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이윽고 성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모두 이끌리듯이 따라 일어섰다. 성자는 의자 등받이에 두 손을 얹은 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나의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그윽한 친밀감과 자비가 넘치고 있었다. 나는 결코 이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치 축복을 받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나는 온몸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모두에게 작별의 손짓을 하고 나서 노성자 (老聖者)는 등을 돌려 방을 나갔다. 그 뒤에도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고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나 또한 할 말을 잊고 서 있었다. 침묵을 깨뜨리며 조용히 말을 꺼낸 사람은 카르나였다.
「이 위대한 성자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혜택입니다.」
토성인 라뮤우는 일부러 (내 생각에) 긴장을 풀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지구로 돌려보내기 전에 좀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무슨 물어 볼 말씀이라도 있으면 서슴지 말고 하세요. 지금 성자께서 하신 이야기처럼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흥미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우리에게도 무의미한 것은 아니거든요.」
모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라뮤우는 지금 마음속의 텔레파시가 아닌 입으로 질문을 해도 좋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보통의 대화를 하자는 뜻이리라. 나는 마음속에서 가장 중대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질문했다.
「핵폭발 실험이 있은 후로, 각처에서 일어난 지구 대기권의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는 저 에너지의 발생과 어떤 관계가 있었던가요?」
「분명히 있었지요. 」
라뮤우가 대답했다.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결과는 우리의 측정장치가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답니다. <우리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차분히 말했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좀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을까요? 가령 지구에서 일어난 전쟁이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몇 백만 사람들의 우주여행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해도, 어째서 당신네들은 다수를 위해서 소수를 살상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이 물음에는 오오손이 대답했다.
「설명해 드리지요.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전체를 보도록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법칙에 반항하는 일 같은 것은 도대체 생각할 수 없지요. 이 법칙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 그리고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지요. 어느 개인, 어느 집단, 어느 행성의 지적 생명체라도 모두 이 법칙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며, 서로간의 간섭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물론, 충고나 지도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파멸을 가져오는 따위의 간섭은 결코 용납되지 않지요.」
그는 얼굴이 밝지 않았다. 내가 이 원리를 분명히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때 화성인인 파아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상념(想念)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우리는 육체로 지구를 방문하는 일 말고도, 지구인이 현재 파멸의 길로 치달리고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신념을 가지고 모두 굳게 염원하고 있답니다.」
「알겠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문제가 명확해짐에 따라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다.
「이 염원의 힘이 항상 지구의 형제들에게 보내져서,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라뮤우가 말했다.
「이런 일도 알고 있지요.」
일무스가 말했다.
「지구에서는 당신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하늘에 나타난 우리의 우주선이 대기권 밖에서 찾아왔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행성에서 온 지적 생명체가 그것을 만들고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공군 당국이나 정부에서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몇몇 정부 고관이 이미 우리와 접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착한 사람도 있어서 절대로 전쟁을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그런 선량한 사람도 오랜 세월을 통해서 지구상에서 인간들 자신이 키워 온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요.」
카르나가 조용히 말했다.
「지구 도처에서 날고 있는 비행사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우주선을 몇 번이고 목격한 비행사는 많지만 모두가 함구령을 받거나 협박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
파아콘이 덧붙여 말했다. 나는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지구와 지구인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내가 말했다.
「해결책은 길거리의 보통 사람들의 힘에 크게 의존해서, 그 힘이 온 세계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어 가는 것밖에 없겠군요.」
「그들이야말로 당신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파아콘이 즉각 긍정해 주었다.
「그러니까 세계 각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 반대를 외치면 지구상의 각국 지도자들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대화로 여러 가지 일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올랐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는 화제를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조종실에서 본 기계장치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없을까요? 소리를 기록해서 도형으로 번역한 다음 스크린에 비추는 것 말입니다.」
「물론 해 드리죠.」
오오손이 응해 주었다.
