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과학기술은 농업을 망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부터, 빅터는 농업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비록 직접적인 농사 경험은 적었지만 농업분야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스스로 토양을 기름지게 일구어 왔으나 산림(山林)이 황폐화되고 수질(水質)이 나빠진 지금은 자연의 활력(活力)도 약화되어, 결국 우리 인간도 해를 입고 있다고 빅터는 이해했다. 농부들은 우리와 같은 산림꾼들과 서로 협조하며 살아왔다. 오늘날에는 이 땅의 핏줄인 하천이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땅으로부터 수확량도 줄고 있다. 다행히도 지력(地力)을 북돋아 주어야한다는 인식이 되살아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땅은 화학자들이 차지하고서 그들이 만든 화학물질을 뿌려대고 있다. 인공비료와 농약을 뿌린 땅들은 불과 몇 년만에 지력을 상실하여 쓸모 없게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자연의 뜻을 저버린 결과이며, 마지막 남은 영양의 보고인 땅을 스스로 오염시키고 토양의 모세관체계를 교란시킨 결과이다. 옛날엔 농부에게 풍성한 결실을 안겨주었던 논과 밭이 부패하고 있다. 이러한 당면 문제를 풀어 보고자 농부들은 본능적으로 더욱 깊이 쟁기질하였고, 이것은 오히려 토양의 모세관체계를 더욱 더 망쳐버렸다. 지금 똑같은 상황이 숲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잘 자라고 잘 익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식물들은 부패한 땅에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있다. 이러한 토양에서 자라나서 열매를 맺은 곡식은 오히려 암(癌)의 씨앗일 뿐이다. 곡식의 질(質)이 점차 저하되고, 목초지는 이끼로 뒤덮여버리고, 논밭에서의 생산량도 줄고 있다. 단지 노동의 양과 농사 비용만이 늘고 있을 뿐이다. 종국(終局)에는 농토를 잃게 될 것이고 농가는 버려질 것이다.”
빅터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알프스의 높은 산악 지대와 슈타이어마크(Steiermark) 및 잘츠부르크(Salzburg)의 계곡 지대에서 대부분의 일생(一生)을 농부들과 함께 하며 보냈다. 그는 숲과 하천이 온전했던 당시의 논과 밭의 상태와 곡물 생산능력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벌로 인하여 숲이 황폐화되고 그에 따라 하천이 썩어 버린 후에 논과 밭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는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는 옛날 농부들이 사용했던 전통 농법과 그에 따른 수확량을 곰곰이 따져 보았고, 그 후에 널리 보급된 소위 과학영농법에 따른 결과와 비교하여 보았다. 그 결과 현대적 영농법을 좋게 평가할 수 없었다.
빅터는 식물의 생장현상의 이치를 생명에너지의 순환과정으로 파악하였는데, 식물체내에서 생명에너지가 충전되어 균형을 이루어 가는 것이 생장상태라고 보았다. 이러한 생명활동이 활발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생태계차원에서의 에너지 충전이 일어나야 하는데 대기와 토양사이에 형성되는 전압차이가 중요한 역활을 한다.
일반 전자기현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음극과 양극의 두 극 사이에 전압차이만 있고 절연체가 없으면 단순히 방전만 일어나고 충전현상은 생기지 않듯이, 생명에너지가 충전되기 위해서는 대기와 토양사이의 지표면에 어떠한 형태의 절연체가 필요하다. 빅터는 이것을 땅의 표면에 형성되어지는 ‘피부’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이러한 절연체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어떻게 사라지고 있고 또 어떻게 소생시켜야 하는 지에 대해 누누이 강조 설명하고 있다.
