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제3차 세계대전이 임박해 오고 있는 긴급한 현실과 직면해 있다. 단순히 미국이 〈악의 축〉을 선포하여 테러지원국가들과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전기한 바와 같이 미국은 아직도 나치독일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음을 시사해 주는 일이다. 이제 만일 세계대전이 다시 일어난다고 하면 그것은 독일과 미국의 정면충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제3차 세계대전은 곧 제2차 세계대전의 연속이다.
이러한 정국에서 2003년 10월 17일에는 독일 베를린의 템펠호프공항(Flughafen Tempelhof)에 UFO와 여러 개의 UFO를 실고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씨가 담배 모습의 대형모선이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그 UFO는 공항에 착륙하여 무려 40여분 동안 머물러 있었다. 때는 새벽 4시경이라 그곳을 자동차로 지나치는 몇 사람이 보았다고 한다.
혹시 1945년 5월 우주여행에 나선 초대형 비행접시 ‘Vril-7 Odin’ 이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닐까? 독일내에서는 때아닌 이상스런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11월경부터는 돌연 바포메트(Baphomet) 신화가 독일국민들에게는 선풍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등지에 유포되었던 지하의 태양신(Licht der Hoelle)’에 관한 신화이다. 나치독일에서 우상화했던 에스에스(SS) 즉 ‘검은 태양(Schwarzer Sonne)’에 대한 신화적인 전설이 곧 바포메트(Baphomet)에 관한 내용이다.
바포메트는 머리는 황소이고 몸은 인간의 몸으로 된 혼합생명체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불가사이한 존재라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인들은 소머리를 우상화 했다. 이집트에도 많은 태양신들에 관한 신화가 있는데 그 중에 바포메트에 대한 전설도 있다. 또 고대 그리스에서도 문학작품과 역사책에 이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곤 했다.
‘지하의 태양신’인 바포메트(Baphomet)! 2003년 10월 17일에 베를린 도심지에 UFO가 나타난 이후로 바포메트에 대한 신화가 독일내에 급속도로 유포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의 독일은 또다시 나치독일의 이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Mein Kampf)’이 출간된지 10년만에 1,000만권이 넘게 판매되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히틀러의 나치이념이 전 독일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역사적인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제 독일국민의 마음속에 또다시 ‘지하의 태양신’, ‘검은 태양’, 에스에스(SS) 등에 관한 노스탈자가 되살아난다고 하는 것은 나치독일의 이념이 독일국민의 무의식세계에 잠재해 있었다고 하는 명확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면 나치독일의 이념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우리는 지금 이 문제를 명확히 밝혀내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
뱀의 형제들(Bruderschaft der Schlange)
주전 3,200년경 (지금으로부터 약 5,200여년전) 메소포타미아의 슈메르족들 사이에는 ‘뱀의 형제들’이라는 집단이 있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나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os)에는 거의 같은 내용의 창조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인간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되는 선악과를 절대로 따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교활한 뱀이 이브에게 ‘너의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함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는 것이다. ‘눈이 밝아진다’ 또는 ‘진상을 규명한다’ 또는 ‘숨겨져 있는 것을 공개한다’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는 슈메르어로 ‘나하쉬(Nahash)’이다. 동시에 그 단어는 뱀을 뜻한다. 이것은 뱀이 처음으로 인간에게 진상을 밝혀주었다는데서 기인된 것이라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들의 비밀집단은 모든 불투명한 것을 밝히고 어두운 데를 밝힌다는 뜻에서 ‘뱀의 형제들’로 불려졌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대규모의 건축물인 치구랏(Ziggurat)이나 이집트의 피라미트 등은 ‘뱀의 형제들’ 의 설계와 기술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왕의 궁전들, 부유한 사람들의 호화저택등도 모두 이들의 손으로 지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의 궁전과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 같은 것들이다. 로마시대를 거쳐서 중세 유럽의 절대교권시대에는 이 ‘뱀의 형제들’이라는 비밀집단이 프리메이슨(Freemason)으로 개칭되게 된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정부들이 국가들이 새로 생겨나고 또 없어지고 했으나 이 ‘그림자 정부(Shadow Regime)’는 오늘날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다.
