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년 동안, 의식의 변형 상태 · 직관 · 영적 통찰력 그리고 이런 주제에 관련된 좀 더 광범위한 정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고조되어 왔다. 그 결과 비범한 통찰력을 지닌 개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에 에드가 케이시라는 이름이 점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다룬 책들이 문자 그대로 수백만 권 팔렸다. 특별히 에드가 케이시를 다룬 책이 아닐지라도 많은 책들이 그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여러 TV프로에서 그의 이름이 인용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에드가 케이시의 말에 귀를 기울여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누군지,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를 통해 흘러나온 영적 리딩이 어띤 종류의 정보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겨우 최근에야 에드가 케이시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에 관해 특별한 호기심을 느낄 수도 있고, 때로는 그가 말했던 것들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심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이 책은 에드가 케이시와 ‘리딩(Reading)’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영적 통찰의 내용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호기심은 많지만 아마도 회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일 것이다. 일상을 벗어난 것들에 대해서는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들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은 적어도 ‘이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고 기꺼이 질문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다.
이 책의 목적은 그런 사람들에게 나의 할아버지인 에드가 케이시와 그가 남긴 리딩들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케이시의 리딩에 담겨 있는 기본적인 생각과 철학적 주체들이 간단하고 분명하게 쓰여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에드가 케이시와 그가 남긴 리딩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런 글을 쓰는 저자는 글의 소재에 대한 태도와 친숙한 정도가 그 글을 읽을 독자와 어느 정도 비슷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작가로서 가장 합당한 사람은 비물리적 · 영적 방법으로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무조건 확신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평생토록 신비 현상만 쓰고 다른 주제는 전혀 쓰지 않았던 사람은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작가가 아니다. 우리가 찾는 작가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하고, 인간 경험의 다양한 양상을 편견 없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글의 내용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며. 독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관심사를 계속 추구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작가는 호기심이 강하고, 객관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약간 회의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세일즈맨이나 독실한 신봉자보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리포터가 적임이다.
존 G. 풀러의 직업적 배경은 이런 임무에 아주 적합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적이고 아주 평판 높은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해 왔다. 그가 다룬 분야는 미국 우주선 · 바다 · 긴급구조대 · 숲 · 도시 청년단 · 관개개발 계획 · 마약 남용 · 토네이도 · 기타 다른 자연재해 등과 같이 다양했다. 존은 이 외에도 더 많은 주제들을 다루었고. 말과 영상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창조해냈다.
존은 10년 이상 『새터데이 리뷰』지의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했으며 리더스 다이제스트, 옴니, 레이디스 홈 저널, 사이언스 다이제스트, 록, 플레이 보이 등의 잡지에도 기고해 왔다. 그는 『엑서터에서 중단된 여행과 사건』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도 저술했다. 그의 책들은 미국 도서관 협회와 뉴욕 과학아카데미, 그리고 전국교사협회 등에서 훌륭한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존은 「위대한 미국의 꿈을 만드는 기계」라는 TV 쇼를 만들어 에미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그의 명성을 보여주는 75개 이상의 다큐멘터리와 교육영화. 그리고 TV 프로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살」이라는 작품은 1965년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선정되어 ‘시그마 델타 치’라는 언론상을 수상했으며 「바다」라는 작품은 1977년 벨그레이드 영화 축제에서 호평을 받음과 동시에 ‘황금 독수리’ 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3대 주요 방송국을 위한 작품들을 쓰고 만들고 감독했다. CBS에서는 「20세기」라는 그의 작품이 방영되었고. NBC에서는 「듀퐁 쇼」가 방영되었다.
