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두 시자와의 여행
다음날 아침 일찍이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서재로 불러들였다. 하인 하나가 할아버님이 곧 나오실 것이라고 귀엣말을 해주면서 그를 큰 방으로 안내했다. 사이훙은 옷깃을 여미고 정숙한 태도로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전에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와 본 일이 거의 없었다.
서재에는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물건들이 있었다. 벽을 따라 각각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진 최고급 책장들이 있었다. 어떤 것들은 들쭉날쭉한 선반이 있는 직사각형 모양이었으며, 어떤 것들은 선반의 외곽선 모양이 큰 표의 문자가 되도록 배열되어 있었다. 열대산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기이한 선반 위에는 값비싼 책과 두루마리, 청자, 당나라 때 만들어진 마상, 그리고 조각하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렸을 옥으로 만든 조각품 등 진귀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 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물건들은 윤기 있는 자단목 매듭걸이 위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질흙으로 빚은 신장(神將)들과 성인들의 상이 있었고, 높이가 150센티나 되는 그림이 그려진 화분이 몇 개 있었다. 유명한 산수화와 초상화, 절묘한 필체의 두루마리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곳에 진열된 물건들 중 상당수는 계절에 따라 바뀌었다. 사이훙은 그중에서도 기묘한 풍경을 담은 산수화 한 점을 제일 좋아했다.
방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그 불멸의 예술작품을 만든 장인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중의 대부분은 수백 년씩 된 물건들이었으며, 전문가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보전되어 온 것들이었다. 옥이라든가 도자기라든가 그림들이 고대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담은 책들과 함께 아름답게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 예술품들과 고서들이 그 방을 탁하고 천한 세상과 차단시켜 주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작게 들리더니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화려하게 조각해 자개를 박은 자단목과 이탈리아제 대리석으로 만든 책상에 앉은 할아버지가 하인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하인들이 두 젊은이를 서재로 들여보냈다.
두 젊은이는 사이훙이 타이산의 축제에서 보았던 도교 수련자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검은색 바지에 흰색 각반을 하고 그 위에 긴 소매가 달린 회색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이 신은 짚신은 험한 자갈길을 걸어온 탓에 해어져서 발 아래 깔린 값비싼 양탄자와 너무나 대조되었다. 두 젊은이는 상투를 튼 머리에 투박하게 기운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모자 아래로 드러난 용모는 모두 준수하고 침착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사이훙을 그들에게 인사시켰다. 한 젊은이는 호리호리하지만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으며 말하는 태도가 진지했다. 그의 이름은 린 쭝우(林中霧)였다. 그의 동료는 몸집이 더 크고 건장했는대, 마치 미소를 지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 그를 칭 수이셩(淸水聲)이라고 소개했다. 사이훙은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나는 너를 당분간 이 젊은이들과 함께 떠나 보내겠다. 네 외조부님께서 당분간 너의 교육을 돌봐 주실 것이다. 너는 새 사람들을 만나고 새 재주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이훙은 크게 기뻐했다. 그 소식은 새 놀이친구들이 생기고, 재미난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과, 또 공부할 필요도 없고 야단맞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세 사람은 관가보를 떠났다. 말을 타고 간다는 것은 분에 넘치는 사치였기 때문에 걸어가야 했다. 두 시자들은 친근하고 관대했으며, 사이훙을 잘 돌보았다. 사이훙은 실컷 놀고 싶어했고 사탕도 먹으려 했으며, 그 여행을 대단히 재미있게 생각했다. 그는 산시성과 주민들과 드넓은 농토를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자들의 등에 업혀 이것저것 구경도 했다.
열여덟 살 난 두 시자들과 이제 아홉 살 난 소년이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특히 봇짐과 딸랑이 장난감을 든 사이훙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며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시자들의 의복과 상투 지팡이 등이 그들의 신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도사를 가로막는 것이 중대한 죄였던 자미대제의 축제를 기억하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공경했다. 시자들은 많은 이방인과 군인들 사이를 지나갔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이훙은 두 시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린 쭝우는 조용하고 침착했으며 진지했다. 그는 큰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넓고 멀리 보았다. 그는 중국 악기 대부분을 다룰 수 있는 훌륭한 음악가였으며, 언제나 대금을 가지고 다니며 휴식시간마다 그것을 연주했다. 길을 가면서도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손한 태도로 친절하게 대했다.


