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43. ‘사랑스’에서의 일년

기른장 2021. 3. 31. 21:57

내가 대구에서 생활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이혼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진주를 떠나 마산의 언니 집으로 들어간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두려움과 뾰족한 방법이 없는 현실적인 조건으로 인해 나는 내 머리칼을 쥐어뜯고 있었다.

 

아주 어려서는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그 후로는 외할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자라온 나였다. 나이 들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알기 전에 결혼을 했고 지금까지는 남편의 그늘에서 유리동물원에 갇힌 로라처럼 길들여진 대로 살기만 하면 그만인 상태였으니 나의 고민과 근심은 깊을 대로 깊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대구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때 그 친구는 ‘사랑스’라고, ‘사랑스러운’을 줄인 상호를 걸고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일을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침 내가 이혼을 하고서 혼자 있다는 얘길 듣고서는 수소문 끝에 날 찾아 전화를 한 것이다.

 

어렵게 연락이 된 상태라 그녀는 무조건 다녀가라고 했고 나는 무슨 일인지 알아나 보자는 마음에 대구행 기차를 탔다. 마중나온 그녀의 모습은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날 밤을 같이 지내면서 그녀는 혼자 지내기가 너무 외롭고 힘드니깐 같이 지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그 제의에 동의를 했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가진 돈을 쪼개서 동생에게 주며 아이들을 맡겼고 주변을 정리한 다음 나는 며칠 후에 보따리 하나만 달랑 들고서 대구로 올라왔다. ‘사랑스’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위치의 깨끗한 여인숙에 여장을 푼 나는 그렇게 대구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이 운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나에게 레스토랑을 넘기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꼬박 1년여를 나는 대구에서 살았다.

 

대구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두 가지 큰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하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스스로가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랑스’는 단골들을 중심으로 영업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는데 다행히도 꽤 장사가 잘 되었다. 내가 특별히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고 처음 오는 사람들도 이내 단골이 되곤 했다. 날이 갈수록 조금씩 매상이 늘어나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도 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스스로 안도하곤 했던 것이다.

 

둘째로는 내가 기도(氣導)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대구에서 나는 곽도사라는 중년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나는 조금씩 오묘한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