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휘용/가이아 프로젝트

가이아 프로젝트 제5장 지구인의 인생

기른장 2020. 12. 20. 19:30

제5장 지구인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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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탄생 이후 오랜 시간을 빛의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레무리아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순수한 에테르 상태로 우주에 처음 개방되었다. 개방 이후 지구는 찾아오는 모든 존재들에게 지구 에너지를 체험할 수 있는 배움터로서 역할을 시작하였고, 특히 지구가 물질화된 이후에는 환생제도를 통해 강도 높은 체험과 휴식이 번갈아 일어나는 학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인간은 3차원 지구에서 오감을 통한 생생하고 강렬한 체험을 하고, 4차원 영계에서는 물질세계에서 지친 마음을 추스르면서 휴식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물질 지구는 이 곳을 찾는 모든 존재들에게 체험을 통한 배움의 장(場)을 제공하였지만, 물질화 이후 인간에게 찾아온 망각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채 세상을 살아왔다. 육체를 입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여기 왜 와 있는지를 몰라 답답해하고 괴로워하였으며, 특히 물질 이외의 보다 근원적인 세상을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답답함은 더욱 심하였다.

몸의 감각이 열린 사람들은 다양한 체험을 통해 4차원 세상을 감지하며 육체적 소멸의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체험들이 반드시 보이지 않는 세상과 우주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4차원의 영계와 카르마에 대하여 어설프게 이해한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혹시 받게 될지도 모르는 상이나 벌에 연연하는 삶을 살기도 하였고, 소위 수행이라 불리는 행위에 크게 집착하기도 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깨달음'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에너지적 체험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터득하기도 하였지만, 그들 역시 지구를 넘어선 우주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세상이 크게 하늘과 땅과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들이 인식한 땅은 3차원 물질세계이고, 그들이 말하는 하늘은 4차원 영계를 지칭한 것에 불과하다.

이 장에서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이제까지 지구상에는 수많은 깨달은 존재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깨달음은 한계가 있었고, 그들 중 아무도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다. 그것은 지구가 과거에 대한 완전한 망각 속에서 체험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앞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만약 사람들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상태에서 육체적 체험을 하였다면, 배움의 효과는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기나긴 망각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고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가 되었다. 제 3부에서 자세히 밝히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와 같은 배움의 장으로서 지구의 역할은 끝이 났고, 또 지구에서 머물러 왔던 학생들은 이제 짐을 꾸려 자신에게 맞는 다른 별로 옮겨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환생제도

지구가 물질화된 레무리아 말기 이후, 지구상 모든 존재들의 삶은 더 이상 연속적이지 못하였고, 인간은 끊임없이 환생을 반복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구는 그때 이후로 모든 존재들에게 3차원의 물질세계와 4차원의 영계를 왕복하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엄격한 배움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로 새로 진입하는 모든 존재들은 물론 물질세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존재들은 일단 영계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다양한 준비를 거쳐 다시 물질세계로 환생하는 제도가 정착된 것이다.

그런데 영계는 물질세계에서의 힘든 체험 뒤 편안히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영계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부정확하고 극히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영계를 극락이나 천국 혹은 하느님과 천사들이 머물고 있는 하늘나라로 상상하기도 하고, 희뿌연 유령들이 소리 없이 배회하는 세상 혹은 뭔가 어두침침하고 암울한 세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염라대왕이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고 호령하며 지상에서의 행위에 따라 상벌을 주는 곳으로 상상하기도 한다.

정신세계에 대한 정보들이 대체로 그러하지만, 영계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고, 유체이탈 혹은 명상 등을 통하여 직접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보았다고 하는 세상은 실제 펼쳐져 있는 영계의 극히 일부이거나 인간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허깨비 세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가 물질화된 근본 원인은 진동수와 의식이 상이한 존재들을 다 함께 지구에 수용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3차원 물질세계에서는 모든 인간이 육체라는 껍질을 둘러쓰게 됨으로써 이 문제는 해결되었다.

