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망각에서 기억으로
지금은 지구의 마지막 시기이고, 지구에 있는 모든 존재들 특히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이 망각에서 기억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예정되어 있는 시기이다. 이들 존재들의 감염 정도는 천차만별이지만, 그들 모두가 치유될 수 있도록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져 왔다.
먼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온 기존의 지식과 관념들이 전혀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사람들은 그동안 '나' 라고 붙잡고 있었던 것의 의미 없음 혹은 실체 없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동안 인간이 추구해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고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를 자각할 것이며, 또한 레무리아 시기, 전체(근원)에 녹아 있을 때의 완전한 지복감을 기억하게 된다.
아울러 자신의 본질을 기억하면서, 근원으로부터의 분리란 가능하지도 않고, 지구상에서 근원과 분리된 적이 실제로는 한 번도 없었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을 위하여 모든 존재들에게 필요한 준비는 완료되어 있다.
레무리아 시기, 전체 속에 녹아들었던 황홀한 기억은 모든 존재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으며, 여러 번의 환생을 통하여 자신이 선택한 체험들의 모든 순간들 역시 기억되어 있다. 그 밖에도 존재들의 자각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는데, 그 중에는 환생제도와 관련된 것도 있고 내면의 소리에 대한 것도 있다.
지금은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 일어날 사건들과 상황들을 통해 존재들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기 시작하고 자각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제8장에서는 먼저 존재들의 망각은 예정된 것이었고 그 망각이 있었기에 존재들은 치유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망각이 어떻게 기억으로 그리고 존재들의 치유로 이어질 것인지를 살펴본다.
망각은 예정된 것이었다
우주에서 부조화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들은 매순간이 고통으로 다가 왔다. 그들 내면에는 본래 근원의식으로부터 부여된 조화의 속성이 있었지만, 바이러스로부터 심어진 '부조화는 당연하다'는 부정성도 공존하게 되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두 가지 속성이 존재들을 매순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내면에서 시시각각 올라오는 부조화를 표출하는 것은 조화의 속성에 어긋나기에 고통으로 느껴지고, 그것을 표출하지 않고 참는 것은 부조화의 속성에 어긋나기에 또한 고통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치유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영영 사라지든지, 아니면 이전부터 있었던 조화의 속성이라도 없어졌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 존재들은 지구에 온 이후 한동안 너무나 황홀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전체의 에너지, 완전한 조화의 에너지가 지구의 모든 공간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었기에, 그들 내면에 심어진 부조화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발현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많은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전체의 에너지 속에 녹아들어 지복감을 느끼며 절대적인 평화와 절대적 조화를 체험하였다. 이는 레무리아의 에테르 상태에서 뿐만 아니라 후기 고형화 상태에서도 계속 되었다.
지구의 물질화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수가 조금씩 늘어남에 따라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 역시 인간으로 혹은 다른 생명체로 환생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이들 역시 자신이 걸어온 길과 레무리아에서 체험하였던 전체에 대한 느낌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다른 순수한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의 이면에 녹아들어 있는 전체를 느끼며 조화롭게 살다가 영계로 돌아가는 과정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 다수가 인간으로 환생하게 되었고, 그 중 일부는 내면의 부조화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지구가 에너지 상태로 있던 레무리아 시기와는 달리 물질화된 지구에서는 이들 존재들 내면의 부조화가 표출될 수도 있고 표출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지구의 물질화가 이루어지면서 존재들에게는 사실상 선택이 주어졌던 것이다.
