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샤우버거(Viktor Schauberger)/Living Water

제 10 장 현대과학기술문명에 대한 비판

기른장 2025. 1. 27. 15:59

<주검과 같은 파괴적인 기술들과 문화>

지금과 같은 문명체제는 계속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시켜나가고 결국 인류를 포함한 지구전체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빅터는 계속 경고하여 왔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이 애석하게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기술자들에게 원심성의 파괴적 기술의 개발은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인식을 일깨워 주려는 자신의 의도도 실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언젠가는 인류가 스스로 깨우쳐서 전체적인 변화를 시도하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뿐이었다.

오늘날의 우리가 문화(Culture)라고 부르는 실제로는 생명력이 없는 기계적인 문명사회에 싱싱한 생명체험을 통한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라도, 깊은 고요함과 건강한 역동성을 함께 지니는 대자연을 관조하는 생생한 열망이 필요하다.

인류는 자신의 독선적인 논리로서 이 피상적인 문명사회를 만들어내었으나 이 괴물 같은 피조물이 오히려 그 주인을 집어삼키고 있는데, 이렇게 인류와 문명사회가 서로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의 질서와 조화는 더욱더 파괴되어가고 있으며 상황이 좋아질 전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일한 해결책은 인류가 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다시 대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실제로 인류자체는 대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 피조물이며 자연의 질서와 조화속의 한 부분에 불과하면서도,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 속에서 전체 생명의 균형을 깨뜨려 놓았으며 이제는 생명 그 자체마저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인류는 대자연속에서 창조되었지만 스스로 자신만의 문명세계를 창조하였는데, 시간이 경과해오면서 대자연과의 상호관계가 점점 사라지고 이제는 대자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마음에 너무나 많은 기술적 자원의 힘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며 이 배후에는 그릇된 지식과 무분별한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에 따른 무미건조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기술문명은 그 모체인 대자연으로부터 최고로 이탈할 때 결국은 모래성처럼 붕괴될 것이며, 이는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현문명의 영구적인 종말을 초래하는 것이다.

<생명과 정신의 완전한 파멸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혁명의 길>

빅터는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에 희망을 걸었다. 참담한 절망 속에서도 그는 새로운 젊은 세대들이 현재의 기술문명을 거부할 가능성을 보았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자연을 더 이상 파괴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성을 볼 때 인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하지만 이 경향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젊은 세대들은 현재의 혼돈이 어디에서 유래하였는지 명백히 알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행동할 것이고, 이에 반해 기득권의 세대는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사회에서의 지위 등을 어떤 방식으로던지 보호유지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현대의 병폐들을 차분히 하나하나 풀어서 비판하고 개선해 나간다면 기존 세대의 보수주의도 극복될 것이다.

우리가 대자연을 단지 자원의 보고로만 여겨온 수세기전부터의 잘못된 인식이 오늘날의 이 만연된 병폐의 주된 요인임은 명백하다. 게다가 생태계가 직접적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을 때 우리 인류가 조제한 그릇된 처방으로 인하여, 인류는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의 어떤 부분도 이 병폐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더라도 병폐 속에서 갇혀 있는 한, 그들로부터 어떠한 조언도 구할 수 없으며 실은 그들이 반대하는 것일수록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큰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세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생명유지에 가장 필수적인 물의 상황을 보건데, 빅터의 메세지는 극히 통렬함을 준다. 자연적인 샘에서 신선한 물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누구나가 자신이 마시는 물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수송되어 오는지를 생각해 보아야하며 어떻게 해야 마실만한 물로 바꿀 수 있을 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시대가 흐를수록 사람들은 화학적 처리를 거쳐 정제된 물만 마시게 되는데 이 인위적인 물이 자신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야할 것이다. 소독처리되고 활성을 잃은 물은 당연히 신체기능을 저하시킨다. 나아가 정신을 쇠약하게 만들고 인간의 기본바탕을 퇴화시키게 된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애써 태연해하거나 긴박함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우리의 정신적인 몰락과 마비현상이 심각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하나의 문명이 일시적 위기상황에서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한순간에 파멸을 초래했던 경우에는 필히 정신적인 몰락이 그 이면에 깔려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외형적인 몰락의 각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속에 사는 인류는 그 높은 기술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는 문화의 타락과 육체적이고 도덕적인 쇠퇴현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볼줄 아는 사람은 따라서 현재 제공되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넋을 잃고 있어서는 안된다.

현문명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를 야기시키게 된 근본적인 인식과 태도를 반성하고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알게 되는 진실을 우리는 지붕 위에 올라가서라도 크게 외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대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물과 식량을 구하기가 힘들어지며 그들의 생활이 질적으로 나빠지게 된다는 것을 감지하게될 것이다. 이러한 현문명에 대한 절박한 경고가 마음에 들던 안들던지간에, 혹은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알기를 원치 않거나 간에 상관없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빅터는 전세계적으로 현재의 사회조직이나 기술체계들이 붕괴되고 그 결과 거대한 혼란과 재앙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그는 기대하였는데, 이 새로운 시대에서는 인류가 결국은 자연과의 친근한 관계를 다시 유지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세상에서는 인류는 대자연에 아주 충직한 하인이자 또한 주인이 될 것이다. 진정한 자연의 법칙을 이용하여 그들은 풍족한 농산물을 최상급의 질로써 얻게 될 것이며, 육지에서건 바다 속에서건 하늘에서건 자유롭게 움직여 다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상생활의 힘겨움과 계층간의 갈등, 종족분쟁, 무엇보다도 식량과 자원확보를 위한 전쟁 따위는 완전히 종식될 것이다. 또한 질병치료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게 되는데 파라셀수스(Paracelsus)가 예측한 것이 모두 현실화 될 것이다. 질병을 일으키는 어떤 근원적인 요인들이 발견되고 이것들은 그 징조단계에서 이미 제거되어질 것이다. 인류는 마침내 질병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삶은 참다운 행복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산화현상(저온 연소, cold combustion)과 같은 구심성에너지(Implosion Energy)를 매체로 하는 동력이 사용되어지고, 생명체에 유익한 공명파장을 가지는 다양한 형태의 기기장치들이 개발될 것이다.

인류가 어떻게 하면 참다운 군주-또한 충실한 하인과 같은 역활을 수행하는-가 될 수 있는 지는 이제 밝혀졌다. 이 가능성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으며 자그마한 실수가 인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 던질 수도 있다. 구심성의 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 변환의 힘을 이해하는 사람은 신과 같을 것이며, 일개 개인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은 마귀의 하수인이 되어 전 세계를 파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