「그 가장 중요한 용도는 이 기계로 진짜 손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지구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는 우주인은 보다 유창하게 지구의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구인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에게도 어학의 천재라고 할 사람이 있어서, 그러한 사람이면 직접 지구인과 접촉하지 않아도 유창하게 지구의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웃으면서,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있었던 팬터마임(무언극) 같은 대화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때는 당신이 텔레파시를 발신하거나 수신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었습니다. 그 시험 결과, 당신이 현재 여기에 와 있지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에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옹색한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이면 무엇이든지 의심하려는 사람들이 어디에 가든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낸 그 메시지는 일부러 우주 문자로 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자를 이해하는 힘은 벌써 먼 옛날에 멸망한 고대문명과 더불어 사라지고 없지요. 그러나 현재에도 매우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이 문자를 번역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이 지구에 존재하고 있답니다. 이런 번역을 보여 주어도 믿지 않으려고 마음에 작정을 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별 뜻이 없지만요.」
카르나가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다행히, 적어도 텔레파시가 있다는 사실만은 지구의 과학자들도 인정하게끔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오손이 또 끼여들었다.
「우리는 당신과 접촉하기 전 몇 해 동안 당신을 관찰하고, 당신이 텔레파시를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한 것입니다. 이것은 최종적으로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입증되었지요.」
나는 물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로 나를 테스트했습니까?」
「물론이지요. 당신은 몇 해 동안 우리의 우주선을 사진에 찍어 왔으니까, 그만큼 당신의 상념, 즉 염원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당신의 흥미가 아주 진지한 것임을 느꼈거든요. 단, 과연 그 흥미를 행동으로 옮기느냐, 옮긴다면 어떻게 하느냐, 앞으로 반드시 들이닥칠 비웃음과 비판에 당신은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인지, 우리와 만난 일을 자기 과시나 장사에 써먹으려는 유혹에 빠지지는 않을지, 이런 점들을 잘 밝힐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하늘을 나는 원반의 색광(色光)에 의한 모든 테스트에 합격한 것입니다.」
일무스가 다정하게 말했다.
「어떠한 비웃음이나 불신에도-당신이 제시한 사진이 위조라고 떠들썩했을 때도- 당신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을 굳게 믿고 있었지요. 우리들은 다 보고 있었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나는 마음이 흐뭇해졌다. 이러한 친구들이 있다면, 이제는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지만 더. 우리는 당신의 신중성과 판단력에 대해서 알아두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라고 라뮤우가 말했다.
「가령, 오늘밤에 성자께서 당신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 가운데에는 성자가 말씀하신 대로 지구인에게는 아직 알려서는 안 될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지구와 같은 세계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할 일을 발표해서 스스로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유혹이 그 누구의 마음에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곧 공표해도 괜찮을 일이라도 그 전체를 인간의 지혜만을 가지고 만인에게 호소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당신의 건전한 판단력을 작용시킬 필요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배운 우주법칙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으로 인생의 태반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당신은 그들이 흡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이상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쓸데없는 것일뿐더러, 게다가 이따금 위험을 가져 올 수도 있음을 배웠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이 원리를 우리에게서 받은 정보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텔레파시 말씀인데,」 나는 지금껏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던 질문을 하였다.
「나는 텔레파시를 응용할 수는 있지만 그 작용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좀더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그들은 얼굴을 마주 보면서 웃었다.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지만, 서로가 그 기회를 양보하는 예의를 즐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이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상기해 보면 지구에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있을 때의 광경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야기 가운데 뛰어들어,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좀 기다리면 되는 것을), 남의 말을 아주 못 하게 방해하는 일이 흔하지만, 여기 있는 이 남녀는 언제나 서로 방해됨이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누구 한 사람 자신의 발언권을 위해서 객담이라는 뚜렷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은 듯이 오오손이 대답에 나섰다.
