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는 플레이아데스인들로부터 배운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접촉은 대부분 플레이아데스 여성이며,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셈야제와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그가 그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어떤 슬픔까지도 그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아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나는 특별히 어느 날 밤을 기억한다. 우리는 집 바깥에 서 있었다. 스위스의 하늘은 청명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별들을 가리키면서 내게 플레이아데스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나는 그에게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살고 있는 에라(Erra) 행성에 그가 한 번이라도 가 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당시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정보에 의하면, 그가 플레이아데스를 방문했다거나 그들의 문명을 보았다거나 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틀렸었다. 그는 1984년에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지구 기지 사령관인 케찰(Quezal)과 함께 그곳을 방문하여 사흘을 머물면서 그들의 진보된 문화를 보았다.
케찰은 빌리가 셈야제와의 접촉이 중단된 다음에도 그를 보기 위해 자주 들렀다.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고, 케찰은 자신의 고향 에라 행성으로 귀환하면서 빌리를 함께 데리고 가고 싶어 했던 것이다.
플레이아데스를 방문하다
비록 케찰이 지구에 오랫동안 주재하기는 했지만 그의 고향은 여전히 플레이아데스에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더 편한 의식 수준들 사이에서 머물기 위해, 며칠 동안만이라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귀환을 하곤 했다. 그곳에서 그는 편히 쉬면서 자신의 임무에 대한 것들을 한동안 잊어버리고 고향 세계의 고요함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빌리와 에라 행성으로 가면서 케찰은 그들의 사회가 어떻게 합일(unity)과 조화(harmony)를 이룬 평화로운 세계로 발전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빌리는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언제나 이렇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과, 또한 그들이 수천 년 동안의 전쟁과 투쟁을 통해 평화를 얻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 교훈이 지구인들에게 제대로 이해가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속력을 내고 있던 비임쉽이 플레이아데스의 대기권으로 진입해 들어가자, 빌리는 그 지형이 지구와 아주 흡사한 것을 보고 놀랐다. 에라 행성의 대부분 지역이 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산과 숲들이 스위스에 있는 자신의 고향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지구처럼 하늘을 찌르는 빌딩으로 가득 찬 대도시는 없었지만, 그 대신에 에라 행성의 적은 인구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공동체는 행성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시골풍으로 살고 있었으며 서로 일정한 간격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연 속에서 사는 것과 같아서 지상에서 보면 거의 알아채지 못할 만큼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인구가 적은 소규모의 도시로 보이는 지역 여러 개를 날아 지나가면서, 케찰은 생활을 위한 물품들의 제조와 생산은 대부분 자기네 태양계의 다른 행성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은 에라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오래전에 자연과 균형을 이루도록 발전하여 자연을 잘 보호하고 있었다. 에라의 어디에도 연기를 내는 굴뚝이나 어떤 종류의 공해(pollution)도 없었다. 대기는 완벽하게 깨끗하고 좋았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항상 건강을 유지하고 7백 세라는 긴 삶을 사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비임쉽은 케찰의 집에 있는 도착지에 착륙했다. 우주선의 운전 시스템을 정지시키고 빌리와 케찰은 땅으로 내려섰다. 아름답고 청명하며 햇빛이 가득한 대낮이었다. 산소가 가득 차 있는 대기를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는 순간 빌리는 지구의 공기가 얼마나 오염이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케찰은 지구 대기의 용존 산소량이 아주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져, 질병과 자연의 손상을 초래할 정도까지 왔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에라 행성에서 빌리는 가슴 가득히 공기를 들이 마시고 내쉬면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그토록 소중히 다룬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었다.
