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과학(心靈科學)/심령진단

제2장 8. 사진에 나타난 전생

기른장 2022. 3. 13. 17:55

영혼이 빙의된 사실은 사진을 보고도 알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사진에서 전생을 알아낸 경우도 있다.

 

사진을 본 순간, 그 사진의 주인공 전생을 알 수 있었을 때, 사실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필자 자신이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필자가 아무리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어찌 사진을 본 순간에 복잡한 과거 이야기가 한 순간에 떠오를 수 있겠는가!

 

그런 희귀한 이야기들을 몇가지 차례로 소개해 볼까 한다.

 

 

첫번째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일이었다고 기억된다. 하루는 지방에서 두 손님이 필자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본인이 없어도 사진만 보고서도 영사를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인사가 끝나자 한 손님이 던진 질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만.”

 

“그러시다면 이 사진을 보시고 영사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그는 ‘남산 기념’이라는 글이 들어있는 웬 중학생을 찍은 사진을 꺼내 보였다.

 

“아드님이시군요.”

 

“네, 그렇습니다.”

 

“성격에 결함이 있군요. 혹시 도벽같은 것 있는게 아닙니까?”

 

“맞았습니다. 이 아이는 아주 악성의 도벽을 가졌습니다. 부끄러운 말씀입니다만 지금 소년원에 수용되어 있는 처지입니다. 저의 가정이 어려운 처지도 아니고 제딴에는 최선을 다해 돌봐주었는데 영 고질적인 도벽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빙의령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맞습니다. 전생에서 도적으로 처형된 다섯사람이 빙의되어 있습니다.”

 

“저는 얼른 믿어지지 않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좀 해주실까요.”

 

“그럽시다.”

 

 

이조 말엽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한다.

 

강화유수로 부임한 이선임(가명)은 강직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고, 그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때 강화에는 이름난 도적의 가족 다섯명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여러 번에 걸쳐서 죄를 범하자, 이선임은 몹시 화를 내고 그들에게 곤장 3백대씩 때리는 벌을 내리게 했다.

 

말이 태형이지 곤장 3백대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형벌이었다. 이런 모진 매를 견뎌낼 사람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수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언을 올렸다.

 

“아버님, 하치않은 좀도덕질을 한 위인들을 곤장 3백대로 사형을 시키신다는 것은 좀 벌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해서 다섯명이 모두 죽는다면 일가몰살의 중벌을 받은 게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달리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이 말에 강화유수 이선임은 크게 화를 내었다.

 

“너 이놈, 너는 글방에서 공부나 해서 과거에 급제할 생각이나 할 것이지 아비가 동헌에서 하는 일에 참견할 게 아니다. 내 바른 말을 한다마는 그놈들은 아주 고질적인 도벽을 가진 도적들이다. 아주 도적의 씨를 말려 놓아야지 그대로 두어서 자손이 번창하면 후에 화가 더 큰 게야, 알겠느냐?”

 

“하오나 이것은 분명히 직권남용이십니다. 좀도적들을 사형을 시키신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처사 같습니다. 다시 생각을 하십시오.”

 

“이놈! 사형은 누가 사형을 해! 곤장 3백대의 태형을 집행하는 게야!”

 

“엎어지나 둘러치나 결과는 같지 않습니까?”

 

“다시 그런 소리를 해서 아비가 하는 공무를 방해한다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 알겠느냐!” 하고 강화유수는 노발대발했다.

 

결국 이들 좀도적 5인 가족은 모진 매질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때 강화유수가 바로 도벽을 가진 선생의 아드님이고 그때의 유수의 아들이 선생이시군요.”

 

“부자(父子)가 뒤바뀌는 수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때 유수의 아들은 심령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순서가 뒤바뀐 것입니다.”

 

“허지만 강화유수가 그때 다섯 죄인을 그처럼 혹독하게 다룬 데는 그 나름대로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게 아닙니까?”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물론 이유가 있지요. 이때의 유수는 단종시대에 처형된 사육신(死六臣)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다섯 도적은 사육신을 모함해서 그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고 공신(功臣)이 되어 죽은 사람들의 재산을 하사받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도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생애에서는 타고난 도적이 되어 인과법(因果法)에 의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끝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사실들은 잊고 다시 빙의가 되었으니까요.”

 

“이것은 분명히 악순환 입니다. 사진을 놓고 가십시오. 아드님이 소년원에서 풀려나오거든 진동수를 장기 복용시킨 뒤에 데리고 오시면〈제령〉을 시켜드리겠습니다.”

 

“그들 빙의령들을 말입니까?”

