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제3부 사기꾼들의 농간(1)

기른장 2010. 1. 29. 14:33

01. 의문에 싸인 인물

 

1976 2월 초순 어느날,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산부장인 성기수(成琦秀.65) 박사가

급히 내 방에 들어왔다.

 

가끔씩 국방과학연구소(ADD) 를 방문하던 터라

별다른 생각없이 그를 반겼다.

 

그런데 이날 따라 成박사는 왠지 상기돼 있었다.

평소 침착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양복 안 주머니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내며 내게 말했다.

 

"먼저 이 편지부터 읽어 보게.

 그리고 나서 나하고 얘기하지. "

 

겉 봉투를 봤더니

보낸 사람이 '오네스트 신' 으로 돼 있었다.

미국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빠른 속도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내용인즉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알고 있으니

 레이저와 관련된 전 분야를 자기에게 맡겨 달라' 는 것이었다.

 

요컨대 레이저 핵융합을 통해

인공(人工) 태양의 기초를 완성,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인공태양에서 얼마든지 끌어 내겠다는 얘기였다.

1년에 4억원씩, 4년간 연구비를 달라는 조건도 제시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成박사에게

"이거 말도 안 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 하며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成박사는 정색을 하며 내게 말했다.

"그 친구는 나의 하버드대 동창일세. 수재야 수재.

 아무렴 하버드대 박사가 아무 근거도 없이 허풍만 치겠나.

 한번 검토를 해 보게. "

 

成박사는 내가 ADD 레이저실장이므로

먼저 나한테 얘기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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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레이저 핵융합 기술

 

나는 평소 成박사와는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는 1961년 하버드대 대학원에 입학,

2년만에 응용물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였다.

 

하버드대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KIST 초창기 멤버로 그당시 한국 과학계의 보배였다.

그런지라 나는 그의 말이라면 신뢰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경우가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어느 한 개인이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격' 이었다.

 

미국은 1951

원자탄을 기폭제(起爆劑)로 사용하여 수소폭탄을 개발함으로써

비로소 핵융합에 성공했다.

 

그러나 레이저 핵융합 기술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다.

1백여개 방향에서

20억분의 1초 안에 레이저 광선을 동시에 발사,

핵용합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만큼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한다.

 

만약 레이저 핵융합에 성공할 경우

핵무기 모의실험이 가능할 뿐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당시 1만명의 과학자를 보유한

미국의 최대 원자력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아'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간 수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현재까지 이 연구는 계속 진행중이다.

 

나는 그무렵

미국의 엑센 연구소 등에서

레이저 핵융합에 대해 집중 연구하고 있던

김효근(金孝根.63.광주과학기술원 원장) 박사를 통해

이같은 사정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또 최근 연구동향에 관해

미국내 '한국과학기술인협회' 소속 과학자들과

수시로 의견교환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니 '오네스트 신' 의 주장이 황당무계하게 들린 것은 당연했다.

 

나는 정색을 하고 成박사에게 말했다.

"아무리 하버드대 출신의 천재 물리학자라고 해도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혼자서 개발한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 되네.

 미국의 '내노라' 하는 연구소도 못 해 내지 않았나.

 자네는 이 일에 관여하지 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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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지도부의 오해

 

그런 다음 나는 成박사에게

"이 편지를 일단 위에 보고하겠다" 고 말했다.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아침

ADD 선임 부소장인 현경호(작고) 박사에게 그 편지를 전달했다.

 

며칠 후 심문택(沈汶澤.1990년 작고) 소장 방에 갔더니

그도 편지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玄부소장으로부터 사전 보고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심문택(沈汶澤.1998년 작고) 소장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오네스트 신' 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韓박사,

 하버드대 출신의 '오네스트 신' 이라고 알지.

 그 친구가 레이저로 기가 막힌 것을 만들겠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韓박사가 반대한다며?"

 

말 속에 뼈가 있었다.

마치 나를 무슨 훼방꾼인양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뭔가 얘기가 잘못 전달된 게 틀림 없었다.

 

나는 단호하게

"신박사 얘기는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내가 정색을 하고 다소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沈소장은 오히려 빙그레 웃더니

타이르듯 말하는 것이었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으니까 공연히 그러는 거 아니야?

 너무 반대만 하지 말게"

 

정말 기분이 묘했다.

나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내가 ADD 레이저실 실장인데,

오네스트 신이 레이저 분야를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했으니

그런 오해가 생길만 했다.

 

더우기 그가

레이저 핵융합으로

당시 우리나라의 현안인 에너지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고 나섰으니

관심을 끄는 건 당연했다.

 

순간 '이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소장님, 저는 그와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너무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겁니다."

 

그래도 沈소장은 반신반의했다.

하버드대 박사의 얘기를 그냥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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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큰 거 놓쳤어

 

沈소장 방을 나와서도 왠지 불안했다.