건물은 흰색이었으며 돔(dome) 구조와 흡사한 것이 지구에서 간혹 본 적이 있는 미래형 주택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케찰은 빌리에게 집 구경을 시켜 주면서 내장된 몇 가지의 과학 기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것은 집안 공기, 대화, 음식 공급, 수면, 건강 등 삶을 위한 모든 편의를 감시 및 제공하고 있었다. 비임쉽에 내장되어 있는 것과 아주 유사한 유기체적 지성이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집에 내장되어 높은 수준의 삶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건물에서 불과 수백 미터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케찰의 다른 가족이 살고 있는, 비슷하게 생긴 집이 있었다. 그는 결혼을 두 번 했고 두 집에 아이들이 있었다. 에라에서는 그런 것이 아주 다반사(common)였다. 질투와 같은 감정적 문제들이 모두 제거된 사회이기 때문에, 한 사람 이상을 사랑할 수도 있고 한 번 이상의 결혼도 가능하다. 케찰의 경우, 그의 결혼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그가 아내들과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대부분 정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정원 일을 하지 않는다. 정원을 가꾸고 음식을 공급하는 일은 주로 기계들이 한다. 케찰은 정원에서 빌리가 지구에서 그에게 준 손연장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케찰이 자신의 정원에서 기계도 없이 일을 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는 심지어 지구에서 가지고 온 작업용 장갑, 씨앗들, 그리고 정원 삽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 일은 이웃의 주의를 많이 끌었다. 그들은 전에 이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흙에서 일을 하면서 손을 온통 더럽힌다는 것은 아주 신기한 일이어서 그들의 주의를 끌었다.
정원 너머에는 또 다른 재미있게 생긴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은 케찰이 특별한 흥미를 가진 곳이었다. 그는 많은 세계를 여행하는 것을 이용하여 많은 종류의 탈 것들을 수집하였다. 그곳에는 지구에서 가져온 많은 차, 오토바이, 트럭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빌리에게는 아주 색다르고 이상하게 보이는 여행 기구들도 있었다. 케찰은 자신의 작은 박물관에 백여 종의 이상한 고안 장치들(contraptions)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 모두를 이해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가끔 그것들을 타 보면서 아주 훌륭한 주행 상태를 유지하였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오래전부터 창조를 통해 모든 생명체를 함께 연결하는, 사고와 영적 유대의 힘을 이해해 왔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는 집단 사고 의식을 잘 보호하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발전해 오면서 그들의 사고 과정은 아주 높은 수준으로 서로에게 잘 맞추어져 있었다. 따라서 에라 행성을 찾아온 방문객이 부정적인 생각을 투사하면, 그들은 행성을 떠나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향유하는 사고 에너지의 놀라운 균형을 방해받지 않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행성의 다른 곳으로 투사하는 능력이 그곳에서는 아주 보편적이며 사회적으로 용인된 수단이기도 하다. 텔레파시, 즉 생각으로 대화하는 능력은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전화와 같은 통신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상상해 보자. 한 행성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고 에너지(thought energy)의 일부분을 행성, 동식물 세계, 음식, 그리고 다른 모든 주민들의 건강과 복리(wellbeing)를 위해 사용하도록 공동의 저장소(pool)에 희사한다면, 그런 곳에서의 삶은 과연 어떨까? 그곳에는 탐욕도, 증오도, 분노도, 부정적인 생각도 없을 것이며 단지 진정한 이해와 사랑만이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대화가 정신적이기는 하지만, 행성 주위를 여행하기 위한 튜브 시스템(tube system)은 아직 있었다. 행성의 거의 모든 곳을 아주 짧은 시간에 여행할 수 있다. 이 튜브 시스템은 대부분 지상에 있으며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다. 튜브를 타고 있으면 움직이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이는 중력과 연료의 문제가 이미 오래전에 플레이아데스의 과학으로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튜브 시스템은 지구상의 모노레일과 비슷한 것이지만, 휠씬 진보되어 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에라의 다른 구조물들과 마찬가지로 튜브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승객들과 목적지에 대한 대화를 하고, 행성의 경치나 지형에 대한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가 있다.