하나는 물질이면에 스며들어 있는 전체의 에너지를 느끼며 여전히 전체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 이면의 전체를 느끼지 못한 체 물질에 빠져 현상만을 보면서 소위 자유의지로 생활하는 것이었다. 에너지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구가 물질화 되면서 이러한 선택이 존재들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은 당장에 직면한 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내면의 부조화로 말미암아 '나는 한다'는 의식 속에서 점점 물질에 빠져들었고, 물질 이면에 녹아 있는 전체에 대한 느낌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이에 따라 레무리아시기 체험했던 전체에 대한 느낌 역시 희미해져 갔지만 전체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그 근본적인 힘은 결코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존재들이 점점 물질에 빠져들고 부조화를 표출하면서 그들은 전체를 잊고자 염원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생활하는 방식 즉 '나는 한다' 혹은 '나는 창조 한다'는 의식은 전체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전체에 대한 기억은 그런 의도에 제동을 거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존재들의 이러한 염원으로 인하여, 전체에 대한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 갔고, 그들은 마침내 전체를 완전히 망각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서 모든 것들을 진행시키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존재들은 전체에 대한 깊은 망각으로 빠져들게 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존재들이 망각을 선택한 것이다. 전체에 대한 기억이 자신들 의식에서 사라지기를 바랬고 그 염원에 의하여 전체가 망각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존재들이 전체를 망각하고자 선택 하였을 때 그들은 전체가 우주의 모든 것을 펼쳐왔고 또한 지구상에서도 모든 물질의 이면에 녹아들어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전체의 속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전체를 망각하고자 원했던 것은 언젠가 다시 전체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장은 전체를 잊는다고 해도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는 다시 전체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것임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자신들의 궁극적인 치유를 위해 전체에 대한 망각 하에서 벌어질 체험을 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부조화는 진실' 이라는 믿음 하에 전개된 존재방식이 결국은 '부조화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아프로젝트를 계획 하면서 전체는 지구가 물질화되면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이 망각을 선택할 것이고, 결국에는 인간으로 환생한 모든 존재들이 망각을 진실로 믿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망각 자체는 프로젝트상 계획된 것이었다.
만약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에게 전체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면, 그들은 인간으로 환생하여 부조화에 근거한 행위들을 마음대로 표출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궁극적으로 그들 스스로를 치유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전체에 대한 완전한 망각이 있음으로 해서 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내면의 부조화를 마음대로 분출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 마지막 시기에 그들의 부조화에 근거한 존재방식이 초래하는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은 전체에 대한 망각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부조화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인간으로 환생하면서 수많은 부조화 행위를 통해 다양한 체험들을 쌓아왔다. 그 행위들 중에는 언제 느껴보아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것도 있지만, 뒤돌아보면 심히 부끄럽거나 감추고 싶은 것도 많이 있었다.
전체는 없고 오히려 자신이 전체라는 착각 속에서 그리고 자신이 어떤 마음을 품든 그것을 알아챌 사람들이나 존재는 없다는 착각 속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존재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한 적도 많았고,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성을 그대로 표출한 경우도 많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신체상의 다름만을 인식한 채 자신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경우도 많았다. (뒤에 나오는 '나의 의미 없음' 참조)
그런데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이 선택한 인간으로의 환생의 길은 자신들이 본래 가졌던 성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근원의식에 의하여 탄생된 존재인 경우 지구상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인생을 많이 선택하였고, 두 번째 근원의식에 의하여 탄생된 존재는 주로 사치와 낭비에 빠지는 삶을 많이 선택하였다. 네 번째 근원의식에 의하여 탄생된 존재는 부를 추구하는 삶을 많이 선택 하였으며, 다섯 번째 근원의식에 의하여 탄생된 존재는 사이비 교주 등 영성을 잘못 추구하는 방향의 인생을 많이 살게 되었다.
반면 세 번째 근원의식에 의하여 탄생된 존재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근원의식의 속성상 부조화를 표출하는 정도는 약하지만 존재가 기능하는데 있어 더 심한 제약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치유가 필요한 다른 존재들과는 달리 주로 물속의 생명체들로 환생해 왔는데, 이것은 물 자체에 있는 강한 '하나'의 에너지장 속에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존재들의 성향은 그들을 생성시킨 근원의식들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고, 따라서 지구상에서의 체험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뒤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환생제도는 한 인간의 몸에 여러 존재가 머무는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또 존재들은 탄생에서부터 육체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특정인간의 몸에 머문 것이 아니라, 한 인생의 특정 기간만을 체험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거의 모든 형태의 삶을 살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 존재들은 자신이 지구상에서 선택하였던 삶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들이 전생에서 얼마나 큰 폭력성과 잔인성을 보여주었는지를 알고 망연자실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지금 현재 '나'라고 알고 있는 고상한 모습과 그러한 전생에서 드러난 자신의 모습 사이에 너무나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행위들을 반성하거나 후회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대신 전체로부터의 분리 즉, 소위 자유의지가 자신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고통을 초래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전체의 사랑 속에서 진행되어 왔고, 그 동안 지구상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들은 존재들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체험이었던 것이다.
