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먼저 예수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화신하기 이전의 삶에 관해서 말하려 한다. 그 이유는 신약성경에서는 실제로 예수의 인생에서 오직 40여 일간의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가 이것을 읽고 나서 예수에 관해서나 그의 가르침에 관해서 아주 선명하고 완전한 영상을 그려낼 수가 없는 까닭이다. 당신은 예수가 이렇게 한 말을 상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하늘의 신비를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려는 방법은, 바로 그가 자신의 제자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 방법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다른 것들도 알려 주려는 것이다.
당시의 히브리인들은 예수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옛 선지자(예언가)들이 말한 것들이, 예수가 올 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은 윤회의 법칙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공정한 사람이 될 때까지, 즉 신성과 일체가 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윤회한다고 믿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다른 몇몇 사람들이 이 상태(해탈상태)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서는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의 화신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아담이라는 이름 속에는, 메시아의 화신들이 숨겨져 있다고 히브리인들은 말한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메시아는 아담의 화신이라고 믿었다. 즉, A-D-A-M 이라는 글자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앞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의 4번의 전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아담(ADAM), 다윗(DAVID), 모세의 형인 아론(Aron) 그리고 멜키세덱(MELCHESIDECK)은 메시아의 화신들이며, 그는 아담, 멜키세덱, 아론,그리고 다윗으로 윤회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히브리인들의 위대한 지도자들이었다.(Adam은 아담, 다윗, 아론, 멜키세덱의 첫글자를 딴 것이라고 전한다.)
이집트인들과 말을 한 것은 모세지만, 홍해를 가른 것은 아론의 지팡이였다. 가끔은 모세가 한 것이라고 언급되는 모든 기적은 아론이 행한 것이다. 아론이 그의 지팡이를 뻗었을 때, 그 지역의 모든 물이 어떻게 피로 변했는가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며 이와 같은 일을 다른 마술사들도 했다고 듣고 있다. 나는 만일 아론이 그 지역의 모든 물을 피로 만들었다면, 다른 마술사들은 어떤 물로 피를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고대의 기록이나 동양의 전설에 따르면, 예수는 이 지구에서 한번만 화신한 것이 아니라 여러번 태어났다고 한다. 우리는 그가 지난 6,000년 동안 윤회했던 몇가지 기록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의 기록된 역사 이전의 일로서, 여기서 언급하는 이름은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약5800여 년 전에, 한 제국이 모든 서적들을 파괴할 당시에 티벳 지역에 도피하여 보존되고 있는 고대 중국의 문서에 의하면, 그가 처음으로 중국에 화신했을 당시, 5800년전 그는 포(PO)라는 이름으로 살았으며, 그가 중국에 왔을 때는 중국인들은 도덕적으로 문란한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그는 그 화신 때에는 85년을 살았고, 죽지 않고 비밀의 은둔지로 떠났다.(문서에 의해 현존하는 기록이 없을 경우에는 도릴 존사님은 언급하시지 않는다. 비록 개인적으로 더 많은 사실을 알고 계실지라도..)
