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존재의 의미
들어가기
이 장에서는 지금까지 논의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과 "존재"에 대하여 살펴본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고 그 다음에 인간을 논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지만, 인간에 대한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은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존재"를 먼저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인간에 대하여 먼저 살펴 본 다음(3, 4, 5장),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포괄적인 "존재"에 대하여 논의하는 순서를 취한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을 고찰하고 또 그 의미를 살펴보았지만,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는 깊이 논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구도자 혹은 수행자라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한다. 인간이란 곧 육체를 의미하고 자신의 몸이 자기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대다수의 수행자들은 인간의 본질은 언젠가는 소멸되어 없어져 버리는 육체가 아니고 결코 소멸되지 않는 어떤 비물질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영혼이라고 표현해 왔다.
일부 수행자들은 영혼을 영과 혼으로 분리시켜, 영이란 우주의 근원과 연결되는 보다 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혼이란 인간 개개인에게 국한되어 인생을 진행시키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질을 영혼이라고 해도 그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다양한 견해들이 난무해 왔다. 빅뱅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주가 어느 날 대폭발과 함께 펼쳐져 나올 때 무수한 영혼들이 한꺼번에 탄생하였다는 견해부터 시작해서, 영혼들은 생명체들이 새끼를 낳듯 차례차례 단계적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견해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일부 사람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진아(眞我)와 가아(假我)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구분해 왔다. 주로 인간의 육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속성들 즉 본능적이고 부정적인 인간의 속성을 '가아'라고 부르고, 뭔가 고귀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의 속성을 '진아'라고 불러 왔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가지는 사고와 행위들 중에서 무엇이 '진아'이고 무엇이 '가아'라고 구분하는 것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뭔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을 하고 행위를 하는 것은 진짜 나이고, 그렇지 못한 사고와 행위를 하는 것은 가짜 나라고 보는 것은, 자신에 대하여 책임지기 싫어하는 마음 혹은 인간에 대한 편향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진아와 가아의 구분은 자신이 속한 종교적, 문화적, 혹은 사회적 가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도 진아와 가아의 구분은 절대성을 지니지 못한 편의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모든 존재들의 본질은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즉,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인식하는 존재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고 그것은 점차 복잡한 것을 인지하는 수준으로 발전된다. 그러한 인식능력을 갖추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일반적으로 "의식" 혹은 "의식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먼저 의식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하고, 의식과 영혼의 차이에 대하여 살펴본다. 또한 인간과 동식물과의 관계 및 상위 자아와 하위 자아에 대하여 살펴보고, 인간세상에 큰 영향을 미쳐온 사념체의 존재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의식의 탄생과 진화
대부분의 구도자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주체가 마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마음을 통하여 순간순간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고 인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마음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질 수 있는데, 하나는 자신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어떤 수동적(受動的) 속성들, 예를 들어, 기분, 감정, 본능, 느낌 등으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는 것, 과거의 무수한 체험들에 대한 기억으로 말미암은 것 혹은 외부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일어나는 것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마음의 또 다른 측면은 각 개체의 고유하고 주체적인 의지를 발휘하거나 구현해 가고자 하는 능동적 속성인데, 보통 "의식(意識, Conciousness)"이라고 불리어져 왔다. 의식은 세상을 인식하고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혹은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포함한 '존재'의 본질은 바로 "의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의식의 탄생과 확산의 과정은 바로 우주의 생성과 전개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약 5,600년 전 태호 복희씨에 의하여 처음으로 제시된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의 우주가 펼쳐지기 전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절대 정적의 상태 즉 무극의 상태가 지속되었고, 아무런 의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텅 빈 절대정적의 상태는 모든 것을 잉태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 오랜 정적을 깨뜨리고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무극의 상태에서 내재되어 있던 힘들이 조금씩 모여들어 하나의 원을 형성하며 아주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태극, 즉 최초의 조직적인 힘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태극이 형성되어 회전을 시작하자 그 동안 잠재되어 있던 힘들은 회전을 시작한 태극에 점점 더 결집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태극은 더 큰 힘으로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회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회전이 계속됨에 따라 최초의 태극은 드디어 거대한 태극으로 바뀐 채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돌아가는 힘에 의하여 태극의 일부분들이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이렇게 분리된 부분들 역시 태극을 형성하여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본래의 태극 즉 본태극(本太極)이 그러했듯이 힘과 회전 속도가 점점 증가하다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서 스스로도 자신의 분신을 사방으로 방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우주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태극들이 돌아가게 되었다.