「지구에는 라디오라는 것이 있지요. <햄>이라고 부르는 아마추어 무선사도 수두룩하고요. 그들은 저마다 발신 허가를 받은 채널을 사용함으로써, 당신들이 에텔파라고 부르고 있는 채널에 의해 일정한 장소에 있는 일정한 자가 멀리 다른 기계 앞에 앉아 있는 자에게 통신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의 목소리를 같은 방안에 있는 사람처럼 뚜렷이 청취할 수 있지요. 옛날에는 이러한 통신이 가능하다고 말하면, 펄쩍 뛰면서 미친놈 소리를 들었던 것인데, 그때 비웃었던 사람들과 똑같은 성격의 인간들이 지금에 와서는 우리의 우주선이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라 하면 펄쩍 뛰면서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도의 지성밖에 안 가진 자는, 상품으로서 카운터에 늘어놓을 수 있을 만큼 분명한 물건이 아니면 아무 것도 믿으려고 들지 않지요.
상념, 즉 염원이라는 것은 라디오와 똑같아서 어떤 일정한 파장을 타고 수신되거나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떠한 기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직접 머리에서 머리로 작용하니까요. 여기서도 거리라는 것이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텔레파시가 성공하는 데는 솔직하고 민감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및 해 동안 계속해서 우리에게 상념을 보내 왔습니다. 우리도 대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호출과 응답으로 우리 사이에 케이블 같은 굳은 연결이 이루어지고, 단일 주파수로 상념파, 다시 말하면 염원파(念願波)를 교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듯이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든지 보낼 수 있지요.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당신이 나와 만나도록 선택된 까닭은 당신의 체험에 확증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막에서의 우리의 만남이 허망한 거짓이 아님을 널리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용감하게도 최초의 기사를 게재했던 당신네 나라의 그 신문사의 스텝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해두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마음끼리의 접촉이라는 것은 절대로 <심령적(心靈的)>이라든가 <영적(靈的)>이라 부르는 테두리에 속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직접 전달이라는 사실입니다. <심령적>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설명해 드리지요. 이 마음의 텔레파시를 우리는 두 점 사이, 말하자면 송신자와 수신자의 <의식통일 상태>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행성, 더욱이 금성에서는 일반에게 보급된 통신법입니다. 금성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통신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행성에서 우주선으로(그것이 어느 곳에 있던 간에), 또는 일정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통신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아까도 말한 바 있듯이-이 점을 분명히 알아두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지구인이 말하는 공간이라든가 <거리>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오오손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일무스는 슬그머니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서 쟁반에 글라스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글라스에는 먼저 내가 마셨던 그러한 청량음료로 보이는 것이 담겨있었다. 그녀가 글라스를 돌리고 난 뒤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와서 우리 속에 뒤섞여 살고 있는 사람들 말씀인데, 이런 일이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까?」
대답은 카르나가 했다.
「선사시대부터 쭉 있었지요. 적어도 과거 2천 년 동안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인을 구하기 위해 지구에서 태어나도록 파견된 사람들은 예수를 빼놓고도 많지만, 예수가 책형(磔刑)을 당한 뒤로는 실지로 지구상에 태어나기보다는 본인에게도 가장 위험이 적은 방법으로 우리들의 사명을 다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우주여행이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지요. 우리는 육체를 가진 채 지구로 내려가기를 원하는 지원자를 내려보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사명에 대해서 면밀한 훈련을 받고 개인의 안전문제에도 여러 가지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정체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당신 같은 몇 사람의 지구인에게 알리는 일 말고는 절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동포들 사이에 어울려서 지구인의 말과 생활양식 등을 배우고 있지요. 그리고는 고향의 별로 돌아와 지구에서 얻은 지식을 우리에게 모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7천 8백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구의 역사와, 거기서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지구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역사는 그들 자신들이 파괴한 많은 문명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현재 당신네들을 위협하고 있는 그러한 파멸이 과거에도 수없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네들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태는 이미 몇 백만 년 동안 태양계 안에서는 존재치 않았습니다. 물론 모든 행성과 그 주민은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질서정연한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질서 있는 자연의 진보를 이룩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장과 파괴만을 무한히 되풀이해 왔지요.