존은 리포터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능력 외에도, 인간의 특별한 힘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자질인 ‘용기’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지역들에서는 그런 현상에 대해 관심만 기울여도 이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은 물론, 인간적 신뢰성까지 의심 받는다. 존은 이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 왔다. 그의 책 중 몇 권은 인간이 겪은 특이한 경험들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널리 읽혀진 『아리고: 녹슨 칼로 행한 외과수술』이라는 책에서, 존은 브라질 원주민들이 영적 초월상태에서 행하는 수술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영적 존재가 주술사의 몸을 빌어 수술을 행하는 것 같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복잡한 수술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존은 이런 비상식적인 사건을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출판하도록 하는 데도 성공했다. 알다시피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그런 예외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확고한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온 잡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그의 기사를 채택했다는 것은 그의 정확성과 철두철미함 그리고 객관성이 입증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는 5년 전 처음으로 존 풀러를 만났다. 당시 그는 사후세계를 증명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조사 ·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존은 A.R.E. (에드가 케이시의 리딩을 연구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에 있는 우리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내 할아버지의 업적에 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그에게 에드가 케이시에 관한 글을 써 볼 마음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생의 기본적인 의문들에 대해 에드가 케이시가 제시했던 답변들을 면밀히 조사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는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신이 궁금해 하던 분야를 탐색하고 싶어 했다. 만약 그 탐색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존의 아이디어가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워너 북」 출판사의 편집자가 나를 찾아왔다. 몇 년 전 「워너 북」 출판사는 리더십에 관한 시리즈물을 출판하면서 케이시의 리딩에 근거한 리더십에 관한 책도 한 권 출판했었다. 이제 인간의 특수한 능력에 관한 대중들의 호기심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영적 분야의 책을 더 펴내고 싶어 했다.
이것은 존과 내가 이야기했던 책을 펴낼 수 있는, 그리고 광범위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마침내 우리는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단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l0가지 의문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상당히 심사숙고해야만 할 문제였다. 이 책은 다양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직면하게 될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의문을 품을 만한 그런 이론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이웃집에 사는 사람, 혹은 길을 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할만한 질문들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다.
일단 우리가 다루게 될 의문들이 정해진 다음, 우리는 케이시의 리딩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실제로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리딩들은 사실 1945년 이전에 주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즉 당시의 사람들이 가졌던 의문들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아직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50년 전에 케이시가 말했던 리딩들이 현재의 삶에도 통용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관한 한 우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은 인생의 기본 조건들과 관련된 어떤 근본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왔으며, 에드가 케이시 시대의 사람들이 충고와 인도를 갈구하던 많은 문제들은 지금도 매우 중요하다.
이 책에는 인류의 궁극적인 의문들, 즉 신의 존재, 삶의 목적, 그리고 죽음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의문들도 포함되어 있다. 즉 삶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것인가, 그리고 일과 인간관계에서 풍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생의 중요한 의문들에 대한 케이시의 대답이 오늘날까지 유용하고 효과가 있는가 하는 것은 각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독자들이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 책으로 초대하는 것 뿐이다.
에드가 케이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 쯤에서, 에드가 케이시를 잘 모르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될 것 같다. 에드가 케이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했던 일은 정확히 무엇인가? 그는 어떻게 그런 일을 했는가? 그리고 그는 그런 정보들을 어디에서 받았는가? 자, 이제 케이시와 그의 업적에 대해서 잠깐 동안 알아 보기로 하자.
에드가 케이시는 1877년 3월 18일 켄터키주 홉킨스빌 부근의 농장에서 태어났다. 레슬리 B. 케이시와 그의 아내 캐리가 낳게 될 다섯 아이들의 맏이였다. 레슬리 케이시 부부와 그 가족들은 장로파 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다. 캐리 케이시는 얌전하고 인내심 많은 여성이었는데, 아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으며, 에드가 케이시의 성장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에드가 케이시는 소년시절을 가족의 농장에서 보냈는데 그곳의 자연과 탁 트인 공간이 그에게 맞았었다. 어린 나이에 성서에 대한 강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성서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했고, 나중에는 성서를 즐겨 읽었다. 그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성서 한 권을 선물 받았는데, 그 직후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성서 전체를 매년 한 번씩 읽겠다고 결심했다.