빌리는 케찰과 함께 에라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리고 지구에 되돌아오는 것을 자신이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레이아데스에서의 삶이 그토록 자신의 영혼에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지구의 낮은 의식 세계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케찰은 빌리에게 그가 원한다면 지구를 돌보는 일을 뒷전으로 하고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올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빌리로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아주 어려웠다. 에라에서의 삶이 그토록 고무적이고 창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구로, 그리고 집으로 오는 동안 빌리는 줄곧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동안 많은 노력을 쏟아부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지구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지구로 되돌아오는 여행은 일곱 시간 정도 걸렸다. 케찰에게는 자신의 행성과 주민들에 대하여 많은 사실들을 빌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였다. 지구와 에라는 유사한 것이 많이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원래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조상이 이주지로 삼았던 곳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식품들을 지구로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과거 수천 년 동안에 지구는 에라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매우 비슷하게 되었던 것이다.
플레이아데스
플레이아데스는 타우르스(Taurus), 즉 황소자리에 속해 있는 작은 성단이다. 한 겨울에 북반구의 하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곰자리(the Little Dipper)라고 간혹 잘못 부르고 있는, 작은 성단에 속해 있는 여섯 개의 별을 볼 수 있다. 이것이 플레이아데스 성단이며, 여기에는 실제로 일곱 개의 별이 있지만 육안으로는 여섯 개만 보인다.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대에 따라 이 작은 성단은 왼쪽에 손잡이가 달린 국자같이 보인다. 만일 이것이 당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보이는 모습이라면, 오른쪽 맨 꼭대기에 있는 별을 보라. 그것의 이름은 타이게타(Taygeta)이며, 여기가 플레이아데스의 방문객들이 온 곳이다. 만일 우리가 타이게타를 향해 곧장 날아가서 그것을 지나 몇 광년을 더 가면, 거기에는 254개의 푸른 태양의 그룹이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의 것과 매우 유사한 그곳 태양계 안에서 살고 있다.
플레이아데스에 관해서는 우리의 역사에 걸쳐 많은 것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종종 ‘일곱 자매’ 또는 ‘제우스의 딸들’이라고 불려왔다. 기독교 경전에는 '일곱 별'로 언급되고 있다. 키오와(Kiowa) 인디언들에게는 이러한 설화가 있다. 일곱 인디언 처녀들이 곰에게 쫓기고 있는데 위대한 영혼이 와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곰들의 길을 차단하는 거대한 탑을 세운다. 곰들은 달아나는 처녀들을 잡으려고 싸우고, 그 와중에 남겨진 강력한 발톱 자국이 오늘날 와이오밍(Wyoming)에 있는 데블즈 타워 (Devil’s Tower, 악마의 탑)에 남겨져 있다. 그 젊은 처녀들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서 그들을 보호하던 위대한 영혼에 의해 플레이아데스의 일곱 별이 되었다고 한다.
기자 고원(Gizeh plateau)의 케옵스(Cheops)에 있는 대 피라미드의 기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플레이아데스는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도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 태양계가 플레이아데스를 일주하는 데에는 2만 5천827.5년이 걸린다는 것과 같은 수학적 우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케옵스의 두 사선의 길이를 재면 1만 2천913.75 피라미드 인치가 되는데 거기에 2를 곱하면 정확하게 2만 5천827.5라는 숫자가 나온다. 이 두 숫자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가?
1771년 차일즈 메서(Charles Messir)라는 천문학자가 빛나는 플레이아데스를 천체도에 최초로 기재했다. 파리의 한 호텔 옥상에서, 그는 그 별자리 안에 있는 45개의 별들을 기입한 것이다. 플레이아데스는 나중에 천체도 상에 M45로 등재되었다. 여러 번의 관찰이 지도 작성 그 이후에도 이루어져 왔는데, 지금은 플레이아데스 별자리 안에 2천300여 개 이상의 별들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의 고향 혹성 에라는 그 별자리에서 타이케타 주위에 비해 단지 10퍼센트 정도 적으며 다른 여덟 개의 행성을 차지하여 도시와 공장들을 설치해 두고 있다. 에라에는 단지 4백만 명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이 숫자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자신들의 행성에 가장 알맞은 인구라고 결론지었다. 어떻게 우주가 창조되었고 또 어떻게 그것이 창조적 영혼과 함께 진화해 가는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행성을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창조의 한 부분으로 보며, 행성들을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우주의 다른 모든 생명체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고 있다.