기록에 의한 그 다음의 화신은, 북미대륙의 현재의 뉴욕 근처에 살던 부족들 사이에서인데, 이 부족은 나중에 여섯 부족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그때 그의 이름은 에-바-타(Ea-Wah-Tah)였으며, 이 에-바-타라는 이름이, 아메리카 인디언 사이에서는 아직도 위대한 구세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당시 나이가 135세였던 카우족 인디언의 한 노인 의사와 대화를 했는데, 무엇보다도 에-바-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 이름을 아리조나의 아파치족이나, 그 외의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인디언들에게 기체 마니투(Gitche Manitou: 위대한 영)에 대하여 가르쳤다고 한다. 그가 가르친 것은 그리스도 영으로서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디언들의 즐거운 사냥터라는 것이 젖과 꿀이 흐르는 유럽식의 황금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위대한 영의 즐거운 사냥터란, 인디언들이 게임으로 사냥을 한 곳이며, 결코 배가 고파서 사냥을 한 곳은 아니다. 나중에 전설로 내려오는 즐거운 사냥터의 천국이란 말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 전설을 알고 있던, 내가 만난 모든 인디언들은, 그 전설에서 즐거운 사냥터 이면에는 그것을 초월한 위대한 영이 있다는 말을 했다. 동물을 죽일 때마다 그들은 의식을 거행했는데, 이들은 위대한 영이 동물에게도 그 자신의 일부를 부여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자연의 많은 저급 신들을 숭배하고 있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영적인 지식을 가져다 준 사람은 에바타였으며, 인디언들이 실제로 경배하던 신은 마니투라 불리는 초월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인도의 고대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는 약 3400년 전에 카필야(Kapilya:힌두 교훈에 현재도 이름이 가끔 언급된다.)라는 이름으로 화신 했다는 다른 기록이 있다.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그는 메시아로, 구세주로 내려왔으며 카필야는 그 당신의 카스트 제도 속에 포함되어 있던 어떤 제도를 실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브라만 가문에서 탄생했고, 그 당대의 브라만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브라만들이 알고 있는 위대한 지식인, 신비법칙들과 우주에 관한 교훈들은 그를 통하여 전해진 것들이다. 그러나 그가 떠나자마자 한때 자연스러웠던 그의 가르침들이 브라만의 카스트제도 속에 깊이 가라앉아 버리면서, 점차적으로 브라만 계급의 특권으로 비밀지식이 타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이 성스러운 사원을 건설했다는 곳이며, 그 정상에는 천국이 있다는 신성한 산인 메루(Meru:힌두인들이 말하는 영산)에 관해서 가르쳤던 사람도 바로 카필야였던 것이다. 이 성스러운 산 메루는 물질계인 이 지상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것이다.
브라만들이 알고 있는 2개의 삼각형에 관한 지식도 카필야가 가르친 것이며, 이 삼각형의 끝이 나타내는 6방향, L'rhom, L'om, Sh'hrum, Sho'rhim, Ramaya, Namaha에 관한 교훈도 알려준 것이다. 그가 이 말들을 전해 주었을 때, 그는 공간의 6방향, 즉 동서남북 그리고 상하를 지배할 힘을 알려준 것이라고 한다.(예수는 다른 윤회기간에 이것에 관한 가르침을 전한다. 카발라 만트람을 기억할 것, 요긴할 때가 있다.)
그가 그 다음으로 윤회한 곳은 촤인(Chine)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이었는데, 중국이 위대한 문명을 이룩하고 있을 B.C. 11세기경이었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미술과 비단 직조기술을 가르쳤으며, 이들이 영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들은 많은 발견을 성취했던 것이다.(모든 지식과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다. 의식이 높으면 많은 발명과 발견을 이룩한다.)
오늘날의 이 지상인류 가운데서, 가장고대 문명을 지닌 민족중의 하나가 중국인들이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는 사실인데, 여기에 비해 본다면 백인은 사실 야만인에 불과하다.(이 말은 스승 도릴존사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중국에서 B.C. 604년에 노자로 화신 했다고 전한다. 우리는 노자가 태어난 정확한 때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중국에 위대한 도덕경을 준 다음에, 150년을 살다가 그의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고는 사라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기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 다음 번의 윤회가 바로 예수로 태어난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이 환생, 즉 예수로서의 그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의 탄생과 그의 탄생이 지닌 상징들과 12세 이후 20세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기간들에 대해서 말하겠다.
우리는 현재 성지(Holy Land)라고 불리는 지역이, 예수 당시에는 어떠했던가를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한다.
첫째로, 팔레스타인에서 예수가 태어날 당시에는 유태인들이 3파로 갈라져 있었다. 즉, 바리새파, 사두개파, 그리고 에세네파이다. 우리는 그 당시의 유태인들이 인생의 거의 전부를 포로생활로 보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언젠가 나의 동료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다. “만일 유태인들을 신이 선택한 백성들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만 보더라도 신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말이 틀린 것이다.” 그때 유태인들은 로마의 포로들이었다. 고대 로마제국은 모든 위대했던 국가, 왕국 중에서 가장 관대했던 나라였다. 로마가 어떤 나라를 정복했을 때 그들에게 헌신을 요구했지만, 로마 제국은 모든 나라가 자신들의 신을 마음대로 경배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이다. 강대한 로마 제국으로서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사람들이 종교적 일로써는 더욱더 대항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로마는 정복한 나라의 왕은 그대로 놔두었지만, 그들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오직 로마의 정부만이 그들의 생사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유태인의 3파 중에서 바리새파는 형식주의적이고 의식을 중요시하는 계층이고, 이들 대부분은 레위족 사람들이다. 레위족은 이들 민족을 이끌어 가던 부족이었다. 물론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듯이, 유태인들은 검은 피부에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지녔다. 반면에 히브리인들은 흰 피부에 청색의 눈, 그리고 붉은 머리카락 또는 금발 머리인데 예수는 히브리인이었고 유태인은 아니었다. 바리새인들은 성직자 계급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모든 면에서 종교적인 의식에 가장 까다로운 사람들이었다.
