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제5부 탱크용 레이저 무기 개발(1)

기른장 2010. 1. 30. 14:26

01. 다시 돌아온 '친정'

 

1978 7

나는 다시 국방과학연구소(ADD)로 돌아와

레이저.야시(夜視) 장비 부장을 맡았다.

1년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레이저실은 레이저부로 한 단계 격상됐다.

연구원들도 늘어나 부서 분위기가 한층 활기차 보였다.

 

그동안 나는 탄약개발부장을 맡아

국산 벌컨포의 발사 사고 원인을 밝혀 내느라

레이저 무기쪽은 잠시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저부로 돌아와 보니

레이저무기 개발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 개발이었다.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란

 레이저로 적의 탱크가 위치한 거리를 신속히 측정해,

 정확히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탱크전()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거리측정과 정확한 명중률이었다.

 

 구식 탱크는

 적 탱크가 있는 거리를 측정하는 데 10초 이상이 걸렸다.

 명중률도 거리가 멀수록 떨어져

 평균 명중률이 30~40% 밖에 안됐다.

 

 그러나 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할 경우

 10만분의 1초 밖에 걸리지 않고,

 게다가 거리 측정과 동시에 목표물을 조준하기 때문에

 명중률을 80~9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1973 5 ADD에 레이저실이 만들어진 직후

내가 레이저 거리측정기 개발에 곧바로 착수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탱크의 자동조준장치까지 개발하려 한 것은

2년이 지난 1975년 여름부터였다.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자동조준장치는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의 핵심 부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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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탱크 성능 개량 대책

 

그 무렵 국방부는

구식 탱크의 성능을 개선하려는 대책마련에 나섰다.

 

합동참모본부가 주관해

탱크 성능개선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를 연 것이다.

 

 합참에서는

 당시 전략기획과 과장인

 임동원(林東源) 육군 대령이 대표로 참석했고,

 

 ADD에서는

 기동(機動) 장비실장인 박철희 해군 대령,

 탱크개발 책임자 이재순 교수) 육군 중령,

 레이저실장으로 공군 중령인 내가 참석했다.

 

회의에서 탱크 성능개선을 위한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먼저 ADD의 朴대령과 李중령은

 "포신의 크기를 90㎜에서 105㎜로 하자" 고 주장했다.

 

 또 탱크의 주행거리를 넓히기 위해

 기존의 가솔린 엔진을 디젤 엔진으로 바꾸자는 안() 도 나왔다.

 

 그러나 합참의 林대령과 나는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를 개발하자" 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적 탱크까지의 거리측정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아군 탱크의 명중률을 높이는 게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시 '꿈의 광선' 으로 불리는 '레이저'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회의에서 논의된 세 가지 방안이 모두 상부에 보고됐다.

 

그러나 합참은 최종안으로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를 개발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임무가 자연히 내가 실장으로 있던 ADD 레이저실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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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터무니 없는 요구

 

나는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의 샘플을 구하기 위해

즉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레이저무기를 개발하는

휴즈 에어크래프트社와 접촉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사는 미 육군에 각종 레이저 무기를 독점 납품했다.

 그러나 휴즈 에어크래프트社는

 한국에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를 두 대 들여와

 그 성능을 보여주는 데만

 무려 190만 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혔다.

샘플을 파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보여 주는 데만 그같은 액수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횡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휴즈 에어크래프트社는

전혀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미국의 또다른 무기 개발회사인 레이시온社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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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횡재 이어진 출장길

 

미국의 레이시온社는

30여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무기회사였다.

그럼에도 나를 대하는 태도는 매우 깍듯했다.

하찮은 고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배려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내가 처음 방문했던 휴즈 에어크래프트社는

미 육군에 레이저 무기를 독점 납품해서인지

지나치게 고자세였다.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를 두 대 보여주는 데만

무려 190만 달러를 내 놓으라고 배짱을 부렸던 것이다.

 

어차피 나는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를 독자 개발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실험용으로 사용할 핵심 부품만 구입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레이시온社와 교섭,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의 핵심 부품인 레이저 거리측정기 한 대를

1만 달러에 넘겨 받았다.

 

 앞으로 한국에 무기를 판매할 기회를 잡기 위해

 특별이 내게 호의를 베푼 것이다.

 나는 마치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레이시온社는

 비록 미 육군에 무기를 납품하지는 못했지만

 기술력은 매우 뛰어났다.

 

 미국의 유명한 메사추세츠 공대(MIT) 교수였던 화이트하우스 박사가

 기술 책임자란 점이 그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패트리어틱 미사일 개발로 그 실력을 입증했다.

 

나는 실험용 레이저 거리측정기 한 대를 더 구입하기 위해

이번에는 영국 마코니社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미제와 다른 제품의 성능을 비교해 보는 것이

자체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코니社 관계자들과 만나

"미국의 레이시온社에서 1만 달러에 샀다"

"같은 가격에 달라" 고 요구했다.

 

이들은 "최소 2만 달러는 줘야 한다" 며 버텼다.

