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휘용/가이아 프로젝트

가이아 프로젝트 제7장 의식의 성장

기른장 2020. 12. 20. 19:35

제7장 의식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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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을 전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람들의 경쟁심을 끝없이 부추기고 있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지구상에 한 때 실험되기도 하였지만 그것 역시 변질되었고,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세상은 완전한 물질 위주의 경쟁사회로 탈바꿈한 채 물질적 성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향유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사람들의 이러한 사고(思考)와 행위는 경쟁을 극대화하는 시장경제와 어우러지면서 큰 물질적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데 다수의 수행자들 역시 이러한 경쟁 논리를 은연중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 사회란 어차피 경쟁이고, 따라서 개개인의 수행 역시 경쟁을 통해 보다 빨리 진척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일반인들과는 달리 영적 세계를 인식하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수행하여 보다 높은 의식의 경지, 보다 큰 깨달음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부 수행자들 특히 뉴에이지 성향의 사람들은 우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인간 사회를 혐오하고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신(神)이고 우리 모두는 하나임(Oneness)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는 일반 대중들이 권력과 권위에 의하여 항상 일방적으로 짓밟히고 이용당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류 역사를 기억하고 또 반성하는 일부 수행자들이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성향을 나타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물질적, 세속적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한 쪽 극단이라면 모든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다른 쪽 극단일 뿐이다. 지구상의 인간 사회를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사회에도 어떤 근원적 혹은 원초적인 힘이 있고, 그 힘에 근거하여 사회 질서는 유지된다. 이제까지 지구상의 인간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적인 권력과 종교적 권위가 그 힘을 제공하였지만, 우주는 지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힘에 의하여 조화롭게 운영되어 왔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근원적 질서 혹은 우주의 형성과정에서 자연히 형성된 영적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앞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고, 언제,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체험들을 쌓아 왔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가 결정된다. 특히 자신을 탄생시킨 상위 의식과의 관계는 결코 바뀔 수 없다. 예를 들어, 근원의식 즉 10차원의 존재로부터 직접 나온 9차원의 존재는 근원의식의 한 분신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을 빠르게 성장시켜도 자신은 결코 10차원의 존재가 될 수 없고 언제나 근원의식의 한 부분으로 머무르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다른 수준의 의식들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따라서, 지구에서와 달리 우주에서는 뭔가 열심히 해서 상대방을 앞지르겠다는 것 즉 경쟁은 의미가 없고, 언제나 근원의식을 중심으로 확실한 영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존재들에게 그냥 느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으로서, 어느 누가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영적 질서는 언제나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까지 많은 수행자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진화, 의식상승 혹은 의식 확장의 개념은 새롭게 정리되어야 한다. 영적 진화 혹은 의식 확장이란 무한히 펼쳐진 세상을 계속해서 알아간다 혹은 앎을 증가시켜 나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결코 다른 존재들과의 상대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의식 확장은 자신과 직접 연결된 상위차원 존재의 자연적인 의식 확장을 가져오기 때문에, 의식 확장이 자신의 차원을 상승시키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이런 점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거나 불평을 하는 존재는 우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자신의 근원을 아는 모든 존재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면에서, 차원 상승의 기회가 주어지는 지구대변혁은 우주에서도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래 들어 인간의 의식수준과 의식의 확장에 대하여 수행자들 사이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 박사가 제기한 의식수준의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고, 의식의 확장 및 그것을 가로막는 관념들에 대하여 논의한다.

 

의식수준에 따른 차이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생성 이후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걸어 왔고, 따라서 자신만의 고유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질세계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오라에 저장된 기억들 대부분이 망각된 상태로 남아 있긴 하지만, 그 기억들은 느낌 등의 형태로 전달되어 자신의 사고와 의사결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어릴 적부터 같이 생활해 온 죽마고우(竹馬故友)라 할지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체험과 축적된 정보를 근거로 해서 형성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번 생을 살면서 획득하거나 주입된 지식, 관념 등이 똑같다고 해도 그 눈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즉,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의식수준'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정형화시키려고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의식수준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무력감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게 되고, 의식수준이 더 상승하게 되면 사랑과 기쁨 그리고 환희를 체험하며 절대적 평화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의식수준이란 곧 진동수의 수준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축적된 체험량 혹은 기억량의 수준을 의미한다고 볼 때, 의식수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떤 존재가 다른 우주에서건 혹은 지구에서건 많은 체험을 쌓아 왔다면, 쌓아 온 것만큼 우주의 근원에 더 가까이 접근했음을 의미하고, 따라서 더 많은 체험을 쌓은 존재일수록 조화를 중시하고 다른 존재들에 대한 우애를 더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비록 물질화된 지구일망정 의식수준이 더 높은 존재가 조화와 평화 그리고 이웃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한편, 의식성장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이 특정의 공통적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또한 사람들의 언행이 그들의 의식수준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향이나 언행이 대체로 그들의 의식수준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많은 체험을 통해 많은 정보를 수용하여 의식수준이 높다고 하여도 그 영혼이 주로 부정적, 폭력적인 체험들을 통해 성장해 왔다면 그의 언행은 자연히 부정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반면, 어떤 영혼은 비록 축적된 체험이 적고 받아들인 정보량이 적어서 의식수준이 낮다고 해도 주로 긍정적이고 밝은 체험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의 언행은 긍정적이고 훌륭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성향 등을 기준으로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의식이란 긍정적인 체험을 통해서도 그리고 부정적인 체험을 통해서도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정인에게 나타나는 성향이 주로 이번 생의 교육 혹은 가정환경 등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 성향은 전생에서의 체험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고차원의 우주에서 온 존재들의 경우 자신이 오래 동안 머물렀던 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플레이아데스(Pleiades) 별에서 오래 머물렀던 존재들은 대체로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성향을 많이 보이고, 반면 시리우스(Sirius)별 출신들은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합리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는 플레이아데스가 보살핌, 배려 등을 강조하는 따뜻한 여성적 별인데 반하여 시리우스는 은하계 본부가 있는 행정적인 성격의 별이기 때문이다.