1750년경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는 한 검소한 유대인 상인이 살았다. 그의 이름은 마이어 암쉘 바우어(Mayer Amschel Bauer)였다. 그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자그마한 은행을 상속 받았다. 그에게는 아들 다섯과 딸 다섯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타운으로 알려진 유덴스트라쎄(Judenstrasse)로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은 은행의 사무실을 이전했다. 그리고는 붉은색 바탕의 방패에 독수리가 그려져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상징이 입구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자기의 이름을 로트쉴트(Rothschild) 곧 ‘붉은 방패’라고 고쳤다. 그리고는 자기네들 은행의 로고를 그 자리에 걸고 로트쉴트 뱅크(Rothschild Bank)라고 새로 이름을 지었다.
히틀러가 가장 처음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받은 곳은 바로 이 로트쉴트 은행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았으면서도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대량으로 살상했다. 그러면 18세기 후반으로부터 히틀러가 등장한 20세기 전반부까지 이 유대인의 경제력은 어떠했는가?
1773년초 프랑크푸르트의 유덴스트라쎄의 로트쉴트 은행의 사무실에는 '12명의 시온의 현자(Zwoelf Weisen der Zion)'라는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의논된 가장 중요한 내용들은 세계를 제패하기 위한 경제력을 어떻게 이룩하는가? 그리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위하여서는 과연 어떤 정부의 형태가 있어야겠는가? 이와 같이 세계를 한 지붕아래에 모으는 일에 관하여 그들은 심각히 의논했다. 명치 유신때에 부르짖은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일본인들의 야심에 찬 세계정복욕이 바로 이들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1773년초 어느날 열두명의 ‘시온의 현자’들의 모임에 대하여는 그들 자신이 기록으로 남긴 회의록(Protocol)에 상세히 적혀있다. 이 프로토콜은 20세기초까지 비밀로 철저히 보안되었는데 러시아의 닐루스(Sergei Nilus)교수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21년에는 영국의 교수 마르스덴(Viktor Marsden)이 러시아어로부터 영어로 번역했다. 원본은 히브리어와 독일어로 기록되었는데 현재에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번역된 것만이 존재한다. 전 24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 이 프로토콜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세계인을 한 지붕아래에 모으려면 첫째로 자본의 흐름을 장악해야한다. 그 다음으로는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 정권은 절대로 한곳으로 모이게 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갈래로 분산시켜야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신앙의 유형을 조작해야 한다. 한가지의 이념을 관철시키려면 사회를 교란시켜야 한다. 의식주의 생활을 사치풍조로 이끌어야 한다. 소비경제가 없으면 자본이 축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연장으로 사용한다. 세계인들의 식량문제의 해결권을 장악한다.
전쟁을 일으켜서 낡은 질서를 새 질서로 바꾸는 일을 한다. 교육정신과 제도를 유대적인 형태로 점차 교체한다. 프리메이슨 집단으로 하여금 지하조직의 형태로 세계정치를 통제하게 만든다. 죽음이란 모든 것을 종결 짖게 되는 절대적인 현상이다. 죽음의 현상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에 맛서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의 계획에 방해여건이 생겨날 때에는 이것은 오로지 죽음의 현상을 불러오게 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으로 일관된 이른 바 ‘시온의 현자’들의 생각이 훗날 히틀러에게 새로운 세계질서를 이룩하겠다는 강한 신념을 불어넣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엄청난 세계정복에 대한 ‘검은 꿈(Black Dream)’이 히틀러에게 전해지기까지 어떤 경로가 있었는가?
<참고문헌>
Viktor Marsden, 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 New York 1998.
바이에른 일루미나티(Bayerische Illuminati)
1773년초에 생겨난 프로토콜은 당시 뮌헨 근교의 인골슈타트(Ingolstadt) 대학의 법학교수였던 유대인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박사에게 보내진다. 그러면서 그는 일루미나티(Illuminati: 어두운데를 밝힌다는 라틴어 단어)라는 이름의 지하조직을 구성하게 된다. 이것이 나치독일의 이념을 이룩한 유명한 바이에른 일루미나티(Bayerishe Illuminati)이다.