인식의 틀
사람들이 완전한 망각에서 기억을 되찾아 하나로 머물게 되기까지는 많은 험난한 과정이 있을 것이며, 또한 그것은 결코 단숨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동안 물질지구상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모든 것은 존재들이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데 필요한 체험을 위한 것이었고, 지구는 이를 위한 일종의 무대였다.
각자가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사람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각자가 가진 인식의 틀이 의미 없다는 것을 느껴야만 한다. 사람들은 사물과 상황을 자신이 가진 틀을 통하여 인식한다.
그 인식의 틀은 주로 어릴 적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입되거나 받아들여졌던 기존의 지식, 관념 그리고 사회적 통념들로 형성되며, 성장하면서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도 그 틀에 가미된다. 일단 사람들에게 인식의 틀이 형성되면 오감을 통하여 실제 인식되는 모든 상황과 사물들은, 자신이 가진 틀을 통해 여과되거나 왜곡되어 그 틀 속에서 이해된다.
사람들에게 뭔가 새로운 일 혹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 경우, 그 일어난 사실자체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 및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인식의 틀은 영향을 미친다.
개개인이 가진 인식의 틀은 자신을 전체의 위치에 놓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만약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이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은 결코 신 혹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게 된다. 설령 신 혹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특정 종교의 신앙인이라고 해도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 자신이 어떤 계기로 그 종교로부터 멀어지면 인식의 틀은 흔히 그동안 신앙해 온 그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가진 인식의 틀을 통해 자신을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우월한 자리에 놓아왔던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해 온 인식의 틀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틀을 구성하고 있는 기존 지식과 관념의 허구성을 절실히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관념의 의미 없음은 주로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진행된다. 그동안 큰 가치를 두어왔던 인간관계들에 대한 관념은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체험을 통해 무너지게 되고, 종교적 관념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체험을 통해 허물어지게 된다. 또한 사람들에게 큰 힘을 행사하여 왔던 사회적 통념은 앞으로 다가올 사건들과 상황들에 의하여 그 의미 없음이 느껴지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인식의 틀을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부분인 기존 지식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이 드러남으로써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인류가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온 과학지식들의 허구성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각자가 가진 인식의 틀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예를 들어, 이글이글 불타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필요한 온기를 제공해 온다고 여긴 태양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에너지적인 상징임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경악하게 될 것이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진 채 자전하면서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여겨진 많은 자연 현상들이 사실은 진실과 거리가 먼 것임이 밝혀질 때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과학기술의 진보가 빠르다고 여겨온 사람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과학지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믿기 어려울 것이다.
