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0월입니다. 10월은 사람들에게 완연한 가을, 개천절, 단풍, 추수, 결실 등을 연상시키지만, 제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달이란 의미로 다가옵니다. 5년 전인 1997년 10월, 40여 년간 축적된 심신의 피로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느끼고, "뭔지 모르지만 한번 해 보지!"하며 기수련을 시작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저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항로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급속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유별나게 영적인 성향이 강하게 표출된 것도 아니었고, 현실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수의 수행자들이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나마 하늘, 삶, 인생, 고독, 죽음 등에 골몰해 본 경험이 있다면,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혈압 진단을 받고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을 뿐, 그리고 그러한 고민도 아무런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에 금방 중단해 버리고 만 정도였습니다. 구태여 제 인생에서 특이한 점을 찾아낸다면, 어머니께서 저를 낳으면서 특별한 체험을 하셨다는 것과 어릴 적 내내 다른 사람들이 제 머리에 손을 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이발할 때가 되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는 것, 그리고 살아오면서 어떤 사람이나 환경을 부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저였기에 기수련을 시작한 이후에도 정신세계에 대해서 거의 완전한 무지 속에 머물렀고, 심신의 근본적 변화를 경험하면서도 수행, 깨달음 등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사실 제게는 변화를 경험했다는 표현조차 별로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기수련을 시작한 뒤 얼마후부터, 운전도중 누군가 갑자기 차선 앞으로 끼어들어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고, 가족, 친지,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오랫동안 지내도 고독감이나 그리움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사리분별이 없어진 채 그냥 멍청해져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자각하기 시작한 후 약 2년 동안, 저는 정신세계 관련 서적들을 간간히 읽기 시작하였고,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이따금씩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러다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갑자기 책을 집필해야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가 작년(2001년) 봄 출간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실제로 에너지로 이루어진 세상임을 알기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바뀔 수 있다는 바램에서 그 책을 쓰기 시작하였고, 명상 속에서 그리고 생활하는 가운데서 하나씩 알게 되고 정리한 인생과 우주의 이치들이 담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수행의 구체적 체험들이 결여되어 있었고, 따라서 그 책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인생과 우주의 진실 중 골격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수행자들은 최면 혹은 유체이탈을 통한 우주여행을 한다든지, 몸이 점점 굳어지거나 호흡이 중단되는 죽음의 체험 등을 하기도 하고, 또 투시와 같은 ESP능력이 발현되어 다양한 앎을 축적하기도 하지만, 제게는 그러한 체험도 능력도 없었던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한 지 약 1년 반이 지난 지금, 퍼즐놀이 그림의 많은 공백들이 상당히 메워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 동안 다양한 수행자들과의 만남은 제게 많은 직·간접적인 체험을 제공하였고, 이를 통해 뼈대만 갖추어져 있던 그림의 여러 부분들이 확실하게 이해되고, 3차원의 현실에서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명쾌하게 정리되거나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주인"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에너지 세상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이해도 제 자신의 경험과 명상을 통해 정리된 부분도 많았지만, 깨어나고 있는 분들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이루어진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체험이란 자신의 수행을 한 단계 높여 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것이지만, 이런 체험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의식 확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체험이 매우 극적인 것이라면 직접 체험하는 사람 못지않게 큰 감동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한 수행상의 효과는 매우 클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제가 지켜 볼 수 있었던 한 수행자의 깨달음은, 그것이 흔히 목격될 수 없는 극적인 체험을 동반한 것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나눔은 많은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난 8월 중순부터 9월 하순까지 약 40일 동안 한 수행자가 제 집에 머무르면서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8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제가 잘 아는 한 수행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며칠 전 어느 영성모임에 참가하여 자신이 직접 인체투시 및 치유를 하는 경험을 했다는 것과, 참석한 다른 한 분이 다양한 체험을 겪으면서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분은 