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삼한(李三漢)

세상과 삶 속의 이치와 진실 - 5. 인간 완성, 수행, 바른 생활, 사랑(공덕행)

기른장 2021. 2. 28. 21:07

5. 인간 완성, 수행, 바른 생활, 사랑(공덕행)

 

5-1. 정말 인간 완성의 경지가 있습니까? 그런 경지에 도달한 분이 있습니까?

 

(답변)

때론 인간이 하찮은 존재로 여겨져, 인간 완성이라는 경지도 불가능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힘없고 하찮은 동물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자신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완전한 이치로 이 세상을 만들고, 생명을 창조하였으며 최종적인 존재로 자신을 닮은 자율성과 창조성을 지닌 인간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지은 대로 결과를 받는 완전한 이치를 통해,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 땐 다시 창조주와 같은 완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즉, 창조주는 자신의 신성(자율성, 창조성)을 부여받은 고귀한 인간을 만들고, 이로부터 다시 자신과 같은 인간 완성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함으로써 완전성의 순환을 이루며 자신의 완전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선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노자가 성자(聖者)의 반열에 올랐는데, 이분들은 모두 사실과 이치에 따라 진실과 사랑, 양심과 용기, 의지와 열정으로 인격의 성숙을 이루고 자신을 정화하여 신성한 뜻을 완성하였습니다. 거짓과 탐욕에 물든 어두운 세상에서도 밝은 뜻으로 세상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성자들이 나타나, 완전한 진리를 밝히고 사랑을 실천하여, 인간 완성의 신성한 경지가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단순한 생물적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신성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교에서는 이 같이 완성된 존재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갈망해 왔으니, 그것이 바로 구원과 영생, 깨달음과 해탈의 경지인 것입니다.

 

 

5-2. 인간 완성을 위한 수행이라면 너무 거창해 보이는데,

일반인과는 무관한 거 아닙니까?

 

(답변)

인간 완성이나 그걸 위한 수행이라 하면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사람이면 누구나 성숙한 인격을 흠모하며 가능하다면 완전한 자신을 이루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 완성이란 삶과 동떨어져 별도로 존재하는 경지가 아니며, 그저 오이가 오이 열매를 맺고 참외가 참외 열매를 맺듯이, 인간이 그 열매를 맺는 삶의 과정이며, 수행이란 주어진 삶을 통해 자신의 근본을 바로 알고, 사실과 이치에 맞는 바른 길을 찾아 열심히 좋은 원인을 지어, 자신이 지니고 나온 인간적 가치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 완성의 목표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 있는 것이지, 삶을 벗어나 따로 있지 않습니다. 열심히 사는 삶 속에서 더 좋은 자기를 이루고, 이러한 좋은 원인들이 모여 열매를 맺게 되면, 모든 인간이 꿈에도 그리는 인간 완성의 경지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각자 지닌 근본과 환경이 달라 그 과정과 시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좋은 원인들이 모이고 모든 어둠을 깨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목적지가 바로 인간 완성의 경지인 것입니다.

 

즉, 모든 인간은 더 좋은 자기를 짓기 위해 태어나고, 그 최종 목표인 인간 완성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짓는 원인에 따라 진보하거나 혹은 퇴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의 삶 속에서 사실과 이치를 밝혀 모든 나쁜 원인은 짓지 않고, 모든 좋은 원인은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5-3. 참선, 기도, 단전호흡, 기(氣)수련, 명상 등을 통해 인간 완성이 가능한가요?

 

(답변)

요즘 사람들은 각종 명상 기법이나 기도와 신앙 등의 종교적 방법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자신을 완성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완성은 그러한 형식적 기술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의 원인들을 자신 속에 쌓아 그 결과가 무르익었을 때 자연스럽게 열리는 열매와 같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자연 속에서 생명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열매를 맺듯이, 인간도 주어진 인생을 통해 열심히 좋은 삶을 지음으로써 좋은 자기를 만들고, 그 정신을 완성하여 인간 완성의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적 수행이나 명상, 단전호흡, 기수련 등의 기술로 인간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진지한 삶의 과정들을 형식적인 수행 기법으로 대체시켜 인위적이고 가공적으로 만들게 되니 올바른 수행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성자들은 인위적 수행이 아닌, 사실과 이치 속에서 좋은 원인을 짓는 참된 삶의 길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5-4. 참된 수행을 위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답변)

참된 수행을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주어진 상황과 문제에 맞는 합당한 원인을 지을 수 없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으며, 좋은 자기와 완전한 정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세상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중생을 눈뜬장님이라 했듯이, 일반인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시각을 얻어야 합니다.

