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이후, 저는 강의 혹은 개별적인 만남을 통하여 '빛의 일꾼'(이제까지 제가 '도통군자'라고 불렀던 존재들)이라고 여겨지는 분들과 대화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 같은 대화는 타고난 높은 의식수준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알려 줌으로써 자신의 본래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빛의 일꾼들은 이미 시작된 지구의 대변혁 기간 동안 이웃과 전 인류를 위한 힐러(healer)로서 활동하기 위하여 온 존재들이며, 이제는 각자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밝은 빛을 되찾을 때임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제가 높은 의식수준 수치를 말할 때 처음에는 대부분 놀라고 반신반의하며 자신의 의식수준이 그렇게 높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삶과 수행을 통해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짧은 시기에 급격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몇 차례의 계기들을 통하여 높은 의식으로 진입한 후 높은 진동수 영역에서 머무르며, 이번 생에 축적한 불순물들을 녹여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불과 반년 정도의 기간이지만 이렇게 거듭나고 있는 분들을 이제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려드리는 의식수준 정보가 어떤 분들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경험적 확률에 근거하여 볼 때 그리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이 영적으로 크게 진화한 존재일 수 없다고 나름대로 확신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 중 다수는 오랫동안 정신세계의 이 책 저 책을 섭렵하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한 분들입니다. 기(氣)적 혹은 영적인 체험은 거의 없고, 마음으로 무엇을 느끼기에 앞서 머리로 분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도 때가 되면 금방 바뀔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평소에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를 거부하는 이들이지만, 특별한 체험 특히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체험들을 하게 되면 빠른 시일에 변화하고 깨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높은 이해력과 몸에 각인되어 있는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기억들이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과 어우러지면 그들은 쉽게 변할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 기적인 체험인데, 영성 모임에 참석하거나 높은 의식을 가진 분들과의 에너지 교류에 의하여 가능할 것입니다.
반면, 특별한 능력이 갑자기 계발되거나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을 가진 분들 그리고 특별한 체험을 통하여 깨달음의 의식을 잠시나마 경험한 분들의 경우, 진정한 깨어남은 참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마음수련이 덜 된 사람에게 갑자기 나타난 초능력은 자신의 존재를 착각하게 만들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은, 높은 의식수준이 뒷받침되지 않는 특별한 능력은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여 주위 사람들을 호도하고 자신의 수련을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수행법, 능력 등에 대하여 자부심을 넘어선 아집을 갖게 되면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는 수용력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은 줄어들고, 대신 에고(ego)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뿐만 아니라 잠깐 동안의 기적 혹은 영적 체험을 통해 자신이 깨달음의 경지 혹은 대각의 경지에 올랐다고 착각하게 되면, 그의 의식은 더 이상의 성장 없이 점차 하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특히 이미 조직,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경우, 그 조직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에너지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에고와 오만함이 자라나 의식수준을 떨어뜨립니다. 기존의 종교 혹은 수행단체를 이끌고 있는 분들 대다수의 의식수준이 깨달음에 훨씬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떨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석가모니와 예수와 같은 존재들이 생전에 아무런 단체도 결성하지 않고 평생을 수행자로서 지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어떤 의식 상태에 있는지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모든 집착을 놓아버렸는지,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났는지 그리고 더 이상 감정에 빠지는 일이 없는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각성이 아직 깨달음 혹은 해탈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을 시인해야 합니다. 수행자들에게 자신의 수련 경지에 대한 '착각'은 흔히 발생하는 것이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도(道)의 길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사실 영적인 착각 혹은 교만함은 우리의 의식성장을 방해하고 의식수준을 가장 쉽게 큰 폭으로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누가 어떤 체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생한 느낌을 전할 때, 아무런 감동없이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지"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의 의식성장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따라서 의식의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를 추켜 올려주는 주위 사람들의 언행에 내가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에 기뻐한다면 나의 교만함의 싹은 자라나게 되고, 자신의 수용성과 포용성은 점점 줄어들게 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수준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 경우 문득 문득 생기는 자신의 오만함을 지켜보게 되면 그것은 자연히 녹아떨어집니다.
의식의 성장을 위해서는 집착과 분별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무엇이 자신을 붙잡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끝없는 분별로 몰고 가는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물질의 풍요를 염원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갈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많은 경우 집착은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기에 두려움을 바라볼 때 집착은 사라집니다. 나아가서 인생이란 나의 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임시적인 무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될 때, 두려움들 또한 사라집니다.
모든 분별심은 너와 나를 구분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된 하나이고, 나 속에 모든 것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면 분별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이원론적 사고와 그에 따른 희로애락의 감정들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임을 몸으로 알게 될 때에도 분별은 자연히 사라집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식의 축적 혹은 머리를 통한 이해로는 결코 자신에게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에 집중할 때, 특히 명상을 통하여 분별과 집착의 근원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문득 몸으로 알게 됩니다.
의식성장을 위해서는 삶의 진실성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진실성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언행의 일치를 떠올리지만, 영적인 진실성 혹은 근원적인 진실성은 말과 행동이 자신의 생각과 일치할 때 확보됩니다. 아무리 언행이 일치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도 자신이 믿거나 생각하는 것을 삶에 반영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삶은 가식적인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 때 자신의 영혼은 위축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의식 성장은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수련의 경지에 관계없이 모든 수행자들에게 언제나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항상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고, 자신의 의식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항상 느껴질 때까지는 매일 매일의 명상시간은 수행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명상을 통해 의식은 확장되고, 깨어날 사람들은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2002년 4월 12일
출처 : 장휘용 교수 명상록 - 전체의식 속으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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