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제2부 레이저 무기 개발 (1)

기른장 2010. 1. 25. 18:21

01. 새로운 도전

 

1972 12월 중순 어느날

나는 청와대 오원철(吳源哲·71) 경제 2수석의 방에서

그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레이저 무기와 야시(夜視)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吳수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으로는 제 전공을 살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론물리를 공부했기 때문에

 레이저 분야는 자신이 있습니다."

 

吳수석은 더이상 고집부리지 말라는 듯 잘라 말했다.

"韓박사, 대체 왜 이래. 그건 안된다니까.

 레이저는 새로운 첨단 분야란 말이야.

 아무리 군인이 공부를 많이 했어도

 거기까지 손대는 건 무리야."

 

吳수석은

레이저와 같은 첨단분야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원자력연구소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내 실력을 못믿겠다는 것이었다.

 

吳수석은 내가 혹시 기분이 상했을까 봐

타이르듯 이렇게 말했다.

 

"병참물자는 군대에서 대단히 중요해.

 그러니  韓박사가 계속 맡아야 돼.

 이제까지 韓박사가 손 댄 것마다 모두 성공했잖아."

 

나는 내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병참물자는 제 전공과 다릅니다.

 이젠 다른 사람에게 맡기십시오.

 레이저 무기 개발 구상을 보고서로 작성하겠습니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가

새로 레이저 무기와 야시장비 개발 사업에 착수하려면

청와대와 국방부의 허락이 필요했다.

방위산업을 총괄하고 있는 吳수석을 찾아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吳수석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나도 오기가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일은 제체두고

레이저 무기 개발 보고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군 출신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보고서는 물리학 이론을 토대로,

군인으로서의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민간과학자들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점은 따라올 수 없었다.

 

결국 보고서는

레이저 무기를 단계별로 개발하는 무기체계 중심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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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개발계획 보고서

 

1973 1월 중순,

보고서를 들고 다시 吳수석 방을 찾았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별로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또 레이저 무기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태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런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나는 그의 주목을 끌기 위해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吳수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무슨 보고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레이저 무기 개발 보고서" 라고 대답했더니

 

그제서야 그는

",그거···그래 놔 두고 가 봐" 하며 탐탁치 않게 말했다.

일주일 후 吳수석이 전화를 걸어 왔다.

지난번과는 달리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

 

"韓박사, 나요 나.

 지난번에 내게 준 그 보고서 있잖아.

 내일 모레 청와대에 들어와 브리핑 좀 해 봐."

 

보고서가 마음에 든다는 얘기였다.

뭔가 서광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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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청와대 브리핑

 

1월말 어느날 오전 10.

吳수석을 비롯,

청와대 경제비서관·국방부 방위산업국장·상공부 공업국장 등

8명이 吳수석 방에 모였다.

레이저 무기 개발에 대한 브리핑을 듣기 위해서였다.

 

나도 '뱃심 좋은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만큼은 매우 긴장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레이저 무기 개발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판가름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시봉으로 브리핑 챠트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레이저 무기 개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발 가능한 무기를 하나씩 만들면서 기술을 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 연구를 먼저 한 다음 무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전자(前者) 가 옳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성과도 올리면서 기술을 빨리 익힐 수 있습니다."

 

좌중을 둘러 봤더니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레이저 무기와 야시(夜視) 장비 개발을 주관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레이저는 무기로 활용돼야 합니다.

 아무리 민간 과학자들이 우수해도

 무기에 관한한 군인의 감각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사업은 꼭 ADD가 맡아야 합니다. "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청와대와 국방부 관계자들이

내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랫 배에 힘을 잔뜩 주고 브리핑을 계속했다.

 

"당장 실전에 배치할 수 있는 레이저 무기부터

 하나하나 개발해 나가겠습니다.

 개발 비용은 최소화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바로 그때 오원철(吳源哲.71) 경제2수석이

특유의 괄괄한 목소리로 갑자기 내 말을 가로챘다.

"韓박사, 레이저 무기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 좀 해 봐. "

 

평소 吳수석의 스타일로 보건대

그의 이같은 주문은

자신이 대단한 관심과 호의를 보일 때만 쓰는 말투였다.

