을 직감하였고, 아이를 고이 품에 안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특별한 갓난아이를 숲속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에 여러 다른 촌장들과 마을 사람들은 그 집으로 모여들었고, 배꼽이 없는 아이가 밝은 광채에 싸여있음을 보고는 모두 크게 경탄하고 축하하였다. 사람들은 아이가 배꼽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하늘이 보낸 특별한 존재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하늘의 전령사인 새의 알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측하게 되었다.
B촌장의 부인 즉 박혁거세 대모(代母)는 한동안 그 특별한 아이를 어떻게 먹여서 키울 지를 크게 고심하였는데, 아기의 몸에서 광채가 사라지기 시작한 약 일주일째 되는 날부터 죽을 조금씩 먹이기 시작하였고, 이후 아주 맑은 기운을 가진 동네 아낙네의 젖을 얻어 먹이기도 하였다. 대모(代母)의 지극한 정성 속에서 아이는 건강하고 총명하게 자랐으며 몸집은 컸고, 이따금씩 몸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하면 그것은 며칠씩 지속되었다. 아이는 처음 발견될 당시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하늘이 보낸 특별한 존재로서 확실히 인식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당시의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을 존재의 등장을 절실하게 느껴온 여섯 촌장들에 의하여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에 왕으로 추대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한반도 최초의 왕조인 신라가 시작되었고, 박혁거세 (당시에는 ‘박훠~거세’로 발음)는 최초의 왕으로서 즉위하였다.
박혁거세가 즉위할 당시의 한반도 남쪽은 매우 어지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고, 사람들의 생활은 피폐되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본래 한반도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땅으로서 매우 순수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박혁거세가 탄생하기 얼마 전부터 극도의 폭력성과 부정성을 가진 무리들이 집단적으로 환생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주로 남자로 탄생한 이들 폭력적 존재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동네의 모든 여자들을 잡아다가 한 곳에 가둔 채 주위에는 울타리를 치고 그 바깥으로 탈출하지 못하게 하면서, 모든 종류의 고된 일들을 시키고 상상이 가능한 거의 모든 성적 학대와 악행을 저질렀다. 여성들에 대한 이러한 극단적인 핍박과 성적 폭력은 그러한 폭력성을 지닌 존재들이 환생한 여러 마을에서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되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치를 떨었지만, 그들을 제압할 힘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무리들에게 붙잡힌 채 오랜 기간 동안 각종 곤욕을 치러왔던 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천신만고 끝에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산 속을 헤매게 되었고, 이 때 한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 청년은 당시의 세태를 비관하여 마을을 떠나 산에서 혼자 지내며 조용히 도를 닦고 무예를 연마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청년의 극진한 간호에 힘입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그 여인은 점차 건강을 회복하였고, 이후 그들 둘은 부부로서 산 속에서 같이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딸이 하나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그 딸에게 무예를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어머니는 극도로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활달한 성격의 딸은 나이가 들수록 무예가 출중하였는데, 성년이 되기 전 어머니의 갑작스레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딸을 데리고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딸은 당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특히 폭력적 무리들에게 붙잡혀 집단적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들의 참상을 직접 피부로 알게 되면서, 그 소녀의 가슴에는 남자들에 대한 적개심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었다.