반면 비 물질세계인 영계에서는 진동수가 다르고 기질과 특성의 측면에서 다양한 존재들을 같은 공간에 함께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동수가 다른 5개의 층 혹은 다섯 하늘(天)로 먼저 나누고, 각 층에는 고유한 특징을 가진 다양한 세계들이 만들어졌다. 일부 고차원 존재들의 경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영계에서 머무르는 곳이 결정되지만, 다른 모든 존재들은 물질 지구에서의 체험이 끝나면 자신의 고유 진동수와 인연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특성에 맞는 사후세계로 인도되어 다음 환생 시까지 머무르게 되었다.

이렇게 펼쳐져 있는 영계의 각 하늘, 각 세계들에는 나름대로의 규칙과 질서가 있고, 그곳에서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흔히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역할, 즉 죽음을 맞이한 자를 영계로 인도하거나 영계에서 물질 세상으로 다시 내려 보내는 역할을 하는 존재도 있고, 육체를 방금 벗은 존재들로 하여금 지상에서의 삶을 반추하게 하면서 의식성장을 유도하는 상담사 역할도 있으며, 다음 생의 설계를 도와주는 인생설계자의 역할도 있다.

각 층에는 그곳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존재들이 있으며, 그들은 지구 전체 관리자인 가이아를 도와주는 역할을 해 왔다. 이들은 4차원 지구는 물론이고 3차원 물질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관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운영자들이 물질 지구를 관리하는 방식은 다른 별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대다수의 별에서는 거주하는 존재들 상호간의 토의를 거쳐 일단 결정된 사항들은 관리자에 의하여 그대로 시행되지만, 모든 존재들을 받아들여 스스로 체험하게끔 운영되어온 물질 지구의 경우, 그 특수한 성격으로 인하여 관리는 간접적으로 그리고 보다 은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물질 지구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체험의 장으로서 운영되어 왔고, 따라서 물질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그것은 환생한 존재들의 집단적 자유의지에 의하여 결정되어 왔으며, 인간 세상에 대한 가이아의 개입은 최소한의 범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구의 흐름이 극히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다시 말해, 체험을 통한 스스로의 배움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될 때, 영계에 머무르는 프로젝트 사명자들로 하여금 특정 역할을 맡아 환생하게 함으로써 물질세계의 흐름을 바로잡도록 시도하였다. 이 경우에도 환생한 존재들의 자유의지가 우선시되는 물질 지구의 특성상 보다 적극적인 개입은 시도되지 않았으며, 또한 지구관리자 가이아의 의도나 환생한 프로젝트 사명자들이 본래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환생한 지구인들이 자꾸만 물질에만 빠져 들어가고 자신의 근원을 잊어 가는 사태를 우려하여, 가이아 운영자들은 프로젝트 사명자들을 수시로 영적 스승들로서 환생시켜 물질세계로 보내었다. 그들이 활동하는 시절에는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는 듯이 보였지만, 그들이 영계로 복귀한 뒤 사람들은 다시금 시기, 질투, 그리고 극도의 이기심 속에서 서로 불화하고 반목하는 삶으로 되돌아가곤 하였다.  오히려, 그들 영적 스승들의 고귀한 가르침을 잊지 않고 대대손손 전달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종교를 만들고 교리를 만들게 되어 대중들을 이전보다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영계는 지상에서의 다음 생을 준비하는 예비학교 역할도 한다. 레무리아 대륙의 침몰, 아틀란티스 제국의 멸망 그리고 대홍수 등의 지구 역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지구의 인구는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하였다가 다시 급감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존재들에게는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영계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었고, 환생의 기회는 결코 흔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상으로 환생하는 귀중한 기회가 주어질 때 최대한의 배움을 얻고자 영계에서는 많은 준비들이 행하여져 왔다. 다음 환생시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짜고, 그 인생을 살면서 보다 큰 의식상승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또한 물질 세상에 비해서 그 강도는 떨어지지만 영계에서의 삶 역시 각자의 의식을 확장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영계에서 머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의식성장을 위해 지구에 온 많은 존재들에게 매우 중요하였다.

그런데 지상으로의 환생은 대체로 집단 환생의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다시 말해 환생은 이미 전생 등을 통해 서로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이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 집단적으로 태어나 서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란 미리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러한 체험그룹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 이전의 생에서 만들어진 카르마를 해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되는 측면도 있었다.