중요한 철칙은 토양이 벌거벗겨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토양은 식물이나 그 밖의 어떤 것으로 항상 덮어두어야 한다. 생물이 성장하기 위해서 수질(水質)은 마찬가지로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수질을 유지하는 근본인 숲이 황폐화되어 하천이 오염되면 물은 땅위에서 더 이상 생명력을 제공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땅위에서는 온갖 병원균이 들끓게 되고, 그나마 땅에서 생장 번식하는 생물의 질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전통적인 농사법(農事法)이 더 좋다>
빅터는 때때로 전통적으로 농부들이 사용해왔던 방법들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예를 들면, 어느 시기에는 농부들은 침엽수 가지를 잘게 잘라서 땅에 뿌려주곤 했는데, 그들은 침엽수에 내포되어 있는 중요한 미량 원소를 뿌려준다는 의미도 모른체 그렇게 하곤 했다. 바이에른(Bavarian) 숲에 위치한 고산지대인 뮐비에르텔(Muhlviertel)의 평범한 농부들도 40년 동안이나 품질이 아주 우수한 토마토와 충실한 귀리를 수확해왔었는데, 어떠한 농사법(農事法)으로 이토록 좋은 결실을 얻었는지 물어본다면 농부들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이 좋은 소출을 얻고자 한다면 어떠한 충고도 무시하고, 다만 고래(古來)로 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 방법들을 충실히 따르시면 됩니다.”
빅터는 경험 많은 늙은 농부들과 어울리길 좋아했고 농부들 또한 빅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는 ‘자연적인 농사법(Natural Farming)’이라는 수필에서 다수확을 올리는 어떤 특이한 농부와의 만남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이 농부는 색다른 방식으로 땅을 갈고 써레질하였는데 다른 농부들과는 달리 그는 파종하는 것부터 독특했다. 작물을 가꾸는 방식은 더욱 특이하다. 간단히 말해서 매 단계마다 그 나름의 고유한 방식을 따른다. 교회에도 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가는 것을 나쁘게 생각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지 않았다. 타인의 충고도 듣지 않았고, 고용인들과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곧장 쫓아 버렸다. 그의 행동이 이렇듯 유별났어도 떠나는 일꾼은 거의 없었다. 농부와 충돌을 일으킨 유일한 사람은 그의 아들 뿐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 당시 농과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자신이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해질 녘에 내가 농부의 집을 방문했는데 이날도 부자간에 의견충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안마당에 들어섰을 때 다소 화난듯한 농부의 아들과 마주쳤다. 그의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묻자마자 그는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그 노인은 뒤 뜰에 계시니 고함쳐 보세요. 그러면 그 노인네가 나오실 겁니다.” 나는 뜰 마당을 지나 그가 일러준 곳으로 가서 늙은 농부를 찾았다.
농부는 커다란 나무 물통 앞에 서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물통 속의 내용물을 저어주고 있었다. 농부가 부르는 노래는 노래라기보다는 뮤지컬 같아서, 가성으로부터 더블 베이스에 이르는 다양한 음조로 노래하고 있었다. 농부는 물통 위로 허리를 구부린 체 물통 속을 향해 큰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농부가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면서 주걱을 반 시계 방향으로 휘저었고, 다시 목소리가 굵게 잦아들면서 주걱을 시계 방향으로 저었다.
농부는 자기 일에 몰두하여 내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고, 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그를 지켜 보면서 왜 저렇게 하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농부가 왜 주걱으로 물통을 휘젓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져서 물통으로 다가가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물통 속은 맑은 물뿐이었다. 그제서야 농부는 나를 알아보았고 그냥 물통을 저으면서 나의 인사에 목례로 대답했다. 나는 농부와 물통 속의 내용물을 번갈아 가며 지켜보았다.
그는 물통 속의 물을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번갈아 가며 계속 저었고, 찰싹찰싹하는 박수 소리와 함께 양질토 덩이를 물통 속으로 던져 넣었다. 동시에 그는 아주 큰 소리로 노래했는데 그다지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좋아, 언젠가는 끝나겠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기다렸다. 마침내 노인은 자그마한 노와 같은 나무 주걱을 꺼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발효시킬 준비는 다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떡갈잎풍뎅이의 심장, 리드미컬한 챔버 시퀀스
농부는 시원한 사과 쥬스가 있는데 같이 마시자고 내게 물었고 우리는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다락에서 사과쥬스를 꺼내오는 동안 나는 거실로 들어갔다. 그는 푸른 꽃무늬가 수놓아진 쥬스 잔을 건네면서 말을 건넸다.
“그래,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미친 놈처럼 보입니까?”
“다 알면서 무얼 새삼스럽게 물어 보십니까?”