얼마 후 아버지마저 죽고 혼자 남게 된 그 여인은 자신과 뜻을 같이할 여인들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였고, 짧은 시간에 수십 명의 여인들을 모아 자신이 거주하던 숲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무술을 연마하였다. 그곳에 머물던 거의 대부분의 여인들은 짐승보다 못한 노예생활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터라 기존의 사회 질서 특히 남성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들의 만행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무예를 연마하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어느 정도 힘이 모이자 그들이 거주하는 산에서 비교적 가까우면서 공격에 취약한 마을을 골라 우선적으로 공격을 개시하였고, 그곳에 거주하는 모든 남자들은 죽이고 노예로 있던 여자들을 데려와 무사로 키웠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규모는 수천 명으로 늘어났고. 드디어는 하나의 왕국으로 불릴 만큼 성장하게 되었다. 그 여인왕국에서는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강인한 무사로 키우지만 남자아이는 즉시로 죽여 버렸고, 마을에서 끌려온 남자들은 씨받이로 이용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렇게 하여 한반도 남쪽에는 폭력적 존재들이 형성한 절대적 남성우위 부족들과 여인왕국이 공존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지 않는 다수의 양민들은 그들 모두를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였다. 특히 여자아이를 낳을 경우 부모들은 딸의 안전에 대하여 심각하게 우려하였고, 이 결과 상당수의 사람들은 딸이 태어나면 일찌감치 여인왕국으로 보내어 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B촌장의 조카딸 역시 그런 이유에서 어릴 적에 여인왕국으로 보내졌는데, 그녀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내며 총명함과 뛰어난 무예실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때 여인왕국을 세운 지도자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에 그곳의 여전사들은 자신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여인왕국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필요가 있는 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서 촌장의 조카딸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 때 B촌장은 자신의 조카딸을 박혁거세의 왕비로 천거하게 되었는데, 아직 세력이 크지 못한 당시의 신라로서는 여인왕국의 실권자를 왕비로 맞아들임으로써 여인왕국을 해체하고 폭력적 남성 부족들을 평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여인왕국 출신의 여인이 과연 왕비로서 적합한 지를 둘러싸고 촌장회의에서는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국 4대2로 B촌장의 조카딸을 박혁거세의 왕비로 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혼인을 통해 박혁거세는 여인왕국의 해체를 실현하였고, 대신 여성들의 권익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엄한 처벌을 약속하였으며, 상당수의 여인왕국 무사들을 자신의 신하로서 기용하였다. 이후 박혁거세는 백성의 권리 특히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련의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백성들의 생활을 올바로 지도하고 계도할 수 있는 교사들을 양성하여 여러 부락들에 파견하였다. 또한 이러한 정책이 철저히 시행되는지를 점검하기 위하여 왕은 빈번하게 지방순시에 나서게 되었다.
박혁거세의 왕비로 간택된 촌장의 조카딸은 처음에는 조용하게 처신하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폭력성과 잔인성 그리고 남성을 노리개 취급하는 성향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왕비의 이러한 성향을 이런 저런 사건을 통해 알게 된 박혁거세는 왕비를 멀리하기 시작하였고, 대신 대단한 미모와 덕성을 갖춘 또 다른 촌장(S촌장)의 조카딸을 자신의 둘째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왕이 아름답고 착한 둘째 왕비를 총애하게 되자 여인왕국 출신의 첫째 왕비는 분노와 질투심으로 가득 찼고, 이에 왕이 지방에 순시를 나간 틈을 타 둘째 부인을 궁 바깥의 한 허술한 집으로 유인하여 형언하기 어려운 고문을 가하고는 처참하게 죽여 버렸다. 그리고는 그 일이 발각될까 우려하여 그 일에 가담한 여러 명의 부하들까지 살해하여 집을 통째로 태워버렸다.
왕이 지방 순시에서 돌아와 보니 사랑하는 둘째부인이 사라져 버렸음을 알게 되었지만, 신하들과 궁녀들 중에는 아무도 그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박혁거세는 왕비를 모시고 있는 한 시녀로부터 무서운 고백을 받게 되었다. 그 시녀는 무예가 출중한 여인왕국의 무사 출신으로서 왕비의 심복이었지만, 둘째왕비를 너무나 끔찍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는 첫째 왕비의 모습에 치를 떨다가 왕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 것이었다. 박혁거세는 크게 진노하였고 왕비를 당장 폐비시키고 처벌코자 하였으나, 이 경우 여인왕국의 잔재 세력으로부터 보복이 있을 것임을 두려워하는 B촌장과 대모님의 눈물어린 간청으로 왕비를 그냥 두기로 하였다. 이 사건 이후 왕은 더 이상 (첫째)왕비를 가까이 하지 않게 되었고, 왕비는 자신을 배신한 시녀를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였다. 또한 자신의 조카딸을 박혁거세의 둘째부인으로 들여보냈다가 낭패를 본 S촌장은 정치에 뜻을 잃고 산천을 유랑하였는데, S촌장을 살려둘 경우 후환이 있을 것을 걱정한 왕비는 사람을 보내 그를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죽게 만들었다.
왕비의 폭력성과 잔인성 그리고 문란함이 도를 더해 감에 따라, B촌장은 국가와 가문의 명예를 욕되게 하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조카딸을 더 이상 그냥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한 자객으로 하여금 왕비를 몰래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 하지만 그 자객은 오히려 무술이 뛰어난 왕비에게 붙잡혀 모든 사실을 고백한 뒤 죽임을 당하였다. 왕비는 자신을 시해하라고 지시한 삼촌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자신의 심복으로 하여금 촌장이 늦게 본 외동딸을 납치하여 성폭행한 뒤 살해하여 산에 버리게 하였다. 딸의 시신을 발견한 B촌장은 누가 왜 그러한 행위를 한 지를 알지 못한 채, 오랜 기간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지내게 되었다.