지구의 인간 가운데서도 우리의 도움으로 지구를 떠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서 배우고 나중에 지구의 고향으로 돌아가 배운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목적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같은 지구의 상태로는 이런 희망도 이제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어디에 갔다왔다고 이야기를 하면 미친 사람으로 보여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기가 고작이지요. 오늘날 지구에서는 여러 가지 증명서들을 필요로 하는데, 오랫동안 원인도 모르게 자취를 감추었다가 갑자기 돌아왔다면 당국에서 수상히 여길 것이 뻔합니다. 우리는 동료들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궁지에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사실로 우리가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여러 가지로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더욱더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카르나의 얼굴에는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슬픔의 그늘이 짙어졌다. 그러나 테이블에서 글라스를 집어들어 홀짝홀짝 들이키는 사이에 그녀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되돌아왔다. 글라스를 테이블에 다시 내려놓으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하게 되어 안됐습니다. 하지만 우주 어느 한구석에 이러한 슬픔이 있다는 것만 해도 아주 슬픈 일이군요. 다른 행성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슬픈 사람이라고는 없습니다. 모두가 밝습니다. 매우 잘 웃지요.」
이러한 그녀의 설명에 나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모두가 각자의 행성에서는 유쾌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리지구의 슬픔을 동정하고, 몇 천 년 동안 한결같이 우리에게 빛을 주려고 노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기는 해요.」
카르나가 말했다.
「우리들은 아직 지구인을 찾아갈 수도 있고, 당신과 사귀게 된 것처럼, 앞으로도 자주 지구인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의 비행사들 때문에 우리들의 착륙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만, 우리들의 우주선을 목격하는 지구인이 증가하면 할수록 우주선을 보는 것이 익숙해져서 다른 행성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지구인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도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고 있지요.」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고 나도 같은 뜻임을 밝혔다. 우리는 모두 글라스를 비웠다. 여러 사람의 얼굴을 보니까, 지구의 현 상태에 대해서 걱정했던 근심스러운 표정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이 기분전환은 현명하고 적절한 것이었다고 깨달은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당신들의 행성에서도 춤추거나 노래부르거나 합니까? 지구에서처럼 파티 같은 것은?」
카르나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모두 춤을 썩 잘 춥니다.」
「우리는 율동적인 운동에 의한 신체 훈련을 교육의 기본적인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법을 지구인이라면 우주인의 종교적 의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는 그러한 것의 일부분이지요. 말 가운데서도 시(詩)라는 형식은 산문 형식으로는 불가능한 깊은 감정을 나타낼 수 있지 않습니까. 그와 똑같은 말을 육체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완전한 리듬에 대해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배(禮拜)의 무용을 통해서 나타냅니다. 당신네들처럼 단지 즐기기 위해서도 춤을 춥니다. 그러나 현재 지구에서 유행되고 있는 그린 춤과는 전혀 다르지요.」
카르나는 미소를 띠면서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지구에서 자주 구경해 왔는데 남자와 여자가 춤추고 있는 동안 서로 격렬하게 몸을 들이대다가, 순간적으로 서로 떨어지고, 차고, 몸을 비비꼬고, 뛰고 하는 등 별 짓을 다 하더군요. 그런 춤은 즐겁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사교춤은 보통 그룹 단위로 춥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기분과 음악에 따라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춤을 추어 보이기도 합니다. 당신도 지구에서 기막힌 표현력을 가진 댄서를 보았으면 아시겠지요. 육체가 생동하는 내부의 혼의 힘으로 아름답게 약동할 때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아름답고 즐겁다는 것을.」
「파티도 벌입니다.」
일무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파티라는 말로 생각되는 그러한 종류는 아닙니다. 같이 잡담하거나, 긴장을 풀기 위해서 자기 집으로 친지를 초대하는 일은 우리들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개가 야외에서 지내지요-해변이나 정원 같은 데서 말입니다.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집에도 풀장이나 커다란 테라스가 마련된 정원이 있답니다.」
나는 이러한 훌륭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 이때, 라뮤우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섭섭하지만 이제 당신을 지구로 다시 모셔 가야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나는 일어서서 <다음 기회>라는 말로 이 아쉬움을 잊으려고 애썼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 재회를 약속했다. 여태껏 여러 가지 가르쳐 준 것을 모두 잊지 말라든가, 지구에서의 나의 활동에 잘 이용하라든가 따위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아름다움과 따뜻함, 게다가 친밀감을 온몸에 가득히 느끼면서,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이 우주선을 떠나게 되었다. 이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지구에서 무지가 일소되는 날, 지구인도 또한 성장하여 천성(天性)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조종실로 이어지는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마음속에 다시 한번 더 이 훌륭한 방안의 가구장식과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빛나는 초상 등을 새겨 두고 싶었던 것이다.