에드가 케이시의 전 생애 동안 중요한 가치관이 되었던 독실한 기독교 신앙의 한 단면이 바로 성서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 정규적으로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쳤으며, 성서에서 발견한 신의 인도와 통찰이 이런 진지한 신앙생활에 의해 보강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끊임없이 신의 의지를 찾고 자신을 신의 의지에 맞추어 갔다. 항상 성서를 읽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학생으로서 에드가 케이시는 학구파가 아니었다. 그는 학과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었고, 선생님으로부터 읽거나 암기하라는 지적을 받았을 때도 자주 자신만의 깊은 생각에 잠겨 있곤 했었다.
에드가 케이시의 어린 시절은 그 시절의 소년들처럼 단순하고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간혹 그의 비범한 능력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네 살 때 사고로 죽은 할아버지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교과서를 머리에 베고 자면 그 내용 전부가 저절로 암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젊은 에드가 케이시가 숲에서 홀로 성서를 읽고 있는 중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그의 기도가 응답받으리라는 말을 하는 환영을 보았다. 그녀는 그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몹시 놀란 상태였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 특히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겨우 말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이 바램은 에드가 케이시의 삶을 통해 줄곧 지속되어 온 소망이었다. 리딩을 수행했던 긴 세월 동안, 그의 근본적인 관심은 자신을 통해 전달된 리딩이라는 정보가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게 진실로 유용하고 유익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내 할아버지의 특별한 능력이 처음으로 치유에 이용된 것은 그가 우연히 공에 맞고 난 다음이었다. 공에 맞은 충격으로 인해 그는 하루 종일 이상하게 행동했었다. 마침내 침대에 드러눕게 된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부모에게 설명했다. 부모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다음 날 아침 케이시는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는데, 그는 자신이 공에 맞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에드가 케이시는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22살이 될 때까지 농장에 머물다가 홉킨스빌로 이사했다 그는 그곳의 서점에서 일자리를 얻었는데, 거기서 거트루드 에반스를 만났다. 두 젊은이는 곧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했다.
결혼하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돈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구두 판매원, 보험 영업사원 그리고 여러 서점과 사진관에서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이 사진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사진이 자신의 필생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거트루드와 결혼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미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의 돈을 모으기 위해 보수가 좋은 직업을 찾아 홉킨스빌에서 세인트 루이스로, 그리고 나중에는 보울링 그린으로 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경제적 안정은 항상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곤 했다.
23희 생일을 맞이하기 직전 에드가 케이시는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근 일 년 이상 그는 목이 쉰 듯한 휘파람소리 이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지역의 여러 의사들이 그를 고쳐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알 레인이라는 최면치료와 정골요법에 대한 통신교육을 받은 사람이 케이시를 자기 최면상태로 유도하면서 치료의 돌파구가 열렸다.
자기 최면상태에 들어간 에드가는 정상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말했다. 그는 목의 이상이 암시를 통해 제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레인은 적당한 암시를 걸었고, 그 이후 암시에서 깨어난 내 할아버지는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최면이 깬 다음에는 자신이 초월상태에서 했던 말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건강에 관련한 첫 번째 리딩이 주어졌던 것이다.
에드가 케이시가 자신의 몸을 정확히 진단하고 신체적 이상을 치유했기 때문에 알 레인은 그런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 레인 자신의 건강문제를 대상으로 리딩을 해보았다.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 이 실험을 계기로 알 레인과 에드가 케이시는 파트너가 되었다. 내 할아버지는 환자들의 문제를 진단하고 어떤 치료법을 써야 하는지를 리딩으로 들려주었고, 레인은 그 리딩을 기록하고 치료를 감독했다.
에드가 케이시는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치료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망설였다. 그는 자신의 특이한 능력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정식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의학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조차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말하는 정보가 어디에서 오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최면 상태에서 처방하는 것이 누군가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점을 크게 걱정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리딩을 따르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즉시 리딩을 그만 두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그가 레인의 계획을 따르기로 결심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둘째, 레인이 통신교육 강좌를 통해 충분한 의학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리딩에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잠재적 위험요소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가 이 일에서 손을 떼려고 생각할 때마다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에드가 케이시는 리딩을 해주고도 전혀 그 대가를 받지 않았다. 그는 사진관의 수입만으로 생활을 꾸려갔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사진관을 빠져 나와 리딩을 하기 위해 레인이 임대해 놓은 사무실로 갔다. 그러나 리딩을 받는 사람이 꼭 리딩이 행해지는 현장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공간적인 거리는 에드가 케이시의 투시력이 작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병의 증세나 사례사를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었다. 리딩에 필요했던 것은 단지 당사자의 이름과 주소뿐이었다.