 

의식수준의 차이는 사람들에게 확연히 드러나는 외견상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발생시킨다. 의식의 차이가 아주 크다면 세상에 대한 근본적 인식(물질 vs. 비물질)에서부터 시작하여 이기심, 시기, 질투, 사랑, 배려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겠지만, 어느 정도의 의식수준 차이는 외견상의 특징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의식수준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자세, 다시 말해, "가능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우주에서 그리고 지구에서 많은 체험을 축적한 존재는 자신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것에 관련된 기억을 자신의 오라 속에 저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설령 이번 생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볼 때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정보라고 해도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남겨 놓는다.

 

반면, 전생의 기억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은 보다 쉽게 판단을 내리고 보다 단정적인 성향을 보인다. 이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의 이해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정보가 들어 올 때 그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자신에게 극심한 혼란이 초래되고 심한 경우 정신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의식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정보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되고, 이 때문에 낮은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체로 분별이 더 심하고 보다 단정적인 태도를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의식수준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의식수준을 고귀함의 정도 혹은 존재가치로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높은 차원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는 낮은 차원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보다 더 가치 있고 더 훌륭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진동수가 높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것이 존재가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주에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고, 그 모든 존재들의 역할이 있음으로 해서 우주는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다. 단순한 역할은 대체로 낮은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의 몫이지만, 그 역할이 단순하다고 해서 덜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의식의 확장

 

수행자들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언제나 의식 성장과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수행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행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장시간의 참선이나 명상, 고행 혹은 보시(布施) 등을 통해서만 영적 진화가 이루어지고 또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반면, 희로애락의 감정들에 묻혀 지내는 일상의 삶에서는 의식상승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심지어는 그런 일상생활을 통해 자신의 의식은 오히려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식의 확장이란 앎의 증가에 따라 축적되는 정보량이 많아지고 또 그에 부합되는 보다 높은 진동수로 옮겨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식의 확장은 수행이라고 일컬어지는 행위뿐만 아니라 매 순간 체험하는 모든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수행이란 삶 바로 그 자체이고,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되고 기억되는 모든 것은 의식을 확장시킨다.

 

의식 확장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삶을 사느냐 혹은 어떤 인생을 사느냐가 아니라, 삶의 순간 순간들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삶의 매 순간에 집중하면 할수록 더 강렬한 체험이 일어나고, 이는 더 강한 기억으로 남아서 자신의 의식을 더 크게 확장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슬픔과 고통이 다가오고 있을 때 그것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말고, 그것을 더욱 강하게 체험하면 할수록 의식은 더 많이 성장하는 것이다.  반면, 지나간 과거를 끊임없이 반추하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 잡혀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면, 시간은 흘러도 체험은 잘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의식 확장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전해지거나 개발되어 온 많은 수행법 혹은 수련법들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들 중 많은 것은 인간과 의식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오직 인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수행이란 마음을 닦는 것이고 또 그것이 의식상승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단순히 생각한 채,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마음수련을 위해 일부 수행 단체에서는 모든 기억들을 지우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축적된 기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고, 인간의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말살시킴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러한 노력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사실 인간의 기억 중 감정들은 정화되고 해원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기억의 핵심, 즉 체험을 통하여 얻은 귀중한 앎까지 지운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런 수련을 집중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느껴지지 않고 모든 생각이 중단되며, 그 동안 자신을 내내 괴롭혀왔던 감정들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온갖 기억들 특히 감정까지도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한다. 이런 종류의 억지스런 수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에서 일어나는 새롭고 다양한 체험들을 방해하여 의식의 확장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양한 방법의 마음 수련을 통해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의식의 확장을 의미하거나 깨달음에 한 발짝 더 접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비교적 낮은 의식 속에서 머물러온 고차원 의식의 소유자는 일상의 삶 속에서 혹은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하여 갑작스런 의식 확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몸에 미세한 진동이 계속되고 어떤 에너지의 막에 둘러싸인 느낌 속에서 현실적인 감각은 희미해지며, 모든 것이 꿈인 양 여겨지고, 두뇌를 통한 사고 작용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계기로 높은 수준의 에너지가 자신에게 연결될 때 일어나는데, 이러한 체험들을 통해 고차원 의식의 존재는 평소의 낮은 의식에서 본래의 높은 의식수준으로 급속히 회복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목격하면서 일부 수행자들은 특별한 수련이나 영적 체험이 사람의 의식을 도약시키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일부 수행자들에게 일어나는 의식의 급격한 확장은 본래 자신의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지, 순수한 의미에서 의식 확장은 결코 아니다. 진정한 의식 확장은 체험을 통하여 앎이 축적됨으로써 아주 조금씩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일부 수행자들은 이번 생에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신이 영적으로 오히려 퇴보하는 것처럼 걱정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크게 잘못된 견해이다. 설령 이번 생에 자신의 본래 수준조차 회복하지 못한 채 낮은 의식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하여도, 그 존재에게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자신의 본래 진동수 즉 본래 의식이 저하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의식성장을 방해하는 관념들