현상의 관찰에만 의존해 온 기존 지식의 오류는 먼저 이 책을 통해 지구의 진실이 공개되고 다음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건 및 상황들이 하나하나 전개되면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현상의 관찰이 결코 진실로 이끌 수는 없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기존 지식의 오류와 관념의 의미 없음을 깨달으며 사람들이 가진 인식의 틀은 의외로 빠른 시간에 무너져 내리게 되고, 일시적으로 사람들은 오감으로 인지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세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고, 그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보이거나 느껴지게 된다.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에너지 세상에 대한 것도 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하고 전생 및 환생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이미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이 동식물에 대하여 가졌던 인식도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인간과 인간 세상에 대하여 가졌던 편향된 인식 역시 자신이 가졌던 인식의 틀에서 기인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식의 틀이 해체되는 것을 계기로 사람들은 '나'란 무엇인지를 자문하게 되고 '나' 의 의미 없음을 느낄 수 있는 사건과 상황들이 주어질 것이다. 자신의 몸이 '나'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나'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공허한 것임을 알게 하는 체험들이 전개될 것이며 '나'의 의미 없음을 인식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나'의 의미 없음
지구에 온 모든 존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원칙적으로 물질지구에 생명체로 환생하였다가 영계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다시 말해, 지저세계에 거주하거나 에너지체가이드 및 영계가이드로서 활동해 온 존재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물질지구에 생명체로 여러 번 환생하였고, 특히 4차원 이상의 복잡한 존재들은 모두 인간으로의 환생을 거듭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환생제도 역시 지구의 마지막 시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때 '나'의 의미 없음에 대해 확실히 자각할 수 있도록 운영되었다.
환생제도는 사람들이 '나'를 실체라고 믿기 시작한 이후부터, 한 존재를 여러 비율로 나누어 그 각각의 비율이 하나하나의 의식체로 동시에 다른 몸에 들어가 서로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 왔다.
예를 들어, 특정 존재의 한 비율은 인도에서 남자로 환생하여 요기(yogi)로서의 체험을 하고 다른 비율은 미국에서 여자로 환생하여 유명한 변호사로서 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존재가 여러 비율로 나누어 질 때 그 비율에 따라 특정 성향을 조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한 존재가 A, B, C, 라고 하는 세 비율로 나누어질 때, A는 보다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C는 보다 헌신적인 성향을 가지는 반면, B는 그 중간 정도의 성향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나누어진 A, B, C 의 비율은 각 성향에 맞는 체험들을 하게 되고, 그 각각의 체험들은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 한 존재에 통합되어 각 인간체에 머문 채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곧 본격적으로 펼쳐질 지구의 마지막시기에는 한 존재가 여러 비율로 나누어진 상태가 바뀌면서 '나'의 의미 없음을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이 전개 된다.
예를 들어, 앞의 요기의 변호사의 경우 인도의 요기로 살던 비율이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되어 그 신체를 떠나게 될 때 예외 없이 일단 영계로 갔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미국의 변호사로 있는 자신의 다른 비율과 합쳐진다고 상상해보자.
그 경우 변호사는 한동안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갑자기 자신이 인도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인지되고 전혀 알지 못했던 어려운 요가 동작들이 자신도 모르게 술술 나오게 되는 상황 속에서 '내가 갑자기 미쳐 버렸나?' 하는 의문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상으로만 보아왔다. 그런데 그러한 삶의 방식 속에서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며 해친 상대방이 사실은 자신과 동일한 존재 즉 같은 존재의 다른 비율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는 이러한 상황들이 발생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나'라고 생각해 왔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해 세상이 존재하고 나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그토록 절대적으로 붙잡고 있었던 '나'가 도대체 무엇인지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의미 없음이 점점 더 다가오게 될 것이다.
또한 환생제도는 한 생명체의 몸에 여러 존재가 함께 들어가서 같은 인생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 왔다. 특히 이는 인간으로 환생하는 경우에 더욱 그러하였다.
예를 들어, 한때 전 유럽을 호령하였던 나폴레옹이나 유명한 작곡가 베토벤의 몸에는 여러 존재가 동시에 깃든 채 그 인생을 함께 체험하였다. 심지어는 한 몸에 열 존재 이상이 동시에 들어가 체험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도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 드러나게 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게 된다.
만약 나폴레옹의 전생을 살았던 사람이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여러 다른 존재와 함께 그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는 더 이상 큰 소리로 자신의 전생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다. 대신, 과연 '나'는 누구인지를 반문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환생에는 소위 워크인(walk-in)과 워크아웃(walk-out)혹은 페이드인(fade-in)과 페이드아웃(fade-out)이라고 불리는 현상도 보편적이다.