인구의 조절은 사회가 번성해 나가는 것을 유지하고 행성의 자원을 균등하게 나누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는 또한 자연에서 생성되는 영적 에너지와 연결을 유지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바람도 고려되어 있다. 이것은 행성의 에너지를 너무 넘치게 하거나 지나치게 뽑아 쓰지 않도록 인구를 어떤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있어 이런 것들은 오히려 신선한 자세들인데, 지구에서는 행성의 자원이 그저 빼내 쓰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성 자체를 위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혹 관심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있어 행성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땅덩어리에 불과하고, 그것을 가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에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최초로 지구를 방문한 이유는 두 행성의 유사성 때문이었다. 대기 상태뿐만 아니라 대양과 산맥 등 자연 상태와 조건이 아주 비슷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그 유사성은 더욱 높아 갔다. 식물이나 광물, 동물들이 플레이아데스로 건너 갔고 그곳에서 번식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플레이아데스인들로 하여금 지구를 방문하는 데 있어서 매우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언어
플레이아데스의 언어는 발음과 어질에 있어서 우리의 것(서양의 언어)과 그렇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그들의 말로 hour(시간)는 odur(오두르)이며, day(하루)는 musal(무쌀), 그리고 month(한 달)는 asar(아싸르)이다. 과거에 여러 번 지구를 방문하여 우리 문명에 영향을 끼쳤던 플레이아데스인의 조상들로 인해 그들의 언어까지도 오늘날 지구상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에라의 주민들은 길에서 서로 지나치면서 간단한 인사말을 한다. '사알로메(Saalome)'라고 하는 그 인사말의 뜻은 '지혜 속에 있는 평화(peace in wisdom)'이다. 유태어(Hebrew)에 '샬롬(Shalom)'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평화(peace)'를 뜻하며 보통 만날 때 또는 헤어질 때의 인사로 쓰인다. 이 단어는 9천 년 전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고향 행성 에라
에라 행성은 녹색의 대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조정 하에 자신들의 건강과 스트레스 없는 삶의 방식에 이바지한다. 그들은 하루에 네 시간만 수면을 취한다. 신속하게 숙면에 빠져들도록 유도하는 발달된 영적 컨트롤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음식은 여전히 땅에서 자라고 있는데, 소화 기관을 조절하는 그들의 집단적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많이 먹지 않는데도 음식이 그들을 더 오래 버티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음식과 식물 그리고 동물들을 지구와 다른 세계로부터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으로써 그들이 풍부하고 다양한 영양과 맛을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음식이 그들의 사고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매우 높은 이해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모두 채식을 하지만 때때로 자신들이 좀 지나치게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든지 현기증이 난다든지 할 때에는 적은 양의 고기를 섭취한다. 그들은 고기류를 섭취함으로써 사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토끼처럼 생긴 작은 동물을 개발하여 고기를 섭취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먹지 않기 때문에 진화의 상태가 낮은 그 동물을 선택한 것이다.
에라를 방문함으로써 그곳이 지구와 크기도 비슷하고, 낮과 밤이 있으며, 온도와 기후, 그리고 모든 조건이 우리에게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빌리가 경험한 대로 공기조차도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대기의 용존 산소량은 32.4%이며, 소량의 아르곤(argon)과 다른 가스가 0.3%, 그리고 나머지 67.3%는 질화물(nitrides)이 차지하고 있다. 행성 표면의 중력(surface gravity)은 지구 보다 아주 조금 높은 1.0003이며, 농도는 5.521이다. 지축은 22.99º 기울어져 있다. 행성의 지름은 적도에서 1만 2천749km이며, 초당 11.19km의 속도로 공전하고 있다. 1회 공전하는 데 지구는 365일인데 비하여 365와 1/4일이 걸린다. 에라의 하루는 23시간 59분 4초로 지구와 거의 같다. 그들의 1년은 13개월로 되어 있으며, 23년마다 한 번씩 윤년이 든다.