나는 농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농부가 좀 전에 하고 있던 기이한 행동에 대해 물어보았다.
공기를 빼서 탄산만을 함유한 차가운 물에 진흙을 넣어 섞고 다시 적절한 방법으로 잘 저어주면 마치 잘 반죽한 양질토(良質土)를 알루미늄 박판으로 감싸두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이처럼 중성을 띈 물을 새로 파종한 논밭 위로 골고루 뿌려 준다. 이때 사용하는 쟁기나 써레는 철이 아닌 나무로 만든 것이어야만 효과가 있다. 이렇게 하면 음전하(陰電荷)를 함유한 미세한 결정들을 땅 위에 남기고서 물은 증발한다. 이제 미세한 결정들은 대기로부터 에너지를 끌어 들였다가 다시 땅으로 방출하게 된다. 이제 지표면과 대기권 사이에는 보랏빛 엷은 막(膜)이 형성된다. 이러한 막(膜)은 마치 여과 종이처럼 작용하는 피부와도 같아서 양질의 광선만이 땅으로 드나들게 한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늙은 농부는 여과 종이와도 같은 얇은 막을 ‘처녀막’이라고 불렀다.
늙은 농부는 이러한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가장 건조한 시기에도 토양을 서늘하게 유지하여, 땅이 건조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씨앗이 뿌려진 지역은 +4℃의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게 하였는데 이러한 온도에서 작물의 결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반면 작물의 성장은 튼튼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지표면이 효과적으로 숨쉴 수 있도록 간단히 도와줌으로써 30% 정도까지 수확량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옛날에는 앞에서와 같이 토양이 숨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진흙이 부르는 노래(clay singing)’라고 불렀다.
옛 전통 방법 중 또 다른 것으로서 태양의 궤도와 수직을 이루도록 이랑을 일구어 가는 것이 있었는데 이러한 이랑을 만들기 위해 쟁기질하는 방식을 ‘태양 쟁기질(sun ploughing)’이라 불렀다. 그러나 요즘의 농부들은 전통 방법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빅터는 생각했다. 현재의 농부들에게 있어서는 시간은 곧 돈을 의미하므로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땅을 가는 것만이 주요 관심사이다.
옛날의 농부들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옛날의 농부들은 자연에 훨씬 가까웠고 보다 생산적인 개념으로 시간과 농사법을 고려하였다. 그들은 필요한 경우에는 비밀스럽게라도 자신의 방식을 지키고자 했었다. 옛날의 곡창 지대에서는 특별한 방식에 따라 들판을 구획하여 농사를 지었다. 땅을 파서 일구는 방식도 독특해서 어떤 지역에서는 나무 농기구를 이용하여 특정한 한 방향으로 땅을 일구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다른 특정한 방향으로 땅을 일구었다. 옛날 농부들이 이용했던 이러한 방법들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빅터는 이러한 옛 전통방법들이 실질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을 많이 밝혀냈다. 예를 들면, 소의 사료로 이용하는 목초지의 풀을 낫으로 베는 것이 트랙터를 이용하여 풀을 베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즉, 낫을 이용하는 편이 초지(草地)가 더 기름지도록 유도하고, 보다 다양한 풀들이 자라도록 이끌어 준다. 특히 건강에 좋은 약초들은 낫으로 풀을 수확한 땅에서 더 많이 산재해 있었다. 게다가 낫의 날을 벼리는 경우에도 낫을 숫돌에 갈아서 벼리는 것보다는 망치질하면서 낫을 벼리는 전통적인 방법이 훨씬 유익했다. 에스토니아(Estonia) 지방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낫의 날을 갈아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옛 방법을 빅터는 다음과 같이 보완하였다. 철(鐵) 받침대 대신에 단단한 목재로 만든 받침대 위에서 망치질하여 낫을 벼리면, 망치질하는 동안 낫에 에너지가 충전된다. 이 에너지는 낫으로 작물을 수확하는 동안 다시 식물의 뿌리와 줄기로 전사(轉寫)되어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망치질로 날을 벼린 낫은 태양 빛 아래에 방치해서는 안된다. 만약 태양 빛에 노출시키면 충전된 에너지가 유실(流失)되고 결과적으로 낫은 활성을 잃게 된다.