이번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감은 머지않아 적중했다.

 

두달 후인 1976 4월 초순,

성기수(成琦秀) 박사가 나를 찾아왔다.

'오네스트 신' 의 편지를 내게 맨 처음 보여준 장본인이었다.

 

편지를 돌려받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현경호 박사에게 전달했노라고 말했다.

成박사는 곧바로 玄부소장에게 들러 그 편지를 찾아갔다.

 

보름 후, 최형섭(崔亨燮.79) 과학기술처장관이

오네스트 신의 편지를 읽고 나서

완전히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곧이어 崔장관이

윤용구(尹容九.70.동원대학 학장) 원자력연구소장을 통해

오네스트 신을 한국에 초청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 차례 큰 회오리가 몰아칠 조짐이 보였다.

나는 일전(一戰) 도 불사할 각오를 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프로젝트에

연간 4억원씩,

4년간 국민의 혈세(血稅) 를 낭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과학이론으로 당당히 그와 맞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나를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바로 沈소장의 태도였다.

 

그동안 내가 오네스트 신의 제안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니까

沈소장도 어쩌질 못하고 별 말을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崔장관이 적극 나서 오네스트 신을 한국에 초청하자

沈소장은 못내 아쉬워 했다.

 

가만히 보니

오네스트 신이 제안한 프로젝트를 자기가 주도해서 할 수 있었는데

나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沈소장은 그같은 불편한 심기를 나에게 여러 차례 드러냈다.

 

"韓실장만 아니면

 ADD가 크게 한 건() 올릴 수 있는 건데 정말 아쉽군.

 사람은 말이야좀 둥글둥글하게 살아야 돼.

 너무 옹고집은 안 좋아. "

 

 나는 沈소장이 워낙 저기압인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기분이 좋으면 나를 '韓박사' 라고 불렀다가

 기분이 언짢으면 '韓실장' 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나 내 소신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오네스트 신도 만만치 않았다.

급기야 박정희 대통령에게 손을 뻗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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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청와대와 정면담판

 

오네스트 신은

과학자 답지 않게 정치적인 수완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과학계의 핵심 인맥을 통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하버드대 박사' 라는 타이틀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1970년대 중반 당시

과학계 인사가 청와대에 줄을 대려면

세 개의 라인을 통해야 했다.

 

 . 최형섭(崔亨燮.79.포항산업과학연구원 고문) 과학기술처장관,

 . 오원철(吳源哲.71) 대통령경제2수석,

 . 심문택(沈汶澤.1998년 작고)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이들은 朴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위 과학계의 삼두(三頭) 마차였는데

평소 이들은 서로 협력하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를 은근히 견제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네스트 신은

이 세 라인 마저 완전히 제치고 朴대통령을 단독으로 만났다.

바로 정계 인맥을 통해서였다.

 

그가 얼마나 레이저 사업을 맡고 싶어 하는지

그의 속내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3 10월 제1차 석유파동을 겪은 직후인지라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터에 오네스트 신이

레이저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나섰으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네스트 신을 만난 朴대통령의 심중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나 朴대통령은 매우 신중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朴대통령은 오네스트 신의 얘기를 직접 듣고 난후

그 자리에서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이어 吳수석을 불러

"신 박사가 제시한 프로젝트는 너무 규모가 커.

 어느 특정 부서에서 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신중히 검토하라" 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吳수석은 곧바로 崔장관을 만나

오네스트 신의 보고서를 전해주면서

"장관이 알아서 범국가적으로 레이저 연구를 추진하라"

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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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뜬구름 잡는 얘기들

 

공은 완전히 崔장관 손에 넘어갔다.

오네스트 신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매우 유리하게 돌아간 셈이다.

그가 제시한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어

그를 한국으로 초청한 사람이 바로 崔장관이었기 때문이다.

 

1976 5월 초순,

전상근(全相根.72.전 청도주택 회장) 과기처 종합기획실장 주재로

홍능에 있는 한국과학원(KAIS) 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물론 崔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레이저 관련 부서가 모두 참석했다.

당시 레이저실을 운영하고 있던 정부 산하 기관으로는

내가 몸담고 있던 ADD를 비롯,

KAIS.원자력연구소.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등이 있었다.

 

ADD 대표는 선임 부소장인 현경호(작고) 박사였다.

玄박사는 전기 분야를 전공해서,

레이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회의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갔다.

 

회의는 윤용구(尹容九.70.동원대학 학장) 원자력연구소장이 주재했다.

그런데 회의가 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구름잡는 얘기들만 했다.

문제의 핵심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정말 답답했다.

 

玄부소장은 崔장관의 직계 라인이라

과기처의 주장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崔장관이 KIST 소장으로 시절에,

영국에 유학중인 玄부소장을 KIST로 데려왔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각별했다.