 

한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다양한 형태의 카르마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하여 관련된 영혼들과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카르마가 없었던 다른 존재들과 또다시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게 되는 일이 생겨 그들과 다시 환생을 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한 영혼이 환생할 때 자신의 체험 그룹과 함께 환생하는 것이 보통이고, 이런 현상을 일부 문헌에서는 집단 환생이라고 불러 왔다.

일반적으로 업보(業報) 혹은 카르마(Karma)란 한 생을 살면서 상대방에게 끼친 정신적, 물질적 피해나 고통에 대해서는 다음 생에서 되돌려 받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보시(布施) 혹은 베품에 대해서는 다음 생에 보상을 받는 현상으로 알려져 왔다. 많은 수행자들은 이것을 단순히 인과응보(因果應報) 혹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의미로 받아들였고, 이번 생을 즐겁고 여유 있게 살 수 있는 것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고, 이번 생을 큰 고통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은 전생에 뭔가 큰 잘못을 했기 때문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이렇게 카르마(Karma)라고 불리는 현상은 존재하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잘못 이해되어 왔다.

카르마는 사실 지구가 물질화되고 환생제도가 도입되면서 생긴 중요한 환생규칙의 하나로서, 보다 철저한 배움과 자신의 언행에 대한 책임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한 생에서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큰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고 회한을 품었다거나 큰 기쁨과 감사를 느꼈다면, 다음에 오는 어떤 생에서 관계된 영혼과 반대되는 상황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철저한 배움은 특정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상황도 직접 경험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르마는 처음에는 특정 영혼과의 관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생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동물들을 학대하였다면, 다음 생에서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확실히 배울 수 있는 가장 적당한 형태의 생명체, 다시 말해, 자신이 전생에서 가장 학대한 동물로 태어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카르마는 에너지적 관점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해 감정 에너지가 축적되었다면, 그 에너지는 특별한 계기로 그것이 풀려나가지 않는 한 자신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한 개인 혹은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와 원한으로 사무친 인생을 산 영혼은 그런 감정 에너지를 다량 축적하게 되고, 그 결과로 다음 생에서의 마음과 행동은 그렇게 쌓인 에너지의 영향을 자연히 받게 된다. 따라서 한 영혼이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응어리진 감정 에너지가 풀려나야 한다.

카르마 제도란 특정의 생에서 감정 에너지를 쌓이게 만든 상대방을 다음의 생에서 다시 만나 그 반대되는 상황을 체험함으로써 쌓였던 감정 에너지를 풀려 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축적된 감정 에너지가 풀려 나가는 현상을 일부 수행자들은 '해원(解怨)'이라고 불러 왔다. 일단 형성된 감정 에너지가 한번 생의 경험으로 충분히 풀려 나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충분히 해소될 때까지 다음 생에서도 반복해서 일어나게 된다.

일부 수행자들은 인생이 카르마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인생을 살면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카르마를 발생시키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의 인생에는 개인적 체험의 차원을 넘어선 특별한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기도 하고 또 그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히틀러나 스탈린은 그들의 활동 당시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이것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경우 카르마 제도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개인적 차원의 카르마 뿐만 아니라 민족적 카르마, 국가적 카르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카르마란 어디까지나 철저한 배움을 위하여 개별 영혼에게 적용되는 제도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은 스스로 배우는 학습 프로그램, 즉 영계에서 미리 예습을 한 뒤 환생규칙을 따라 물질세상으로 나와서 다양한 체험을 하고 그리고는 다시 영계로 돌아오는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삶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에서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완전히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학생으로 와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경우 환생에 대한 확실한 인식만으로도 인생은 크게 달라지게 되고 인생의 고통은 크게 줄어들지만, 지금까지는 그러한 자각이 자신의 배움을 방해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들을 강렬하게 체험하면서 배움을 이루어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학업을 완전히 끝마치기 전까지는 자신이 학생이라는 확실한 깨달음은 허용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존재

 