사두개파는 종교와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써, 이들은 지적인 면에 치우쳤던 사람들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이들은 항상 로마의 풍습을 따르는 쪽을 선택했다는 의미도 포함한 말이다. 이들은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로마에 더 접근해 보려는 희망을 지녔던 사람들이다. 사두개파는 신이라든가 천국 등을 별로 믿지 않았다. 대개 이들은 오늘 어떤 사람이 여기 있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그가 장기간 어디로 간 것이라고 믿는다.
에세네인들은 완전히 다른 계열의 사람들이다. 유태인 중에서 바리새와 사두개파가 가장 부유한 층을 이룬것에 반해서 에세네파는 다른 파보다도 더 영적인 단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독특한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나라 모든 지역에 수도원을 건설했고 그곳에서 공동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기구가 있었으며 자급자족하였다. 이들은 특별히 허락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독신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다.(에세네인들은 독신과 금욕적 생활, 공동체적인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에세네파 지도자였다. 그는 랍비, 즉 선생이요 다윗의 후손이었다. 마태나 누가는 예수가 요셉을 통한 다윗의 후손이라고 추적하여 기록한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이들이 이런 계보를 추적할 수 없었다면 유태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에 마리아와 요셉은 예루살렘으로 인두세를 납부하러 가던 도중이었다고 한다. 이 세금은 이 나라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되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가난하건 부유하건 모두 세금을 내야만 했다. 이 세금은 일반 사람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양이었는데, 유태인들은 성경에 있는 이런 말 때문에 이 인두세를 강력히 반대했던 것이다. “사람의 머리 수는 세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이것을 싫어했지만 이 세금을 납부하러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 플로리다 주가 이 성지(Holy Land)보다는 훨씬 큰 지역이므로 여러분은 중심 도시로 간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월절 바로 전에 세금을 내게한 것은, 사람들이 아주 쉽게 올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서 잉태한 것이라 말한다. 이 말은 어떤 말보다도 더 논쟁거리가 된 말이다. 누가는 탄생 이전의 모든 일들을 기록했지만, 마태는 기록하지 않았다. 마가도 물론 기록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성령이란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로 신으로부터 신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각성했을 때 사람의 이마의 앞에서 불타는 혀의 바닥처럼 내려앉는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는 성령은 위로하는 자(Comforter)또는 진리의 영이라고 되어 있다. 자신이 떠나는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할 때 예수는 “내가 잠시 너희들을 떠난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께 기도할 것이고 그가 너희들에게 다른 위안자를 보내 주실 것이다. 그는 영원히 너희 곁에 있을 것이다. 이 위안자는 내가 너희에게 남겨 두고 가는 성령이다.”
그리고 몇절 뒤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위안자는 내가 너희들에게 남겨 줄 진리의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안자란 진리의 영, 진리의 성령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그의 영(그리스어로 aphke pheuma)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이 말의 뜻은 심령(Psyche)이란 뜻이지 영이 아니다. 이 심령이란 말은 공기, 호흡, 바람 혹은 지식을 말하는 단어이다.