평행 세계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조상인 고대 라이라인들이 아사엘의 지휘를 받아 우주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행성을 찾고 있을 때, 어떤 실수로 인해 그들의 전함은 정상적 시간 내에서 몇 분의 일 초가 차질이 생긴 상황에서 플레이아데스에 착륙하게 되었다. 따라서 플레이아데스는 지구와 같은 시간 진동대에 속하지 않는다. 밤하늘에 보이는 플레이아데스를 향해 날아간다고 해도, 그곳에서 아무 생명체도 발견하지 못하고 푸른 태양 아래 아무도 살지 않는 행성만을 보게 될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대보다 몇 분의 일 초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 지구로 올 때, 그들 역시 기계 장치로 미세한 조절을 하여 시간의 차이를 보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그들의 우주선이 눈에 보이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전혀 감지할 수 없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전생(lifetimes)의 횟수로 볼 때 우리 지구인들보다 휠씬 더 오래되었고, 우리보다 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물질적 감각보다는 영적 감각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영적 능력의 활용이 7백 년 이상의 긴 수명을 누리는 데 부분적으로 보탬이 되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며, 단지 약간의 물질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의 피부는 고도의 진화의 결과로 우리보다 더 희다. 많은 전생을 통해 색소 형성이 약해지고 육체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은 진화의 자연적인 작용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보다 영체로서 수백만 년이나 나이를 더 먹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 처음 정착했을 무렵 그들의 키는 7~9m(21~27피트)에 달했다. 그들의 신체 크기는 몇 번의 생애 안에 신속하게 바뀌었다. 그것은 그들이 사는 행성 때문이었다. 지금은 우리와 거의 같은 크기이다. 평균 수명은 현재 7백~9백 년 사이인데, 이는 무수한 생애를 통해 얻은 영적 에너지의 작용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의학적인 문제들이 없다. 건강을 정신적 균형을 통해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구의 모든 의학적인 문제들이 비논리적 사고로부터 야기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생각을 하면 에너지의 전광을 발생시키고, 그것이 신체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이 사고 에너지는 전기의 양극 또는 음극과 같은 양극성(polarities)으로 측정할 수 있다. 만일 비논리적인 생각을 계속하면, 세포가 극성을 잃게 만드는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그것이 개별 세포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어 결과적으로 질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구의 일부 사회에서도 우리의 사고가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수명 연장에 이바지한다고 알려져 왔다. 특히 명상이 사고 조절 수단으로 여겨져 온 동양 문화권에서 그렇다. 서구 문명은 사고의 조정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려 하지 않는다. 질병의 상태가 명백해질 때 화학 약품으로 치료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근원을 치료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증세를 없애기 위한 것뿐이다. 그것이 바로 질병이 낫거나 회복되는 경우가 별로 없는 이유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자신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초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단지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끊임없이 완전함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다. 많은 생애를 통해 얻은 지식의 혜택을 받았을 뿐, 우리와 똑같은 남자이고 여자들이다. 그들은 선생이나 선교사가 아니며, 어떤 신들 대신에 와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기다리던 평화를 주려는 것도 아니다. 창조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무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스스로 진화하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이해하고 있으며, 평화는 지구인들이 자신의 장래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실재를 창조해 나갈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다른 존재 또는 다른 힘에 기대거나 누군가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 것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생명체들에게 일종의 의무감을 느끼는 것이지 간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아데스에서의 출생
플레이아데스의 남녀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플레이아데스에서 태어나는 것이 지구에서 태어나는 것과 다른 것은 생명이 태어나는 이유에 대한 그들의 이해일 것이다. 지구에서 우리는 전생(reincarnation)의 타당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하여, 플레이아데스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정확한 과학이어서, 누가 태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태어나는 생명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시켜 주고 있다.