어릴 적에 개에게 물려 심하게 고생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은 평생 개를 무서워하게 되고, 익사 직전에 구조된 사람은 물에 대한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깊이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은 성장하여 사람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지만, 반대로 서로 불신하는 부부 사이에서 성장한 아이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특히 이성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게 된다. 월남전 참전 용사들 중에는 전투 당시의 상황이 악몽으로 되살아나 오랫동안 불면증이나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가 흔하고, 대형참사의 생존자들은 한동안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과거의 기억들이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은 정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릴 적에 썩은 복숭아를 먹고 크게 고생한 사람은 평생을 복숭아 알레르기(Allergy)로 고생하게 된다. 썩은 복숭아로 인한 고통의 기억이 무의식의 수준까지 침투하여 이후에 복숭아 냄새만 맡아도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고양이털로 인해 심한 고생을 해 본 사람은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있는 고양이의 존재를 자신의 재채기를 통해 금방 알아낸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에게 기억된 과거 경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살아가지만, 여기서 과거의 기억이란 이번 생에서의 기억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생에 체험한 사건들과 그 때의 감정들은 모두 오라(Aura) 속에 기억되어 있고, 오라 속에 저장된 기억들이 이따금씩 강한 '느낌'으로 다가와 고통이나 슬픔 혹은 그 밖의 다양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물론 이 경우 자신의 표면의식은 자신이 왜 그러한 감정을 경험하는지 알지 못한다.


전생의 기억들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들은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전생의 기억이 직접 육체적인 고통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육체적으로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수시로 오른쪽 어깨의 강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의 경우, 최면을 통해 전생퇴행을 시켜보니 어떤 전생에서 오른쪽 어깨에 독화살을 맞고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어갔음을 알게 되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이야기이다. 그 통증에 대한 강한 기억이 이번 생에도 이따금씩 느낌으로 나타나 병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질환, 즉 병원에서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지만 몸의 다양한 부위에서 나타나는 통증들 혹은 현대 의학에서 소위 신경성 혹은 정신성 질환이라고 진단하는 많은 것들은 전생에서의 체험과 연관이 있다.

 

또 다른 예로서 어떤 대상 혹은 환경에 대하여 느끼는 특별한 공포감(Phobia)을 들 수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나 밀폐된 장소에 대한 두려움 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대개 전생에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었거나 고통 받았던 기억들 그리고 동굴에 갇혀서 크게 두려워했던 기억들 때문이다. 또한 물이나 불, 혹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대인공포증) 등도 어릴 적의 경험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고통스런 전생의 경험이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2004년 여름 저자가 미국 LA지역을 방문했을 때, 가슴 높이까지 오는 물 속에 들어가면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는 한 여성을 만났다. 전생퇴행을 시켜 본 결과, 그녀는 약 500년 전 태국에서 살았고, 어릴 적에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큰 홍수로 인하여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떠내려가는 것을 큰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지켜보았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렇게 전생과 관련된 질환의 경우, 그것이 자신의 전생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혹은 완전한 치유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어깨 통증 환자의 경우, 전생퇴행을 통하여 전생에 그러한 사실이 있었음을 본인이 확실히 알기만 해도 그 통증은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오른쪽 어깨의 통증이 과거 생의 것이고, 이번 생에는 그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음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어 자연히 치유되는 것이다.


둘째, 전생의 기억은 현생의 대인관계 및 사물에 대한 선호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체험을 위해 계속되는 물질세계로의 환생은 주로 과거 생에 인연이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일어나는데, 전생에서의 특정인과의 관계는 이번 생에서는 비록 완전히 다른 모습 및 다른 환경 속에서 만난다고 하여도 이번 생에서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외견상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에게 크게 끌린다든지 반대로 어떤 사람으로부터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든다면, 그것은 관련된 전생의 기억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어떤 문화, 스타일, 지명, 혹은 음식에 강하게 끌린다면 그것 역시 전생에 특정 지역에 살면서 그것에 이미 익숙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전생에 이집트에서 산 적이 있었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이집트 풍의 머리와 의상을 하고 다니고, 전생에 동양에 살았던 서구인은 이번 생에 이유도 모른 채 동양인을 좋아하고 동양 문화를 흠모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전생의 기억은 이번 생에서의 성향 및 기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생에 여자로서 산 적이 많았다면 이번 생에 비록 남자로 태어나 활동하고 있어도 여성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고, 전생에 주로 남자로 채어났던 여성은 강한 남성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전생에 전사 혹은 무사로서 여러 번 활동했던 사람은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 석가의 활동 당시 제자였던 사람은 석가에 대한 끌림으로 그 이후의 생들에서 주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고, 세례 요한이나 예수의 활동 당시 제자나 수행자로서 살았던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와 인연이 깊은 전생들이 많다. 또 전생에서 동물로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 생의 기억으로 인하여 특정 동물의 성향 혹은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 식물로 존재했던 기억이 있었던 경우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유별나게 식물들을 좋아하고 자연에 끌리게 된다.