여기서 본태극은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의미하고, 그로부터 시작된 우주의 수없이 많은 태극 하나하나는 개별의식 혹은 의식을 생성시키는 힘을 의미한다. 본 태극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최초의 다섯 개의 태극을 생성시킨 이후 그 회전을 중지하고 지금까지 정지된 상태로 머무르고 있다. 본태극으로부터 직접 생성된 다섯 태극이 우주 최초의 의식 즉 10차원의 근원의식이다. 이들 다섯 태극으로부터 직접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태극들과 또 그 작은 태극들이 생성시킨 또 다른 태극들 모두가 하위 차원의 의식들을 의미한다.
현재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의식들은 모두 우주의 근원의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성되었거나 혹은 간접적으로 생성되었다. 아직도 하위 차원의 많은 태극들은 회전하면서 새로운 태극들을 형성시키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의식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우주의 근원의식이 어떻게 나타났고 또 이후 어떻게 수많은 의식들로 분화되었는가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의식의 성장과정은 그 복잡성의 정도로서 설명될 수 있다. 처음 근원의식이 나타날 때는 극히 미세하고 단순하며 느린 진동수의 의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식은 점점 복잡해지고 보다 빠른 진동수를 지니게 되었다. 의식의 복잡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근원의식은 자신을 여러 다른 의식으로 분화시켰고, 그렇게 분화된 하나하나의 의식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 채 진동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특성을 지닌 의식들이 탄생하였지만 이들은 모두 근원의식의 부분이고 분신이며, 근원의식은 하위의식들의 정보를 전부 수용하고 있는 극히 빠른 진동수를 가진 통합의식 혹은 총체적 의식이다. 근원의식과 관련하여 설명한 의식 생성 원리는 특정의 하위의식과 그것이 생성시킨 새로운 하위의식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우주에는 무수히 다양한 진동수를 가진 의식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대체로 더 일찍 생겨난 의식일수록 더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각 의식은 새로운 체험에 대한 선호도가 달라 의식 확장의 속도 면에서 차이는 있지만, 일찍 생겨난 의식일수록 더 많은 체험들과 더 큰 의식, 그리고 더 빠른 진동수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계속되는 체험 속에서 자신들의 의식을 끊임없이 확장시켜 나가고 있고, 이는 각 존재들을 포함한 다른 의식들로 구성된 상위의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또한 근원의식은 우주의 모든 의식들을 포함한 총체적 의식이기 때문에, 개별 의식들의 끊임없는 확장은 곧 근원의식의 확장 즉, 우주의 확장을 의미한다.
우주의 모든 의식은 근원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항상 근원의식을 그리워하지만, 그러한 연결성은 하위차원으로 내려올수록 점점 약해지기 마련이다. 근원의식과의 연결성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 개별적 특성은 점점 더 강해지고,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근원과 연결된 '의식' 혹은 '영(靈)'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의 존재들은 '영혼(靈魂)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영혼은 의식에 개별성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진동수로 볼 때, 4차원 중간이상의 진동수를 가지면 '의식'이라고 불리고, 4차원 중간에서 2차원 중간 사이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을 '영혼'이라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생성과정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의식과 영혼은 속성 면에서 조금의 차이가 있는데, 현재 육신을 가진 채 지구상에 머물고 있는 대다수 존재들의 본질은 영혼이고, 반면 극히 일부 존재들의 본질은 의식이다.