우리가 에세네파와 그들의 의식과 가르침들에 대해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령에 의한 마리아의 임신을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마리아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가 에세네인들이었고, 성전에 처녀 성직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 에세네 종교 예식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는 처녀 성직자였고 비록 결혼을 하더라도 언제나 처녀로 불린다. 또한 고대의 유태 전통에 의하면 여자가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처녀로 불렸다. 심지어는 첫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처녀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었다.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에세네의 지도자였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고대 지혜 기록의 보관자라 말한다. 신이 솔로몬에게 주었다는 반지와 부적과 힘의 갑옷을 포함하여 위대한 마법서(이 책들은 이후 소실됨. 실제적인 카발라적 기법을 기록한 책들) 들을 관리 하도록 임명된 수호자들의 직계 후손들이 에세네파라고 말한다. 동양에 내려오는 전설에서 여러분은 이것에 관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솔로몬,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와 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한다. 특히 기독교 성경보다도 아브라함, 모세에 관한 전설적인 신화들이 더 많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대 성전을 수호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이 수호자들은 고대 지혜를 보존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지도자가 된 요셉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고 에세네인의 지도자요 다윗의 성스러운 가문에 속하며, 그리고 마리아는 성전의 처녀라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자녀들을 성령, 진리의 영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가 태어났다.” 비록 누가복음에는 괄호 속의 다음 말들이 한 줄 들어있지만, 다시 말해서 예수는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사본에는 이 말이 들어 있지 않다. 마태복음이나 그리스 사본에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을 통하여 예수가 다윗의 계보를 이은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들이 나의 글인 “중도와 붓다의 가르침”에서 읽었듯이 모든 시대의 위대한 스승들은 기적적인 탄생 일화를 지닌다. 자신들의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삶에 대하여 많은 기적적인 일들을 끌어들이는 경향을 사람들이 지니고 있으므로 이것들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탄생 시에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그가 태어났다는 것과, 그가 가르친 것들이지 기적이 아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가 베들레헴의 어느 동굴(구유)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그런 일이!”하고 말하겠지만, 베들레헴 사람의 2/3은 동굴에서 살았으며,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예수 당시에 있었던 것과 똑같이 베들레헴을 둘러싼 언덕에는 같은 동굴들이 있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평범한 사람 이상이어야 동굴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탄생 시에 기적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고 들었다. 어떤 경전에는 목동들이 언덕에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달력을 생각할 때 12월 25일에 목동들이 언덕 위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그때가 10월 중순경이 아니라면 이들이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기에 성지는 너무 추운 곳이다. 물론 날짜야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예수가 태어난 정확한 때를 모른다고 할 수 있겠다.(대다수 유대인들은 당시 집도 동굴도 없었다. 동굴에 사는 사람은 중류층이상을 의미함) 어떤 곳에는 B.C 7년이라고 되어 있고, 어떤 곳에는 B.C 50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어떤 사건과 인물들 때문에 그의 탄생 시를 B.C 7년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덕에는 목동들이 있었고, 그들은 천사의 영상을 보았으며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탄생한다는 비전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구세주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언덕에 내려왔다고 말한다. 마태는 이 목동들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3인의 현자가 별을 따라서 동방에서 왔고, 메시아의 탄생을 보러 왔다고만 전한다. 또한 헤롯왕이 현자들에게 당부하기를 메시아를 찾아낸 후 자신에게도 알려 주면 경배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자들은 그 어린 아기를 보고는 다른 길로 그 나라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일 이후에 헤롯은 군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으며 이들은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살해했다고 말한다. 만일 그가 이런 일을 행했다면 그 자신도 처형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로마정부는 로마의 법에 의하지 않고는 사람을 죽일 권한을 어떤 누구에게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 그들이 빌라도에게 그 일을 수행하도록 허락을 요청해야만 했던 것만 보아도 이들은 그런 권한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태어났고, 예수의 탄생 시에 동방에서 3인의 현명한 왕들이 방문 했다고 말한다. 동양의 상징에 의하면 예수가 태어난 동굴은 실제로 베들레헴 근처의 언덕에 있던 동굴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두뇌속의 동굴을 의미, 즉 인간의 머리 중심에 있는 성스러운 방을 말한 것이며 예수의 탄생 시에 선물을 가지고 참석한 3인의 현명한 왕들이 실제의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들은 동양에서 3인의 왕들이라 불리는 라자, 마하라자, 황제(Rajah, Maharajah, Emperor)를 말하며 이것은 어린아이가 탄생할 때에 깨어나고 각성하고 열리는 두뇌 속의 힘의 3대 센터들이다. 이러한 3센터들은 뇌하수체, 송과선, 시신경체가 각성하고 열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들은 실제로 그리스도에게 한 것처럼, 그에게 보물을 주기 때문이다. 성경의 어떤 사본에는 이들이 예수에게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어 사본에는 이들이 보물을 선사했다고 전한다. 다른 구절은 7세기경에 첨가된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첨가되었으며, 전체의 상당 부분이 빠져 버린 성경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3인의 현명한 왕들이 가져온 선물들이란 실제로는 신의 각성된 아들이 태어날 때, 아바타에게 언제나 열리는 3대의 힘의 통로,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어떤 복음서에는 헤롯왕이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마리아와 요셉은 아이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고 쓰여 있다. 다른 경전에는 이들이 나사렛으로 돌아갔고, 매년 세금을 내고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경은 말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주의 율법에 따라서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고향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아이는 영(spirit)적으로 강성하게 자라며, 신의 은총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의 부모는 매년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한다. 이것은 누가복음 2장의 기록이다.