목초지의 풀을 소가 직접 뜯어먹거나, 낫을 이용하여 수확하는 경우에 금방 풀이 다시 잘 자라나는 이유는 식물체가 잘리어질 때 생기는 상처가 이내 아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랙터를 이용하여 풀을 베면 잘려진 줄기의 상처가 오랫동안 대기에 노출되어 그 결과로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가 대기 중으로 쓸모 없이 유실되어 버린다. 똑같은 내용의 해석이 산에서 벌목(伐木)하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나무를 톱으로 잘라 넘어뜨리는 것보다는 도끼로 찍어서 나무를 쓰러뜨리는 편이 나무에게는 더 좋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면 나무의 잘라진 그루터기가 대기에 오래 노출되어 버리고 결과적으로 나무의 피해는 커진다.
<철(鐵) 농기구보다 구리 농기구가 더 효율적이다>
1930년대 불가리아에서는 농업 생산량이 심각하게 감소하였다. 이 문제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불가리아(Bulgaria)의 보리스(Boris) 국왕은 빅터를 초빙하였다. 빅터는 불가리아의 여러 지역을 두루 돌아 본 결과, 터키에 인접한 지역에서만 생산량이 특별히 많음에 주목하였다. 그 지역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나무 쟁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는 불가리아 농업 현대화의 방안으로 독일로부터 수입한 철(鐵) 쟁기를 널리 사용하고 있었다. 최초의 증기 트랙터도 도입되어 있었다.
곡식의 수확량이 줄어든 이유는 바로 철(鐵)로 만들어진 쟁기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빅터는 결론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철(鐵)로 만들어진 농기구는 식물재배에 치명적인 악작용을 한다는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을 이용한 에너지발생장치 개발 연구가 이 문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89 쪽 참조) 이 실험에서 매우 적은 양이더라도 철 산화물(鐵 酸化物)이 물에 존재하면 장치로부터 어떠한 전류도 발생하지 않았다. 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발견으로부터 철 농기구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고, 바로 철 농기구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소출이 감소했다는 결론을 빅터는 내릴 수 있었다.
철(鐵) 쟁기로 토양을 갈게 되면 쟁기는 마찰열로 점점 가열되고, 철(鐵)은 빠르게 부식하면서 미세한 녹을 토양 속으로 뿌리게 된다. 철 성분이 많은 땅은 쉽게 메마르고, 발전기의 강철 터빈을 통과한 물은 활성을 잃게 된다는 것을 빅터는 이전에도 여러 번 보았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철 성분은 토양이 함유한 물의 활성을 파괴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철 성분은 토양에서 물을 증발시킬 뿐만 아니라 물 자체의 생명에너지도 소진(消盡)시켜 버린다. 후에 트랙터가 도입됨으로 인하여 쟁기질하는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고, 그 결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철(鐵)로 만든 쟁기로 땅을 갈기 시작한 이후로, 바로 그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어 들판에서는 물이 말라 버렸다고 빅터의 뒤를 이은 발터 샤우버그는 말하고 있다.
철(鐵) 쟁기가 빠른 속도로 땅을 갈면서 지나가면 토양 표면 층에 형성되어 있던 에너지를 함유한 자기장을 헤치고 통과하게 되고, 이는 교류 발전기에서 코일이 자기장 속에서 회전하면서 전류를 발생시키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토양에선 전기분해현상이 일어나서 물은 산소와 수소로 분해된다. 전기분해가 일어나면 토양 속의 미생물이 해를 입게 되고, 쟁기 날과 토양과의 마찰로 인하여 토양의 온도는 올라간다. 바로 이러한 현상은 철 쟁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만 특이하게 일어난다. 나무나 구리 쟁기-소위 생물학적 자기장을 띄는 물질-를 이용하면 토양의 자기장은 교란 받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을 자세히 관찰한 후에, 농사에 이용되는 모든 농기구 들은 철이 아닌 다른 물질로 만들어야 한다고 빅터는 결론 지었다.