어떤 수행자들은 무극 이전에는 무엇이 없었는지, 혹은 무극의 상태에서 어떻게 하여 최초의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궁금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질문이다. 세상을 인지하는 능력, 즉 의식은 태극이 돌아가면서 최초로 생겨났고, 최초의식이 생성되기 전의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식물들의 존재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인간이 동식물과 비교된다는 것 자체를 인간에 대한 모독 혹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인간과 동식물은 완전히 다른 것이고, 인간의 가치는 동식물의 그것과는 결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영적 세계에 대하여 많이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도 인간을 다른 동식물보다 영적 혹은 본질적 측면에서 훨씬 우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존재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결과이다.
최근에는 고래와 같은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조차도 인간과 유사한 인지능력이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식물들의 인식 능력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나무들을 비롯한 식물들은 파장을 통해 혹은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상호 의사소통을 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위험에 처한 식물은 유독한 물질을 만들어 내어 자신을 방어하기도 하고, 화학물질을 대기로 퍼뜨려 동료들에게 경고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다.
식물은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원예가들은 사람들이 재배하는 식물들에게 보다 큰 사랑과 관심을 쏟을수록 더 싱싱하고 더 튼튼하게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자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몇몇 야생화 및 덤불 그리고 일부 나무들은 자신들의 높은 파장의 에너지를 통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우주로부터 영적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장미의 부름. 정신세계사).
이렇게 볼 때, 지구상 혹은 우주의 존재들은 겉모습에 의하여 분류하는 것은 결코 본질에 따른 분류가 될 수 없다. 보다 의미가 있는 분류는 각자의 진동수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동수가 낮은 존재들, 예를 들어, 1차원 혹은 2차원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은 정보를 수용할 수 있는 양이 작고, 따라서 인지능력이나 사고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하며, 세상에 대한 인식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다 높은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은 보다 복잡한 체험을 하게 되는 인간으로 환생하고, 상대적으로 낮은 진동수의 존재들은 보다 단순한 체험을 하는 식물이나 동물로 환생하여 충분한 체험을 한 뒤에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환생시 자신의 진동수에 따른 형태상의 제약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아주 낮은 1차원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가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지구는 그 동안 모든 것을 수용하는 완전한 체험의 장으로서 운영되었고, 각 개체들의 자유의지가 최대한 존중되는 곳이었다. 따라서 지구가 처음 물질화될 때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수를 지닌 존재들에게는 인간으로, 동물로, 혹은 식물로 환생할 수 있는 선택이 주어졌다. 이 때문에 각 존재들은 물질 세상으로 환생할 때 자신이 선택한 생명체로 살아가면서 그에 따른 독특한 체험을 하게 되었고, 원한다면 다음 생에는 다른 생명체로서 태어나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과 동식물에 대한 환생규칙은 변화하게 되었다. 물질화된 지구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망각의 상태로 빠지게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능력이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특히 인간으로 환생한 일부 존재들에 의하여 동물들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학대 받게 되었고, 식물들은 아주 하찮은 존재로 취급되었다.
각 존재들에 대한 보다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카르마 제도는 물질화 초기부터 시행되고 있었지만, 동식물을 비하하고 천대하는 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때문에 지구에 온 대다수의 존재들은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을 원하였고, 특히 폭력적이고 지배의식이 강한 존재들일수록 인간으로의 환생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물질화 초기에는 각자의 진동수 즉 차원을 감안하고 자신의 선택을 고려하여 인간 혹은 동식물로서 환생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각 존재가 이전의 환생에서 한 행동들까지 감안되어 다음 생의 환생 형태와 구체적 배움의 내용들이 계획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다음 생에 어떠한 생명체로서 환생하게 되느냐 하는 결정은 카르마 등을 감안한 복잡한 환생규칙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반드시 각자의 진동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동식물로 환생한 존재들 중에도 대다수 인간보다 진동수가 더 높은 경우도 있고, 인간으로 환생한 존재들 중에도 동식물보다 낮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은 얼마든지 있다. 전생퇴행을 통한 사례로 볼 때, 일부 고차원의 존재 중에도 전생에 동물로 태어나 산 적이 있었다.