그를 오랫동안 접촉하면서 터득한 나만의 감각이었다.

 

자연히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탱크병이나 포병이 적 탱크를 명중시키려면

 거리를 신속.정확하게 측정해야 합니다.

 기존의 거리 측정기로는 아무리 빨라도 10초가 걸립니다.

 또 포탄이 날라가는 2~3초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적의 포탄에 먼저 맞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하면

 1만분의 1초 밖에 안 걸립니다. "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레이저 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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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엉뚱한 질문

 

이때 느닷없이 吳수석이 내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

"태양 에너지가 어느 정도 지구에 들어 오지?"

 

질문의 요지인즉,

'지구에 전달되는 태양에너지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 는 것으로

다분히 내 실력을 시험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

2년간 천체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다.

 

"대기권 밖에서는 1평방m 1.4㎾가 들어 옵니다.

 그러나 대기권을 통과할 때는

 대기권이 태양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에

 1㎾로 줄어듭니다. "

 

吳수석은 나의 시원스런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그거 굉장한 양인데…. 잘 이용해야겠어"

하며 알듯 모를듯한 말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 브리핑을 들으며

 앞으로 닥칠 에너지 위기에 대비,

 태양에너지 활용방안을 구상했던 모양이다.

 

 당시 정부는 중동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에너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었다.

 

 아랍 산유국들은

 이미 1967 '6일 전쟁' 때부터

 석유를 무기화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브리핑 한 시점은

 1973 10월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기 불과 9개월 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吳수석이 레이저 얘기를 들으며 태양에너지를 떠올린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아무튼 이날 브리핑은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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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알다 모를 吳수석

 

그로부터 4개월 후인 1973 5

국방과학연구소에 '레이저및 야시장비 연구실' 이 신설됐다.

물론 실장에는 내가 임명됐다.

1년 예산도 5천만원 정도가 배정됐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레이저 무기를 본격 개발할 수 있도록

나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진 건 아니었다.

 

, 실장으로 임명된 지 불과 나흘 뒤

심문택(沈汶澤.1998년 작고) 국방과학연구소장이 나를 불러서는,

 

 "레이저실 예산 가운데 48백만원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와 원자력연구소에 용역을 주게.

  자네는 관리만 맡아.

  나머지 예산으로 다른 나라 실정이 어떤지 조사나 좀 하지. "

 

순간 화가 치밀었다.

레이저실 실장으로 임명해 놓고

정작 레이저 무기 개발은 다른 곳에 맡기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었다.

 

 "소장님,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럴바엔 차라리 레이저실을 만들지 말았어야죠.

  그렇게는 못 합니다. "

 

나는 이렇게 따지며 대들었다.

沈소장은 누구 앞에서나 바른 말을 하는 내 성격을 알고는

나를 달랬다.

 

"자네 심정 알아.

 하지만 이건 吳수석 지시라네. "

 

그 말을 듣자 더 오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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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지시 묵살

 

나는 '레이저 무기 개발에서 손을 떼라'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

레이저실 실장으로서의 내 자존심이 이를 허락지 않았다.

 

고민끝에 나는

총예산 5천만원 가운데 48백만원을 용역비로 주라는

沈소장의 지시를 묵살했다.

 

나는 두 기관에 3천만원만 주었다.

그 나머지는 자체 개발비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실적(實積) 으로 말하겠다' 고 단단히 마음 먹었다.

그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먼저 함께 일할 연구원들을 물색했다.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중

기초 이론이 탄탄하고 실험경력이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이때 내 눈에 띈 인물이 바로

이종민(李鍾旼.56.한국원자력연구소 단장) 육사 교관이었다.

 

그는 1970년 서울대에서 물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육사에서 물리학과 전임강사로 있었다.

 

1973 8월 군복무를 마치고 유학을 꿈꾸던 그를 설득,

국방과학연구소로 끌어 들였다.

 

또 서울대 조교수로 재직중인

정기형(鄭基亨.61.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박사와

이건무(在美) 당시 육사 물리학 교관 등을 연구원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당시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 가운데

가장 연구실험 성적이 우수했다.

 

나는 빠른 시간내에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매일같이 외부 전문가들을 초청, 세미나를 열었다.