 

셋째, 전생의 기억은 특별한 능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인간의 오라에 저장되어 있는 전생의 기억들은 명상이나 참선 혹은 꿈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또 아주 특별한 경우 그것을 직접 기억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전생에서의 학문적 지식 등은 어릴 적에 일시적으로 기억되는 경우는 있지만, 나이가 들고 외부의 정보들이 대량으로 유입됨에 따라 완전히 망각된다.

 

반면, 전생에서 몸으로 익힌 것들, 예를 들어, 요가나 기공의 동작, 예술적 자질 혹은 운동 신경 등은 이번 생에서도 비교적 쉽게 재생된다. 두 번의 전생에서 화가로 살았고 특히 한번은 세계적인 화가로 명성을 얻었다가 환생한 한 사람은 이번 생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특별한 미술적 재질을 보여주고 있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한 여성은 고교 재학시절에 유독 기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전생에서의 체험이 강렬하면 할수록 그 기억은 강하게 남아있고, 따라서 현생에서 미치는 영향도 큰 것이 보통이다. 전생에서 너무나 사랑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별하거나 헤어진 경우, 그 상대방을 그리워한 기억과 함께 이별에 대한 아픔 또한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상대방을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사랑하는 감정이 강하게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그 사랑이 중단될 것 같은 불안감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저자와 직접 관련된 한 사례를 들자면, 이번 생에 여성으로 태어난 한 사람은 약2,000년 전에도 한국의 동해안 바닷가 한 어부의 딸로 태어났고, 18세가 되는 해 전생에서 저자와 처음 만나 후 3년간 깊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확실한 이유도 모르는 채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락은 갑자기 두절되었고, 이후 평생을 수절하면서 살다가 48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는 이번 생에 저자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헤어짐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 두려움은 한동안 그녀 자신을 괴롭히고 또 저자와의 관계를 매우 힘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생활하다 갑자기 전생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거나 명상이나 참선 혹은 꿈을 통해 전생의 장면들을 생생히 보기도 한다. 저자는 최면을 통한 전생퇴행 중 전생에서 쓰던 언어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보았고, 전생의 특정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한 말을 그대로 재생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특히, 최면을 유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생 의식으로 바뀐 채 그 의식 속에서 며칠 동안 생활하는 것을 지켜 본 적도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지나온 모든 것에 대한 기억들을 항상 간직하고 있고, 전생의 기억 혹은 전생의 인격체들은 특별한 자극이 주어지면 언제든 다시 표면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전생에서 살았던 장소를 방문하는 경우, 그곳에 남아 있는 자신의 에너지가 오라 속의 기억을 자극하거나 증폭시켜 전생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는 비교적 흔하다. 지난 여름 저자는 미국 서부의 그랜드 캐년(Grand Canyon) 부근의 초원을 자동차로 달린 적이 있었는데, 동행하였던 대학생인 딸은 자동차 속에서 자신이 그곳에서 산 전생을 한편의 영화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수한 삶을 살아오면서 체험한 모든 것은 인체 오라에 저장되어 있지만, 어떤 기억은 특히 강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약 1년여 전에 '레무리아의 기억'이라는 글을 써서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는데, 그 글을 읽은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펑펑 쏟거나 눈시울을 적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레무리아' 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사명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잠을 설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레무리아 시대에 살았던 기억 혹은 가이아 프로젝트 사명자로서의 기억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생의 기억은 두뇌에 직접 남아 있는 현생의 기억과 더불어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강도 면에서는 이번 생에서의 체험들이 전생의 체험들보다 더 강력할 수 있지만, 전생의 기억은 현생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고 또 그 영향력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에게는 현재의 인격체뿐만 아니라 전생의 여러 인격체들이 공존하고 있고, 특별한 경우에는 과거의 인격체들이 자주 표출되는 경우,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분열증, 다중인격장애 등의 정신질환으로 진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부 수행자들이 전생을 단순히 지나온 과거 혹은 현재의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하나의 기억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 기억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통해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생의 기억들은 현생의 기억들과 더불어 바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고, 따라서 인간이란 지나온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외부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만약 외모가 완전히 다른 두 존재라고 해도 그들에게 저장된 기억이 같다면 동일한 존재이고, 반면 일란성 쌍둥이와 같이 외모 등이 아무리 똑같다고 해도 간직된 기억이 다르다면 서로 다른 존재인 것이다.