여러 가지 물질 중에서도 빅터는 구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구리 성분이 풍부한 토양은 보습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빅터는 쟁기뿐만 아니라 다른 농기구들도 구리로 만들어서 실험을 시작하였다. 먼저, 철쟁기의 쟁기 날만을 구리 막을 입혀 사용하였다. 들판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대조 실험을 행하였다.
일부 구역은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철 농기구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고, 나머지 구역은 얇은 구리 막을 표면에 입힌 농기구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이러한 대조 실험결과, 구리 농기구가 월등히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는데 17~35%의 수확량이 늘어났다. 잘츠부르크(Salzberg) 근처의 구트 호이베르크(Gut Heuburg)에 위치한 대기업인 팜라이텐(Farmleiten) 회사는 50% 까지나 수확량이 늘었다. 키츠불(Kitzbuhl) 외곽의 산골 마을에서는 파종한 감자의 12.5배의 감자를 수확하였다. 모든 지역에서 수확량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수확한 농산물의 품질 또한 우수하였다. 수확한 곡식 가루로 빵을 구우면 아주 맛있게 잘 구워졌다. 철 농기구를 사용한 주위의 감자 밭은 딱정벌레에 의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반면, 구리 농기구를 사용한 감자 밭은 딱정벌레 피해를 입지 않았다. 토양의 질소 요구량도 줄어들었다.
1951년과 1952년 두 해 동안 린츠(Linz)에 위치한 농업 화학 실험소(Farming Chemical Test Station)에서 구리 쟁기에 대한 대조 실험을 실시하였는데 실험에 이용된 작물은 귀리, 밀, 구경 양배추, 그리고 양파 등이었다. 실험은 3개 구역으로 나누어서 실시되었는데, 첫 번째 구역은 보통의 철 농기구를 이용하였고, 두번째 구역은 철 농기구를 이용하되 황산 구리를 토양에 첨가하였고, 마지막 세번째 구역은 구리 농기구만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이 대조 실험에서도 의미있는 결과가 얻어졌다. 이들 실험 결과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실험을 행했던 잘츠부르크(Salzberg)의 농부들로부터 구리 농기구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구리 농기구의 놀라운 효과 때문에 구리 쟁기를 ‘황금의 쟁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황금의 쟁기가 많이 제작되어 보급되기 시작하자 곧장 전혀 뜻밖의 반대에 부딪혔다. 1948년에 빅터는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한 회사와 많은 양의 구리 쟁기를 생산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잘츠부르크 지역 재무부의 고위직 공무원이 근사한 차를 타고 빅터를 방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츠부르크 시의 어느 회사에서 당신이 만든 쟁기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실험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실험결과는 무척 흥미를 끕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내가 당신을 지원해 준다면 그 대가로 내게는 어떠한 이로움이 있습니까?”
빅터는 즉각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재무부에서 나오셨고, 당신은 저희를 도와 줄 것이 특별히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 제 자신의 돈을 지불하였고, 모든 것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무원이 대답했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좀 더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겠군요. 사실 나는 질소 비료 회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농부들이 가능한 많은 비료를 사용하도록 유도해주면 나는 그 회사로부터 그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농부들이 구리 쟁기를 널리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질소 비료의 사용량은 자연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받는 로열티가 줄게될 것이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당신으로부터 로열티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요. 이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우리 두 사람 모두를 위해서 협상을 시작해 봅시다!”
이에 빅터는 화가 치밀어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당신은 욕심으로 똘똘 뭉친 불한당이요. 내가 당신을 만나서 느낀 점은 시민의 공복인 당신은 너무나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 같소.”
구리 쟁기를 생산하기로 한 회사와의 계약은 이 일이 있은 후에 즉시 끝장나버렸다. 지역 농촌 지도소와 학계에서의 대표자들은 생산 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이 우려된다면서 구리쟁기의 사용을 반대하는 경고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저런 여러가지 반대에 의해서 구리 쟁기를 이용하는 농사법은 더 이상 보급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에 기술자인 로젠베르거(Rosenberger)와 함께 빅터는 농기구의 중요 사용면을 구리로서 코팅하는 방법에 관한 특허를 취득하고 있다.