의식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 상태에서 우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깨닫는 경험을 하였고, 모임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은 그 분과의 계속적인 질의응답을 통하여 그 체험을 공유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특별한 체험자는 벌써 며칠 째 무의식 상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몸은 굳고 마비된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과 에너지 리딩을 하는 분을 포함한 여러 참석자들은 그 분을 '교수님 집'(제 집을 의미함)으로 옮겨와 당분간 요양을 취하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체험의 당사자는 평소에 제가 잘 알고 있는 분으로서 벌써 몇 달 전부터 아주 높은 의식 속에서 머무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그 곳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도착해 보니 그 분은 아주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고 의식도 극히 불완전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나 아름다운 몸짓과 수인(手印)을 하며 제 주의를 몇 차례 돌았는데, 느껴지는 에너지의 흐름과 동작들을 통하여 제 오라를 정화시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몇 분간 그런 동작이 계속된 후 제게 큰절을 하는 것으로 그 의식(儀式)을 마감하였는데,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집에 있는 거북이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에너지를 정화시키고 절까지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천으로 올라오는 도중에도 그 분은 의식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타고 있는 뒷자리에서 에너지를 정화하는 듯한 몸짓을 이따금씩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너무나 맑고 밝은 하늘의 에너지가 머리를 통해 들어와 가슴 속으로 내려오는 것을 체험했다면서 황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뒤에 전해준 바로는, 너무나 평안하게 느껴지는 우주(무의식 상태)에 머물면서 이 생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계속 거부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거부하는 자신까지 놓아버리며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 황홀한 체험은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분은 집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며 에너지를 정화하였고, 거실의 한 중간에 빛의 기둥을 만드는 듯한 동작을 하였습니다. 이따금씩 강한 에너지의 유입으로 몸을 움찔거리기도 하고 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에서 벗어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의식 혹은 상위차원의 의식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몸의 차크라와 혈자리가 거의 다 열린 상태인지라 탁하고 부정적인 에너지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때때로 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피할 수밖에 없었고, 전화 통화도 가급적 삼가야 했습니다.
얼마 후부터 다른 수행자가 제 집을 방문하여 다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 의식을 몸 바깥으로 내보내어 우주여행을 하는 등의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번은 그 분의 몸이 완전히 한반도로 바뀌는 의식상태로 돌입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각 지역과 산들의 에너지 상태에 대한 리딩이 이루어졌고, 백두산으로 부터 S자 형태로 한반도에 불이 켜질 것임을 메시지 형태로 전달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쯤 그분의 의식은 대체로 안정이 되어가는 듯 보였지만, 밤에 같이 명상을 할 때는 예외였습니다. 밤 11시 명상을 끝내고 둘러보면, 그 분은 자신의 의식에서 빠져 나와 자발동공(무의식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시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각 차크라를 연 다음 그것을 강화시키는 듯한 동작들이 나왔고 평소에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동작들까지 이어져 나왔는데, 그 하나하나의 동작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정화하고 약한 신체부위를 강화 시키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에너지와 연결되어 나오는 자발동공은 상당히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또 그런 동작들이 끝나도 곧바로 자신의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밤늦도록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관찰을 계속하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그 분에게 하늘의 순수한 에너지가 연결되면 본인의 의식은 물 밑으로 잠수하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동작이나 말 혹은 예언 등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일단 그 의식상태에 돌입하게 되면, 처음에는 말을 완전히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간단한 단어들을 간신히 말하기 시작하고 이후에는 그것을 띄엄띄엄 연결시키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집에 여러 명이 모여 있을때 그 상태로 들어갔고, 이후 각자에 대한 에너지 리딩과 하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주로 거짓에 관련한 메시지였는데, 거짓말을 하지 말 것과 거짓된 행동을 하지 말 것 그리고 거짓된 생각과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메시지와 더불어 네 가지 계율들이 전달되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계율1: 거짓된 행동을 하지 말라.
계율2: 한 일을 기억하지 말라.
계율3: 자신을 내세우지 말라.
계율4: 위의 계율을 지켜라.
