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수행자들은 의식 혹은 의식수준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의식수준의 의미를 이해하는 분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특별한 능력 혹은 재능의 보유 여부를 의식수준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보다 착하게 사는 사람이 보다 높은 의식수준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며, 전생이나 현생에서 사회적으로 눈에 띄는 일을 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의식수준에 대한 이같은 이해의 부족은 의식의 성장과 깨달음에 대한 오해를 초래하기도 하고, 특정인을 두고 성자 혹은 사이비 스승이라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평가를 낳기도 합니다.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 의식수준이란 진정한 앎(깨달음)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고, 의식수준의 상승은 무엇보다 인식의 확장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자기 자신만을 인식하고 살다가 이웃을 생각하고 민족, 인류 그리고 전 우주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의식의 확장이고 의식수준의 상승입니다. 또한 3차원적인 물질만을 인식하다가 진동수가 높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다른 차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또 그 차원에서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 역시 의식의 확장입니다.
고도의 도술(道術)을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 축지법이니 장풍이니 하는 것들이 실제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킵니다. 유체이탈을 통하여 우주의 이곳저곳을 직접 여행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러한 체험을 한 분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도 우리의 의식은 확대됩니다. 또한 영안이 열려서 4차원 신명계를 보고 경험하거나 혹은 그런 체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우리의 의식은 크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인간들만의 세상이 아니고 사실은 신명(神明)들과 공존하는 것임을 알게 될 때 우리들의 인식 범위는 크게 늘어납니다. 이렇게 직접 혹은 간접적인 체험을 통하여 인식의 범위를 확장해 감으로써 어두움(무명: 無明)은 점차 극복되어 가는데, 이것이 바로 의식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의 확장은 무엇보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줌으로써 그 동안의 편협되고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 사물을 여러 다른 각도, 여러 다른 수준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낮은 의식 수준에 머물 때는 자신의 좁은 틀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따라서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들에 대하여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의식수준이 상승하면 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자꾸만 넓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 틀 자체가 소멸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그 자체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점점 사라지고,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동안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분별심이 사라짐에 따라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자연스럽게 탈피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어느 때나 있는 모습 그대로 조화로운 것이며, 모든 것은 자연스런 흐름에 맡기고 그냥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도(道)임을 알게 됩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육체적 체험을 통하여 의식을 성장시키기 위하여 3차원의 훈련장인 지구를 선택하였고, 태어나기 전 스스로 설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감을 통하여 전해지는 생생한 체험을 통하여 진정한 '앎'을 증가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입니다. 따라서 의지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한다는 것은 하나의 착각이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지는 환경 속에서 순간에 집중함으로써 최대의 체험을 하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환경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 그것은 현재의 자신에게는 배움을 위한 최적의 상황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배움은 길가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통하여 이루어질수도 있지만 주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스승인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어떤 사람의 선행뿐만 아니라 악행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고, 우리에게 보다 큰 괴로움을 안겨주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더 큰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이 속한 수련단체 혹은 스승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오랫동안 스승으로 모셔왔던 사람의 의식수준이 낮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그동안 '가짜 스승'에게 속아 왔음을 분하게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의 수행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오히려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낮은 의식에 머무르는 동안 그 '가짜 스승'은 훌륭한 참 스승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고, 이제 자신의 의식이 성장하고 보니 더 이상 자신에게 맞는 스승이 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 의미의 스승-제자 관계는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고 한번 제자는 영원한 제자라는 생각은, 스승의 개념을 단순히 의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스승-제자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배움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따라서 한 때의 스승이 훗날의 제자가 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신의 의식이 성장하게 되면 성장한 의식에 어울리는 새로운 스승, 새로운 수련단체를 찾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의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마음 아파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스승의 입장에서도, 제자가 성장하여 자신을 떠나려고 할 때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고 하기보다는 제자의 성장을 축복하고 새로운 스승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된 스승의 역할일 것입니다.
요약컨데, 수행하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인을 대상으로 진짜 혹은 가짜 스승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며, 현재의 자신에게 적합한 스승인가 아닌가를 이야기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각 수행자에게는 자신의 현재 의식수준에 걸맞는 스승, 즉 자신이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참 스승일 것입니다. 자신보다 의식수준이 월등히 높다고 해서 반드시 참 스승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식수준의 차이가 너무 커서 스승의 언행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참 스승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 스승이란 무엇보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이러한 신뢰를 통하여 의식의 교류와 성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2002년 3월 23일
출처 : 장휘용 교수 명상록 - 전체의식 속으로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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