 

계획된 삶을 살아가는 체험자

 

지금까지 각 존재는 영계에 머무르며 다음 환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준비해 왔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떤 성장과정을 거치며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누구를 만나서 어떤 체험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것인지를 설계하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때에 혼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전생들을 되돌아보고 향후 가장 시급한 체험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또 자신에게 어떠한 선택들이 있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

자신이 환생하려고 하는 시기에 3차원 물질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도 미리 알아야 하고, 새로 환생해서 풀어야 할 카르마가 무엇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또한 인생 설계를 위해서는 관련되는 환생규칙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계획은 반드시 상대방 영혼의 동의를 미리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특정 역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의식을 가진 존재가 아니면 수행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모든 것들이 고려되어 이루어지는 인생의 설계는 개별 영혼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4차원 영계에서 활동하는 인생설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인생의 설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들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떤 부모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육체적 유전인자가 결정되고, 따라서 체질 등의 신체적 조건이 큰 영향을 받는다. 또 어릴 적 가정형편을 비롯한 가정교육, 학교교육 등 유년시절의 기본적인 환경이 결정되는데, 이는 자신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성격 및 관념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는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되었던 관념과 지식 등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볼 때, 내가 누구를 부모로 하여 태어나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날 많은 부분을 설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인생의 골격은 부모에 대한 선택과 "우연"이라고 불리는 인생의 다양한 계기들로 짜여지게 된다.

 

고된 육체적 삶을 살아가는 일부 수행자들은 힘들고 고통스런 인생을 어떻게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망각한 채 물질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극히 자연스런 질문이지만,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런 의문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지구라는 배움터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체험하는 것이고, 그 체험을 통해 하나하나를 배워나가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체험 속에서도 그리고 실패라는 체험 속에서도 배움은 이루어지지만, 즐겁고 기쁜 체험보다는 슬프고 괴로운 체험 속에서 더 큰 배움이 이루어진다. 육신이 없는 영계에서 자신의 다음 인생을 설계할 때는 기본적으로 배움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육신이 받을 고통이나 인간적 행복에는 초점이 두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보다 시급히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큰 슬픔과 고통의 체험도 인생의 각본 속에 삽입되는 것이다. 고려해야 할 다른 많은 요소들도 물론 있지만, 주로 의식 성장의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겪었던 체험들을 고려하여 다음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수련을 통해 몸이 많이 열린 사람들은 물론이고 특별한 수련을 한 적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도 이따금씩 기시감(旣視感)을 경험한다. 이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떤 장면을 보면서 과거 어느 때에 본 것을 다시 보는 듯한 혹은 과거에 경험한 것을 경험하는 듯한 강한 느낌을 갖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기시감은 다양한 이유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인생이 설계되는 과정에서 미리 본 미래의 장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그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여기는 수행자들까지도 자신이 스스로 인생을 미리 계획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또 한 사람의 인생만을 보아도 한평생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어떻게 인생이 미리 계획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특히 특정인의 인생이 미리 설계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게 되는 기간 동안의 미래가 거의 완전하게 예측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 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물론 일부 수행자들은 미래에 일어날 장면을 꿈이나 명상 중 스스로 보기도 하고 또 상당한 예지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발견하면서, 미래에 대한 예지 혹은 예언은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미래를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하지만 우주의 운행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고차원 우주에서 미래의 예측이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간의 오라를 논의하면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 존재가 체험한 모든 기억은 자신의 오라 속에 저장되어 있고, 나아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 역시 빈틈없이 기록되고 또 필요한 경우에 즉시 재생될 수 있다. 한 존재의 지나온 기억들을 알고 또 그 기억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이해하게 되면, 그 존재가 삶의 특정 순간순간에 만들어 낼 결정들을 미리 알 수 있다. 따라서, 특정의 영혼을 위한 인생을 설계할 때, 어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것인지,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우연한(?) 일들이 일어나게 할 것인지 등이 결정되면 그 인생은 거의 완전히 설계되는 것이다.