“그리고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신의 지시를 받고, 현자들은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이들이 떠나고 나서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서 내가 말할 때까지 그곳에 있으라고 하니, 요셉은 밤중에 일어나서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갔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냈다’는 말을 이루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2장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개의 상반된 설명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에서 연유된다.
첫째로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원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더 오래된 문헌에서 가져온 것이거나 뽑아 낸 것이므로 사본들이라 불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복사된 부분들에 있어서 대단히 많은 곳에서 똑같은 문법적 실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학자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사실, 현존하는 마태복음의 최고 사본에는 자기의 짐 속에서 발견한 문헌에서 편집한 이집트 여인의 글이 삽입되어 있다. 그들은 이 기록들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의 해석을 첨가했던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사본은 A.D 200년경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후 거의 200년이 지난후의 일이다.
고대의 전설에 따르면 그리고 내가 고대 전설이라고 말할 때는 나는 실제로 기록된 것을 말하는 것이지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가 이집트에 갔던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나이가 12살이 넘었을 때의 일이다. 예수가 그 나라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만들어 넣어야만 했던 까닭에 그가 나사렛으로 되돌아 왔다고 기록된 것이다. 많은 부분들이 초기 카톨릭에 의해서 삽입되었고, 그들의 문헌에 추가되었던 것이다.
나사렛은 어떤 도시가 아니다. 그들이 나사렛이라고 지적한 그 도시는, 예수 이후 약 350여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헬레나 여왕은 종교적인 열성이 대단했으므로, 대주교들을 보내어 이러한 지역(성경에 언급된 지명)들을 찾아내라고 특명을 내렸다. 그래서 많은 지역들의 이름이 붙여졌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까닭은 이 특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런 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예수는 나사렛 사람이었다. 나사렛 사람이란, 에세네의 봉사자이며, 수도원의 최고 승려를 나사렛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곳은 제자들이 그들의 의식에 따라서 비전을 받던 곳이다. 예수는 이러한 지시를 내리는 나사렛의 사원에 살았기 때문에 나사렛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사렛인들은 실제로는 에세네 형제단의 제자들이다. 그는 나사렛으로 돌아왔다고 들었다. 열 두 살이 될 때까지 예수는 이곳에서 살았다고 말한다.
가족들이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수를 잃어버리기 전에 도시의 외각 다른 길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당신은 아마도 이것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린이들은 야외로 나가면 자유롭게 뛰어다니게 마련이다. 그리고 가끔은 엉뚱한 곳에서 돌아올 경우도 있다.
이들은 예수를 찾으러 되돌아 왔고, 사원 안에서 현자들과 논쟁하고 있는 예수를 보았다. 이것은 앞으로 그가 나타낼 지혜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동양의 지혜로운 스승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바타의 나이가 12살이 되기 전에는 그의 두뇌 속의 열 두 통로들이 열리지 않는다. 예수가 12살이 되었다는 것은 열둘의 영적인 통로들이 열리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통로들은 인간 속으로 신성 에너지가 흐르게 하는 통로들이다.
