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BOOK/비교진의(秘敎眞義)

제2부 5. 이성(理性)과 신앙

기른장 2022. 7. 13. 20:23

구도(求道)에 노력하는 사람들의 최선의 무기는 이성의 힘의 발달이다. 이성의 발달이 없으면 우리들이 대사를 발견하려고 해도 바랄 길이 없다. 많은 종교 교사들은 이성은 신앙에 의하여 극복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것이다. 인간이 진실과 허위를 구분할 수가 있는 유일한 힘이 이성의 작용인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 이성 능력을 제외한다면 우리는 판단 능력을 잃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도 결정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육체의 마음은 이성의 우월성을 결하면 감정적으로 되고 동요만 계속 일어 사물의 본질을 명확히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신앙 신념(특히 지식)만으로써는 절대로 신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 현상을 보아도 거기에는 완전한 조화와 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4계절은 그 질서에 따라서 변화한다. 식물은 싹트고 꽃피고 시들고 종자를 땅에 떨어뜨리면 그 종자가 이듬해에 새로운 생명으로서 싹트게 된다. 식물은 향일성(向日性)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태양 광선을 최대한으로 흡수하도록 되어 있다. 조금만 주의해서 보면 도처에 정확성과 이성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신은 이성에 기초하지 않고 신이 맹목의 믿음(사랑)으로 삼라만상을 창조한 것이라고 배우고 있다. 우리 인간이 자기의 이성을 사용치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신으로부터 소원시키고 격리시키는 일로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예를 들면 밭을 갈고 집을 세우는 것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는 식으로 이성을 사용하여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기의 이성 능력에 의하여 농부는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거두어들일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이성의 힘은 교육에 의한 경험 관찰에 의하여 신장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신을 이해하는 경우에는 이성을 사용치 않고 눈을 감은 채로 장님처럼 걷고 있는 것이다.

 

바이블의 요한복음서 제1장의 서두에 다음의 몇 절이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말씀은 하나님이다.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모든 것은 이것에 의해서 창조되고, 창조된 것으로서 어느 하나도 이것에 의하여 창조 안된 것은 없다. 이 말씀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의 빛이며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난다. 그러나 어두움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 구절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 이성의 힘을 여는 열쇠로 되는 것이다.

그리스어에서는 ‘말씀’의 뜻을 ‘아오로스’ 또는 ‘로고스’라고 한다. 이것이 바이블에서 오해, 오역되어 있는 것이다. ‘로고스’의 참다운 비의(秘義)는 ‘이성’이다. 요한복음 제1장 서두의 구절에 ‘말씀’ 대신에 ‘이성’을 맞추어 넣으면 심대한 신비가 풀리는 것이다.
“태초에 이성이 있었다. 이성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이성이 하나님이다. 이 이성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며 모든 것은 이것에 의해 창조되었고, 창조된 것으로서 어느 것 하나도 이것에 의해 창조 안된 것은 없다. 이 이성에 생명이 있고 이 생명은 사람의 빛이다. 이성은 어두움 속에서 빛난다. 그러나 어두움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상의 몇 절 속에서 우리들 둘레의 질서와 조화에 관한 우주의 창조에 대하여 얼마나 명확히 설명되어 있는지 이해되는가? 이 이성의 힘은 인간이 다른 모든 창조물 위에서 있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가지는 유일한 성질(특성)인 것이다. 인간이 이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성서 중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신의 형용으로 신에 닮게 창조되었다.”고 되어 있는 줄거리의 이야기가 통하는 해석으로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이성을 가지기 때문에 신의 닮은 꼴이고 만약 이성이 사람과 신과의 결합점이라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신을 발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이성의 힘을 거부하고, 맹목적 신념에 따른다는 것은 인간을 진실의 신에로 이끌어주고 있는 유일한 길을 잘라 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진실한 하나님이란 이성의 빛에 비추어지면 희미해져 소실되어 버리는 것 같은 조그마한 (보잘 것 없는) 유인신(類人神)적인 종교신 따위와는 천지의 차이가 있는 위대하고 고매 무한한 신인 것이다.

 

일반의 사람들은 성직자들이 가르친 신(의 명령)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신에의 모독이라고 배워 왔고 절대의 신앙이야말로 사람들을 신에게로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성직자들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아 왔다. 이런 사고 방식은 각 개인의 영적 고양에 해로운 굴종(맹종)의 관념을 집어 넣는 것이다. 인간이 신을 구하는데에 목사나 승려에 절대 복종하고 있는 한은 결코 신을 발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각 개인 의식의 내부야말로 신 발견의 유일한 장소이고 여기에서 신을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자기의 두 다리로써 확고히 독립하는 길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성의 빛은 ‘하나님인 절대’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의 베일을 벗겨 버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자기의 안에 있는 신성을 가지고 신의 뛰어난 성질과 교류하여 일체가 되는 것이다.

이성에게 지배권을 주라! 그렇게 하면 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대신에 신에게로 자꾸자꾸 다가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