할 수 없이 2만 달러를 지불했지만 그래도 헐값이었다.

레이시온社가 단단히 한 몫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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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체계적인 분업

 

서둘러 귀국한 나는

국방과학연구소(ADD) 레이저부 연구원들과 함께

구입한 레이저 거리측정기의 부품과 성능을 철저히 분석한 다음

작업을 크게 둘로 나누어 진행시켰다.

 

 먼저 1974 1월부터 ADD 레이저부가 추진하고 있는

 레이저 거리측정기 개발에 보다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

 탱크가 목표물의 위치를 10만분의 1초 안에

 신속히 측정해 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함께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의 또다른 중요 부품인

 자동조준장치 개발에 곧바로 착수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 개발은

이종민.김철중 연구원 등에게 맡겼다.

두 사람은 이 과제를 벌써 2년 가까이 수행해 오고 있었다.

 

 李박사는 무슨 과제가 주어지든 완벽하게 처리했고,

 金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ADD에 들어올 당시 물리 과목에서 만점을 받은 수재였다.

 

또 탱크의 자동조준장치 개발은

한국과학원(KAIS) 의 박송배 교수에게 맡겼다.

 

 朴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의 책임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공대.미 오레곤 주립대 교수를 지낸

 전기.전자 분야의 권위자였다.

 

 나는 朴교수에게

 구식 탱크의 자동조준장치인

 '(CAM) 컴퓨터' 를 그대로 사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개발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럴 경우 조준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조준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제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의 경우

 거리측정과 목표물 조준이 전자장치를 통해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이 전자장치는 대당 가격이 40만 달러나 되는 고가(高價) 였다.

 

 우리는 도저히 그 가격을 주고 구입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미국제와 성능이 똑같은 자동조준장치를

 독자 개발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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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시행착오의 연속

 

그러나 두 분야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았다.

 

 핵심 부품인 레이저 거리측정기의 경우,

 예상 외로 어려움이 많았다.

 

 또 다른 주요 부품인 자동조준장치 개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던 중 국방과학연구소(ADD) 레이저부 연구원들이

어렵사리 시험용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한 대 만들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 실외에서 시험작동을 해 보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ADD를 방문하는 외빈(外賓) 앞에서는

 성능 시험을 할 때마다 작동을 하지 않는 통에

 망신 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외빈을 돌려 보내고

 정작 다시 실내에서 시험을 해 보면

 멀쩡하게 작동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처음에 그 원인을 몰라 몹시 애가 탔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험 결과,

 레이저 거리측정기 내부의 기계 부품이

 기온이 떨어지면 수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레이저 광선은 직선으로만 발사되는데

 기계가 뒤틀리니 레이저가 아예 발사되지 않은 것이었다.

 온도에 따라 기계가 팽창.수축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채

 단순히 이론만으로 설계를 한 것이 문제였다.

 

자동조준장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시행착오가 반복됐다.

 

 개발 책임을 맡은 한국과학원(KAIS) 의 박송배 교수는

 KAIS 대학원생들로 팀을 구성, 조준장치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개발 첫 해인 1976년에는

 수없이 실패를 거듭해야만 했다.

 경험이 전무(全無) 한 탓이었다.

 

우리 연구진은 독자 개발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나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그 원인을 찾아내느라 밤새워 토론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나도 ADD KAIS를 오가며 작업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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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고진감래

 

연구가 눈에 띄게 진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8년에 들어서였다.

 

ADD 레이저부 연구원 등이

레이저 거리측정기의 핵심 부품인 레이저 발진부(發振部)

완벽하게 설계.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레이저 발진부란

 무질서한 빛을 한 군데로 모아

 일시에 한 방향을 향해

 똑같은 파장(波長) 으로 질서정연하게 보내는 장치를 말한다.

 

또 우리는

레이저 거리측정기에 들어 있는 기계 부품이

온도 변화에 따라 팽창.수축하는 현상도 말끔히 제거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무기 제조회사인 레이시온社의 기술 지원을 받아

기존의 대형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작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레이시온社의 기술 책임자인 화이트하우스 박사가

 레이저를 일시에 나오게 하는 재료를 무료로 제공한 덕분이었다.

 

 시험용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헐값인 1만 달러에 넘겨준 데 이어

 두번째로 결정적 도움을 준 셈이다.

 한국에 무기를 팔아 먹을 속셈으로 베푼 호의이긴 했지만

 나로서는 매우 고마왔다.

 

한편 박송배 교수팀도 거의 같은 시기에

자동조준장치(마이크로 프로세서) 를 개발해 냈다.

 

 목표물이 위치한 거리가 전압으로 표시되면

 전압에 따라 각도가 나오고,

 그에 따라 탱크 포신(砲身)을 자동 조절하는 장치였다.

 

1978년 말,

마침내 우리 연구진은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는 개발착수 5년만이었고

 조준장치는 3년만의 개가였다.

 

그때 마침 미국의 레이저 무기 제조회사인

휴즈 에어크래프트社에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