그는 신성 법칙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사원의 현자들은 말했다. “이것이 율법이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은 율법이 아니지요, 당신들은 이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열두 살의 소년이 현자들의 말에 반대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당시에는 어린이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런 일을 허용했다는 점만 보아도, 예수가 특별하게 양육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그후 예수의 실제적인 수련기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이집트로 갔다고 들었으나, 그것은 12세 이후의 일이다. 그는 이집트로 갔으며, 그곳에 있는 대 피라미드에서 4년을 보냈다고 한다.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 피라미드는 사원으로서 세상의 모든 곳에서 현자들, 위대한 영혼들이 신비에 이르는 비전을 받으러 갔던 곳이다.
예수시대 이후에 왔던 티이나의 아폴로니우스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신비 비전을 통과했으며 대 피라미드의 왕비의 방 뒤의 비전의 사원 안에서 9시간 동안을 십자가에 달렸으며, 마침내 어떤 성취를 한 후에 그는 꼭대기로 올라갔으며 피라미드의 정상을 이루는 9개의 돌로 된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 위에 섰다. 그때에 위대한 힘이 그에게 내려 왔다는 것이다.
대 피라미드의 세 개의 방은 인간의 3부분을 상징한다.
지하에 있는 방은 감정적인 세계, 성적인 세계를 상징하고,
왕비의 방은 물질계를,
왕의 방은 인간의 머리를 상징한다.
그 위의 미완성의 5개의 방은 인간의 오감을 상징한다.
공부하고 수련하고 준비하기 위해 4년을 대 피라미드에서 보냈다고 말한다. 당시 그곳에서 그는 사원의 사제로써 활동했던 것이다.
이 사원은 36,000년 동안이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솔로몬은 그의 지혜의 큰 부분을 얻기 위해서 대 피라미드로 갔는데, 그곳에서 단 3년만 보내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어떤 일을 실패했다고 역사 학자들은 말한다.
대 피라미드에서 4년간의 기간을 마친 이후에 인도와 티벳으로 떠났다.
첫 번째 장소가 티벳에 있는 비밀 사원 중의 하나였다. 그는 20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카슈미르(Kashmiri)계곡의 레이(Lei)안에 있는 피앙(Piang)사원에서 보냈다. 그가 실행하려는 활동과 가르침들을 기록해 둔 곳이 이곳이다.
그후 그는 인도로 가서, 가르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인도로 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때부터 그의 사역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그 이전의 삶(예를 들어 카필야 때)에서 인도에서 활동했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다.
인도에서 예수는 그의 지난 생에서 실패했던 사람들과 같이 활동을 했던 것이다. 사원에서 4년동안 지내고 있던 스승 중의 한 사람과 예수는 같이 활동을 했으며, 대단한 치료를 행했었다.
예수의 철학과 그들의 철학이 아주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사원으로 갔을 때 브라만들과 논쟁을 했다고 한다. 브라만들은 자만하고 있던 특권층이었다.
이들은 인간이 서로 형제라는 닮은 점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류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그의 모든 힘과 능력을 다해서 활동했다. 그는 가장 편협한 사람들을 골라내어 그들의 의식을 끌어올리려는 활동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에, 이 사람들은 후에 성지(팔레스타인)에서 예수를 쫓아내듯이 그를 몰아내고 말았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었다. 예수는 그곳에서 5년을 지내면서, 놀라운 치료를 실행하였고, 그리고는 티벳으로 되돌아갔다가 이집트로 가서 1년 정도 머물렀으니 즉 그의 나이 26세를 약간 넘긴 때의 일이다. 그 다음에 그는 로마와 그리스를 지나서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나이가 27세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일을 시작하였다.