영적으로 매우 진화된 에라 행성의 지도자들은 새로 태어나는 사람과 모종의 영적 연결을 하여 과거의 생에서 그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읽어내는(read)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임산부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은 사람의 이름을 영적 발전에 대한 표현으로서 뿐 아니라, 그가 밟고 있는 교육의 과정까지 연결시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 태어날 영체를 특별한 이유로 전생에서 넘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영체가 잠들고 있는 사실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미 과거에 숱하게 어렸었고, 젊었었고, 늙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 누구와 비교해서 내가 더 낫다든지, 더 똑똑하다든지 또는 더 진보되었다든지 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한 여성의 임신은 어떤 영체가 물질적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해 주는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을 열어주는 것이다. 어떤 여성에게 어떤 영체가 들어갈 것인지는 그 영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체는 가능하면 같은 가계에 머무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나의 증조부가 내 손자의 아들이나 딸이 될 수도 있다. 창조 그 자체가 부모 선정의 절차에 연관되어 있다고 판단되지만, 그 과정은 아직 플레이아데스인들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원하는 시기에 특정한 사람을 태어나도록(procreate) 하는 것이 가능한 영적 이해와 인식(cognition)의 단계까지 와 있다. 그것은 그들이 라슨의 오래된 영체에 대해서 행한 것과 마찬가지다. 단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하는 경우에 저승에 있는 영체와 접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권장하지는 않는데, 영체를 불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어쨌든 그다지 흥미로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저승의 영체들은 물질적 삶 속에 있었을 때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며, 대부분 성가시게 구는 것을 싫어한다.
한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 창조되고 있는 육체에 들어갈지 말지를 들어오게 될 영체가 3주 내로 결정한다. 따라서 낙태 또는 유산(abortion)은 오직 이 기간 내에서만 허락된다. 이것이 플레이아데스 세계에서의 이해와 윤리 수준이다. 부모는 양쪽 모두 태어날 사람이 육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유전자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다음 두뇌가 형성될 때, 들어와 있는 영체는 자극을 보내 두뇌 연결장치(brain connector)를 얼마나 만들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럼으로써 축적된 생애들로부터 영체가 가지고 온 '지혜'를 그 뇌가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뇌가 발달되고 나면, 영체는 자신의 모든 지혜를 복사하여 그것이 머물게 될 두뇌의 산(acids)으로 전송한다.
그다음 날 장래의 어머니는 태어날 아기를 보다 더 잘 알기 위해 영적 접촉을 시도한다. 그것은 태어날 아기를 새로운 삶 속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개개인이 걷고 있는 배움의 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또 과거의 생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처리할 필요가 있는 어떤 종류의 감정적 불안정성이 있는지, 정신적 충격이나 질병을 만든 사건들이 있었는지 살핀다. 그들은 산모의 태중에 있는 영체가 행복하고 정신적 균형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적개심과 분노, 또는 그런 것들을 야기시킨 일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임신 기간 동안 산모는 장차 태어날 아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어떻게 그 아기를 새로운 삶 속에서 뒷받침해 줄 것인지 보다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플레이아데스 여성들은 태어나는 아이에 대해 소유욕이 강하지 않고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모녀 또는 모자 관계는 다른 영체와의 동반자 관계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물리적 감각을 통한 정보의 습득과 경험을 통해 배운 지혜를 제공하는 것이 아이를 돕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개인적인 성장과 성취를 강조한다.
그들의 기본 철학은 개인의 영적 성장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자신의 문제나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에 있어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신이나 전설, 우상 또는 어떤 외부의 영향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고도의 의식과 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창조의 법칙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통해서만 인간은 보다 고도의 의식 형태로 진화하는 것을 바랄 수 있는 것이다.
