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삼한(李三漢)

세상과 삶 속의 이치와 진실 - 2. 진실(사실), 진리(이치)

기른장 2021. 2. 28. 20:11

2. 진실(사실), 진리(이치)

 

2-1. 사실이 왜 중요합니까?

 

(답변)

사실(현실)은 우리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바탕입니다. 사실이 아닌 일은 현실에 없는 일이며 거짓이니, 사실에 충실할 때만이 우리 삶에 거짓과 허황됨이 없어 알찬 성과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실을 모르고 살아갈 땐 이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실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를 ‘무지’라고 하는데, 성자들께선 이 세상 속에 있는 진실(참된 사실, 실상)을 보심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무지를 지적하며, 거짓을 버리고 참된 사실에 따라 행동하여 행복을 찾으라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사실과 이치에 의해 지은 원인에 따라 이루어지니, 풍년을 얻기 위해서는 신을 믿고 기도를 하는 대신,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어야 합니다. 기도로써 풍년을 얻을 수 없다면 다른 어떤 일도 기도로 이룰 수 없습니다. 모든 일에서 사실을 잘 파악하여 좋은 원인을 짓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호수에 바윗덩이를 던져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수 주위를 돌면서 합장하고 ‘바위여, 떠올라라! 떠올라 뭍으로 올라오라!’고 기도한다면 그 바위가 사람들의 합장과 기도력에 의해 떠오르겠는가? 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합장한다고 해도 죽은 뒤 천계에 날 도리가 없다. 그 사람은 몸이 병들고 명이 다한 뒤에는 악취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2. 진리가 무엇입니까?

 

(답변)

진리란 사실로 존재하는 모든 일을 일어나게 하는 이치로,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이 세상을 이루는 이치를 말합니다. 진리는 우주의 시초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우주의 약속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은 이 이치를 통하여 생겨났고, 이 이치에서 벗어나는 현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니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며, 이 진실을 있게 하는 이치가 진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주변 어디에서든지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원인을 지어 사람과 세상이 흥하는 결과를 낳는 것도 진리이며, 나쁜 원인을 지어 사람과 세상이 망하는 것 또한 진리에 의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과 이치를 드러내 세상을 밝히고, 인간을 복되게 하는 ‘원인’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2-3. 절대적 진리가 존재합니까?

 

(답변)

오늘날 사람들은 무의미와 혼돈 속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진리의 실체에 대해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로 나누어 그 실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지, 진리 자체가 상대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나누어질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 권위를 갖춘 진리는 있을 수 없으며, 때와 장소에 따른 상황적인 가치 기준, 즉 상대적 진리만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각 개인의 운명이 걸린 판단의 순간에 자신의 결단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기에, 그 진리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적 진리와 같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논리만 가지고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상대적 진리관은 진리 부재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하고, 진리의 역할을 포기하게 만들어 결국 진리 부정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하지만, 진리란 거대한 세상이 흐르는 원리이기에, 일반적인 인간의 사고와 인식 수준으로는 그 존재 여부를 명확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한계 속에서 성자들은 열린 눈으로 보신 그 진리의 존재를 밝히고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세상에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성자들의 출현과 무관하게, 이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속성으로, 그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겐 가장 중요한 삶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는 진리가 가득 차있기에 인간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믿고 의지할 버팀목이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이 세상과 자신을 지키는 빛으로서 이 진리를 배우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4. 진실과 진리의 의미는 간단한 것 같은데, 왜 알아보지 못합니까?

 

(답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진리가 보이지 않고, 매우 무질서하며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하느님이 있다면 왜 사람들이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을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신은 무자비하고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 매우 선하고 합리적인 사유로 이러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각자의 능력만큼 받게 하고, 각자의 시각만큼 세상을 보도록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선 일반적인 세상 사람들을 가리켜 중생(衆生)이라 하는데, 부처님은 중생을 눈뜬장님이라 하여 눈앞의 일도 제대로 보지 못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면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본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얘기가 뜻하는 것은, 깨달은 이는 마음이 완전히 밝아져 세상의 모든 일을 보지만, 중생은 그 마음이 어두우니 눈앞의 일도 제대로 모르고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을 말합니다.

 

그럼 중생은 왜 제대로 보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무지(無知) 때문입니다. 무지가 마음을 가리니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고, 거짓과 죄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바로 알게 되면 잘못된 삶의 원인을 보게 됨으로써, 옳고 그름을 가려 행동함으로써 모든 불행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각자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라며 “너 자신을 알라!”고 역설하고, 부처님은 무명(無明)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 그 마음을 밝히라고 하셨으며, 예수님은 진리에 따라 살라며 “주여! 주여! 하며 말로만 외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행하라”고 꾸짖었던 것입니다.

 

 

2-5. 어떻게 해야 진리를 깨쳐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까?

 

(답변)

눈뜬장님인 중생이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바로 보신 분의 시각과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을 배우기 전에는 거짓과 진실, 선과 악을 분별할 수가 없고, 사실과 이치에 맞춰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혼자서 더듬거리다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지만, 진리를 보는 이의 손을 잡고 어둠 속을 걸어 나가면, 점차 주변을 익히면서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돼, 마침내는 혼자서도 자유롭게 세상을 여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6. 진리를 설명해 주세요. 어떤 이치들이 있습니까?

 

(답변)

모든 세상일을 있게 한 이치가 진리지만 크게 나누어 인과법, 인연법, 실상법, 윤회법(순환법), 모태법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속에서 이치들이 하나로 이어져 모든 것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인과법(因果法) :

모든 일은 원인으로부터 발생한 결과이며, 원인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아니한다.