 

‘진실연구회(진실의 근원)’에는 깨달음을 얻으신 성자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약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기를 원하신다면, 먼저 ‘진실연구회’의 글을 읽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곳의 글들은 세상을 모두 보신 깨달은 분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세상의 일뿐 아니라 생명의 세계와 사후 세계의 일도 모두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의 지식은 물질에 국한된 인과 관계만 분석하는 일차원적 지식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구하고, 좋은 사후의 답을 찾으며, 밝은 세상을 추구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눈에는, 삶의 길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연구회’의 글을 읽는다면, 물질과 생명과 의식 그리고 생명과 사후 세계의 모든 차원에 대한 진실과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일을 바로 보게 되면,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바로 알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보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자신이 소망하는 거의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5-5. 일반인이 평소에 지켜야 할 덕목은 무엇입니까?

 

(답변)

인간이 자신의 근본을 보존하며 더 좋은 자기를 가꾸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키고 행해야 할 덕목은 근면, 검소, 정직입니다. 이는 행복을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기도 합니다.

 

근면하게 살면 생활이 넉넉하고 안정되며, 검소하면 부족함이 없으며 다른 욕망에 빠지지 않으니 위험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또 정직하게 살면 마음에 거짓과 어둠이 없으니 항상 당당하고 평안하며,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으며, 마음이 평안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덕목을 지키면 생활이 안정되고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으며,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커지고, 충실한 삶으로 자신의 근기(根氣, 근본이 되는 힘)를 기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면, 검소, 정직으로 자신을 지키고 가꾸는 생활을 해나갈 때, 이를 기반으로 좋은 삶을 이루며 좋은 근본을 얻어 인간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5-6. 인간 완성에까지 이르는 최고의 수행법은 무엇입니까?

 

(답변)

인간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에 모든 업이 사라진, 완전히 맑은 의식 상태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야 무지와 어둠에 가리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순수 의식 상태에 도달하여 완전한 시각을 이룬 경지를 우리는 인간 완성에 이르렀다, 깨달음을 얻었다, 해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업이 많은 중생은 그 마음이 어두워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없으며 그만큼 무지와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수행이란, 세상을 바로 보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바로 보고 세상일을 하나씩 깨쳐, 모든 마음의 어둠이 사라지고 세상을 완전히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입니다.

 

그러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의 가르침을 만나, 세상을 보는 시각을 키워야 합니다. 진리를 배워 깨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세상을 바로 보게 되고, 자기 앞에 놓인 세상일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 마침내 자신과 세상을 축복하는 좋은 원인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수행은 이렇게 하나씩 쌓아 열매를 맺는 것이지, 기도나 명상, 참선에서 말하듯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진리의 가르침을 배워 세상을 바로 보는 지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신 속에 있는 어두운 업을 제거하지 않는 한, 생동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세상을 바로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완전히 정화된 순수 의식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알게 된 실상과 이치를 세상에 실천함으로써 마음속에 드리워진 어두운 업을 모두 청소해야 합니다.

 

여기에 공덕행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공덕행(功德行, 공덕을 짓는 행동)이란, 사실과 이치에 맞는 올바른 원인으로 세상을 축복하는 행동을 말하는데, 이러한 일은 세상에 이로운 결과를 낳으므로, ‘사랑의 실천’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 같은 공덕행을 하는 이유는, 세상을 바로 보고 옳고 그름을 알게 되면, 세상에 나쁜 원인이 되는 행동을 범할 수 없고, 좋은 원인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 속에 쌓여 자기 자신의 열매가 되고, 자기가 세상에 끼친 영향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은 원인을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알게 된 너무나 소중한 사실과 이치를 양심상 혼자만 알고 지낼 수가 없어 이웃을 위하는 순수함으로, 사실과 이치를 벗어난 일들을 밝히고 좋은 길을 알려줌으로써 세상을 축복하다보면, 어두운 세상에 물든 거짓된 자들은 자신들의 거짓이 탄로 나고 밥줄이 끊어질까 두려워하여, 오히려 이를 반대하고 해치려 합니다. 이는 대부분의 성자가 박해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공덕행을 실천하는 사람의 마음에선 그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 진리와 사랑의 불이 타올라 스스로 진리화 되며, 사사로운 업이 사라지고 더욱 맑게 정화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과 진리를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칠 때, 그 마음속에는 오직 진실한 순수 의식만이 남겨지고, 모든 삿된 업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에게 오묘하고 완전한 은혜를 베풀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맑은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고 자비하는 마음을 주었으니, 삶을 통해 세상의 진실과 이치를 밝히고 세상을 축복하면 그 마음에 사랑의 불이 일어나, 모든 어둠을 불사르고 완전한 마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즉, 인간이 진리를 깨쳐 맑고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축복하다 보면,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 마음이 빛나고 열이 나서, 자신 속에 있던 모든 애욕과 집착과 악업을 태우고, 맑고 순수하며 완전한 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탁함이 사라진 순수 의식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해탈의 경지이며, 그 최고의 수행법이 바로 공덕행입니다. 공덕행은 부처님이 가장 중시하셨던 수행법으로, 역사가 흘러오면서 명상과 참선에 의해 가려져 그 실체가 희미해졌지만, 사실과 이치에 한 치의 어김없는 최고의 수행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