경제
플레이아데스인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경제는 없으나, 그들 세상의 자원들을 공동으로 나누는 체제(system)는 있다. 그들은 개개인에게 잠재력을 최대한 발달시키도록, 그리고 그 능력을 사회로 환원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소유물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공헌도에 따라 제공되고 있다. 그들은 화폐나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들이 본 행성 가운데 지구만, 즉 지구인들만 화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많은 세계와 접촉하고 있지만 우리처럼 그렇게 돈을 추구하는 데 사로잡힌 사람들을 다른 행성에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경제를 가지고 점수를 매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신, 실제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플레이아데스 행성에서는 모든 것을 사회가 공급하고 있다. 물질적 소유를 위한 성취욕은 탐욕, 증오, 그리고 분노를 초래하며 그것은 영적인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텔레파시를 사용하므로 서로를 속이거나 잘못된 길로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하고 정직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로 인해 모든 이는 탐욕이나 권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공헌도에 따라 세상의 자원들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보다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들었고, 삶의 질이 현저하게 높은 환경을 창조한 것이다.
정부
플레이아데스 문명은 수천 년을 전쟁에 허비했다. 그들이 고도로 발달한 안드로메다 성운(Andromeda Galaxy)에 있는 인류를 만날 때까지 그랬다. 그들은 물질적 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었다. 지구 달력으로 그것은 A.D. 10년 경의 일이었다. 안드로메다인들 (Andromedians)은 더 많은 생애를 살았고 물질적 존재와 창조의 논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물리적인 감각을 초월하여 진보하게 되었고, 그들은 일상생활에 있어 완전히 정신적인 감각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그 진보된 존재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전쟁은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이제 보다 영적으로 진보된 사람들(안드로메다의 존재들로부터 지혜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네 행성에 그 내용을 전파한 사람들)로 구성된 원로원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아데스의 모든 시민들은 자신들이 지키고 살아야 할 법률을 만드는 결정에 참여한다. 그것은 우리의 선거와 비슷한 시스템이다. 통과되기 위해서는 투표에 참여한 대중의 아주 높은 찬성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변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사람이 다 찬성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것은 단결과 평화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변화 전에 모든 사람의 관점을 감안하기 위해서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안드로메다의 존재들로부터 조언을 받는 '문명 연합'의 회원이다. 그것은 안드로메다 은하(Andromeda Galaxy)와 우리 은하수(Milky Way)에 흩어져 있는 수천의 사회를 포함하므로 연합의 총인구는 1천2백70억 정도가 된다. 연합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다 발달된 인류는 아니지만 문명을 다스리는 어떤 법칙을 지지하는 인류들이다.
플레이아데스에서는 연합의 형태로 각기 자기 행성을 다스리지만 원로원에는 복종하게 되어 있다. 원로원은 중심 정부이기도 한 에라 행성에 있다. 원로원은 반은 영혼(half-spiritual), 반은 물질적(half-material)인, 또는 영적이기도 하면서 물질적이기도 한(semi-spiritual/semi-material)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들은 거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 형태의 생명체들이다. 원로원이라는 고도의 영적 존재들의 조언을 받는 것은 물질적 생명 형태들에게는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적 구체(sphere)들의 에너지 파동(oscillation)은 일반의 플레이아데스인들 보다 매우 높다.
그들은 또 다른 연합에도 속해 있는데, 거기에는 달 우주(Dal Universe)라는 우주에서 온 인류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 연합은 거대한 크기의 우주 모함을 활용하여 우주의 특정한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는 노력을 한다. 지구를 관찰하는 순찰대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를 방문하는 많은 우주여행자들이 있다고 한다. 매년 약3천여대의 우주선이 우리 대기권으로 들어오지만 소수에게만 텔레파시를 사용해서 접촉할 뿐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1976년만 해도 그들 외에 일곱의 다른 인류들이 지구에 기지를 건설하여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와의 연합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 지구의 정치적 권력 구조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법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구인들이 우리 태양계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의 경우이다. 우리 능력으로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어 자유로운 우주 공간으로 나가게 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다른 인류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거기에는 당연히 플레이아데스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지구 인류가 어떤 인류들과 동맹을 맺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주에 있는 인류 가운데에는 매우 원시적이어서 우리를 일순에 정복하거나 일시에 멸망시킬 수 있는 인류도 많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가 그들, 그리고 다른 평화로운 인류들과 동맹을 맺는 쪽을 택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주로부터의 공격에서 스스로를 방어해야 할지도 모르는 시기가 아주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 은하계 지역에서 지구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지구를 둘러싼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로 들어오는 우주선들에게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모종의 보호 수단을 강구해 놓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까지 외계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방어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위험한 인류가 조종하는 우주선들이 종종 지구 대기권 안으로 들어와 실험을 위해 인간들을 데리고 간다.
