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그는 바람에게로 간다.
바람은 그를 위해 전차 수레바퀴의 구멍과도 같이 그 곳을 열어주네.
그곳을 지나 그는 더 높은 곳으로 오른다. 그는 태양에게로 간다.
태양은 그를 위해 드럼의 구멍과도 같이 그곳을 열어주네.
그는 달에게로 간다. 그는 슬픔이 없는 세계로 간다.
-브리하드 아란야카 우파니샤드-
라이라의 프리즘을 통과할 때 어떤 존재들은 비육체적 형태로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이들 실재들은 3차원 밀도층의 지구와 같은 보다 조밀한 현실세계의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사랑이 넘치는 존재가 될 것을 선택했다. 발전을 거듭하는 물리적 세계에서 진화하는 생명체는 다른 영역에서 원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그들은 자각했다. 이러한 도움은 원형, 천사들, 안내자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향의 형태로 오게 된다.
이들 존재들은 아르크투루스*라고 불리는 별이 있는 지역으로 자연히 끌렸다. 처음에 그들이 아르크투루스 항성에 끌렸을 때는 바깥에 드러난 모양은 현재와 조금 틀렸지만, 그 지역의 에너지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아르크투루스에는 시공간의 구조속에 대문, 교차로라는 것이 있었다.
이들은 곧 이 대문이 최초의 차원 주입 이래 어떤 존재들이 서식하고 있는 모든 지역을 차원적으로 소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목적, 즉 깨달음의 여러 수준에서 의식체를 돕는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아르크투루스인들의 목적은 다면적이다. 그중 하나의 사상은 그들은 인간류에게 하나의 이상형으로 봉사한다는 것이다. 이들 아르크투루스인들은 개인이나 사회의 미래의 자신들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천성적으로 그들의 에너지는 긍정적 잠재력과 어떤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통합을 끌어내는 자력성이 있다. 그들은 지구의 진화가 어느 곳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지구에 투영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비육체적으로 진화하게 되면, 이상적인 목표는 아르크투루스의 대중의식과 비슷한 의식 상태를 성취하게 된다. 그들은 의식은 진화한다는 사상을 행하는 집단 모형(group matrix)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 아르크투루스인들은 인간에게 매우 헌신적으로 봉사하기 위해 종종 천사로 나타난다. 그들의 본질은 영적이다. 그들의 에너지는 창조성이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갑작스럽게 출현한다. 그들은 인간의 신앙형태에 따라 나타나게 된다. 전통적인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는 천사로 나타난다. 좀더 현대적인 사고를 가진이에게는 아마도 미래의 구도자의 모습이나 혹은 외계인으로 나타난다.
어느쪽이든 육체를 가진 존재와의 전체에 봉사하고자 하는 진실로 사랑이 넘치는 존재와의 상호교류인 것이다. 그들은 물리적인 육체를 가진 존재에 봉사하기 때문에, 어떠한 행성에 살고 있든, 인간류형태의 존재뿐만 아니라, 인간류의 진화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진화과정을 겪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도 상호작용을 한다.
모든 행성은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신성한 왕국(식물, 광물, 동물의 의식에너지를 말함)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아르크투루스 에너지는 이들 행성에 있어서 신성하고 보다 차원 높은 양상으로서 작용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르크투루스의 의식들은 미래의 진보된 이상형을 반영해주는 사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르크투루스인들 중 일부는 봉사하기 위해 육체를 갖는 경험을 갖기로 했다. 그들은 출생과정을 거쳐서 육체에 들어가기 보다는 이미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육체속에 걸어 들어가기(walk in)를 선택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환생과정(업보의 강박)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없다.
정서적으로 고통을 받는 인간의 영혼은 치유를 위해 아르크투루스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호기심이 많은 아르크투루스인은 잠시 어떤 행성에 육체를 입고 오게 된다. 아르크투루스인들이 육체를 가진 존재들을 위해 제공하는 봉사는 정서적인 치유이다. 아르크투루스라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역 내에서 충격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지구의 영혼들은 치유를 받게 되고 재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르크투루스의 대문은 지구와 차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지구에 환생해 온 모든 사람들은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아르크투루스 영역을 통과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제 막 탄생하려는 사람들을 치유(healing) 해주고 이제 발생되는 육체를 가진 생명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선택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아르크투루스의 대문은 비육체적 의식이 육체성과 성적인 것에 강력한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준비해 준다.
아르크투루스인들의 견해로는 육체적인 것과 성적인 것은 같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르크투루스 에너지는 어린이든 성인이든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에게 성적 치유를 해주는데 특별히 정통하다.
이 경우에 학대를 한 사람이나 학대를 당한 사람 모두가 고통스러운 입장이기에 아르크투루스의 치유에너지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경우 시리우스/아르크투루스의 모형을 치유에 이용하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고래류들은 시리우스/아르크투루스의 치유에너지의 모형으로서 대표될 수 있다. 특히 돌고래는 상당히 성적이고 사랑에 대한 표현이 무조건적이기 때문에 시리우스/아르크투루스 치유에너지의 육체적 표시 형태로 봉사할 수 있다.
인간이 죽게 되면 인간의 의식은 이 아르크투르스 영역을 통과하게 된다. 인간의식은 그곳에서 더욱 큰 현실 세계에 대한 각성이 있을 때까지 따뜻하게 보살핌을 받게 된다. 충격적인 죽음을 당한 인간은 깨어나려는 영혼이 원활한 변화를 이루도록 부드러움과 치유가 나누어지게 된다. 사후세계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증언하는 터널 끝에서 느꼈던 불빛들은 사실 아르크투르스 진동의 표시이다.
