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기자와 저술가로서 나는 이상하고 특이한 많은 이야기와 사건들을 탐색해 왔다. 나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신문의 작은 기사들 속에서 그것들을 발견하곤 했다. 일반 독자들은 그 기사들을 그저 평범한 이야기라고 무심코 지나친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일이라도 신중하게 조사해 보면 그 속에 종종 놀라운 진실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전에 한 번 「뉴욕 타임즈 지」에 실려 있는 다음과 같은 작은 기사를 우연히 읽은 적이 있었다. ‘프랑스 마을 전체가 미쳐간다.’ 이것은 나중에 아주 재미있는, 실감나는 의학 탐정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또, 나는 「타임즈 지」에서 다음과 같은 간략한 기사를 발견했다. ‘뉴 멕시코와 텍사스 그리고 뉴 햄프셔의 고속도로 순찰대가 여러 건의 UFO를 목격함.’ 이 기사를 소재로 해서 쓴 책은 UFO 현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세 번째 흥미 있는 기사는 ‘치명적인 새로운 아프리카 바이러스가 그것을 연구하던 예일대학의 과학자를 죽였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안드로메다 종족’이라는 글의 소재가 되었다.
‘이스턴 항공의 조종사가 점보제트기 안에 유령 조종사가 있다고 말했다’라는 네 번째 기사는 나로 하여금 그 사건의 조사를 시작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로 내 눈에 열리게 되었다. 이것은 죽음 이후에도 어떤 존재의 형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네 개의 간략한 기사들 각각에 대해서 일 년 동안 여행하면서 조사한 다음 나는 네 개의 성공적인 논픽션 책을 쓸 수 있었다. 그 책들은 ‘이달의 책’ 에 선정되기도 했고. ‘문학 협회’의 추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조사 과정에서 나는 기자에게는 금기로 간주되는 종교와 심령학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린 마음으로 주의 깊게 조사를 하면 독자들에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감명 깊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자들이 종교나 영적 현상을 금기로 여기는 한 가지 이유는 마감 시간에 맞춰 매일 기사를 써내야 하는 기자에게는 그런 주제의 사건을 철저히 파고들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일 일간지 기자가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내가 했던 것처럼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우호적이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정형화된 지식을 초월한 미지의 영역에 해당되는 이야기에는 두 가지 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첫 번째 적은 파괴적인 회의주의자이다. 그들은 오로지 편견에 사로잡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증거조차 고려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회의주의자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의주의자는 뉴 햄프셔 액서터의 잘 훈련된 공군 조종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확인한 UFO 목격담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모든 UFO 목격담이 거짓이라는 식으로 매도했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설명인 즉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또 다른 기본적인 적은 너무 열정적으로 쉽게 믿는 사람이다. 그들은 모든 유령이나 기이한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두 팔 벌려 끌어안을 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열광적인 이런 부류의 맹신자들은 파괴적인 회의주의자만큼이나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의 신뢰성을 해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나는 호의적인 회의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의 회의주의는 이상한 이야기들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호의적인 태도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내 마음이 열려 있도록 만들 것이다.
나는 여러 해 전 우연히 에드가 케이시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내 친구가 에드가 케이시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제스 스턴이 쓴 『잠자는 예언자(The Sleeping Prophet)』와 토마스 수그루가 쓴 『저기에 강이 있네(There is a River)』였다. 두 저자는 아주 견실한 저널리스트들이었으며 에드가 케이시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 책들을 읽은 수백 만의 사람들도 분명 이런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 책들을 처음으로 읽은 나는 깜짝 놀랐다. 에드가 케이시는 영적 치유라는 믿기 어려운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필사적으로 그의 충고를 얻고자 하는, 혼란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했다. 내가 읽은 이 책에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병든 환자를 ‘볼(마음의 눈으로)’ 수 있는, 그리고 정식으로 훈련받은 의학 전문가들조차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극적인 치유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묘사되어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나에게는 에드가 케이시가 행했던 업적들이 불가능한 것으로, 심지어는 터무니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케이시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나의 기존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옛날 라디오 코미디언인 코로넬 스툽너글이 써먹던 말처럼 ‘열 자 짜리 장대로 닿을 수 없는 곳에는 열 한 자짜리 장대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나는 곧 케이시의 업적을 주의 깊게 평가한 과학적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며 빈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도전하게 되었고, 일단 케이시의 리딩들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그것을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그것은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에드가 케이시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작가로서 거기에 추가할 만한 어떤 것은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 년 뒤, 다른 이야기를 조사하기 위해서 찰스 토마스 케이시를 방문했을 때, 나는 에드가 케이시의 뛰어난 업적 중에서도 특별한 측면을 부각시켜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찰스 토마스 케이시 박사도 적극 찬성했다. 문제는 도움과 안내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케이시 리딩에서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다루어진 분야를 다시 재탕하기는 싫었다.