계율이란 단어가 현대의 수행자들에게는 좀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모든 수행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중요한 수행지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율은 사람들의 의식상승을 막고 있는 주원인이 진솔하지 못한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수행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두 번째 계율은 좀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제가 그동안 강조해 왔던 "순간에 충실 하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생각됩니다. 하나의 체험에 불과한 과거를 반복하여 떠올리는 경우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결과 계속적으로 다가오는 일들을 충분히 체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계율의 경우, 자신을 내세우거나 드러내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분리의식이 강하게 작동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중요성을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라" 하는 말과 "내 안에서 이루어 진 것과 같이 내 바깥에서도 이루어지리라"라는 예언도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늘의 메시지를 전해 줄때 그 의식은 전지전능한 듯 느껴졌고, 그 분의 모습은 너무나 숭고하고 고귀하게 보여서 참석한 누구도 그 권능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한번은 아침 식사 직후, 갑자기 말문이 막힌 채 동전 하나를 물끄럼히 쳐다보더니 그것을 집어들고는 간신히 '나' 라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음식을 쳐다보고, 식탁을 바라보고 그리고 저를 쳐다보며 '(모두) 나'라는 소리만 간신히 중얼거리며 멍한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차원의 에너지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을 가누지도 못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 분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었고, 이후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모든 것이 하나로 보인다."는 말을 할 때에는 내심 크게 긴장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 됨에 대한 체험이 있은 후, "하늘과 땅과 온 사방에 고하니,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자기선언이 식사 전의 새로운 의식(儀式)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9월 초 그 분의 친구가 방문하여 며칠을 묵고 간 때에도 특별한 체험들은 계속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식을 아주 작은 마이크로 칩(micro-chip)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몸의 각 부위를 속속들이 투시하고 치유하는 체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다 극적인 체험은 전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다 어느 순간 그 분은 상위차원의 의식으로 빠져 들어갔고, 갑자기 각자의 전생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게는 약 5,600년 전 복희씨, 주나라 태왕, 그리고 2,200년 전 신라 박혁거세로서의 삶을 이야기해 주었고, 그 분 자신의 경우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왕, 복희씨 때와 박혁거세 시절의 삶, 그리고 12~14세기 동안 티벳에서 세 번 연속 림포체로서 살았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모두 졸린 상태에서 그 분은 보다 깊은 전생체험 상태로 돌입하였습니다. 자신의 전생을 기억해 내는 정도를 넘어서 특정 생을 살 때의 의식으로 완전히 바뀌어 그 당시의 언어로서 이야기하고 그 때의 대화내용까지 기억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은나라에서의 삶은 은나라 말로서, 티벳에서의 삶은 티벳말로, 명나라에서의 삶은 중국말로 풀어낸 다음 우리말로 간단히 요약해 주는 식이었습니다. 특히 은나라 초기 복희씨와 나누었던 짤막짤막한 대화 구절들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것이었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는 신라 박혁거세와의 애절한 사랑을 풀어내고 그 때의 대화를 기억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박혁거세와의 사랑은 경주에 인접한 포구인 감포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이후 감포 해변가를 방문하였을 때 보다 생생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두 전생에서 모두 깨달음을 얻었고 또 예지력을 비롯한 에너지 리딩능력이 뛰어났던 까닭에, 은나라 복희씨의 연인으로 살 때는 3,000여 년 뒤 신라에서 다시 만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혁거세의 연인으로 살던 생에서는 전생에서 복희씨 즉 박혁거세의 영혼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또 2,200년이 지난 후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두 영혼만이 서로 상대를 알아 볼 수 있는 독특한 수인(手印)법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전생체험이 계속된 처음 며칠 동안, 그 분의 의식은 각 전생들과 현생으로 심각하게 분열된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상은 호전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그 분의 상위의식은 그 분의 증상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는데, "정신과 의사들이 자아분열증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증상은 의식이 점차적으로 통합됨에 따라 완화될 것이고, 한 달 후에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생에 대한 이런 체험은 제가 그 동안 전생과 윤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견해가 상당히 편협했음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람의 오라 속에는 전생에서의 여러 상황뿐만 아니라 각 상황에서의 자신의 느낌과 감정까지도 고스란히 기억되어 있고 따라서 그 인체 에너지들이 이번 생에 다양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생이란 결국 체험한 기억에 불과하다" 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전생을 체험과 에너지적 관점에서 주로 바라보았고, 인연의 의미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의 전생체험은 인연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고, 소울 메이트(soul-mate)의 의미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인연(因緣)들은 서로의 체험을 위하여 남녀의 