바이스하우프트는 우선 일루미나티의 철저한 지하조직을 구성하여 비밀리에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인골슈타트대학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 그는 13계단으로 된 피라미트형식의 조직을 구성하여 각 회원들의 활동등급을 결정했다. 우리는 이때의 일루미나티의 조직형태가 미화 1달라 화폐의 뒷면에 그려져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화폐를 만들 당시의 미국의 경제권이 바로 바이에른 일루미나티의 회원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1812년 로트쉴트 은행의 초대총재인 마이어 암쉘 로트쉴트가 서거하고 그의 맏아들 암쉘(Amschel) 로트쉴트가 계승하게 된다. 암쉘은 바이스하우프트를 자기의 아버지보다 더 존경했다. 그래서 그의 제안으로 형제들 마다 모두 독립하여 은행을 설립하게 하는데 그들의 금융사업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넓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셋째아들 나탄(Nathan)은 즉시로 영국 런던에 가서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을 설립했고, 둘째아들 솔로몬(Solomon)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가서 임페리얼 파이난스(Imperial Finance)를 설립했다.
다음으로는 넷째아들 카알(Karl)은 이탈리아 나폴리로 가서 오스트리아의 임페리얼 파이난스의 지사격인 금융기관을 설립했다. 막내인 야콥(Jakob)은 파리로 가서 로트쉴트 은행이라는 은행을 설립했다. 이렇게 하여 로트쉴트가문은 유럽의 여러나라에다 은행을 설립하고 금융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은 바이스하우프트의 일루미나티의 정신에 의한 것이었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 이때를 절호의 기회로 생각한 바이스하우프트는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와 뮌헨의 프리메이슨과의 연합전선을 펴고 미국대륙을 장악할 꿈을 꾸게 된다. 이듬해 1777년 그는 스스로 프리메이슨에 입단한다. 1782년 7월 16일 바이스하우프트는 빌헬름스바드(Wilhelmsbad)에서 프리메이슨과 바이에른 일루미나티의 연합결성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후로부터 프리메이슨은 때때로 일루미나티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미 이때에 바이스하우프트는 비스마르크에 앞서 ‘독일의 통일(Deutsche Einheit)’을 생각했다. 자유, 평등, 우정을 통일독일의 이념으로 내어 세웠는데 그것은 독일의 통일에 앞서 1789년 프랑스혁명의 이념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바이스하우프트는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를 합하여서 ‘신 세계질서(Novus Ordo Seclorum)’라는 이름으로 바꾼다. NOS라고 약칭되는 이 지하단체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학술 등 각 방면에서의 거물급들이 모두 회원이 되었다. 회원명단 중에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럽전역에서 이 NOS에 입회한 회원 수는 1785년에 3백만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참고문헌>
Jan van Helsing, Geheimgesellschaften und Ihre Macht im 20. Jahrhundert oder Wie man die Welt nicht regiert, Bruggen 2003
로트쉴트가(Rothschild Dynastie)의 경제력
1815년 6월 20일 워털루(Waterloo)전쟁에서 프랑스군이 패전했다고 하는 소식을 영국의 나탄은 당일 전장에서 들었다. 그는 그날 소유했던 ‘English Consul(영국 영사)’라는 주식을 다 팔아버렸다. 갑자기 English Consul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워털루(Waterloo)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영국의 주식은 완전히 휴지종이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English Consul이라는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주식시장에 내어놓았다. 주가가 완전히 하락했을 때에 그 다음날 나탄은 그 주식을 있는 대로 다 거두어 드렸다. 물론 헐값이었다.
나폴레옹이 패하여 퇴각하자 주가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에서 패하여 큰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나탄에게는 엄청난 주식의 차액을 챙기게 되는 경제적인 이변이 생겨났다. 로트쉴트의 재산이 그 당시 이미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했는데, 워털루 전쟁으로 인해 그 재산이 20배나 불어났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경제파국을 막기 위해 영국의 베어링 브라더스 뱅크(Baering Brother's Bank)에 차관을 요청했다. 나탄은 바로 이때에 엄청난 금액을 베어링 브라더스를 통해 프랑스의 정부에 고리대금의 조건으로 차관해 준다. 그 결과 로트쉴트 뱅크는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를 한꺼번에 장악하게 된다.