물질 차원이 아닌 보다 근본적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이 동식물과 확연히 다른 점은 배움의 능력에 있다. 인간은 자신의 진동수가 아무리 낮다고 하여도 공간적으로 이동하면서 인간세상에서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반면, 동식물의 경우 대체로 제한적인 공간에서 살아가거나 한 공간에만 머물러야 하며, 자신의 의도가 개입될 여지가 적거나 아예 없는 상황에서 체험이 일어난다.
특히 식물의 경우 이동 자체가 불가능하며 주로 자연과의 교류를 통해 끝없는 기다림, 인내, 그리고 포용을 배우게 된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보다 큰 의식 확장을 원한다면 인간으로의 환생을 택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동식물로 태어나 그에 따른 체험을 하게 된다. 영장류를 포함한 대다수의 동물들은 각기 개별적 존재들이고, 반면 곤충이나 식물들은 일종의 집단의식으로서 존재한다. 즉 동물로 환생하는 영혼은 대체로 특정의 개체로서 체험하게 되지만, 식물로서 환생하는 영혼은 하나하나의 개체로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게 된다.
사람의 경우 3차원 이하의 낮은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은 주로 물질세계만을 인식하고 좁은 시각을 가진 채 세상을 살아가는 반면, 높은 차원의 진동수를 가진 사람들은 물질세계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인정하지 않는 비 물질세계를 인지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 고차원의 존재들은 물질위주로 전개되어 나가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큰 갈등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동식물 중에서도 아주 오래된 나무들이나 고래, 거북이들 중에는 아주 높은 진동수를 가진 존재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존재는 축적된 기억을 가진 의식체임을 깨닫고,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나 있다고 하는 사실이 동물 혹은 식물로 태어난 존재들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 보이고 자신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상위자아와 하위자아
의식의 생성과는 별개의 현상으로서, 한 개체 의식은 자신을 복제하여 또 다른 자신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즉 고차원의 존재들은 때때로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자신을 복제하여 하위차원의 세상에 보내기도 한다. 이 경우 우주에 계속 남아 있는 본래의 존재를 상위자아(上位自我)라 부르고, 지구 혹은 하위차원의 별에 보내어진 또 다른 자신을 하위자아(下位自我)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지금 가이아 프로젝트 사명자로 와 있는 경우, 그들의 상위자아는 모두 우주의 5차원 이상의 어느 별에 머물고 있다. 자신의 진동수에 따라 복제할 수 있는 숫자는 차이가 있지만, 우주의 고차원의 의식들은 필요에 따라 3~6개 사이의 복제된 자신을 만들어 여러 곳에서 활동하게 할 수 있다.
지구에 머물고 있는 존재들 중 자신의 본래 진동수가 4차원을 넘지 않는 영혼들의 경우 상위자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5차원 이상의 진동수를 가진 존재('의식')의 경우 지금 나라고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존재는 우주에 있는 상위자아가 지구에 보낸 하위자아이다. 어떤 존재는 지구에 2개 이상의 하위자아를 보내어서 서로 다른 인생으로서 생활하면서 체험하게 하기도 한다.
상위자아와 하위자아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억 즉 동일한 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의 실체로서, 상호간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진동수의 차이로 말미암아 상위자아가 가진 모든 기억을 하위자아가 다 가지지는 못하지만, 동일한 실체로서 과거의 모든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하나이다. 하지만 그들의 현재 체험이나 역할은 완전히 다르고, 따라서 그들 간의 관계는 통합되어 있으면서 분리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으면서 또한 통합이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물질 지구에 환생하여 생활하고 있는 하위자아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물질화된 지구의 특성상 상위자아와의 직접 소통이 안 됨은 물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망각과 육체적인 욕구 등으로 인하여 상위자아와는 상당히 다른 사고와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 지구상에는 5차원 이상의 별에서 온 존재들이 상당수 있지만, 대부분은 본래의 자신 혹은 자신의 상위자아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상위자아가 어느 별에 있는지 알지 못함은 물론이고, 지금 지구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이 우주에 있는 상위자아가 보낸 존재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 이제까지 살아 온 것이다.