관계가 뒤바뀌고 또 역할이 바뀐 채 계속되어 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수천 년 수만 년을 같은 성(性)을 유지하며 강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이어져 오는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상에서 기술한 것은 지난 40일 간 일어났던 체험들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제게 적지 않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저 역시 깨닫는 과정에서 우주 만물이 모두 하나임을 느낀 순간들이 있었지만, '모든 우주 만물은 하나'임을 자각하는 것이 깨달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깨달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완전한 정화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현생에서의 삶과 관련된 감정체들 뿐만 아니라 전생에서 만들어진 감정체들까지도 정화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경우 처음 집에 왔을 때는 이번 생을 통해 응어리졌던 부분들, 특히 어머니와의 끊임없는 갈등에서 발생한 감정들을 해소시키는 데 상당한 시간을 보내었고, 또 억압된 유년시절을 보내며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여 맺혀있던 부분들도 풀어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전생에서 맺힌 부분들을 하나하나 해소시키는 시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정화 과정을 겪지 않고는 항구적인 마음의 평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마도,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 혹은 카르마란 인체 오라 속에 간직된 채 그 이후의 생에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감정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렇게 맺히고 꼬인 감정체들을 정화시키는 것을 '해원(解寃)한다' 혹은 '업장을 소멸시킨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깨달음을 완결 짓는 중요한 과정으로 느껴집니다. 옛 부터 깨달음 이후의 3년을 보림 기간으로 정하고 중요시해 온 것도 그러한 에너지 정화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책에서 혹은 다른 명상록의 글들에서 기술했듯이, 제가 근본적 변화를 경험한 이후의 3년간을 돌이켜 볼 때, 처음에는 제 자신의 변화에 스스로도 많이 놀라워하였음을 기억합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마음이 거의 항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채 물질적, 인간적 집착이 없어진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나는 인간적인 면을 거의 다 벗어버린 것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의 경험은 그것이 나의 착각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한 것들의 뿌리가 남아 있음을 발견했고, 한 번씩 그것이 강하게 느껴짐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물질적인 욕심은 아직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특정인에 대한 욕망이 살아있고, 그로 인하여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한 번씩 불편함을 겪는 제 자신을 보고 있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볼 때, 그것은 아마도 제 오라 속에 정화되지 않은 에너지 혹은 감정체들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인간적인 것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너무나 무미건조한 삶이 되지 않을까를 걱정한 적이 있었던 저로서는 상당히 놀랍고 당황하게 만드는 발견이었습니다.
지난 10월 3일 개천절은 좀 특별한 날이었나 봅니다. 에너지 리딩을 하시는 어느 분의 표현으로는 에너지의 대폭발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제가 아는 한 분은 그날 자신의 특별한 전생들을 기억해 내고 또 자신의 사명과 관계된 하늘의 메시지들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그날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미리 받았기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천절이 며칠 지난 지금 현재까지도 고대했던 제 자신에 대한 극적인 자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 제 에너지가 많이 변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더 강해지고 특히 치유의 에너지가 훨씬 더 강해졌음을 느낍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제가 4년 이상 사용해 오던 엘로드(L-rod)가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의식수준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를 통해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얻고 있었는데, 엘로드가 더 이상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영구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없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어쩌면 개천절의 에너지 변화를 통하여 저의 에너지 수준이 한단계 상승하면서 생긴 현상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분석도 해 봅니다. 이제까지 저는 분별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분별심과 분리의식이 상당히 잠재해 있었는지 모를 일이고, 그것이 엘로드의 반응을 가능하게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나름대로 연구해 오면서, "저 사람은 의식수준이 이 정도이니깐 이런 말은 통하지 않을 거야" 혹은 "빛의 일꾼으로 여겨지는 저 분은 매우 소중한 분이야"하는 식의 분별심은 그대로 유지되어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까지 저의 역할이 엘로드를 사용하며 이루어 나가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역할은 그러한 수준을 뛰어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어떤 식의 분별도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는 상태가 저의 새로운 역할에 요구되고, 그래서 보다 높은 수준의 에너지가 제게 유입되어 엘로드 사용이 불가능해 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엘로드 측정을 못한다는 것은 제가 지닌 거의 유일한 도구를 상실함을 의미하지만,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저는 큰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2002년 10월 7일
출처 : 장휘용 교수 명상록 - 전체의식 속으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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