한번 생겨난 원인은 언젠가는 반드시 결과를 나타내며, 이 원인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수학의 공식을 깨치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듯이, 세상의 일도 ‘모든 일이 하나의 이치(만법귀일/萬法歸一)’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러한 법을 깨치면 세상을 보게 되고, 세상을 보는 자는 깨달은 자인 것이다.

 

인연법(因緣法) :

자기와 연결되는 일들에 의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생긴다. 잘못된 인연은 잘못된 일로, 좋은 인연은 좋은 일로 자기에게 따라오며, 삶을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다. 따라서 좋은 인연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고 나쁜 인연을 멀리해야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실상법(實相法) :

실상(實相)이란 ‘모든 것이 있는 사실 그대로의 참모습’이란 의미이며, 실상법은 사실로 존재하는 일에 대해 밝힌 법으로 ‘사실을 바로 보는 가르침’을 뜻한다.

세상은 인간들이 지은 원인이 모여 나타난 결과체로서, 그 속에는 선과 악, 좋고 나쁜 원인들이 뒤얽혀 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세상의 좋은 일도 진실(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요, 나쁜 일도 진실이라는 것이다. 다만, 좋은 일에는 좋은 원인이 있고 나쁜 일에는 나쁜 원인이 있음을 밝혀, 좋은 원인은 권하고 나쁜 원인은 경계할 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윤회법/순환법(輪廻法/循環法) :

세상은 순환을 생명원리로 하여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대기의 흐름과 바다의 조류도 끝없이 순환하면서 살아 움직이고, 물도 하천과 바다와 땅과 하늘을 돌며 끝없이 순환하고 있다.

사람 또한 ‘윤회’라는 순환의 원리 안에서 존재한다. 사람은 죽음 이후 기억이 모두 지워지지만, 그 영혼의 씨앗은 다시 인간의 몸에 심어져 새 생명을 받게 된다.

 

모태법(母胎法) :

모태의 ‘태(胎)’는 ‘아이를 배다, 태반/탯줄, 사물의 기원 등’을 뜻하는 단어로, 모태법이란 ‘모든 존재는 자기 속에 있는 근본으로부터 생겨나며, 다른 외부적 요인이 추가되지 않는 한 이를 계속 반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모든 존재는 자신이 타고난 모태에 의해 주어진 운명을 돌지만, 이 모태를 변화시키게 되면 운명도 변화되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존재 이유가 있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삶의 흔적을 자신 속에 담는다. 씨앗을 하나 심어도 그 씨앗이 싹터 과실나무로 크기까지, 비를 맞고 태양에 그을리며 추위에 떤 모든 생활 과정이 열매 속에 담긴다. 그래서 그 열매를 심으면 다음 생에는, 과거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에서 자랐던 자신의 흔적을 담은 새로운 과실이 열리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자기를 얻고자 한다면, 좋은 원인을 지어 그 모태 속에 좋은 원인을 담아야 한다. 한번 좋은 원인을 지으면, 모태 속에 담긴 좋은 원인은 후생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한번 나쁜 원인을 지으면, 후생을 나쁜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새로운 원인이 가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2-7. 진리를 거스르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답변)

진리란 사실로 이루어진 세상일을 만드는 이치입니다. 따라서 사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그 사실들이 생겨나는 길을 따라 살면, 모든 것이 순리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일을 제대로 성사시킬 수 있고 행복을 가져오지만, 세상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어기고 거짓과 환상에 의지하여 살면, 되는 일이 없어 불행한 삶과 어두운 세상을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일과 세상일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개인이 무지하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되며, 이로부터 세상에 거짓과 환상과 죄악이 커져 그 세상은 어둡고 고통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과 이치를 밝혀 올바른 길을 찾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2-8.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세상에선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답변)

지금 세상은 참된 가치와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이 사라지고, 어둠과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오직 욕망과 이기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둡고 힘든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밝은 정신은 자신을 진흙탕에 나뒹굴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존재하게 하는, 고귀한 정신과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힘들더라도 지은 대로 받는, 인과의 이치와 자업자득의 원리는 엄연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이 악하다며 자신도 악하게 살면 자신과 세상을 망치게 되지만,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이라도 선함을 지키고 좋은 원인을 지으면, 자신 속에 좋은 결과가 쌓여 좋은 근본을 얻고 좋은 후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늘은 인간에게 큰 은혜를 주었으니, 어려운 환경을 이겨낼수록 더 큰 보람과 가치를 얻고, 더 큰 자신을 만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큰 인물을 나게 하려면 먼저 시련을 준다 하였고, 인간 완성의 경지인 깨달음은 악이란 악이 모두 모인 말세의 어둠과 고통을 이겨낼 때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성자들은 악이란 악은 모두 모인 매우 절망스런 세상에 태어나 그 어둠과 고통을 이겨내고 인간 완성을 이루었으며, 자신을 다 바쳐 세상을 위해 사랑을 실천했으니, 시련은 항상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희망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둠과의 부딪침을 통해 자신 속에 맑고 좋은 의식이 깃들면, 그 근본은 계속 자신에게 남아 다음 생에 나타납니다. 지금 욕망을 극복하는 힘을 얻는다면 다음에도 욕망을 이겨내고 맑은 의식을 되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될 것이고, 이생에서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을 얻는다면 다음 생에서도 똑같이 세상의 이치에 눈을 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공적인 삶을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마지막 한 시간이 주어졌다 해도, 그 한 시간을 열심히 살며 더 나은 자기를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