<나선형 쟁기>
빅터는 재래식 쟁기조차도 과연 바르게 작용하는지 재고해 보았다. 그는 쟁기로 땅을 일굴 때에도 구심성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실용화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생각을 기초로 하여 ‘나선형 쟁기(Spiral Plough)’를 고안하였는데 두더지가 구멍을 파듯이 토양을 갈아엎을 수 있는 모형을 생각해 보았다. 아래 그림과 같은 모양의 나선형 쟁기를 사용하면 쟁기의 날 모양 때문에 흙을 갈아엎을 때 거의 아무런 마찰 없이도 흙을 갈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쟁기를 이용한 경우에는 마찰과 압력이 수반되고 따라서 쟁기는 열을 받아 더워진다. 나선형 쟁기는 땅을 깊이 갈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면의 토양만 갈아엎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빅터는 땅을 깊이 갈아엎는 쟁기질 방식에 반대하였는데 생태계전체를 고려할 때 땅을 깊게 쟁기질하면, 미생물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되고, 따라서 토양 미생물이 형성시키는 자연적인 수평 운동을 파괴시킬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선형 쟁기는 두더지의 작업을 복제해야 합니다. 화살표가 있는 점선은 쟁기를 통한 흙의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나선형 쟁기의 개략도. 땅을 일구어갈 때, 쟁기를 통하여 흙이 나선형 운동을 하게끔 유도한다.
<에너지 충전장치와 독특한 복합비료>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빅터는 식물의 성장(成長) 과정을 무엇보다도 에너지와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였다. 식물이 성장해 간다는 것은 지표면의 에너지(地氣)와 대기권의 에너지(天氣)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두 개의 에너지가 만나서 그 창조적인 결과물로서 식물이 생장·번식하게되고 이 다양한 식물들의 총합체인 숲은 다시 에너지가 방전되어 소모되는 것을 방지하는 절연체 역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토양의 에너지를 증진시키려 하였고, 그가 토양의 피부(皮膚)라고 표현했던 절연체(숲)를 조화롭게 조성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대지에서 에너지를 제거하고 절연체에 피해를 주는 일체의 모든 기술을 단호히 거부하였는데, 예를 들어 높은 온도의 화로에서 만들어지는 인공 유기질 비료(Thomas-phosphate)를 사용하는 경우에 이 인공적인 비료가 땅에 뿌려지면 이것은 토양에 에너지를 내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양의 에너지를 흡수 파괴시켜서 지력을 떨어뜨리게 한다.
대지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붇돋아 주는 방법은 자연스런 퇴비, 복합 비료(Compost), 미세한 영양 원소들, 그리고 촉진제 등을 토양에 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들은 태양의 직사 광선으로부터 토양을 잘 덮어서 보호한다. 또한 철 농기구는 피해야만 한다. 논밭 주위의 산천 초목이 자연스러운 숲과 물로 구성되어 건강해야만 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근본적으로 대지의 에너지는 이들 자연의 생명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숲과 물로부터 생성되어 나온다.
이러한 전체적인 원리를 이해하면 인위적인 기술-원심성이 아니라 구심성의 기술-을 사용하여 대지의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고 빅터는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에너지 충전장치를 이용하여 독특한 기운을 함유한 물을 만들 수 있는데, 이처럼 생명에너지를 함유한 물을 최고 +7℃이내의 온도에서 들판에 뿌리면 물에 내포되어 있던 생명에너지와 생-방사능(Bio-radiation)이 대지위로 수평적으로 방출되어 들판의 토양층을 활성화시킨다. 이러한 에너지 충전장치나 유사한 장치를 이용하여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빅터는 현재의 과학적 농법으로는 토양을 기름지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토양을 점점 더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대의 과학은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오히려 역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지금의 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기 이전 상태의 대자연을 거부하고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과학이 정상적으로 발달했다면 충분한 잉여 농산물이 생산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식량 생산량은 현재 인류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너무나 초보적이다. 현재의 과학이론은 너무나 유치해서 완전히 한 옥타브 아래의 음만 소리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생명과 에너지의 본질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도 못한 체, 단지 물질 그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의 과학은 현대 물질 문명의 대부분의 병폐들에 대하여 비난을 받아도 당연하다. 어쩌면 이와같은 물질 문명의 병폐 과정은 필요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과 자연과의 진실된 상호관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전 인류가 인간의 감성마저도 완전히 상실하기 전에, 보다 자연에 근접한 농사법을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실례를 보여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빅터 샤우버그는 ‘자연스런 농사법(Close to Nature Farming)’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많은 충고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데, 이 글 속에서 누구나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충전 장치(repulsator)’를 설명하고 있다.