박혁거세에게는 왕비와의 사이에 세 딸과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딸은 왕비의 부도덕한 행실에 따른 결과로서 박혁거세의 친 자식이 아니었다. 왕은 자신을 쏙 빼 닮은 셋째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였고 막내아들의 탄생을 매우 기뻐하였지만, 다른 한편 왕위를 잇게 될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였다.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친아들의 생명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왕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박혁거세는 왕자가 어릴 때 왕비가 모르는 안전한 곳을 물색하여 아들을 그곳에 보내버렸고, 지방 순시를 나갈 때 그곳에 들러 아들과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박혁거세는 어릴 적부터 하늘이 보내준 특별한 존재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었기에 쉽게 왕에 추대될 수 있었고, 또 즉위 후에는 여인왕국을 해체하고 폭력적 남성부족들을 모두 평정하였으며 백성들을 교화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박혁거세는 매우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에게는 낳아준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도대체 자신은 어디서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왔는지를 궁금해 하였고, 왕비의 극악무도함을 피부로 느끼고 인생의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음은 안타깝고 답답하고 그리고 슬펐다. 젊어서부터 오랜 기간을 지방 순시를 다니면서 순수하고 어진 여인들을 만나서 위로를 받기도 하였지만, ‘단희’라는 여인과의 만남을 끝으로 그런 관계조차 모두 정리한 채, 만년에는 정치에서 한 발짝 물러나 도인 혹은 신선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였다. 박혁거세가 이렇게 정치에서 뜻을 잃어가는 사이에 왕비는 정치적 권력을 확대해 갔고, 자신의 과거 행적을 감추고 미화하는데 큰 힘을 쏟았다.
이러한 박혁거세에게 평생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B촌장의 부인 즉 대모님이었다. 숲에서 발견한 박혁거세를 모든 정성을 다해 키워 준 것은 물론, 외동딸을 잃은 슬픔에 세속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겠다고 우기는 B촌장을 설득하면서 박혁거세를 위해서 결코 경주를 떠날 수 없다고 고집하였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궁궐에 머무르며 박혁거세를 보살펴 주었다.
언제 임종할 지를 미리 안 박혁거세는 임종 직전 대모를 비롯한 자신의 가족, 친지 및 신하들을 모두 자신의 처소에 모이게 하였고, 안전을 염려하여 멀리 보내었던 아들도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동안 자신이 왕자였음도 몰랐고 또 왜 자신이 궁 바깥에서 생활하였는지도 몰랐던 왕자는 비로소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에 대한 큰 갈등에 휩싸이게 되었다. 너무나 그립던 어머니를 보게 되었지만, 그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또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가운데 박혁거세의 영혼은 생명이 조금 남아 있는 상태에서 몸을 빠져나갔고, 그 영혼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감싸고 천천히 돈 다음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 자리에 모였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것을 몸으로 느끼며 매우 신기해하였다.
2대 남해왕이 즉위한 이후 박혁거세 왕비는 아들을 폐위시킬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었고, 이에 남해왕은 신하들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어머니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되었지만, 많은 금은보화와 여러 시녀들을 함께 보내었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남해왕 어머니는 여인왕국의 잔재들을 모아 또다시 반란을 시도하다 결국 붙잡히게 되었다. 신하들의 강력한 요청을 물리치지 못해 결국 어머니에게 사약을 보내지만, 남해왕은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비극에 비통해 하면서 통곡하였다. 남해왕은 생전에 어머니가 스스로에 대한 행적들을 날조하고 왜곡시켰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굳이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
이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신화라고 일컬어지는 박혁거세의 일생을 인간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간단하게 기술한 것입니다. 소위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입증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마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어떤 역사적 이야기보다 더 진실한 것이라고 느낍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직접 언급된 모든 등장인물들은 물론, 박혁거세를 둘러싼 대부분의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가이아 프로젝트 사명자들입니다. 2천년 후 한반도에 집중적으로 환생할 사명자들에게 한민족, 한반도 그리고 그 에너지에 미리 익숙해지도록 할 필요성에 의하여 계획된 것이며, 각자는 자신이 지구에 와서 익힌 성향에 맞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앞으로 가이아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일을 하게 될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정화되는 과정에서 전생들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으며, 이 경우 위의 이야기와 같은 역사적 진실들도 밝혀 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06년 4월 2일 장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