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과거 · 현재 · 미래
1. 죽어서 만난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아마 30년이 훨씬 지난 것 같다. 필자는 매일 아침 냉온욕을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물론 집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가까운 대중탕에 가서 냉온욕을 한다. 냉온욕을 한뒤에 가벼운 요가 체조를 한다.
요즘은 대중탕에도 모두 설비가 되어 있는 스팀실에 들어가 앉아서 기도를 드린다. 물론 마음 속으로 하는 기도니까 누가 옆에서 보아도 그냥 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냉탕(冷湯)에 들어가기 전에 소금 한웅큼을 집어넣고〈옴진동〉을 물에다 가한다. 그리고 냉탕에 들어가면 물기둥이 솟아오른다. 직경이 10센티, 높이 5센티 가량의 물기둥은 필자의 몸에서 내어뿜는 나쁜 가스라고 생각된다.
전날에 손님을 보지 않았을 때는 작은 물거품만이 보글보글 솟는 것을 보면 확실히 가스임이 분명하다.
필자가 단골로 다니는 대중탕은 삼청동(三淸洞)에 있는 삼화탕(三和湯)인데 처음에는 손님들도 필자가 내는 옴진동을 이상하게 생각해서 시끄럽다고 항의를 해온 사람들도 있었으나 워낙 매일 다니는 사람이라 요즘은 시비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삼화탕에서 지금부터 2년 전 한노인을 자주 만난 일이 있었다. 작고하신 선친(先親)하고는 등산 친구였던 분인데 목욕탕에서 만나니 전에 좋던 풍신이 간곳 없고 몸이 무척 수척해 있었다. 게다가 얼굴을 보니 입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아니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하고 필자가 인사를 하니 노인도 무척 반가워하면서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아 왔고, 고혈압인데다가 입까지 삐뚤어졌노라고 했다.
필자는 체질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미상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댁에서 얼마 멀지 않으니까 한번 들르십시오. 녹음 테이프를 가져가셔서 진동수만 장복하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하고 필자는 친절하게 연구원의 위치를 알려드렸다.
그 뒤 목욕탕에서 만날 때마다 노인은 한번 찾아간다면서 영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필자가 한 이야기를 못믿는 눈치였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침술사는 찾아간다는 노인이 같은 동네에 사는 필자의 연구원이 멀어서 못 올리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인이 민망해 하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길에서 만나도 필자의 연구원을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필자를 알고 있고, 더욱이 소설가로서 인식되어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병 고치는 이야기를 하니 먹혀 들어갈 까닭이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뒤 목욕탕에서도 이 노인의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필자는 몸이 불편해서 목욕탕 출입도 안 하게 된 것이려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부터 삼화탕에서 자주 만나는 한 중년신사가 있었는데 하루는 필자에게 그 소리는 무엇 때문에 내는 것이냐고 물어온 일이 있었다. 필자는 자연 체질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세요. 그럼 저도 고쳐주실 수 있겠네요.” 하고 그는 반색을 했다.
“무슨 병을 앓고 계시죠.”
“벌써 10년째 된 당뇨병입니다. 병발증으로 폐결핵까지 되었습니다.”
“그러시면 우선〈옴 진동〉녹음 테이프를 구입하셔서 진동수부터 한달 동안 복용해 보세요. 결핵은 그것으로 완쾌되기가 쉽습니다.”
“그래요.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그 뒤 이 손님은 녹음 테이프를 가져갔고 목욕탕에서 만날 때마다 열심히 진동수를 마시고 있노라고 했다.
한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간해서 냉탕에 들어가는 일이 없던 그가 열심히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서 왕래하는 것을 보았다. 스팀실에 앉아 있는데 그가 들어와 필자 곁에 와서 앉았다.
“진동수 덕분인지 이제 폐는 완전히 좋아진 것 같습니다. 병원의 검사결과도 좋고 또 제가 전에는 찬물에 들어가지를 못했었는데 이제는 냉탕에 들어가도 감기에 걸리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며칠 안에 한번 찾아가 뵙겠습니다.” 하고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목욕탕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지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가 아침 일찍 필자의 집에 찾아 왔다.
시술을 하기 위해서 필자의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삼화탕에서 자주 만나던 그 노인의 얼굴이 그의 얼굴 위에 겹쳐 보였다.
(안선생 오랫만이오. 나 여기 있오.) 하는 소리 아닌 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 그 노인과 이 환자가 혹시 부자지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혹시 아버님이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돌아가셨는데요.”
“돌아가신 지 오래 되시지 않죠.”
“네, 지난 해 겨울에 돌아가셨는데요.”
“혹 선친께서도 당뇨병을 앓으셨고 말년에는 와사증 때문에 입이 한쪽으로 삐뚤어지지 않으셨던가요?”
“맞는데요. 그것을 어떻게 아시죠?”
“눈이 크시고 몸이 여위시고 늘 아침이면 삼청공원에 챙이 넓은 캡을 쓰고 산책 다니시지 않으셨나요?”
“그것도 맞습니다. 이거 놀랐습니다.”