연구원들과 함께 실험으로 밤을 지새웠다.

 

우리 모두는 마치 불나방 처럼

레이저가 연출하는 빛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었다.

당시 레이저는 인간이 만들어낸 '마법의 빛' 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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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최초의 레이저 개발

 

1973년말

마침내 우리는 탄산가스(CO2) 레이저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레이저였다.

 

출력 250W 짜리였다.

6~7m 떨어진 철판에 레이저를 쏘면

철판이 녹아내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연구원들은 레이저로 담배에 불을 붙여 보기도 하면서

'레이저로 담뱃 불을 붙인 사람은 한국에선 내가 처음!' 이라며

호기(豪氣) 어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우리는 바로 이 레이저를

우리들의 실력을 입증시켜 줄 최선의 기회로 활용키로 했다.

 

먼저 沈소장을 초대해서

우리가 개발한 레이저의 위력을 보여줬다.

초기부터 내심 우리들의 실력을 의심했던 沈소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이날 직접 그 위력을 확인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까지 레이저 개발을 만류하던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개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계, 군관계 인사들에게까지 홍보를 펼쳐

1974년 초부터는 고위층 인사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우리의 홍보 전략이 주효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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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JP참관 때의 해프닝

 

1975년 가을 어느 날,

김종필(金鍾泌.73) 당시 국무총리가 레이저실을 방문했다.

소문을 듣고 방문한 것이다.

 

우리 연구진은 흥분했다.

金총리 일행에게

우리가 개발한 레이저의 위력을 멋드러지게 보여 준다면

우리의 숙원이었던 연구비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金총리 일행도

'살인 광선' 으로 알려진 레이저를 처음 보는지라

약간 흥분된 표정이었다.

 

", 지금부터 레이저로 이 벽돌을 녹이고

 저 철판에 구멍을 뚫는 장면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

 

시범에 들어가기 전

나는 金총리 일행에게 이렇게 호언장담(豪言壯談) 을 했다.

순간 실험실은 숨을 멎은듯 조용해졌다.

 

내가 '하나, , ' 하고 외치면

이종민 연구원이 레이저를 쏘기로 했다.

각본대로 내가 천천히 수를 세어 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벽돌과 철판으로 쏠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녹아 내려야 할 벽돌과 뚫려야 할 철판이

멀쩡한 채로 있는게 아닌가!

 

30초 가량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게 분명했다.

그 순간 우리 연구원들이 겪어야 했던 당혹감이란….

내 등에서도 진땀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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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오작동의 원인

 

나는 재빨리 냉정을 되찾았다.

먼저 웅성거리는 장내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이종민(李鍾旼) 연구원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서두리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한번 해 보게. "

 

장내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레이저는 요지부동이었다.

 

李씨가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레이저는 발사되지 않았다.

우리 연구진은 또다시 당황했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모양이었다.

 

순간 김종필(金鍾泌.73) 국무총리를 힐끔 쳐다봤다.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말로만 듣던 레이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으리라.

 

金총리는 그러나 얼른 표정을 바꾸더니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원래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 놓으면 못하는 법"

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역시 노련했다.

겸연쩍은 분위기가 이 한 마디에 한결 부드러워졌다.

 

金총리는 거듭 연구진들을 위로했다.

 

"군사 기술은 역시 어려운 겁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여러분들의 고생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그때였다.

이종민 연구원이 "됐어요!" 하며 큰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李씨는

앞에 있는 벽돌과 철판을 쳐다 보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 하며 앞에 있는 벽돌이 녹아 내렸다.

이어 '' 하며 두꺼운 철판에 구멍이 뚫렸다.

 

'!'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더니

이내 우렁찬 박수 소리가 레이저실을 가득 메웠다.

 

범인(?) 은 헬륨가스였다.

金총리 일행이 방문하던 날 아침,

이종민 연구원은 만의 하나 있을지도 모를 실수에 대비,

레이저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몇번이나 확인을 했다.

 

그리고는 레이저 작동 원료인 헬륨가스를 아끼려고

잠시 가스관을 닫아 둔 것이었다.

 

이같은 사실을 깜박 잊은채

무턱대고 레이저를 쏘려고 했으니

제대로 작동될 리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