상위자아와 하위자아, 혹은 하위자아와 하위자아 간에는 기본적인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비록 그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외형을 지니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 간에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나타난다. 사고방식이나 취향이 같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생긴 모습까지 유사한 점이 아주 많다.
전생퇴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예로 든다면, 현재 지구에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이 시리우스 별에 있는 자신의 상위자아에게도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동일한 상위자아를 가지고 지구에 있는 사람들 간에 너무나 큰 유사성이 발견된다. 하위자아 중 하나는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다른 하나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피부 색깔부터 시작하여 생김새, 생활방식, 취향 등의 면에서 너무나 흡사하다.
우주적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혹은 지구에서의 체험을 위하여 또 다른 자신을 지구에 보낸 상위자아는 하위자아 인생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명을 위하여 지구에 보내어 진 일부 존재들의 경우, 그들 상위자아는 '담당 신명'들과 더불어 하위자아가 자신의 존재와 주어진 사명을 자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주로 꿈, 명상 등을 통하여 하위자아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특별한 영적 체험을 시켜주기도 하며, 특별한 방법으로 상위자아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이 만드는 사념체들
이제까지는 '존재'를 의식과 영혼의 관점에서 주로 논의해왔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의식과 영혼 이외에도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면서 활동하는 또 다른 존재 즉 인간의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념체(想念體) 혹은 사념체(思念體, 邪念體)들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 사념체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은, 제3장에서의 지구인의 역사 그리고 다음 장에서 논의할 지구대변혁의 정화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제4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은 마음을 통해 기(氣 : 에너지)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의식을 집중하면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 4차원의 에너지 세상에 즉각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집중해서 상상하거나 염원하게 되면 그렇게 형성된 에너지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의식체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같은 것을 염원하면 그것은 매우 큰 힘을 가지는 에너지체로서 활동하게 되며,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념체는 인간의 생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사고를 지배할 수 있고, 따라서 전혀 의외의 생각이나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고 보다 강한 힘을 가진 존재에 의존하고 싶어했고 또 삶의 풍요로움을 갈구해 왔다. 이런 염원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채 마음을 통해 다양한 에너지체를 만들어 왔다. 특히 공통적인 절대적 존재를 신봉하는 대다수의 종교단체 혹은 영성단체들은 자신들의 집단적 염원이나 주문수련을 통하여 강한 사념체들을 생성시켜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념체들은 특정 모임이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특정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개별적, 이성적 판단을 차단하면서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심한경우 일종의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꿈에 특별한 존재로 나타나거나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을 교묘히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꿈속에서 혹은 참선이나 명상 중 예수, 부처, 관세음보살 혹은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사념체들의 장난일 경우가 높다.
특정 단체에서 만들어진 사념체들은 그 구성원의 마음을 조정하거나 지배함으로써 그 단체의 목적과 활동에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다. 만약 특정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 그 집단에 헌신하는 경우 그를 물심 양면으로 도와주기도 하고 또 약간의 특별한 능력,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등을 주기도 한다. 반면 그 단체에 회의를 품고 이탈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다양한 방법으로 심신의 고통을 주면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방해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는 사념체들로서는 자신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생겨날수록 자신의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만들어진 사념체들은 끊임없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부추기며 사람들의 의식성장을 방해한다. 이는 사람들의 의식 향상이 자신들에 대한 의존성을 약화시키고 인간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를 약화시킬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념체들 중 일부는 다수 사람들의 강렬한 염원을 바탕으로 매우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나 동식물의 영혼들과는 그 탄생 목적 및 성장과정에 있어서 판이하다. 일반적으로 의식 혹은 영혼은 우주의 근원과 연결되어 생성되고 또 오랫동안 성장해온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반면 사념체는 물질 지구에서의 체험을 위하여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또 특정 목적으로만 활동하는 에너지체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의식의 성장은 없으며 언제든 소멸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아질 때에는 그 힘이 증가하지만, 인간의 마음과 단절되면 에너지 공급이 끊겨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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