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나와 절친한 스님에게 소개를 받았다며 30대 중반의 여자가 내가 운영하는 기수련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똘망똘망하게 생긴 일곱 살 난 딸과 함께 들어와서는 불안한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눈망울을 굴리고 있었다.
그 날 수련을 마친 서너 명의 회원과 세상 살아가는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나는 한눈에 그녀에게 덮어씌워진 어두운 삶의 그림자를 읽었다. 그 어두운 그림자는 다름 아닌 그녀의 몸 속에 들어 있는 어떤 영혼 때문이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나는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를 내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한사코 제 어미와 붙어 있으려는 딸아이를 매몰차게 내친 그녀는 그러나 자리에 앉고서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미심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축 늘어진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듯한 웃음까지 머금고서 말이다.
한참을 천천히 그녀를 뜯어보던 나는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사주는 안 봐 주나요?"
모기만한 소리로 제 이름을 밝힌 그녀는 대뜸 정색을 하고는 나를 다그쳤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어요. 또 본인이 여기 있는데 사주는 뭣하러 봅니까?"
순간 그녀의 얼굴엔 실망의 빛이 스쳤다. 일종의 기대감이 허물어진 듯한 눈길로 멍하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주나 보려면 다른 델 갔어야지. 나는 사람의 사주나 봐 주고 점이나 치는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여긴 점집이 아니라 기를 수련해서 자기를 옭아매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곳이구"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는 몰라도 호기심 삼아 제 운명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사주를 풀이해 볼 필요 없이 이름만 듣고서도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일까지도 쉽게 가늠하는 나에 대한 소문이 이상하게 퍼진 탓이리라.
이 책의 뒷부분에 내가 깨친 이름의 이치에 대해서 좀더 설명이 있겠지만 이름은 그 사람의 대부분을 결정짓는다. 어릴 때는 물론이고 나이가 들수록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음양의 오행에 따라 사람의 성격은 물론이고 건강이나 체질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름만 듣고서도 그 사람의 사주를 일일이 짚어 볼 필요도 없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더욱이 나를 소개해 준 스님의 말을 좇아 멀리서 찾아온 사람이어서 더욱 그랬다. 이름을 통해 알아본 그녀의 삶은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교활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데다 변덕이 죽 끊듯 하고 한번 마음먹으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성품이었다. 다른 사람의 처지나 형편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부족해 대인관계가 엉망이니 필히 한번 부부의 금실이 깨질 것이고 남자관계로 인해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빙의된 영혼까지 그녀의 몸속에 들어 있으니.
"당신한테 다른 영혼이 들어와서 당신이 하는 일이라면 모두 훼방을 놓고 있는데 뭔 일이든 제대로 되겠어?"
뒷말은 차마 그녀에게 대놓고 할 수가 없어 목구멍으로 삼키던 내게 그녀가 득달같이 매달렸다.
"아니,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길 해 주셔야지 밑도 끝도 없이 한마디 툭 던져 놓고 그냥 가시면 어떡합니까?"
내 앞을 가로막으며 가볍게 눈까지 흘기는 그녀를 보며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저 나이가 되도록 이렇게 경우가 없어서야.
"정 그렇다면 날 따라와. 수련부터 해야 되니까"
찜찜해 하는 그녀의 표정엔 아랑곳 않고 스스로 기수련을 하도록 했다. 두 팔을 들어올려 손가락을 활짝펴게 한 다음 스스로 기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전혀 기감을 느끼는 눈치가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였다.
氣를 수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우주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믿고 제 몸이 나타내는 반응을 수용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저렇듯 마음이 꽁꽁 막혀 있어서야 설사 기감을 느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한참을 그녀의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쨌거나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사람이었다. 어찌어찌해서 나하고 연이 닿은 것일 터, 갑갑해서 날 찾아온 것이라면 무엇이 자신을 옥죄고 있는지 스스로 알게 해줘야 하는 것이 나처럼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서 그녀에게 氣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세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녀의 입에서 마침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마 위로 식은땀이 번지던 그녀는 큰 한숨소리와 함께 뒤로 벌렁 드러눕더니 비명을 토해냈다. 그녀에게서 빙의된 영혼의 모습이 차츰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몸을 뒤트는 그녀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의 배 위에 왼손을 얹고는 기를 불어넣으며 빙의된 영혼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말하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치는 그녀에게 나는 더욱 언성을 높였고 할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큰애야, 엄마한테 들어온 지 5년 됐어."
그녀에게는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한채 낙태 수술로 육신의 생명을 다해 버린 아기의 영혼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성격상 차이로 첫 남편과 이혼할 무렵에 그녀는 임신한 지 5개월이 넘은 아이를 지웠다. 그러고는 어쩌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두 아이를 또 지웠는데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의 영혼들이 그만 한꺼번에 제 어머니의 몸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세 명의 영혼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아이였다. 제 몸을 없애 버린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그렇게 깊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나름대로 큰 희망을 품고서 세상에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만 울음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되어 이제 다음 인연도 기약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네 엄마에게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그렇게 해줄까?’
‘아뇨. 이 사람에게서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아이의 원망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다시 그녀의 몸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이름만으로도 성격적 결함이 있는데다 영혼의 작용까지 겹쳐 그녀는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다. 영혼의 작용이 얼마나 심했으면 일곱 살 난 딸아이를 대하는 것도 시시각각 변했다고 한다. 아이를 쳐다보면 그렇게 예쁘고 좋을 수가 없다가도 금세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고통 속에서 오열하는 것을 보고서는 그만 수련을 중단시켰다. 일단 영혼이 몸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된 이상 더 이상의 수련은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기수련은 몸과 마음이 정상인 상태가 된 뒤에라야 진전이 있는데 빙의된 영혼이 들어 있어서는 아무리 해도 제자리 걸음인 것이다.
수련을 중단하고 나서 아직도 자신이 빙의되어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의 氣 수련법은 누구나 기수련을 하는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다. 빙의되어 있는 영혼은 빙의된 사람의 몸과 입을 통해 영혼이 겪은 고통이나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기 때문에 수련중에 빙의된 영혼이 뱉어 내는 말과 행동은 누구보다 자신이 명확히 느끼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빙의되어 있는 사람이 기수련을 하게 되면 내가 굳이 이야기 해주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된다. 그런데도 수련을 중단한 그녀는 그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찼지만 그녀의 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어느 누군들 자신에 다른 영혼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쉽게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제 손으로 지운 아이의 영혼임에랴. 나는 말문을 열었다.
"이런 아이의 영혼을 몸에 지니고 있어서는 되는 일이 없어. 지금의 딸아이가 그렇게 싫어지는 것도 빙의된 영혼의 작용 때문이야. 그러니 당신 자신을 위해서나 딸아이를 위해서 또 빙의되어 있는 아이의 영혼을 위해서라도 빨리 천도시켜 주는 것이 좋아."
"마음도 심란할 테니 오늘은 이만 가고 내일 다시 들르도록 해. 천도를 시키려면 그 영혼의 뜻을 다시 물어봐야 하니 꼭 다시 와야 해.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이 날 찾아왔다는 건 빙의된 영혼이 이제 그만 저승세계로 가고 싶다는 의사 표시니까 영혼이 원할 때 천도시키는 게 좋아. 내일 꼭 다시 오도록 해."
그러나 나는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수련원을 나서는 순간 그녀의 뒷모습에서 그녀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가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 다시는 나를 찾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연이란 맺어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맺어진 인연을 가꾸는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그 여자는 알 수 없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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