리딩을 시작하기 전, 에드가 케이시는 셔츠 칼라와 벨트 그리고 구두끈을 느슨하게 한 다음 커프스 단추를 풀고 안락의자에 드러누위 두 손을 배 위에 겹쳐 놓았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가라앉힘에 따라 호흡은 점점 깊어지면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든다. 이 상태에서 적당한 암시가 주어지면 리딩이 시작된다. 암시 이후 짧은 침묵의 순간이 지난 다음 정보(리딩)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리딩에서는 자주 성서에 나오는 글귀나 예가 인용되곤 한다. 성서야말로 에드가 케이시의 깨어 있는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리딩의 말투는 대부분 성서적 어조였으며, 때로는 말 자체가 뒤얽혀 있어서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리딩이 끝날 때쯤 해서 잠을 깨라는 암시가 주어지면 최면상태에서 깨어났다.
초창기 시절 내내. 알 레인은 최면 인도자의 역할과 리딩의 속기사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는 에드가에게 적절한 암시를 주고, 사안과 관련된 질문을 하고, 리딩의 내용을 기록했다. 나중에는 에드가의 부친과 거트루드 에반스 케이시가 대부분 최면 인도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전문적인 속기사도 고용되었다.
에드가 케이시가 알 레인과 함께 일할 때. 그는 홉킨스빌에서 보울링 그린으로 이사했는데 그 곳의 서점에서 좀 더 보수가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1903년 6월 17일, 26세 되면 해에 그는 거트루드와 결혼하여 보울링 그린에 신혼살림을 이뤘다. 그들은 세 아이를 낳았는데, 나의 아버지 휴 린 케이시와 밀턴 포터 케이시 그리고 에드가 에반스 케이시가 바로 그들이 낳은 3남매였다.
처음에는 에드가 케이시의 비범한 능력에 대한 소문이 서서히 퍼져 갔다. 그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그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보울링 그린에 사는 동안 그는 자신이 현실적이고 겸손한 남자로 보이기를 원했으며. 이웃들이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애썼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괴짜로 여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평범한 무명인으로 살고자 했던 내 할아버지의 계획은 1910년 10월 9일에 완전히 무산되었다. 바로 이 날, 그에 대한 두 페이지짜리 기사가 사진과 함께 뉴욕 타임즈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 기사는 웨슬리 케첨 박사가 쓴 보고서에서 발단되었는데, 케첨은 홉킨스빌에서 개업한 동종요법(어떤 질환과 같은 증상을 일으키게 하는 약제를 소량 투여하여 치료하는 요법) 의사였으며, 에드가 케이시로부터 몇 번 리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타임즈와 다른 신문들에 기사가 실리면서 내 할아버지의 능력은 온 나라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와 케첨 그리고 홉킨스빌의 호텔 소유자의 권유에 의해, 내 할아버지는 그들과 협력하여 영적 진단을 시작했다. 케이시가 홉킨스빌에 도착해보니, 리딩을 요청하는 만여 통의 편지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대부분의 편지에는 돈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이런 협력관계는 약 일 년 이상 지속되었다.
내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이때가 시련의 시기였다. 1911년 둘째 아들인 밀턴 포터 케이시가 태어난 직후 죽었으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트루드의 건강에도 이상이 생겼다. 그 병은 폐결핵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의사들은 한결같이 그녀가 일주일 정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 리딩을 했고, 그 리딩의 내용대로 치료를 하자 할머니는 곧 회복되었다.