사랑과 결혼
플레이아데스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며 아이들을 기른다. 그들의 결혼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지만, 중혼(multiple marriage)이 보편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들에게는 동시에 둘 또는 세 명과의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아주 정상이다. 그들에게는 이 시스템이 아주 잘 맞는 것 같은데, 이는 그들 사회의 감정적 안정성 때문이다. 즉 질투와 소유욕이 모두 제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대지에서 살고 사는 집이 다를 뿐이다. 자식들을 양육하는 의무는 모두가 공동으로 진다.
이혼은 허락되지 않는다. 창조의 법칙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만일 결혼의 법칙이 깨어지면 배우자들은 행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창조물에 대한 사랑은 물론, 우정과 결혼을 믿는다.
아주 희귀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만일 한 플레이아데스인이 영적으로 진화가 덜 된 다른 인류에 속하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기로 한다면, 덜 진화된 생명체의 영적 진화가 동반자의 진화 수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가속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그것은 낮은 진화 수준의 영체에게 고도로 진화한 개인의 영적 지혜를 담고 있는 뇌산을 넣어 주는 이식술로 가능하다. 이 과정은 명백하게 잘 작용하여 시술을 받는 생명체의 진화에 영원한 한 부분이 된다.
백악관 잔디 위의 착륙
그들이 화이트 하우스 잔디 위에 착륙할 계획은 없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세계의 지도자 대부분의 생각을 들어 보았는데, 지구의 모든 정부는 권력과 통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다른 것에는 거의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믿게 되었다. 우리 지도자들의 생각에 대한 시험 결과, 그들 모두는 권력에 굶주린 개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계인들을 우주 정복을 위한 하나의 자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세상에도 평화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한때 미국 정부의 관리 일단과의 회합이 거론되었는데, 플레이아데스인들은 그 작은 그룹과 만나는 데 동의했었다. 그러나 회합을 같이 계획하고 있던 관리들의 생각을 들어 보았더니, 그들은 회합 장소에서 상대를 제압하거나 죽이고 비임쉽을 탈취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 일은 플레이아데스인들로 하여금 우리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고, 따라서 어떤 종류의 교섭을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와 사회적인 접촉이 가능하려면 앞으로 3백 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 윤리적 이해의 커다란 차이 때문이고, 그래서 전혀 그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개적 접촉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여전히 여기 지구에 있다. 그리고 빌리와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대중들이 그들을 인식하고 한 사회로서 공개적으로 접촉할 시기에 이르지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수년 내에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흥분되는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또 당신들 가운데 많은 분들에게 있어서도, 다른 행성에 있는 문명을 찾아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아이디어다. 다른 세계를 방문하여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본다는 것은 꿈이나 환상이 실현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경험, 그리고 그토록 많은 지식에 접한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를 압도할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의식을 경험한 뒤 지구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빌리에게 분명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그런 일들이 생겨 우리들이 플레이아데스를 방문했다가 지구로 돌아와 빌리가 했던 것처럼 우리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지구는 영원히 변할 것이며, 청년기를 뒤로하고 새 출발을 할 것이다. 우리의 사회를 하나로 묶고 있는 패러다임(paradigm, 전형적인 양식)은 사라질 것이며, 역사상 위대한 흔적을 남길 새로운 개념과 아이디어로 대체될 것이다.
[출처] 제5장 플레이아데스의 삶|작성자 그린파파야
'빌리 마이어(Billy Meier) > 플레이아데스의 사명(The Pleiadian Miss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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