계란 모양의 나무 구유나 토기 혹은 유리 통을 준비한다.(물론 이때의 용기 모양은 대단히 중요하며, 못질을 하거나 쇠고리를 감아서도 안된다.) 용기의 크기는 2m 정도가 적당하며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용기 꼭대기의 주둥이가 땅 높이가 되도록 하여 땅에 묻어둔다. 이때, 계란 모양의 뾰족한 면이 아래로 향해야 한다. 신선한 물을 그 통에 붓고, 동물의 뿔(혹은 뼈, 깃털, 암탉 똥, 암소 똥 등)을 몇 홉 넣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나무 몽둥이로 잘 무두질한 구리와 아연 조각을 적당량 넣어 준다. 이 용액을 얇은 구리나 은판(銀板)(당연히 철(鐵) 성분이 함유되지 않아야 한다)으로 얇은 막(膜)을 입힌 나무 국자를 이용하여 잘 저어주는 데 먼저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가장 자리로부터 안쪽으로 천천히 저으면서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게 한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반복한다. 그리고는 나무 뚜껑(당연히 철(鐵)이 있어서는 안된다.)으로 단단히 그 용기를 밀봉하는데 단지 직경 1cm정도의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 아마 포로서 덮어둔다. 이렇게 한 후 2~3주 동안 방치해두면 이 용기로부터 주위의 대지위로 에너지(氣)가 방출된다. 그 후에 용기 속의 물은 식물들에게 왕성한 기운을 전달하도록 들에다 뿌려 준다. 여기서 사용한 용기에는 액체 똥거름을 채워서 사용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통의 뾰족한 면이 위로 향해야 하며, 똥거름 용액은 6주동안 방치한 후에 사용하여야 한다. 빅터가 특별한 의미를 두고 개발한 계란 모양의 형태 자체가 특히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 용기의 형태적인 특징 때문에 용기 속의 액체는 온도 변화에 따라 나선형(螺線形) 운동을 일으키고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빅터는 자신이 심사숙고하여 개발한 자신만의 독특한 ‘복합비료(複合肥料, compost)’의 제조 방법을 또한 전하고 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지가 넓게 펼쳐지고 뿌리가 땅속 깊숙이 내려가는 과일나무를 찾아서 그 나무 아래 그늘이 지는 땅에 반구(半球) 형태가 되도록 구덩이를 판다. 이때, 나무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나무의 기둥은 주위의 지력이 약한 땅으로부터 오는 나쁜 기운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서 종이나 수피(樹皮)로 감싸서 보호해준다. 여기서의 접촉이란 지표면에 내리쬐는 태양 광선이 땅에서 반사되어 일어나는 접촉 현상을 의미한다. 그런 후에 과일 껍질을 그냥 사용하거나 공기 중에서 말려서, 다양한 과일 나무의 줄기와 그 해 새로 파종하여 키운 풀과 함께 잘 섞어서 두 뼘 정도(40~50cm)의 두께로 깔아 준다. 이렇게 잘 섞은 풀 더미에 분해 작용과 재조합(再組合) 작용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구리 가루와 아연 가루를 섞어 준다. 이때 구리와 아연은 줄로 갈아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 그 가루를 극소량으로 구덩이 주위의 들판에 넓고 고르게 뿌려주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구덩이를 풀 더미로 잘 다져 넣은 후에 몇몇 염(salts)과 적당량의 사탕수수로 얇게 덮어 주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주고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방수포로 덮어 준다. 일정 기간 동안 방치한 후에, 이 복합 비료 더미를 발로 밟아 다지고, 고운 강 모래를 섞은 흙으로 10cm정도로 다시 덮어 준다. 그런 식으로 층을 쌓아 올라가면서 구덩이의 지름을 줄여가면서 전체 비료 더미를 계란 모양으로 만들어 준다. 그래서 그 꼭대기 위는 떨어진 낙엽으로 가볍게 덮어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시키고, 삽의 넓은 면을 이용하여 복합비료 더미를 잘 다듬어 준다. 이렇게 하면 나무로부터 떨어지는 빗방울은 그 더미를 축축하게 적셔 줄뿐만 아니라 표면을 뚫고 침투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복합비료 더미 내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지를 빅터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고귀한’ 퇴비 더미