케첨 박사를 위시한 그 외의 사람들과의 협력관계가 와해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리딩의 내용대로 치료를 주관해 줄 의사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예를 들자면, 치료에 관한 정보가 에드가의 리딩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 의사들은 더 이상 그 치료법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다. 리딩에 근거한 치료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장비와 모든 분야의 전문의사를 갖춘 병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전문의들은 의학적 전문지식에도 숙달되어 있고, 리딩의 유용성에도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런 병원을 설립할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케첨 박사는 돈을 벌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리딩을 이용하고자 했다. 에드가 케이시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더 이상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불협화음은 내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염려해 오던 점이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였다. 최면상태에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이 받는 질문이나 대답에 대해 의식하지 못했다. 때문에 리딩을 인도하는 사람이 무심결에 잘못된 질문을 한다거나 때로는 전체 리딩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케이시는 자신의 능력이 그런 부당한 목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있었다.
종종 자신이 어떤 목적을 위한 리딩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까지는 몇 개월이 걸리기도 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리딩 인도자가 필요했다. 그는 결혼을 함으로써 마침내 리딩을 인도할 완벽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30년 동안 도맡아서 할아버지 리딩을 인도했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리딩이 유명해졌고 리딩에서 다루는 주제도 더 광범위해졌다. 리딩을 요청하는 편지들이 전국에서 쇄도했으며 외국에서도 요청이 들어왔다. 이 때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 상태뿐만 아니라 의뢰자의 영적 측면과 직업의 선택까지도 조언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기간중에 정신적 · 영적 리딩이 육체적 리딩에 덧붙여지고 곧이어 세상 일에 대한 예언적 리딩도 추가되었다.
1923년에는 에드가 케이시의 업적에 큰 영향을 미쳤던 두 가지의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 그 해에 할아버지는 리딩을 기록할 전문속기사를 고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래디스 데이비스라는 젊은 여자 속기사를 채용했다. 그래디스는 에드가의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도 함께 살면서 그녀의 전 생애를 그 일에 헌신했다. 그녀는 1923년 이후에 행해진 거의 모든 리딩을 기록했으며. 에드가 케이시가 죽고 난 다음에도 그 기록들을 보존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오하이오주 데이톤 출신인 아서 라머즈가 에드가의 리딩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라머즈는 철학, 비교종교학, 형이상학 등의 주제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에드가의 리딩을 통해 이런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에드가는 이런 분야를 탐색하기 위해서 여러 번의 리딩을 수행했다. 이런 리딩을 통해서 드러난 많은 개념들 중 가장 놀랄 만한 것은 바로 환생의 개념이었다.
리딩에서 언급된 환생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에드가 케이시는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그의 삶의 핵심이었던 정통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환생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의 리딩이 시작되었다. 즉 의뢰자의 전생을 살펴보고, 그 전생에서의 경험이 어떻게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리딩이 시작되었다. 이런 종류의 리딩은 라이프 리딩(life reading)이라고 알려졌다.
라머즈의 요청에 따라. 에드가 케이시는 가족과 그래디스 에반스와 함께 데이톤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라머즈는 곧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에드가의 가족은 아주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 그들은 메디칼 리딩과 라이프 리딩을 통해 들어온 수입만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리딩에 의해 도움을 받은 사람들 중에 모톤 블루멘탈이라는 성공한 증권 중개인이 있었는데, 그도 라머즈처럼 형이상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에드가로부터 아주 긴 일련의 라이프 리딩과 철학적 통찰을 들은 적이 있었다. 1925년 블루멘탈은 에드가의 가족이 버지니아 비치로 이주하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사실, 몇 해 전부터 버지니아 비치야말로 에드가 케이시가 일할 곳이라는 리딩이 주어졌었다.
1927년, 전국 조사협회(ANI)가 영적 능력 특히 에드가 케이시의 능력을 조사하기 위해서 결성되었다. 그 협회는 그런 영적 능력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히고자 했으며, 각 개인을 교육시켜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고도의 정신능력을 개발코자 했다. 이런 목적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케이시의 메디컬 리딩이 치료에 직접 응용될 수 있는 병원이 꼭 필요했다. 병원 건립을 위한 대부분의 돈을 모톤 블루멘탈이 조달했으며, 그 병원은 마침내 1928년 11월 11일에 완공되었고 다음 날 첫 번째 환자를 받았다.
