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은 이전의 명절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민족 대이동의 혼잡에 내가 구태여 일조(一助)할 이유가 없다는 핑계로 명절 차례에 참석하지 않은 지는 이미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추석이나 설날을 전후하여 형제들과 안부전화는 주고 받아왔었지만 이번 설에는 그러한 것조차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수년 전 심신의 근본적 변화를 겪고 난 뒤, 제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대인관계의 변화를 시도한 적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족 혹은 형제의 특별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친구와 친지의 중요성이 느껴지지 않게 되면서 그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가족이라는 틀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였고, 형제자매들과는 자연히 소원해졌으며, 친구, 친지들과도 만나거나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나 다르고 관심사가 완전히 달라졌기에 그들과의 의미있는 대화가 불가능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옛날의 다정다감하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느냐",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아니냐?", "그게 과연 도(道)를 추구하는 것이냐?"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특히 저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일수록 제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안타까와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내면적 변화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기에는 너무나 확고하고 근본적인 것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저도 처음 기수련을 시작하고 약 2~3개월이 지났을 때 급격히 바뀌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흠칫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변하다가는 앞으로 먹고살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는 극히 일시적인 것이었고, 이후 제 자신의 변화와 미래에 대하여 걱정하거나 주위 사람의 걱정에 마음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렇게 혹은 저렇게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변화하였고, 그 과정에서 한 점의 후회나 회한도 갖지 않았습니다. 모든 변화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아무런 감정적 동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러한 변화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반면, 지금 영적으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주 높은 의식을 타고난 사람들 대다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다양한 계기로 영성이 깨어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기 시작하지만, 물질문명 속에서 영성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고 심각한 갈등을 겪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일들이 모두 시시하게 느껴지고 이전에 재미있어 하던 것들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제까지 가까이 지내던 주위의 사람들과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실감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대화상대가 쉽게 발견되지도 않습니다. 또한 평소에도 어렵게만 느껴지던 물질추구에 더 이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현실이란 높은 벽들에 포위된 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많은 종교 혹은 영성지도자들은 현실과의 조화(調和)를 주장해 왔습니다. 도(道)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가까운 주위 사람들과 반목하고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심적(心的), 경제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극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인생이란 그것을 바라보는 (의식)수준에 따라 달리 느껴지고 인식되게 마련인데, 자신의 인식이 여전히 물질세계에 머물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영성과 현실의 조화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명상록의 글, 〈깨달은 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참고)
그렇지만 인생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간이 영혼의 존재임을 확실히 깨달은 사람이라면, 현실과의 조화란 사실상 현실과의 타협을 의미하고 현실에 대한 양보 혹은 굴복이라는 사실이 쉽게 이해됩니다. 인간이 영혼의 존재임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영혼의 성장이 최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현실과의 조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물질 추구에 매달린다면 그것은 결코 조화(調和)라고 표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수행자들이 현실과의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수행이 충분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거나 그들의 영적 깨어남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난다는 의미를 의식수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무수한 전생을 거치면서 축적된 앎의 수준 즉 타고난 의식수준까지 자신의 현재의식이 고양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됨을 의미합니다. '깨어남'은 상당한 기간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는 것이 보통인데, 초기 단계에서는 생활 속에서 혹은 수행을 통하여 의식의 확장, 인식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의식의 초점이 자신에서 이웃으로 인류로 그리고 우주로 확장되어 나가고,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확대되면서 일어납니다. 그러다 특별한 체험 등을 통해 천지 만물이 모두 하나임을 깨닫게 되고, 인생과 우주의 진실에 대하여 눈뜨기 시작합니다. 또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완전한 깨어남이란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확실히 아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수한 전생을 거치며 축적된 엄청난 양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기억들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의 잔재가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살아있는 에너지입니다. 인간이란 결국 수많은 체험에 대한 기억에 근거하여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을 안다 혹은 깨어난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우주에서 그리고 지구상에서 어떠한 전생을 살았고 또 앞으로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됨을 포함합니다.