그 비료 더미 안에서는 여름 동안 토양 미생물이 번창한다. 겨울이 되면 미생물들의 수도 감소하고, 그 시체들은 양질의 지방 분자(脂肪分子) 성분이나 토양 속의 기름 성분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온도가 4℃로 되면 그 비료 더미는 제대로 숙성한 것이며 이로부터 2~3주 후에는 사용할 수 있다. 이 비료를 철이 아닌 구리나 나무 삽을 이용하여 들판에 고르게 뿌려준다. 이때 복합 비료 더미로부터 만들어진 흙을 0.5cm 정도로 얇게 들판에 뿌려주면 충분하고, 즉시 철이 아닌 다른 금속이나 나무 농기구를 이용하여 다른 토양들과 잘 섞는다. 이렇게 하면 파종할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이렇게 가꾼 논밭에는 아무런 해충도 나타나지 않으며, 잡초도 거의 자라지 않는다. 소출(所出)이 30% 정도 증가하고 생산된 농산물의 품질도 월등히 뛰어나다. 이러한 결과는 여기서 설명한 합성 비료를 사용하는 한 꾸준히 보여진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빅터는 모든 인공 비료를 거부했지만, 불로 처리한 혹은 종류에 관계없이 열(熱) 처리한 모든 인공 비료에 대해서는 특히 더 혐오스러워 했다. 모든 인공 비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단지 한 방향의 극성(極性)만 띄고 있고, 그 결과 토양 중에서 영양이 되는 모원소(母元素)를 단지 끌어당기기만 한다고 그는 말했다. 비록 이러한 행위가 일시적으로 어느 정도의 소출을 증가시킬 수는 있지만, 그러한 생명현상의 파괴 행위는 지력의 상실을 불러온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토양으로부터 생산되는 농산물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인간의 육체에도 해로우며, 그 음식을 먹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도 점차 고갈된다.
진정으로 대자연에 의지할 때에 인간의 자유도 유지되어지는 법이다.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대지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식처를 소유할 권리도 상실한다. 오염된 물로는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할 수 없다.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는 건강한 혈액을 생산할 수도 없다. 사람의 지적인 능력(靈性) 또한 개발될 수 없으며, 인간들이 생산하는 곡물의 질(質)이 저하되면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될 지도 인간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농부들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대지를 매춘부보다도 더 나쁘게 다루고 있다. 해마다 인간들은 지구의 표피를 벗기고 있으며, 화학 비료와 같은 독약을 뿌려대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파괴 행위의 결과로서 점점 더 힘든 노동이 요구되며, 그러면서도 해마다 수확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당연한 현상 앞에 당혹해하고 그 이유를 몰라 이상해하고 있다.
옛날의 농부들은 들판의 토양을 다루는 일종의 성직자나 의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와는 달리 오늘날의 농부들은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정치 상황에 끊임없이 끌려 다니고 있고,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연에 대하여 도전적이며 조절자라고 자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의사들은 암(癌)환자가 늘어만 가는데도 그것을 퇴치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화학 비료와 농약을 이용하여 생산한 음식물들을 섭취함으로써 약화된 신체의 내적 저항력을 의사들은 강화시켜 줄 수 없다. 어떤 내분비선들에서는 화농성 증세가 관측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들판에서 자신의 몹쓸 기계들을 몰고 다니는 오늘날의 성마른 농부들은 소출이 줄어드는 그 비율만큼 더욱 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빅터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농업 전반에 있어서의 퇴보는 극복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방법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그 시작이다. 지금 우리가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점은 생물의 성장이 단순한 화학적, 기계적 입력량에 따르기보다는 토양과 물의 조화로운 에너지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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