“지금 선생의 아버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어요.” 하고 필자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은 제가 외아들입니다. 사업차 미국에 여행간 사이에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임종에도 참석치 못했지요.”
“선생은 분명히 지금 돌아가신 아버님의 영혼이 빙의되어 계십니다. 체질개선 시술을 며칠 받으신 뒤에 제령을 해야겠어요.”
“그러고 보니 마음에 짚히는게 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아버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곤 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공연히 슬픈 생각이 들구요.”
“빙의되어 있는게 분명합니다. 제가 알고 있던 그 노인 어른이 선생의 선친이신지 확인하고 싶으니 사진 좀 가져다 주실 수 없을까요?”
“네, 그러죠.”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사진을 가져오지 않았다. 매번 올 때마다 잊곤 하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빙의가 되어 있는게 분명하다고 필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하도 여러번 재촉을 한 탓인지 어느 날 그는 드디어 돌아간 아버지의 사진을 갖고 나타났다.
첫눈에 그 노인이 분명했다.
“맞습니다 이 분입니다. 그러니까 살아 계실 때는 인연이 없으셔서 저에게 오시지 않으셨지만 돌아가신 뒤에 아드님 몸에 실려서 저를 찾아오신게 분명합니다. 그럼 확인이 되었으니 내일 제령을 하십시다.” 하고 필자는 이야기했다.
그를 돌려보내면서 어쩐지 그가 내일 안올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가벼운 사고가 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빙의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몸에서 떠나가기를 싫어하고 있는게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다음 날 아침 목욕탕에서 돌아오니까 아내가,
“오늘 아침에 제령하시기로 약속된 손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어젯밤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침에는 올 수 없고, 낮에 들르시겠다는군요.”
“그래 본인이 다쳤답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요, 자기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인사 사고를 낸 모양이예요.”
필자는 생각하기를 이것은 분명히 빙의된 아버지가 제령당하지 않으려고 일으킨 일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든 제령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일으킨 사고일 테니까 아주 경상(輕傷)이리라는 판단을 내렸는데, 결국 필자의 판단이 옳음이 곧 확인되었다.
외아들로 어려서부터 자기 뜻대로 살아온 사람이라 이 환자는 참을성이 없는 성품이었다. 늦게 오고도 앞서 온 사람을 제쳐놓고 시술을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성미였다.
틀림없이 제령이 안되는 시간을 골라 찾아와서 제령을 해 달라고 고집을 부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령이란 필자 혼자의 힘으로 되는게 아니고 여러 보호령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영사’를 하고 빙의령을 설득해서 피해자의 몸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필자의 일이지만 유계로 그들을 데려가는 것은 보호령들이 맡은 일이기 때문이다.
시술실에 앉아서 이 환자에게 빙의된 빙의령을 영파(靈波)로 동조를 해 보니, 그 노인이 여간 교활한 성품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제깟놈이 나를 쫓아내, 어림도 없지! 낮에 가서 아들에게 어거지를 쓰게 해서 제령 안될 시간에 제령을 강요하면 보호령들이 데리러 오지 않을게고 그러면 아들은 그를 믿지 않게 될게고 나는 여기 있는 거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좋은 방법이란 오직 하나밖에 없다. 필자는 환자의 영파(靈波)의 파장(波長)에 동조해서 강력하게 텔레파시를 송신했다.
“지금 가 보아야 제령은 안해 줄테니까 내일 아침 가는 수 밖에 없겠구나!”
환자의 입장이 되어서 환자가 생각하듯 생각하면 환자는 자기 생각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벌써 여러해째 시험해서 성공을 거둔 방법이다.
필자의 방법이 성공을 거두어 그는 온다는 시간에 오지 않고 다음 날 아침 필자를 찾아 왔다.
제령을 하는 순간 환자의 얼굴에 다시 한번 변모현상(얼굴 모습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났다. 노인의 얼굴로 모습이 바뀌더니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두 줄기 흘러 내렸다.
“선생님 말씀대로 분명히 아버지의 영혼이 저에게 깃들어 계셨던 모양입니다. 〈나는 간다. 잘 있어라〉하는 아버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더니 왈칵 슬픈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지 뭡니까?” 하고 환자는 고백했다.
그는 완전한 무신론자 였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유신론자가 되었노라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필자의 연구원을 찾아 온 환자는,
“이제는 거의 당이 나오지를 않는군요. 눈 뜨는 순간 아버님의 모습도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아주 가신 게 분명합니다.” 하고 기뻐했다.
그는 날이 갈수록 병색이 사라지고 젊어지는 듯 했다. 전날의 노인과 같은 찌든 인상이 말끔히 가신 것이었다. 그 뒤 여러 날 계속해서 물어보았지만 아침에 자리에서 눈뜨는 순간 보이던 작고한 부친의 모습이 이제는 안 보인다고 했다.
요즘에는 통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을 보니 건강이 좋아진 게 분명했다.
“복이 있으면 살아서 만나 구원을 얻을 것이오. 복이 없으면 죽어서 만나리라!”
어떤 잠언에서나 나올 듯 싶은 말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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