 

나는 참다 못해 玄부소장에게 직언을 했다.

"玄박사님, 아무래도 여기 계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분야는 제가 전문가니 저에게 맡기시고 그만 가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玄부소장은 내가 당돌하게 그런 말을 하자

겸연쩍어 하면서도 내심 반가와 하는 눈치였다.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가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휴식 시간을 이용,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그후 玄부소장에게 '회의에 참석하라' 는 연락이 오면

내가 대신해서 나갔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은 소신껏 해야겠다' 고 단단히 별렀다.

 

회의는 예상대로 崔장관이 의도하는 쪽으로 진행됐다.

정확히 표현하면, 오네스트 신이 바라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회의 도중 중요한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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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실토

 

나는 오네스트 신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내가 몸담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 로 초청,

공개 토론을 벌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레이저 문제로 과학계가 시끄러워진 것은

전적으로 오네스트 신 때문이었다.

그가 가당치도 않은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들먹이지만 않았어도

애당초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오네스트 신은 초청 강연에 기꺼이 응했다.

어쩌면 자기를 가장 못마땅해 하던 내가 초청한 사실을 놓고

'이제야 비로소 韓박사도 나를 인정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1976 5월 중순 어느날 아침.

강연 시작 30분전 오네스트 신이 드디어 나타났다.

강연에 앞서 차를 한 잔 마시기 위해 내 방에 들른 것이다.

 

1m 75㎝ 정도의 큰 키에 비교적 미남형으로

강인하고 고집이 있어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미국 플로리다 지방신문에 난 자기 소개 기사를 보여주며

은근히 자신을 과시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레이저 핵융합이 가능하려면

 일단 레이저로 투입한 에너지의 양보다

 핵융합으로 나온 에너지의 양이 많아야 하지 않느냐" 고 질문했다.

 

요컨대 후자(後者) 를 전자(前者) 로 나누었을 때

그 비율이 1 이상이 돼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인데,

그는 이 기습적인 질문에 몹시 당황해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오네스트 신은 노련했다.

당혹스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바탕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웃음소리가 왠지 공허하게 들렸다.

 

그는 웃음을 멈추더니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했다.

 

나는 그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계속 그를 몰아 부쳤다.

"현재의 기술로는

 그 비율을 1 이상으로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레이저 핵융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십니까.

 미국의 최대 원자력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아도

 수억 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의 얼굴이 점점 더 상기되면서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버드대 박사출신의 자존심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그 자신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순간에도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위기' 를 모면하는 게 아닌가.

역시 노련했다.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너털웃음을 짓는게 아마도 그의 장기인 듯 싶었다.

이렇게 웃고난 그는 다시 미소띤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참 순진하시군요.

 레이저 프로젝트를 따 내려면 어느 정도 과장이 필요합니다.

 이건 정치예요, 정치.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렇다면

레이저 핵융합이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1년에 4억원씩, 4년간 연구비를 타 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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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청중앞의 거짓말

 

나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한번 그를 쳐다봤다.

오네스트 신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그와 얘기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그를 ADD 강당으로 안내했다.

그 자리에는 ADD 연구원 등

레이저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자 등 약 1백명 가량이 모여 있었다.

 

오네스트 신이

그동안 레이저 핵융합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떠들고 다녀서인지

청중들은 꽤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청중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유창한 영어로 강의를 했다.

청중들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내 방에서 당한 창피를

 저렇게라도 해서 체면을 세우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청중 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레이저 핵융합이 가능하려면

 핵융합으로 나온 에너지의 양을

 레이저로 투입한 에너지의 양으로 나눴을 때,

 1 이상이 돼야 하는데 이 기술이 개발됐습니까?"

 

내가 방에서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의 입에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오네스트 신은 잠시 답변을 주저했다.

나는 그가 왜 답변을 주저하는지

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레이저를 사용해

핵융합이 일어나도록 할 자신이 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당연히 레이저로 투입한 에너지의 양보다

핵융합으로 나온 에너지의 양을 많게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개발됐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전 나와 단 둘이 이야기할 때는

"그런 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고 솔직히 대답했었다.

 

그는 청중과 나를 동시에 의식하는 듯 했다.

만약 '기술 개발이 안됐다' 고 대답하면

이제껏 레이저 핵융합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이 되고

 

반대로 '기술 개발이 됐다' 고 대답하면

내 앞에서 한 말이 허위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래저래 거짓말을 하는 셈이 돼 버렸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進退兩難) 에 빠진 것이다.

그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역력했다.

 

그런데 약 10여초가 지났을까.

이윽고 그가 입을 열더니

"최근에 기술이 개발됐다" 고 말하는 게 아닌가!

 

불과 1시간 여만에

내 앞에서 한 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이 친구는 엉터리' 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