로트쉴트의 형제들은 다시 프랑크푸르트에 다 모였다. 물론 바이스하우프트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 로트쉴트형제들은 ‘시온의 현자들의 프로토콜’과 바이스하우프트의 두개의 작품인 바이에른 일루미나티와 ‘신 세계질서’에 보여진 정신으로 다시 무장했다. 거기에서 바이스하우프트는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를 장악했다고 하는 것은 유럽전체의 경제를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강조하고는 이제는 ‘신 세계질서(Novus Ordo Seclorum)’라는 조직을 통하여서 미국의 경제를 장악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역설했다.
영국에는 이미 1729년에 영국동인도주식회사(British East India Merchant Company, BEIMC)라는 회사가 세워졌는데 인도에서 아편을 대량으로 재배하여 중국에 수출하여 엄청난 수입을 얻고 있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영국에는 〈Commitee 300(삼백인 위원회)〉이라는 엘리트 모임이 생겨났다. 〈Commitee 300〉의 멤버들은 주로 은행가, 사업가, 정치인들이었다.
영국에서 저명인사가 되고 으뜸가는 금융인이면서 동시에 국회위원인 라이오넬 로트쉴트 역시 이 〈Commitee 300〉의 핵심멤버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즈음 미국에서는 해리만(Edward Harriman)이 칼리포니아와 뉴욕을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사업에 투자하게 되면 로트쉴트가는 미국경제에 참여하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사업에는 5,000명의 중국인들이 저임금의 노동자로 고용되어서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했는데 그들 중에 대부분은 아편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영국동인도주식회사에서는 해리만의 사업과 함께 그곳으로 아편을 수출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이렇게 하여 1839년에는 아편전쟁이 일어나면서 라이오넬이 영국동인도주식회사에다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여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이러한 불길한 결과를 예견했던 바이스하우프트는 로트쉴트가의 미국경제장악을 위해서는 미국 내의 기업체에다가 우선 투자할 것을 권유했었다. 그러나 1830년 바이스하우프트는 82세의 고령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뒤에 생겨나게 되는 로트쉴트가의 불행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의 뒤를 이어서 ‘신 세계질서’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이탈리아 출신의 쥬세페 마찌니(Giuseppe Mazzini)였다. 그는 미국의 프리메이슨으로 유명한 알버트 파이크(Albert Pike)와 함께 ‘신 세계질서’를 이끌고 나아갔다. ‘신 세계질서’의 행정을 담당한 사람이 마찌니였다고 하면 파이크는 ‘신세계질서’의 기본정신과 사상의 지주역할을 담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법률가이면서 장군이었다.