 

물론 인생을 미리 설계한다고 해도 실제의 인생이 모두 계획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는 오라 속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기억들이 희미하게 느낌으로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기억들이 인생의 의사결정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는 불확실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소위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불리는 것이 육신을 입은 인간에게는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접하게 되는 사념체 등 외부에너지도 인생을 본래의 계획에서 빗나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제6장 참조). 이런 이유 때문에, 인생이 설계된 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른 한편, 영계에서 인생이 설계될 때에는 인생의 여러 변수들로 인하여 예측된 길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미리 고려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계획한 인생을 살다가 죽게 된다. 특히 내면의 느낌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계획된 길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어떠한 인생이 설계되든, 각자에게는 영계에서 미리 계획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의식성장의 측면에서는 최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내면의 느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개인적 차원의 미래는 본래의 계획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도 있지만, 인생을 살면서 특별한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들에게는 본래 예정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적 가이드가 와서 보호하거나 그들의 삶을 인도하게 된다. 특히 지구 프로젝트와 같은 우주의 대규모 계획에는 본래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돌발적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수많은 고차원의 존재들이 신명(神明), 즉 에너지체로 와서 활동하게 된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온 프로젝트 사명자들이 본격적으로 일을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담당신명'들은 그들이 각각 예정된 길을 갈 수 있도록 철저히 보호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독특한 지구 에너지의 체험자

 

지금 지구에는 자신의 진동수 및 지구에 온 목적의 측면에서 매우 상이한 존재들이 다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진동수의 측면에서 볼 때는 우주 근원의 진동수(10차원)부터 1차원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차원의 존재들이 다 모여 있다. 또한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의 측면에서도 매우 다양한데, 가이아 프로젝트 사명자로서 지구의 생성, 운영, 관리 및 지구대변혁의 사명을 위하여 지구로 파견되기도 하였고, 지구의 독특한 에너지를 즐기며 다양한 체험을 하기 위하여 혹은 아름답고 푸른 지구에 끌려서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단 지구에 들어오면 누구든 지구에너지와 연결된 채 그 속성들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지구는 애초에 은하계 전체의 의식상승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탄생된 별이기 때문에 다른 별에는 없는 지구만의 특별한 에너지가 있고, 따라서 지구에서의 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배움에는 다른 별들과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지구에너지는 우주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허용한다. 지구에너지 장(場) 속에서 행하여진 모든 것은 용납되고 이해되고 또 용서되며, 이는 물질 지구에서 행한 어떤 일 혹은 어떤 행위로 인하여 미래에 불이익을 받거나 징벌을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지구는 이곳에 머무르는 존재들의 의식상승을 위한 완전한 체험의 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가 있었다. 체험을 통해 배움 즉 의식성장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지구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체험들에 대해서도 가치를 평가하거나 잘잘못을 논할 수 없고,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미리 판단될 수 없다.

 

배움은 소위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마음과 언행을 통해서도 일어나지만, 나쁘다고 이야기되는 마음과 행위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소위 자선행위를 통하여 사람들에 대한 배려, 사랑, 이해의 중요성을 터득할 수도 있지만,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해 상대방을 공격하고 해치는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배움은 얻어질 수 있다.