이 일을 시작하자, 찰스 토마스는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도록 협회 회원들과의 모임을 주선해 주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에드가 케이시가 받은 편지 내용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했던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케이시의 리딩과 서신을 체로 걸러내어 다양한 독자층에게 유익한 질문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서, A.R.E. 회원들의 기존의 경험은 대단히 소중한 역할을 했다.
나는 케이시의 의학적 기적이 전체 업적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야기되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질문들에 대한 그의 통찰(리딩)은 육체적 건강을 회복하는 데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 감정적 · 영적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실했다.
A.R.E. 본부의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도서관에서 나는 14,000건 이상의 케이시 리딩을 접하게 되었다. 그 리딩들은 50년이란 세월동안 도움을 요청한 6천 여명의 의뢰자들에게 케이시가 행한 리딩들을 받아 쓴 것이다. 나 역시 이 리딩들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A.R.E. 회원들의 전문성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광범위한 인구 통계학적 · 지리적 여건을 감안하여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열 가지 의문을 찾아낸다는 것은 길고도 힘든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과정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을 위한 기본 소재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캔사스의 비서에게 중요한 어떤 것이 뉴욕의 가정주부에게도 중요할까? 놀랍게도 내가 발견한 것은 직업이나 지역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어떤 기본적인 의문들은 케이시에게 리딩을 의뢰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A.R.E. 회원들은, 내가 리딩 파일에서 열 가지 질문에 대한 케이시의 대답을 추려내는 험난한 작업을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A.R.E.에는 케이시를 숭배하는 것 같은 광적 믿음은 전혀 기미도 없었다. 또 나의 믿음에 영향을 미치려는 그런 시도도 없었다. 어떤 믿음 체계가 지나치게 조직화되거나 광적인 지지를 얻게 되면 그 믿음은 스스로 붕괴된다고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그런데 A.R.E.를 보고 나는 안심했다. A.R.E.의 분위기는 지식을 추구하는 대학 캠퍼스처럼 개방적이었으며 온화했다. 편견이나 고루함도 없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모든 관점을 탐색하는 것이 가능했다. 찰스 토마스 케이시와 회원들은 에드가 케이시의 비범한 업적들이 저절로 밝혀지도록 기꺼이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케이시가 통상의 의사나 목사보다 돋보이는 이유는 그가 제한된 마음을 초월한 의식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잠자는’ 에드가 케이시가 우리 모두에게 극히 중요한 의문들에 답할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믿음의 기초를 탐색해야만 했다.
케이시의 믿음의 토대는 단순했다. 만물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토대를 세우는 목공일은 대단히 복잡하며, 우리는 삶의 l0가지 의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탐색해 가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는 나도 그의 믿음의 토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믿음은 우리 신념의 큰 변화를 요구하지 않으며, 어떤 슬로건에 서명을 해야 한다거나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채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또 권위의 상징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하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 나에게 의무라고 말한 기도를 기억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깊이 생각해라.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느낀다면 그것을 받아들여라.’
에드가 케이시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있어서 나는 존경심과 아울러 신중함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호의적인 회의주의자인 내가 에드가 케이시의 리딩을 연구함으로써 새롭고 풍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케이시가 안정되고 냉철한 방법으로 의뢰자들의 정신적 영적 안정을 찾아주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나는 종종 영적 탐구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광적인 복음 전도를 다룰 생각은 결코 없다. 만일 당신이 이제 방금 에드가 케이시의 업적을 알게 되었다면 그리고 나처럼 이 계통의 문외한이었다면, 당신은 케이시의 장대한 통찰을 탐구하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그 통찰은 자신과 우주, 그리고 그것들의 신비에 밝은 빛을 비춰 줄 것이다.
존 G. 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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