칭 수이셩은 재주 있는 목수였으며, 실용주의자였다. 린 쭝우가 이지적인 데 반해 그는 맹렬하고 적극적이며 세속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두 시자는 모두 출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때때로 다른 여행객들이 노상에서 그들의 앞길을 방해하기라도 하면 린 쭝우는 상관치 않았지만, 칭 수이셩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한 번은 어떤 못된 사람이 뱃사공과 뱃삯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면서 출발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승객들은 그 사람 때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냥 기다렸다. 잠시 참고 있던 칭 수이셩이 눈을 부라렸고 칭 수이셩은 그를 강제로 밀어내 비켜 세웠다.
그 와중에도 린 쭝우는 한 쪽에서 조용히 있었다. 비록 그는 칭 수이셩과 성품이 달랐으나, 칭 수이셩의 공격적인 성향도 역시 도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단짝으로, 언제나 함께 있기로 약속한 사이였다. 린 쭝우는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암묵적으로 칭 수이셩의 견해에 동의하곤 했다.
밤이 되면 그들은 시골의 여인숙에 머물렀는데, 세 사람이 모두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장작으로 불을 때서 덥혀 놓은 온돌 침상에서 잠을 잤는데, 사이훙은 여러 겹으로 된 비단이불을 덮고 시자들 가운데서 잠을 잤다. 시자들은 고향을 멀리 떠나 온 사이훙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려고 자기들 사이에 재웠다. 사이훙은 두 사람 사이에서 이쪽 품에 안겼다 저쪽 품에 안겼다 하면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밤, 린 쭝우는 사이훙이 일어나 방안을 두리번 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니, 사이훙?」
사이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얇은 창호지 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와 벽을 긁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귀신이나 식인귀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게했다. 사이훙은 더욱 무서워졌다. 따지고 보면 두 시자도 아직 소년들이었다. 귀신이 자기들을 모두 잡아먹으려고 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이게 귀신이예요?」
사이훙은 겁에 질려서 속삭이듯 물었다.
「어디?」
린 쭝우가 물었다.
사이훙은 소리 나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칭 수이셩은 역시 일어났다.
「이봐, 그렇게 속살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잠을 자겠어?」
칭 수이셩은 사이훙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안 돼! 오, 악마야!」
칭 수이셩이 외쳤다.
사이훙은 그들의 등뒤로 숨었다.
「다행히도 대사님께서 우리에게 악마를 막을 수 있는 부적을 주셨지. 그러나 그것은 두 사람밖에 지켜 주지 못해.」
사이훙은 칭 수이셩의 말에 겁을 먹고 자기 목에 걸린 호랑이 이빨 부적을 꼭 붙잡았다.
「사형은 그놈이 보여?」
사이훙이 물었다.
「물론 나는 볼 수 있지.」
칭 수이셩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안 보이니? 저기 있잖아! 그놈이 지금 창문을 넘어서 들어오고 있어. 빨간머리를 하고 있고 시퍼런 얼굴에 큰 혹이 달렸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단 말이야. 그 놈은 큰 황마포대를 가지고 있어.」
「포대라구?」
「그래, 알잖아, 어린아이를 잡아 갈 포대 말이야. 그런데 사제와 나는 너무 껄끄럽고 질기단 말이야. 저놈은 살이 포동포동 오른 부잣집 어린아이를 먹고 싶어하는 것 같아.」
사이훙은 비명을 질렀다.
린 쭝우는 벌떡 일어서서 사이훙을 침상에서 끌어냈다. 사이훙은 린 쭝우가 자기를 창문의 그림자로 끌고 가려고 하자 미친 듯이 저항했다.
「넌 악마를 본 적 있니?」
린 쭝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없어. 하지만 사형은 볼 수 있잖아!」
「잘 들어 봐, 사이훙.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이나 몹시 아픈 사람만이 악마를 본단다. 너는 그 어느 쪽도 아니지 않니?」
그는 창문을 열어제쳤다.
「밖을 봐라. 이 나뭇가지들이 창문에 어른대는 그림자를 만들고 벽을 긁어댄 거야.」
사이훙은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럼 악마는 없다는 말이에요?」
린 쭝우는 확신시켜 주듯이 웃었다. 사이훙은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사이훙은 칭 수이셩이 웃고 있는 잠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화를 내며 그에게 올라탔다.