 

인간의 의식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은 인간이 가진 다양한 관념이다. 정신적 껍질 혹은 의식의 껍질이라고 할 수 있는 관념은 세상을 보는 틀 혹은 고착화된 사고방식을 일컫는 것으로서,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제한하고 생각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한다.  어느 사회에나 도덕, 윤리 등의 이름으로 주입되는 각종 관계에 대한 수많은 관념들이 있다. 이들은 부부간의 관계, 부자간의 관계, 친구간의 관계, 이웃 간의 관계, 직장 상사 및 부하직원과의 관계 등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에 대하여 무엇이 바람직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성(Sex)에 대한 관념, 미(美)에 대한 관념 등도 주로 어릴 적부터 형성되거나 강제로 주입되고, 특정 종교를 가진 부모나 성직자들에 의하여 주입되는 종교적 관념은 인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들 대부분의 관념들은 어릴 적부터 학교 교육 및 가정교육을 통하여 형성되는데, 한 사람을 보다 훌륭한 학생, 보다 성공한 직장인, 혹은 보다 존경 받는 사회인으로 만들겠다는 주위 사람들의 욕심에 의하여 강제로 주입되는 것이 보통이다. 한 개인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사회 보편적인 관념과 일치할 때 그는 현실에 보다 쉽게 적응하는 반면, 그것이 사회적 관념과 충돌될 때는 현실에 대한 적응이 어렵고 갈등과 고통 속에서 인생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관념은 현실생활을 잘 영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체험을 제한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하여 의식의 확장을 억제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도덕과 윤리로 튼튼하게 무장한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보자. 그 사람은 자신의 관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보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즉각적인 판단이 일어나고, 자신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한번 판단한 것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덕 및 윤리와 같은 사회적 관념은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 정리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기 때문에, 주입된 관념에 의존하여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통째로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관념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 주는 것이 되고, 따라서 자신의 체험도 없고 의식 확장도 없는 것이다. 또한 설령 자신에게 형성된 관념들이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형성한 것이라고 해도, 그 효과는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가진 관념은 현재의 상황을 과거의 유사한 상황과 일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을 새로운 체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이 가진 관념 중 의식성장을 가장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은 정신세계에 대한 관념 혹은 종교적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오감으로 인지되지 않는 세계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경우 확실히 인지될 수 없고, 또 일부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전달되는 정보 역시 대부분 정확하지 못하다. 이렇게 불확실한 영적 세계에 대하여 각 종교 혹은 수련단체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교리 등의 이름으로 신도들에게 주입하고 있다. 일단 영적 세계에 대한 고정 관념이 형성되게 되면, 그 관념에서 벗어난 어떤 새로운 영적 정보를 접하거나 영적 체험을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따라서 의식의 확장은 어렵다.

 

사람들은 수많은 관념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각자의 의식은 그 관념에 속박된 채 좁은 공간 속에 갇혀 있게 된다. 보다 많은 관념, 보다 강한 관념을 가지고 있을수록 의식은 더욱 좁은 공간 속에서 묶여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은 관념의 노예이다. 자신이 가진 관념의 사슬에서부터 조금씩 풀려날 때 의식은 조금씩 확장된다. 자신이 가진 관념을 하나씩 깨뜨릴 때마다 의식은 더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고, 점점 더 많은 관념들을 깨부수게 되면 의식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은 더 넓어지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가진 모든 관념에서 벗어난다면, 그의 의식은 전 우주로 확장되게 되고,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는 대자유인 즉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