 

“그렇지요. 그들이 전생에서 처형당한 것은 그 앞서 전생의 죄업 때문이었음을 잘 인식시키고 아드님을 용서하게 하여 유계로 보내버리면 이것으로서 모두가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잘 알았다고 하고 돌아 갔는데 그뒤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들이 아직 소년원에서 나오지 못했거나 아니면 사진을 통한 원격치료에 의해 빙의령이 이탈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두번째 이야기

 

지방에서 올라온 어느 중년부인이 따님의 사진을 내어놓고서 영 혼사(婚事)가 성립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은 일이 있었다.

 

자기는 일찍 시집을 간 덕분에 장성한 딸이 있는데(그녀는 지방 고등학교의 여 선생이라고 했다).

 

“제 딸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인물도 곱살한 편에 속하고 혼담도 심심치 않게 들어오는데 영 결혼할 생각이 없단 말씀입니다. 이것도 무슨 전생에서의 업장 때문일까요?”

 

하고 수심에 잠겨 있는 부인에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따님에게는 목을 메어 죽은 총각의 영혼이 빙의되어 있습니다.”

 

“애그머니나! 그러지 않아도 우리 동네 무당도 선생님과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고, 앞서 세상에서 그때도 여자로 태어났던 따님을 사모했던 총각의 죽은 혼령입니다.”

 

지금부터 3백여년 전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서울 무학재 고개에 성질 사납고 술고래인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주사가 어떻게 심했던지 걸핏하면 여편네를 방안에 가두어 놓고 두둘겨 패기가 일수였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젓 먹던 어린 아이를 두고 어느날 밤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결국 그 때문에 아이는 죽고 말았다.

 

그뒤 얼마가 지난 뒤, 이 여인은 다시 여자로 태어났다.

 

시집갈 나이가 되었으나 그녀는 결혼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부모가 억지로 시집을 보내면 자기는 그날 밤으로 자결을 하겠노라고 엄포를 놓았다.

 

동네 총각이 이 처녀를 사모해서 상사병을 앓게 되었을 때도 이 처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내가 오죽 못났으면 상사병에 걸려요. 저야말로 죽으면 죽었지 그런 사내한테는 시집안가요.”

 

끝내 총각은 목을 메고 자살을 했고, 그 영혼은 이 처녀에게 빙의됐다. 물론 그녀는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그 총각이 누군고 하니 앞서 전생에서 버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 죽은 아이가 그 어머니가 재생한 처녀를 그리워 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럼 선생님이 붙어 있다고 한 총각 귀신이 바로 그 아이란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여자로 태어나기 전에 따님은 남자였고 술망나니로서 부인을 때려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가 여자가 되어 앞서 전생에서 맞아 죽은 부인이 이번에는 남편이 되어서 행패를 한 것인데 그 고역을 참아내지 못하고 도망쳤기 때문에 계속 악순환을 하게 된 것이죠.”

 

“총각 귀신은요!”

 

“그것은 술꾼으로서 아내를 걷어차 죽였을 때, 뱃속에 들어있던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인과법이란 무섭군요.”

 

“그렇죠. 하지만 인과를 뛰어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정신입니다. 자타여일(自他如一), 곧 남이 나라는 정신으로 살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따님이 이번에도 결혼을 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현실도피만 일삼는다면 한없이 여자로 반복적으로 태어나서 결국 언젠가 여자로서의 수업을 끝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잘 알았다고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그 뒤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따님은 필자의 이야기를 일소(一笑)에 붙인 게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이 억지로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세번째 이야기

 

영주에 사시는 최만화씨가 정신이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 젊은이의 사진을 가져온 일이 있었다.

 

필자가 영사를 해보니 어린아이를 업은 젊은 부인의 모습을 그 사진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전생에서 조강지처를 학대하고 버린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아이를 들쳐업고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영혼이 빙의되어 정신분열증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우선〈옴 진동〉테이프를 사가셔서 진동수를 만들어 백일이상 마신 다음 데리고 오십시오. 그 동안 사진은 여기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이 방안에 사진을 두시면 보호령에게 연락이 됩니다. 또 빙의령에게 작용도 하고요. 하여튼 두고 가십시오.”

 

최만화씨는 사진을 두고 갔다.

 

지금 필자의 시술실 안에는 거의 2백장이 넘는 사진들이 놓여 있다.

 

해결이 되어 건강을 되찾은 것을 확인한 사진들은 차례로 정리해 버릴 생각이다.

 

이러다가는 사진 때문에 주체를 하지 못할 지경이니까 말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원격심령치료는 사진을 통해서 가장 효과가 있음을 필자는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