파이크는 〈도덕과 교훈(Morals and Dogmas)〉이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이것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신세계질서 등의 조직에다가 정신적인 신념과 활력을 불어넣어준 교과서적인 지침서이다. 여기에는 창조주 하나님은 오직 우주의 대 건축가로, 이론가로, 수학자로 그리고 예술가로 이해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불타, 소크라테스, 공자 등의 성현들은 모두가 다 프리메이슨의 모범인물들이며, 완벽한 프리메이슨은 하나님이라고 가르친 사람들이다. 그런데 본 연구에서 중요한 대목은 파이크가 마찌니에게 1871년 8월 15일에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세계를 정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세 번의 세계전쟁이 필연적인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한 점이다. 제3차 대전이 불가피 하다는 이유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첫 번째의 세계대전은 챠르의 절대권으로 통치되는 러시아를 바이에른의 일루미나티의 통제로 이끌어 들이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의 세계대전은 독일의 국수주의자들과 독일판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 사이의 견해차이를 극대화 하게 되면 전쟁으로 내어 닫게 된다. 유럽과 러시아를 통제하고 독일 내에서 유대인들을 따로 결속시키게 되면 자연적으로 유대인의 본향인 팔레스타인에다가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건설할 수가 있게 된다. 세 번째의 세계대전은 유대인들 특히 일루미나티정신에 철저한 사람들과 중동의 아랍인들과 사이의 대립을 조성한다. 그러면 이스람교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과 기독교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 간에 극심한 대립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 세 번째의 전쟁으로 연결된다. 이 전쟁은 허무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이 자연 도태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내용의 편지를 쓴 당시는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통일을 위하여 강권을 발동했던 독일판도내의 격동기였다. 이미 그 당시에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하고 또 제3차 세계대전 역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될 것이라는 파이크의 예견이 또한 놀라운 일이다. 그러면 알버트 파이크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첫째로 음악가이며 음악교육가였다.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기법과 오케스트라의 지휘법은 당대 어느 누구도 그를 능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인이며, 작가이며, 철학자이다. 그의 대작 〈도덕과 교훈〉은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들에게는 성서와도 같은 훌륭한 책이다. 그리고 그는 또한 훌륭한 성악가였다. 그의 시와 산문과 심지어 깊은 사유의 논문들이 독자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그의 문장 속에 함유된 음악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저작들은 영국의 밀톤(Milton)과 비교되어서 때로는 파이크를 ‘미국의 밀톤’이라고 부를 정도이다.
그의 주저인 〈도덕과 교훈〉은 한마디로 밀톤의 〈실낙원(The Lost Paradise)〉과 비교된다. 그 책은 간단히 설명하면 철학과 종교에 대한 그만의 특유한 설명이다. 전혀 영어나 독어나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지 아니한 고대의 문헌들을 히브리어, 고대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슈메르어 등을 마스터하여 그 당시의 종교와 철학에 대하여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자기의 소신을 피력한 글이다. 이러한 파이크는 〈도덕과 교훈〉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나는 옛날 사람들의 시와 생각들을 탐구했다. 우리들에게 그들의 이름 이외에는 알려지지 않고 모두가 다 무덤속에 묻혀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것들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그들의 한때 생생했던 맑은 생각들과 접할 수록 우리들이 얼마나 퇴화했고 그네들이 얼마나 발전해 있었던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정치이념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 얼마나 훌륭한 생각과 행동들이 잊혀져 버렸던가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은 모두 다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피라미트를 건립할때에 무슨 생각을 했던가를 알게 되면 나는 순간 나의 글들을 다 불태워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너무나도 외소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John Coleman, Commitee 300, Washington 2002.
John Coleman, One World Order, Washington 2003.
Jim Tresner, Albert Pike, The Man Beyond The Monument, Washington 1995.
Robert Anton Wilson, The Illuminati Papers, London 1997.
Jasper Ridley, The Freemasons: A History of the World's Most Powerful Secret Society, New Jersey 2002.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와 로트쉴트(Rothschild)
지금까지 로트쉴트 가문에서 어떻게 유럽과 미국의 경제를 장악하게 되었는지를 짧게나마 고찰해 보았다. 미국의 철도사업뿐만 아니라 록펠라(Rockfeller)의 정유산업체인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 역시 로트쉴트의 투자자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거기에 카네기(Carnegie)의 철강산업, 포드(Ford)의 자동차산업 등의 육성을 위하여 로트쉴트의 형제들은 미국의 기간산업에 계속하여 대규모의 투자를 감행했다.
