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구하는 모든 구도자는 항상 성자 대사님들과 그 초능력(신통력)에 관하여 듣고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성자 대사 광휘인에 접한 구도자는 거의 전무하다. 이 대사들에 관하여 지금까지 말해 온 것은 자기들의 밖에 있는 대사에 관해서였지만 이 장에서는 우리 자신의 안(내부)에 살고 있는 대사에 관하여 설명해 보자.
자기 자신 안에 대사성(大師性)을 발견한 자만이 자기 외계에 타인으로서의 대사를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구도자가 배우지 않으면 안될 최초의 법칙 중의 하나는 “하늘(신)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큰 장애일지라도 그것에 좌절하는 일이 없이 자기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진실의 깨달음(오도)에 달하려는 구도자는 자기가 묶여 있는 무지라는 밑바닥으로부터 자기를 신 안으로까지 끌어 올려주는 지혜와 지식에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류가 자기들의 용어 속에서 ‘시험한다’는 한마디에 중요성을 두고 더욱 여러 가지 일을 시행해 본다면 무엇이었던 간에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 온 모든 일의 배만큼의 일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의지’란 혼의 소원이 집중화된 것이다.
때문에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지식과 지혜의 면에서 언제나 마음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으면 인간의 의지는 전능해지는 것이다. 혼이 물질계에서 본질을 충분히 깨닫기까지 성장하면 공간(스페이스)의 균열 틈을 통과하는 대사에게 식별받을 만한 바이브레이션을 발송할 수가 있다. 신앙과 신념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구도자는 법칙을 적용함에 의하여 자기를 고양시키고 대 우주의 갖가지 에너지와 능력의 송수신국으로 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오의(奧義) 지식을 얻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자기의 불변 부동성과 자기헌신 봉사의 자발 적극성이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대사들이 지배하고 있는 초능력과 여러 에너지는 단순한 요구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에너지와 능력은 편협한 마음, 쩨쩨한 사욕(私慾), 감정적 이기주의 등을 끊임없이 거절, 포기하는 것과 동시에 각각의 혼에게 신(神)인 우주의식에 대한 의무를 성공, 달성시킴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혼으로부터 마음에 전해져 마음으로부터 더욱이 외계물에로 우리들이 실행에 옮기는 의무는, 구도에의 인간적 노력의 갖가지 방법에 의하여 드디어는 신의 빛에까지 달하려고 바라는 사람들의 의식(혼)이 급속히 발전 성장할 기초인 것이다. 이와같이 혼에 의하여 훈련된 의지야말로 안에 있는 대사에의 유일한 길인 것이다.
“소명받은 자는 많아도 선발되는 자는 적다.”고 말하는 것은 하잘 것 없는 무익한 일에 쓸데없는 노력을 하여 길에서 벗어나 비틀대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빛의 길을 구하는 참다운 구도자에 요구되는 에너지와 시간과 노력의 집중을 안하는 사람들이다. 구도에 실패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급, 인내심의 결핍, 의혹, 공포, 집중, 노력의 결여 등이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안에 있는 대사를 구하는 경우에 만나게 되는 한 커다란 장애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일을 전부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이다. 이야기해선 안되는 일을 말하므로 자기 현시욕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자기중심적 태도에 의하여 그 사람의 생각이 물적 외계로 향하게 되고 내적 세계로 안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구도자는 자기에게 경주될 성지식(聖知識)의 흐름을 막아 버리고 있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만 강함(힘)이 있는 것이다. 입(혀)의 침묵을 지키는 착실한 실행만이 우주와 접하는 자격인 것이다. 대사도 인간이며 꺾임없는 노력과 열성에 의하여 자기의 환경과 주위의 사물에 지배받게 되는 대신에 그것들-오만가지의 환경을 지배, 정복한 사람인 것이다.
이 대사들은 목적 자체를 존엄화·절대화하고 지옥의 고통조차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시다. 대사들이 여차하면 지옥마저도 꺼리지 않겠다는 이유는 고난 희생의 뒤에는 평화와 행복이 오고 노력과 고역의 뒤에는 하느님인 우주의식과 일체화로써 보상받게 되는 것임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절실히 바랬지만 실현이 안되고 헛되게 끝난 채로 있는 갖가지의 초능력 초에너지 영적 목표가 이 세상 안에는 실재한다.
그러나 절실한 바람이 헛되게 소멸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도자가 자기 안의 대사를 발견하는 데에 필요한 목적의 불변 부동성의 유지와 어떠한 고난, 고뇌에도 굴하지 않는 필사의 열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도자가 육체적으로는 허약한 자라도 온갖 장애를 타고 넘는 데에 필요한 확고부동의 비원(悲願)만 가지고 있으면 길을 멀리 벗어나는 일은 절대로 없는것이다.
신참의 구도자가 최초에 배우지 않으면 안될 가장 중요한 일은 순종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 구도자가 순종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세속적인 빛나는 성공욕에 눈이 멀어 구도의 길에서 빠져 나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열망(熱望)하거나 강하게 상상하거나 한 일은 반드시 달성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우주의 대 법칙이다. 단, 어떤 일이든지 바라는 것이 얻어지기 위해서는 우주 법칙에 순종하고 비금전적 노력이라는 댓가를 치르고, 가능한 한 자기 부정을 한다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구도자가 마음에 새겨두지 않으면 안될 기초적인 중요법칙이 몇 개 있다. 우선 최초로 ‘관념 지배의 법칙’과 ‘관념 창조의 법칙’을 들 수 있다. 이 두 법칙의 중요성은 모든 창조는 상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의식 투사 현현지배의 법칙’과 ‘의지적 관념형태 투사 현현의 법칙’의 두 법칙이다. 이 두 법칙은 인간의 혼의 여러 현현 능력에 관한 것이다. 의지의 발달은 물질 육체에 있어서 영적 빛의 개발에의 기초 조건이다.
의지가 마음을 대사의 길로 이끌어 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충분히 발달해 있지 않은 약한 의지로써는 안에 있는 대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서 말한 것처럼 침묵의 법칙은 신참 구도자가 배워야 할 가장 기초적인 법칙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자기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건다는 일이다. 이같이 해서 비로소 힘의 근원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구도자가 자기 안의 대사를 발견하기 전에 먼저 개아(個我)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의 마음을 육체에 집착시켜 모든 구도자의 목적인 영적 신광(神光)과의 일체화를 방해하는 것은 개아의 욕구인 것이다. 많은 영적 지도소에서는 제자에게 대사로 되기 위한 비전(秘傳)을 전수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참다운 계시라는 것은 자기 내부에서 오는 것이다. 영적 계시는 그룹 전원이나 학급생 전원에 대해 일시에 되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개인은 단 두 사람도 없고 또 똑같은 인간이 두 사람이나 필요한 이유도 없다. 때문에 계시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단체 전원에 대하여 베풀어지는 계시적 지도가 그 단체 구성원의 어떤 영적 바이브레이션(진동)을 높여서 그 사람에게 내적 계시를 얻게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경우에도 진실한 계시는 그 사람 안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적 계시라는 것은 무엇인가 서약을 한다든가, 어떤 형식을 밟는다는가 일정한 의식을 하든가 하는 그 이상의 보다 고도한 것이다. 그것은 강의라든가 수업 따위를 초월한 것이고 지적 고양류보다 월등히 심원한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자기 안의 자아(혼)에게 “대사가 되면 무엇을 알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하느님과의 일체성이다”라고 하는 답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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