이러한 진동은 자신의 신앙 형태에 따라 달리 해석되어진다. 아르크투르스는 6차원 밀도층이기 때문에 예수나 부처의 진동으로 인식되는 수가 많다. 이 빛은 차원 높은 자신(그리스도 자신), 혹은 미래의 자신과 동등하게 여겨질 수 있다.
죽음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은 높은 차원의 자신과 합병하게 되는데 높은차원의 자신은 우연히도 아르크투루스 영역과 거의 같은 파장의 범위를 나누어 갖고 있다.
그곳에서 치유가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창조된 것들 중에서 아르크투루스 진동만큼 완전하게 인간 영혼을 치유하고 자양을 공급하고 재생시켜 주는(rejuvenate)것은 달리 없다.
아르크투루스 진동과 동일한 개념은 창조이다. 누구든지 창조를 하는 동안은 창조자의 에너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인류는 항상 창조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르크투루스는 인류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다. 아르크투루스 별은, 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르크투르스 에너지는 한 개인이 그 내부에 지니고 있는 하나의 파장이다. 그것은 창조와 치유와 진화의 파장이다.
아르크투루스 파장은 지구뿐만 아니라 다른 물리적 행성들과도 함께 해왔다. 아르크투루스의 파장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이면의 움직임, 차원 주입의 전체적 이상 속에 항상 존재한다. 아르크투루스 에너지는 저변에서 우리 인간과 항상 변함없이 상호교류하기 때문에 지구 행성의 주변 환경은 아르크투루스 에너지를 종종 개인을 감성적으로 폭발시키려 하는 어떤 형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가 수정체 모양의 구름, 즉 장대한 구름의 형태가 스스로 원반 모양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인 '우주선'은 인류가 보지 못하고 있는 은하계와의 연결을 인류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분극화된 현실세계에서 아르크투루스는 그 자신이 진화하고자 하는 성질의 또 다른 양상을 반영해 주는 상대가 되는 지역을 선택했다. 그 상대는 안타레스(Antares)이다.
차원 출입구에 아르크투르스와 안타레스 사이를 연결시키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이 지역 에너지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에 환생해온 의식체들 대부분은 아르크투르스 진동만을 지나온다. 그 나머지 의식체들은 아르크투루스에 도착하기 전에 안타레스를 거칠것을 원한다.
이들 개인들이 바로 대중의식의 유형들, 모형들, 세포 차원의 진화와 직접 연결되어 일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레스는 지구를 포함한 은하계 1/4과 안드로메다 은하계 사이를 차원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지점이다. 안타레스/안드로메다 연결점은 존재의 추상적 관념을 활성화 해주고 육체를 가진 종족들이 과거 유산을 기억하고 과거를 변화시키는 의식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첫째로 아르크투르스와 시리우스는 하나의 공동협력체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아르크투루스 에너지가 감정적 치유의 노력을 기울이는 곳은 어디든지 시리우스 에너지가 육체적 치유를 촉진해주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일찌기 이점을 알았고 그들의 제사에서 아르크투르스/시리우스의 에너지를 불러들여 도움을 청했다. 아누비스(Anubis)라는 신은 바로 시리우스의 원형이었지만 아르크투루스 에너지와 함께 일했다. 아누비스는 육체적 죽음의 과정을 겪게 되는 사람을 저승(astral)으로 인도했다.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을 시작한 아르크투루스와 시리우스로부터 온 에너지들이 있었다. 아누비스를 상징하는 재컬(시리우스의 원형)의 표시는 이집트인들이 이러한 연결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아누비스는 몸과 분리된 영혼을 치유의 장소인 아르크투르스 영역으로 인도했다. 오리온이 충돌하기 쉽고 분극화된 인간 성질을 나타내지만, 아르크투루스는 통합하는 인간 성질을 나타낸다.
지구 발달 초기에 아르크투르스인들은 잠시 인간들에게 지각될 수 있도록 자신들을 조밀화하는데 동의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고대문명인 레무리아에 치유의 기술을 가르치며 상호교류를 했다. 상호교류의 기억은 3대에 걸쳐 전달됐다. 레무리아인들은 지구의 여러 곳으로 퍼져갔는데 이 기억도 그들과 함께 전해졌다.
이스터 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들이 아르크투루스인들의 직접적인 상호교류가 물리적으로 남아 있다는 몇몇 학설들의 근거다. 석상들이 세워진 의미는 조밀화된 아르크투루스인들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뜻은 아니다.
그 석상들의 위치는 하늘을 향해 있으며 먼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아르크투루스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결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에너지는 인류와 항상 함께 있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깥을 바라보는 대신에 자신의 내부를 관찰해 보면 아르크투루스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의 가능한 한계가 바로 이들 아르크투루스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이 진화의 소용돌이에서 당당하게 더욱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고 격려해준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집이고, 우리의 마음은 바로 아르크투르스가 지나는 통로인 것이다.
주석설명
걸어 들어가는것(walk-in)으로 불리는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합사(soul braiding)'라는 일반적 과정을 경험했다. 이 과정은 서로의 의식을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자신의 에너지의 보다 높은 파장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의식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원래 의식의 증대와 함께 통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흔히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사후 세계를 경험해본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보게 되는 밝은 빛에 대해서 통렬하게 언급해왔다.
무디의 사후인생(Moody's Life After Life)에 보고된 자료는 다음과 같다
밝은 하얀 빛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빛이 너무나 밝아서 나는 그것을 바로 꿰뚫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속으로 들어가니 너무 고요하고 좋았다. 지구상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죽은 후에 아르크투루스 진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이 경험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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