마침내 1914년 한때에 파이크가 예언한 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사라예보에서 한 세르비아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시프(Gavrilo Princip)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드(Ferdinand)부부를 암살한 그 배후에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나 ‘신세계질서’의 암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919년 베르사유조약으로 전쟁이 끝나기까지 로트쉴트의 경제력이 그 전쟁을 유도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으로 대두된 공산주의 또한 로트쉴트의 자금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아마도 그들의 ‘붉은광장’과 ‘붉은 깃발’은 ‘붉은 방패’의 뜻을 가진 로트쉴트 가문의 상징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1773년의 ‘시온의 현자들’의 모임 그리고 바이에른 일루미나티로의 연결 더 나아가 1782년 탄생된 ‘신세계질서’ 등에서 끊임없이 고찰되어 온 세계전쟁을 통한 세계정복의 ‘검은 꿈’이 결국은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로트쉴트의 형제들의 경제력을 근간으로 하여 서서히 현실화 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사적인 정항 속에서 히틀러라는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히틀러의 세계정복 야욕은 이런 분위기로 보아 결코 우발적인 현현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히틀러의 정치이념은 그대로 바이에른 일루미나티와 ‘신세계질서’에서 비롯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유대인들을 6백만명이나 살해한 히틀러 자신이 유대인의 혈통이었음이 입증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은 히틀러의 할아버지가 로트쉴트의 5형제중 두번째인 솔로몬 로트쉴트(Solomon Rothschild)였다고 하는 주장이다.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Alois Hitler)는 자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어머니의 성을 딴 알로이스 쉬클그루버(Alois Schicklgruber)로 당시의 카토릭교회의 출생기록부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요한 네포묵 히이들러(Johann Nepomuk Hiedler)와 어머니가 재혼한 것은 그가 다섯 살 되던 해였다. 그러나 알로이스는 자신의 이름을 히이들러(Hiedler)로 고치기를 원치 않았다. 1876년 알로이스가 36세 되던 해에 그는 자기의 이름을 히이들러(Hiedler)로 바꿀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30여년간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하여 히들러(Hiedler)라는 이름을 원치 않았는데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히틀러(Hitler)라고 등재하기를 원했다. 그 후부터 ‘알로이스 쉬클그루버’는’ ‘알로이스 히틀러’로 이름이 변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히틀러 자신도 잘 알고 있었고 또 세상에 알려진 내용이다. 1945년 나치독일이 패망하고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하는 것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나고 그해 5월 8일 독일은 정식으로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그 이후에 히틀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한 조사연구가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1934년 7월 25일 나치독일의 비밀당원들에 의해 암살된 오스트리아의 수상 엥겔베르트 돌푸쓰(Engelbert Dolfuss) 는 이미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려는 계획이 있음을 알고 그에 관한 주도면밀한 조사를 감행했다. 이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태생이었기 때문이다. 돌푸쓰의 파일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정식결혼하지 않은 어머니 마리아 안나 쉬클그루버에게서 태어났다. 기록에는 그의 아버지는 요한 게오르그 히이들러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는 심히 의심스런 일이다. 알로이스가 히이들러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어머니의 이름인 쉬클그루버라는 이름을 36세가 되기까지 사용했다. 마리아 안나 쉬클그루버 즉 아돌프 히틀러의 할머니는 그 당시 비엔나의 로트쉴트 저택에서 하우스다메(Hausdame: 가정일을 돌보는 여인)로 일했다. 그녀가 임신하게 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알로이스를 출산한 것이다.”
돌푸쓰의 파일에 기록된 로트쉴트의 저택이라고 하는 것은 로트쉴트 5형제 중 둘째인 솔로몬 로트쉴트의 집을 말한다. 그는 결혼은 했으나 가정불화로 인해 프랑크푸르트에 부인과 가족을 남겨둔 채 비엔나에는 임페리얼 파이난스 사업차 혼자 살고 있었다. 큰 저택에서 외롭게 혼자 살면서 그는 미모의 젊은 여인이 매일같이 집안일을 돌볼 때에 그 집에서 자주 가까운 관계를 맺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 때인가 그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해산했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당시의 사정으로는 비밀에 부쳐질 수밖에 없었다. 돌푸쓰 파일이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은 히틀러의 할아버지는 유대인이며 당대의 거부 로트쉴트 가문 중에 막강한 경제력을 가졌던 솔로몬 로트쉴트(Solomon Rothschild)였다는 사실이다.
〈로트쉴트가문 사진에서 가운데 상단이 맏아들 암세르이고 왼쪽 상단이 솔로몬이다. 그가 히틀러의 할아버지였다면 서로 닮을 수 있다.〉
<참고문헌>
David Icke, Was Hitler a Rothschild? New York 2002 (Bridge of Love Publication).
John Toland, Adolf Hitler, New York 1992
출처 : 나치독일의 어제와 오늘 - 金政陽 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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