그리고 협회가 두 번째로 벌린 사업은 고차원적 지식을 전달하는 기구로서 아틀란틱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는 너무 일을 서둘렀던 것 같다. 좌우간 두 기관(병원과 대학)을 유지하는 비용과 더불어 대공황이 초래한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자, 블루멘탈도 두 기관들을 지원하는데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의 지원은 중단되었고, 전국 조사협회의 모든 활동도 중단되었다. 병원은 1932년 2월 28일에 문을 닫았다. 이것은 에드가 케이시에게는 심각한 타격이었다. 병원은 그의 오랜 꿈이었고. 짧은 기간이나마 그의 리딩에 따른 치유의 가치가 그 병원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내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에드가 케이시는 자신의 특별한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계속 돕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띄워 자신이 하는 일이, 중단된 협회를 대신할 새로운 기구를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물었다. 그 반응은 거의 열광적이었다. 그 결과 1931년 7월에 연구계몽 협회(Association for Research and Enlightenment)가 설립되었다.
A.R.E. 회원들의 지원에 힘입어 에드가 케이시의 작업도 정상적인 성장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내 아버지 휴린 케이시의 적극적인 관리 하에, A.R.E.는 에드가 케이시의 특별한 능력을 더 철저히 조사할 수 있었고, 그 능력들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리딩에 대한 요청은 항상 엄청난 건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지속되었다.
에드가 케이시는 1930년대의 대부분을 버지니아 비치의 그의 집에서 다소 평온하게 보냈다. 그는 친구나 그가 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방문객들을 약간 명 만나면서 지냈다. 그는 하루에 두 번 리딩을 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 데 할애했다. 그의 취미는 낚시, 정원 가꾸기, 과일이나 야채를 통조림으로 만들기, 그리고 목공일이었다. 저녁에는 아내와 집에서 쉬면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라디오를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성서는 그의 진정한 친구였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1943년에 에드가 케이시의 자서전 『저기에 강이 있네(There Is a River)』가 출간되자 양상이 갑작스레 달라졌다. 때로는 리딩 요청 건수가 하루에 1500 건에 이르기도 했다. 에드가와 가족들은 밀려드는 산더미 같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자주 밤 열시 이후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리딩에서 다음과 같은 경고가 주어졌다. 즉 그가 하고 있는 리딩의 횟수를 줄이지 않으면,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직 처리하지 못한 리딩 요청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걱정을 없애지 못하면 건강이 나빠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많은 사람들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1944년 8월 그는 마침내 과로로 인해 쓰러지게 되었다. 결국 자신을 위한 리딩을 한 후 그 리딩이 지시하는 대로 그와 내 할머니는 버지니아 로아노크에 있는 휴양시설에 들어갔다. 그 곳에서 그는 한 동안 건강이 회복되는 듯 했다. 에드가 케이시의 마지막 리딩은 1944년 9월 17일 로아노크에서 행해졌다. 이 마지막 리딩에서 그는 자신이 회복되어 다시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일상적인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 같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 주일 뒤에 할아버지는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11월에 버지니아비치의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그 곳에서 폐수종으로 1945년 1월 3일에 죽었다. 3개월 뒤 부활절 날 아침 거트루드 케이시 역시 죽었다.
리딩이란 과연 무엇인가?
1901년 3월부터 1944년 9월까지 에드가 케이시가 행했던 모든 리딩들을 한 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14,000건이 넘는 리딩이 속기로 기록되어 A.R.E.에 의해서 보존되어 왔으며, 이 리딩들은 6천 명 이상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리딩을 받은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서 리딩 하나하나에는 개인이나 그룹을 표시하는 분류 번호와 리딩이 행해졌던 일련번호가 불여졌다. 예를 들자면, 리딩 900-15는 ‘900’으로 명명된 사람에게 행해진 15번째 리딩을 말한다.