「이 거짓말쟁이, 거짓말을 했어!」
이젠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칭 수이셩을 때리면서 소리쳤다. 칭 수이셩은 뒤로 드러누우면서 더 크게 웃어댔고 사이훙은 계속 그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두들겼다.
그들이 관가보를 떠난 지 열흘째 되던 날 아침에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고 어두었다. 가을이 깊어져 거센 추위가 닥쳐오고 있었다. 산시성의 곡창지대에 인접한 삼림지대의 나무들은 오색찬란한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옷 안으로 스며들자 사이훙은 겉옷을 단단히 여미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저 끝에 화산의 산등성이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산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평지보다 훨씬 높게 솟아오른 산이었다. 거칠고 경사가 수직에 가까워서 보통 사람들은 올라가 보려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절벽 산이었다. 화산은 웅장했고, 접근 할 수 없는 위용을 갖춘 무적의 산이었다. 그 탈속의 장엄함은 도교의 성지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인 사이훙에게 화산은 접근이 금지된 거대한 성처럼 보였다. 그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사형, 이건 별로 재미있지 않아요. 이제 그만 돌아가서 다른 놀이를 찾아보자구요.」
사이훙은 잠깐 쉬는 사이에 화산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자들은 서로 쳐다보았다.
칭 수이셩은 사이훙의 봇짐에서 딸랑이 방울을 끄집어냈다.
「자, 동생, 잠깐 여기서 재미있게 놀다가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자.」
「나는 집에 가고 싶단 말이야.」
사이훙이 칭 수이셩에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
「사탕이 열리는 사과나무는 어떠니?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 산꼭대기에는 제일 맛난 사탕사과들이 열린다는 거야.」
「아니야, 아니야. 이제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아.」
두 시자는 떼를 쓰는 사이훙을 당황한 듯 바라보았다. 칭 수이셩은 낙담해서 한숨 쉬며 물러났다.
「아, 참 사이훙, 우리가 너에게 비밀을 말해 주지 않았지?」
린 쭝우는 사이훙의 어깨 위에 친근하게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현명했다. 사이훙은 금방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슨 비밀인데?」
칭 수이셩은 린 쭝우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쉬! 얘한테는 말해 주지 마. 대사부님께 약속했잖아.」
「말해 줘! 말해 줘!」
「안 돼! 말하지 마!」
칭 수이셩은 린 쭝우의 입을 가로막았다.
「아니야, 우리는 사이훙에게 말해 줘야만 해.」
린 쭝우가 칭 수이셩을 보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말해 줘!」
사이훙이 린 쭝우의 옷자락을 잡고 재촉했다.
「사이훙, 우리는 너를 놀라게 하려고 말하지 않고 있었던 거야. 이제 어쩔 수 없이 네게 말해 줘야만 할 것 같애. 너의 외조부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도 저 꼭대기에서 너를 기다리고 계신단다.」
「정말?」
「그럼, 정말이고말고. 이제 가자꾸나. 우리는 오늘 밤까지 여관에 도착해야 한단 말이야. 우리는 내일 산을 오르기 시작할 거야. 그것만도 이틀은 걸릴걸?」
「좋아.」
사이훙이 다시 흥겨워져서 말했다. 그는 칭 수이셩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사형, 나 업어 줄 거야?」
「내가?」
칭 수이셩은 등을 돌렸다.
「절대로 안 돼. 너는 몸무게가 거의 30킬로나 나간단 말이야. 너를 업으면 내 등은 휘어지고 말 거야.」
「나는 이제 사형이 싫어! 나는 큰 사형한테 부탁할 거야.」
사이훙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뭐 돌아볼 것 없어. 큰 사형은 벌써 저 아래로 내려가고 있으니까.」
칭 수이셩은 웃으며 사이훙을 쳐다보았다.
「나는 걷지 않을 거야.」
사이훙은 고집스럽게 주저앉았다.
「마음대로 해.」
칭 수이셩은 봇짐과 지팡이를 들고는 앞서 걸어가 버렸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어!」
사이훙은 소리를 질렀다.
칭 수이셩은 곧 그의 사형을 따라잡았다. 수백 보도 못 가서 세 사람은 다시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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