조그마한 정찰원반은 모선에서 다 충전이 되어 지구로 돌아갈 채비를 다 끝내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모두 함께 올라탔다. 라뮤우, 파아콘과 나였다. 라뮤우가 조종석에 앉았다. 층계를 올랐을 때, 죔쇠와 케이블은 벌써 제거되어 있었다. 먼젓번 때와 마찬가지로 끝으로 한 사람이 안에 들어서자 문이 소리없이 닫혔다. 원반이 천천히 미끄러지듯 레일을 타고 내려간다. 이중의 공기판을 통과했을 무렵에는 벌써 우주 한복판이었다. 모선의 하부로부터 빠져 나온 것이다. 레일을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다시 뱃속에 낙하충격을 느꼈지만 들어올 때처럼 그리 강하지 않았으며 시간도 짧았다. 순식간에 문이 열리면서 파아콘이 이렇게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지구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야말로 불가능으로 보일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이때, 원반은 대지에 내려앉아 있지 않았다. 지상에서 15cm가량 높이에 떠 있었던 것이다. 라뮤우가 앞으로 와서 작별인사로 손을 내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정찰원반에 남아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자동차로 같이 갈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 이렇게 만나 볼 수 있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다시 만날 그때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나도 그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호텔로 돌아가면서 자동차는 말없이 달렸다. 나는 깊은 감회와 생각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물론 파아콘은 이런 나의 심리상태를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호텔 앞에서 차를 멈추었으나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악수를 나누었다.
「머지 않아 또 만날 것입니다.」
그는 작별인사를 했다. 언제, 어디서, 내가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그는 이런 내 마음속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적당한 때가 되면 당신에게 느낌이 일어나서 어느 사이에 적당한 장소에 당신이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십시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손을 흔들면서 파아콘은 떠나가 버렸다. 나 혼자만이 보도에 외로이 남겨진 것이다. 호텔의 내 방으로 올라갔다. 이 우주인 친구와 헤어진 후 처음으로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5시 10분 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피곤한 느낌도 없었다. 나는 침대가장자리에 앉은 채 1시간이나 오늘밤의 체험을 회상했지만, 그것이 내 마음속을 통과해 버렸던 후도, 이 사건의 전부가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얼마나 어리석게 여겨질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실이지, 나 자신도 이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눈으로 본 것, 내 귀로 들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는 분명한 현실적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를 의심할 수는 없다.
끝내 나는 옷을 벗고 몸을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 깊지는 않지만 잠이 들었음이 분명하다. 눈을 떴을 때는 8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나는 급히 옷을 입었다.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이 거의 빠듯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나의 눈은 지나치는 경치나 바로 곁에 앉은 사람을 보고 있었으나, 내 마음은 어젯밤의 체험에 잠겨 아직도 우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우주선 안의 우주인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시각에 두 곳에 몸을 둔 느낌이 몇 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지상의 속박으로 가득 찬 생활로 되돌아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주의 광대함과 그 영원한 활동의 아름다움, 그것을 목격하는 특권이 주어진 시간은 극히 짧았다. 그러나 나는 그 경이감을 계속해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구 밖의 우주인 친구로부터 배운 것 모두가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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