이는 존재가 인간으로 환생할 때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계속해서 한 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한 인생에 끼어들거나 빠져나오는 경우를 이야기 한다. 이제까지 일부 사람들은 워크인 을 이야기해 왔으나, 존재가 한 인간의 삶의 중간에 스며들거나 빠져나오는 경우 그 인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상당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들어가거나 서서히 빠져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워크인, 워크아웃이라는 표현보다는 페이드인, 페이드아웃 이라는 표현이 보다 정확하다.
일반적으로 각 존재는 그 존재만의 특성이 있고, 따라서 특정 존재가 인간의 중간에 페이드인 하는 경우 그 사람의 성격, 취미들이 상당히 변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던 그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재즈음악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 사람의 몸에 깃든 존재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또 누군가가 인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러지?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는 경험을 하였다면 새로운 영혼이 페이드인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병으로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임사체험을 하였다거나 혹은 고열 등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 들어갔다가 의식이 회복된 이후, 그 전과는 아주 다른 사고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이전의 존재는 이미 몸을 떠났고 대신 새로운 존재가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생의 중간에 끼어들어 체험을 하는 페이드인과 마찬가지로 한 존재가 특정 인생의 도중에 슬며시 빠져나오는 페이드아웃도 환생제도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 존재가 특정인의 몸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진행될 때 다른 존재가 그 몸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은 환생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측면 즉, 존재들에게 꼭 필요한 체험만을 제공하려는 측면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는 모든 존재들에게 '나'의 의미 없음을 깨닫게 해 주는 역할도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이 이제까지 인생이라고 여겨왔던 것은 한 인간의 몸을 통해 벌어지는 수만 가지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각 존재는 자신에게 필요한 체험을 하기 위하여 특정 시기에 특정 인간의 몸에 들어갔다가 특정 시기에 빠져나오고 또 다른 몸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기도 하였던 것이다.
존재들이 인간의 몸에 깃드는 기간은 불과 몇 달에서부터 몇 십 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한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 몸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존재들 수는 대략 열이 넘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한 인생을 살거나 에너지가 특별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존재들이 드나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한 인간체의 관점에서는 '나'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측면 즉 존재의 관점에서는 인간으로 살면서 '나' 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즉 '나'는 아무런 실체가 없는 허깨비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본질 즉 존재에 대하여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나'의 의미 없음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존재로 돌아 올 수 없다.
얼마 전부터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았던 순수한 존재들이 대거 물질지구에 인간으로 환생하고 있다. 그동안 나무 혹은 고래로 머물었던 존재들이나 지저세계에 있었던 존재들이 마지막시기에 전체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하고 동시에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의 자각에 도움이 되고자 인간의 아이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의 아이들과는 아주 다른 사고와 행동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인디고 아이 혹은 크리스탈 아이들로 불리어지고 있다. 이들 순수한 존재들은 이미 삶이 진행 중인 사람들의 몸에 끼어들기도 한다. 이들이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몸에 스며들면 그 사람의 의식은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전과 달리 고래나 나무를 아주 좋아하게 된다거나 사랑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을 보다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향이 커져서 물질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현재 힐러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사람들의 몸에는 순수한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들이 하나 혹은 그 이상 스며들어 다른 존재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이들이 한 몸에 같이 머무르게 됨으로써 그 인간체는 보다 쉽게 '나'의 의미 없음을 깨닫고 망각에서 기억으로 가게 된다.
망각과 분리에 빠진 존재들이 기억으로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나'의 의미 없음에 대한 자각은 이렇게 주로 환생제도와 관련된 체험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환생제도는 존재들이 망각과 분리에 빠진 뒤 시작되었으며 완전한 조화에 머물고 있었던 초기의 인간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환생제도 즉 한 인간체에 여러 존재가 깃들게 한다든지 혹은 한 인간체에 여러 존재들이 들락날락 하는 방식의 환생제도는 가능하지 않았다.