리딩의 내용을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그것들이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상자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고,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진단과 지시를 위주로 하는 '피지컬 리딩(Physical Reading)’ 이 리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리딩은 ‘라이프 리딩(Life Reading)'인데, 이 리딩은 대상지의 과거생을 추적하고 과거 생에서의 경험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리딩에는 사업상의 충고와 정신적 · 영적 안내, 그리고 꿈에 대한 해석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임에 주어진 리딩들도 있다.
예를 들면, 에드가 자신이 말한 리딩들을 보존하고, 조사하고, 퍼뜨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도하는 리딩들도 있으며, 또 다른 것은 신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자신들의 영적 능력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리딩들도 있다.
에드가 케이시는 이런 놀라운 정보들을 분명 2개의 본질적인 정보원에서 끌어왔다. 리딩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잠재의식(subconscious mind)’이다. 케이시의 리딩에 따르면, 모든 개인의 잠재의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개인의 잠재의식이 알고 있는 사실은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에드가 케이시는 개인적 자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에 주파수를 맞춰 그것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잠재의식을 통해 받은 정보를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드가 케이시가 이용했던 정보의 두 번째 원천은 후반기의 리딩에서 언급된 ‘초의식(superconscious mind)’이다. 이 초의식이란 각 개별 영혼이 자신과 신과의 관계를 자각할 수 있는 의식 수준에 도달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에게는 모든 지식과 지혜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 초의식의 파동에 동조함으로써 무한한 원천으로부터 지식과 정보를 끌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잠재의식에서 정보를 끌어 올 때도 그러했지만 초의식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자아의 굴레를 초월할 필요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초의식 수준에서는 우주의식과 접촉하게 되나, 잠재의식 수준에서는 다른 개인의 잠재의식에서 정보를 끌어온다는 점이다.
초의식은 무한하고 전지(全知)함과 교감하기 때문에 이 수준에서 받는 정보는 무제한하고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에드가 케이시 자신도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 점을 깊이 생각했었고, 여러 번 자신의 능력과 자신이 받는 정보의 원천에 대한 의혹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리딩이 우주적 자각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확신한 다음부터는 리딩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초의식 수준에서 ‘아카식 레코드(Akasic Record)’에 접근할 수 있다. 아카식 레코드는 우주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모든 것들이 기록된 우주의 역사인 연대기이다. 아카식 레코드는 리딩에서 ‘생명의 책’ 혹은 ‘신의 기억을 담은 책’으로도 불렸다. 창조주의 영원한 지혜의 현시(顯示)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초의식의 파동에 제대로 동조하는 사람은 이것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 희망을 주는 사실이다. 에드가 케이시는 결코 유일하게 재능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리딩은 우리 모두가 케이시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확언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잠재의식을 통한 접촉을 할 수 있으며, 초의식적 전지(全知)함이 우리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의식과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제한된 개인적 자아와 동일시하는 의식을 버리고 자신을 신과 우주적 근원에 동조시켜 가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보다 에드가 케이시가 이런 능력면에서 앞서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우리 모두도 그가 정보를 끌어냈던 근원에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케이시의 리딩에서 주어진 안내가 실용성이 없다면 그것은 무의미하다. 지식은 그 자체로서는 별로 가치가 없다고 리딩은 몇 번이나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즉 지식은 실질적으로 이용되어야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적 · 영적으로 진보한다는 것이, 창조와 환생과 다른 것들에 대한 리딩의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창조주가 우리에게 부여한 자원들을 어떻게 건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성공적인 삶을 위한 두 가지의 열쇠는 신의 의지에 따라 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신의 존재와 삶의 목적이라는 우주적 질문에 대해서 에드가 케이시의 리딩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즉 리딩이 제시하는 답변은 우리가 가는 길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으며, 그 길은 애써 갈 만한 가치 있는 목적지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좌절을 극복하고 일에서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라는 개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리딩은 우리가 그 길을 나아감에 따라 다음 단계를 더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케이시의 리딩은 삶이라는 여정을 순조롭게 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리딩은 처음으로 그것에 접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고 이미 익숙해진 리딩 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이런 격려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찰스 토마스 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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