여러분들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사촌이라는 것과 예수가 순례의 길에서 되돌아 왔을 때 그를 도와줄 어떤 사람들을 준비시키면서 그 기초를 다지는데 요한은 그의 평생을 보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신성한 깨달음을 공부하고 얻는 일을 예수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올 때를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이런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그가 어디에 있든지 동방으로부터 현자로서 되돌아 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지금도 여러분이 동양의 어느 시장이나 골목 구석에 가보면 어떤 성직자나 성인들이 어떤 종교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인의 마음은 아주 작은 점 하나를 가지고도 무수한 사상을 끌어 내는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언젠가 한 무리의 마호멧 교도들이 두어 시간 동안을 한 개의 바늘 끝 위에 정확히 몇 개의 독수리 깃털을 올릴 수 있는가 토론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여러분들은 거의 50여 년을 하나의 바늘 끝에 과연 몇 명의 천사들이 올라설 수 있겠는가 하고 기독교인들이 토론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논쟁은 카톨릭 교회에서 거의 50년간이나 지속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성지로 돌아왔을 때 그는 목회를 시작했고 그가 돌아왔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예수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당시의 교회가 그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다윗의 가문 출신이요, 성지의 어떤 제사장보다도 월등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회당 안에서 가르치는 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천부적인 권리였다. 그러나 그가 회당 안에서 가르칠 때 그는 전통교회의 랍비들이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자 랍비들은 “당신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권한을 지닌 비밀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그를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오늘날 교회의 어떤 목회자들에게도 발생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이 본 바에 의해서 전통 교리에서 벗어난 것을 가르쳤다면 그가 더 훌륭해서도 혹은 더 나빠서도 아니라 그들이 결정한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추방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리가 전적으로 옳으며 그 외의 다른 사람들 것은 전부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릇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가르침에는 약간의 옳은 것이나 약간의 그릇된 것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말했다. “아니오, 당신은 나가야만 합니다.”
나는 잠시동안 예수가 가르친 어떤 신비적인 교훈에 대해서 말하려한다.
첫 번째는 세례에 관한 것이다.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세례를 받을 때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즉 그때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 안에서 내가 기뻐하노라”라는 말이 들려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이 말을 들었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은 그 소리가 천둥 같았다고 말했으며, 어떤 사람은 목소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왜?
상징적인 의미는 이런 것이다. 이 소리는 신의 마음에서 내려온 진동으로 오직 내적인 귀와 영적인 귀가 열린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너무나 강력해서 귀가 열리지 않은 자들도 천둥소리처럼 그 충격을 느꼈던 것이다.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의 어깨 위에 앉았다고 말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당시의 유태인들도 불은 정화시키는 대행자라고 생각했다. 불은 어두운 無에서 나와 잠시동안 빛으로 존재하다가 다시 無로 되돌아 간다. 유태인들은 비둘기를 희생 제물로 사용했었다.
만일 유태인들이 성전에 가서, 신에게 무엇을 요청할 때에는 항상 두 마리의 비둘기를 샀으며, 제사장은 이 비둘기들을 성전 제단 위에 바친다. 이 비둘기의 피가 제단의 불로 피어 오를 때, 그들(보내는 사람)의 소원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으로 비둘기가 뜻을 전한다면, 그 대답도 또한 비둘기의 형태로 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요한은 예수와 전적으로 다른 류의 사람이었다.
요한은 금욕 수행자였다. 요한은 한 방울의 포도주나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고기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기본적으로 꿀과 메뚜기를 먹었다고 들었다. 오직 부자들만이 메뚜기를 살 수가 있었다. 메뚜기를 햇볕에 말린 다음, 꿀에 재어 보관한다. 요한은 이것을 주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이런 것들 안에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가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요한은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말하기를 그는 악령들린 것이라고 말했으며, 인자가 먹고 마시니 그들은 말하기를 폭식가요, 술고래며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즐기는 자라 하는구나”
세례에서 우리는 매우 의미 심장하고 확실한 상징을 알 수 있다. 즉, 물 속에 잠김으로써, 죄를 깨끗이 씻는다는 것이다. 세례는 오직 이 하나의 의미만을 지닌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 “당신들은 물과 영으로 세례를 받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세례는 인간 내면에서 일어날 영적인 세례를 상징하는 것일 뿐이다. 영적인 세례는 마음으로부터, 의식으로부터, 그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그들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낡은 고정관념들과 신조들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어떤 것도 채색하지 않으며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정화되어 스승에게 올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 “당신들이 어린이와 같은 상태로 오지 않는다면”, 어린이들에게는 선입관, 관념들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하다. 우리가 영적 세례를 받을 때에 우리는 낡은 사상들과 관념들을 제거한 것이고 과거에 우리가 지녔던 어떤 장애물도 없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이다.
출처 : 비교진의(秘敎眞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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