우리 인류가 기억하고 있는 전생, 특히 아주 높은 의식을 타고난 존재들이 각자의 오라(aura)속에 기억하고 있는 전생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류의 시원(始原)이라고 할 수 있는 레무리아(Lemuria) 혹은 무(Mu; Mooh) 대륙일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 '무‘라고 불리운 우주 최초의 의식을 비롯하여 아주 높은 의식을 가진 많은 존재들이 다양한 우주로부터 지구로 모여들었습니다. 우주의 진화에 특별한 역할을 하기 위해 창조된 지구, 그 지구에 하늘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 우주의 전문가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오염되지 않은 의식을 가지고 에너지 상태로 머물면서 서로 모여 박수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가운데 모든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 때에는 모두가 투명하고 순수한 에너지적 존재였기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남성 혹은 여성을 택할 수 있었고, 물질화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육체적 탄생과 죽음을 체험함이 없이 원할 때면 언제나 지구로 들어올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도 물질적 욕심도 없었으며,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이기심, 시기, 질투, 분노 등은 레무리아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맑고 깨끗한 지구의 환경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지구의 진동수는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고, 지구는 물질화 과정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낮은 진동수에 걸맞는 비교적 낮은 의식의 영혼들이 지구로 모여들었고, 레무리아 사회는 변질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에테르 상태에 머물며 삶과 죽음을 체험하지 않았던 높은 의식의 존재들 중 일부는 우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미래의 차원 상승시까지 지구상에 남기로 약속한 존재들은 낮은 의식의 지구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일부는 새로 건설된 아틀란티스로 이주하여 레무리아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맡기도 하였고, 초기 레무리아의 순수함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일단의 무리들은 중앙아시아 평원으로 이주하여 환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회를 시작하기도 하였으며, 또 다른 존재들은 고대 이집트, 잉카, 마야 등으로 이주하여 레무리아의 문화를 계승해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물질화하면서 지구에는 윤회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이 시스템 속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과거에 대한 완전한 기억을 가지거나 본래의 능력을 완전히 발현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레무리아를 건설한 존재들 중 지구에 계속 머무르기로 약속한 존재들은 그들이 지닌 우주적 능력과 지식들을 모두 봉인한 채 다른 존재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지구에서의 윤회를 경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구에서의 육체적 삶들은 지구의 차원상승 시 그들 각자가 해야 할 역할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하여 그리고 지구상에서 체험하기로 한 각자의 배움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관점에서 설계되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모든 기억을 망각한 채 오감을 통하여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을 느끼며 살아가는 지구상에서의 삶은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레무리아 존재들은 아틀란티스, 뮤대륙, 이집트, 잉카, 마야 등 여러 고대 문명들과 그 이후 문명들에서 제사장, 승려 혹은 정치, 종교적 지도자들로 태어나거나 환웅, 단군 등으로 태어나 활약하기도 하였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삶들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따금씩 느낌으로 전해오는 그들 존재에 대한 막연한 기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삶보다 더 힘들었고, 뭔지 모를 우주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지구의 차원 상승과 더불어, 이들 레무리아 존재들은 기나긴 잠에서 집단적으로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깨어남은 이번 생에서의 각자 프로그램에 따라 여러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 지는 각기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머지 않아 마지막 깨어남의 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고, 이 때에는 자신이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깨어남을 경험하면서 현실과의 어떠한 타협도 없이 자신의 진짜 삶을 시작하는 강력한 내면의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 서로를 알아보게 될 것이고, 오래 전 지구에서의 육체적 삶을 시작할 때 봉인되었던 우주에서의 탁월한 능력과 지식을 되찾을 것입니다.
지금 깨어나는 과정에 있는 많은 레무리아 존재들은 지구의 차원 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통 받는 이웃을 돕기 위해, 혹은 주위 사람들의 의식성장을 위해 자신이 뭔가를 앞장서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상당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지금 하는 일들이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들의 진정한 사명, 본격적인 활동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그들의 활동은 자신의 체험을 위한 것이고 또 미래의 본격적 활동을 위한 준비일 것입니다. 그들이 이번 생에서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마지막 깨어남의 단계를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일부 레무리아 존재들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무리해서라도 이루고자 하며 또 확대하고자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부디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인생의 근본 이치를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겉보기에는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리 설계된 각본에 따라 전개되며, 인간은 그 속에서 체험하는 존재입니다. 뭔가를 이룬다, 성취한다는 생각은 인생이 체험을 위한 연극무대임을 완전히 자각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영성 개발을 위해 조직화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재고되어야 합니다. 조직과 단체란 예외없이 인간적 욕심에 근거하여 결성되는 것이고, 따라서 일단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면 진정한 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따금씩 엄청난 천재지변을 목격하면서도 인간의 힘을 과신해 왔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고 확신해 왔습니다. 지구란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한 톨의 바닷가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계의 존재들을 부정해 왔고, 지구대변혁은 자신이 살고 있는 생애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란 맹목적인 믿음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이제까지 교육이란 이름으로 주입된 지식과 관념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또한 보이는 물질세계의 뒤에는 무한히 전개되는 보다 근원적인 에너지 세상이 있고, 세상은 결국 인간의 뜻이 아닌 하늘의 뜻대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임을 보여주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뭔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하늘의 뜻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노력과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순식간에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대변혁이 이것을 전 인류에게 확실히 보여주리라 기대됩니다.
영적 체험 등을 통해 인식이 확장되고 인생의 본질을 알기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이 오직 물질을 취득하고 소비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신문, 잡지, TV, 인터넷 등 모든 매체들은 부와 명예를 얻는데 뛰어난 사람들의 무용담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두 눈을 가진 존재가 애꾸눈 세상에서 살아가기는 정말로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현실'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외부세계를 둘러보고 좌절하거나, 현재의 물질세계가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5년 후, 10년 후의 자신 모습을 그려보고 끔찍해 하는 것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더 깊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인생의 근본 이치를 깨닫고, 지금 전개되는 지구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서히 계발되기 시작하는 영적인 감각을 통하여 지구 에너지가 급변하고 기존의 물질시스템이 붕괴되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미래에 대하여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깊이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4년 2월 12일
출처 : 장휘용 교수 명상록 - 전체의식 속으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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