 

또 심한 미움과 증오의 감정을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고 관용과 자비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러한 지구에너지로 말미암아,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체험을 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뿐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인생에서의 성취란 별다른 의미가 없다. 배움은 인생의 성취 혹은 성공을 통해서도 일어나지만, 실패를 통해서 더 큰 배움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구가 그 동안 모든 것을 수용해 왔다고 해서, 지금까지 지구에서 일어났던 별별 일이나 행위가 지구적 관점 혹은 우주적 관점에서 바람직하거나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인간으로 살면서 가족과 이웃을 못살게 굴고 사람들을 증오하는 행위는 어떤 기준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지구라는 체험의 장에서는 그런 행위를 직접 행하여 봄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행위조차 용납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행하는 행위가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생생하게 자각하고 또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책임감을 배워간다는 점에서 그런 것들이 허용되는 것일 뿐이다.

지구 에너지의 또 다른 특징은 근원과의 연결성이다. 우주의 모든 것은 근원의식으로부터 펼쳐진 것이고, 따라서 모든 존재들은 근원을 닮고 또 근원에 가까이 가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근원과의 연결성은 다양한 역할과 체험 속에서 살아가는 우주의 대다수 존재들에게는 일상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구에너지에는 모든 존재들을 근원으로 향하게 만드는 독특한 정보가 있고, 따라서 사람들이 지구에너지와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근원에 대한 그리움과 가까이 가고 싶은 염원을 품게 된다.

앞장(제4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수리에 있는 일곱 번째 차크라 위쪽에는 지구에너지와 통할 수 있는 차크라가 있고, 따라서 자신의 의식이 확장되면 지구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다. 구도자나 수행자들 중에는 깊은 명상 상태에서 소위 우아일체(宇我一體) 즉 '자신이 곧 우주이고 우주가 곧 자신임을 느끼는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의 의식이 일시적으로 크게 확장되어 지구에너지와 연결되어 일어나는 체험이다. 지구에너지와의 연결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자신을 비롯한 우주 만물은 모두 우주의 근원에서 비롯되었고 또 그 근원과 항상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레무리아 시대 이후 지금까지 지구가 특별한 배움의 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구만의 특별한 에너지 즉, 모든 것을 수용하고 근원으로 향하게 하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구는 그 동안 완전한 체험의 장으로서 운영될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존재

 

많은 사람들은 삶을 통해서 경험하는 고통과 슬픔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 찾는 경향이 있다. 부모를 잘못 만나 자신의 인생이 이 모양으로 되었고, 직장 상사 혹은 부하직원이 잘못 판단해서 영업실적이 나빠졌고, 친구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져 버렸으며, 스승이 잘못 인도하여 자신이 아직도 미혹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에 빠지거나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은 인생에 대한 극도의 회의 속에서 그 동안 신앙해 왔던 하느님 혹은 부처님에 대한 원망을 쏟아 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신은 죽었다고 화형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수련이 많이 된 사람일수록 자신의 인생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지지만, 인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어서 느끼는 답답함은 여전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비난 받아야 할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기 자신일 뿐이고, 다른 누구도 아니다.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인간이란 과거에 축적된 기억들을 바탕으로 반응하는 존재로서, 자신이 이제까지 어떠한 체험을 하면서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에 따라 한 의식체로서의 모든 것, 예를 들어, 기질, 성향 등은 물론 의식수준까지 결정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규정짓는 오라에 저장된 기억들은 아무런 방향성 없이 우연히 혹은 무작위로 축적 되어진 것이 아니다. 한 생에서의 체험과 그 다음 생에서의 체험은 자신의 설계에 의하여 진행되고 또 이루어져 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를 형성해 온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지구에 와 있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지구에 억지로 와 있었던 존재는 아무도 없으며, 모두 지구의 체험자로서 스스로 선택해서 왔고 또 스스로 원했기에 계속 머물렀던 존재들이다. 모든 배움의 과정에서도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어 이루어져 왔고,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존재의 탓으로 돌릴 만한 것은 전혀 없다.

육체적 삶을 시작하기 전 인생을 설계할 때 영계에 있는 인생설계사의 조언을 받지만, 인생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다. 또 실제 육체적인 삶을 살 때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계획에서 벗어난 인생을 사는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순간을 얼마나 집중해서 살아가고 얼마나 의식상승을 이루는가 하는 것까지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약 물질세계에서의 체험이 싫으면 환생하지 않고 영계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각자에게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른 누구에게도 인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