물질화 초기 인간들에게 깃든 존재들은 우주에서의 기억을 포함하여 자신이 지나온 길에 대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한 인간체에 다른 존재들과 함께 깃든다는 것은 그 인간에게 엄청난 혼란을 주는 것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존재들이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린 후에는 한 인간체에 여러 다른 존재들과 함께 머물거나 인생의 도중에 스며들어도 별다른 문제를 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존재들이 망각에 빠졌기에 다시 기억으로 가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 한다. 다시 말해 존재들이 '나'를 실제로 믿었기에 가능해진 현상이 결국은 '나'의 의미 없음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내면의 소리
망각에서 기억으로 가는 과정이 본격화될 때 사람들에게는 내면의 소리가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을 망각에서 기억으로 되돌리기 위해 다양한 방편들이 가이아 프로젝트상 준비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내면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혼자 있을 때 들릴락 말락 속삭이듯 느껴지거나 목소리가 아닌 모호한 느낌, 예를 들어, '이건 아닌데......'등의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명확하고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고, 나중에는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수시로 느껴지게 된다. 식사 중에 혹은 운전 중에 느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통화를 하거나 대화하는 도중에도 느껴지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처음에는 자신의 피곤이 누적되어 혹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헛소리를 들은 것으로 여기게되지만, 그 소리가 계속 그리고 점점 또렷이 느껴지게 되면서 자신의 정신적 건강을 의심하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일종의 노이로제 증상에 빠진 것으로 여기고 정신과 의사와도 상담해 보고 주위의 성직자들과도 의논해 보지만, 자신의 증세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그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간다.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엄청난 불안과 혼란 속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빈번히 그리고 점점 더 뚜렷하게 들려옴에 따라 사람들은 그 소리가 단순한 착각이나 노이로제로 인한 환청현상은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 소리가 들려오는지 너무나 궁금해 하지만 주위의 그 누구도 바르게 조언해 주지 못한다. 또한 그 목소리가 자신의 행동이나 말 그리고 마음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지만, 그 메시지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 목소리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나 당연시 해왔던 말이나 행동을 의미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구나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것들을 진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느껴지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아무리 괴롭히고 아무리 큰 혼란에 빠뜨려도,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고 또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도 없음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너무나 황당하고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해도 오직 자신의 머리채를 쥐어뜯거나 머리를 벽에 들이박는 도리 밖에 없음을 느낀다.
내면의 소리에 관한 한 어쩔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 목소리의 완전한 포로가 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결국 그 상황에서 자신이 도망칠 길은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동시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사건이나 상황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너무나 확실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결코 진실이 아니며,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반드시 당연한 것은 아닐 수 있음을 알기 시작한다.
또 이따금씩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세상에 펼쳐진 모든 것들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힘이 지금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목소리는 결코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되면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의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인식의 틀은 무너져 내리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자신에게 느껴지는 소리가 아마도 전체의 목소리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이것이 사람들이 '나'가 아닌 존재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추구해 온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그 목소리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게 된다. 자신이 그동안 아껴온 모든 가치, 모든 지식 그리고 모든 관념이 의미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 목소리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큰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나'라고 여겨온 것들이 바로 그러한 가치, 지식, 관념, 등이었는데 그것을 전부 포기하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은 '나'라고 여겨온 것의 의미 없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채 큰 혼란 속에 빠지게 된다.
이때쯤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망각되었던 전체에 대한 느낌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그동안 자신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많은 전생들을 살아왔다는 사실과 각각의 전생들에서 어떤 체험들이 일어났는지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명했던 인물로서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촌부로 태어나 조용히 살다가 인생을 마감한 적도 있었고 사회적 혹은 개인적인 일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은 적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적도 있었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며 감동적인 삶을 산적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이기적으로 행사하며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우주에서의 기억도 떠오르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도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이 지나온 길이 느껴지며 그동안 '나'라고 여겨온 것의 의미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나의 본질은 나의 신체도 아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흡수한 지식, 관념, 가치 등을 통합하는 의식체도 아니다. 자신의 본질은 존재이며 그동안 '나'라고 여겨온 것은 존재의 체험을 위한 도구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번 생도 그리고 수많은 전생들도 결국은 필요한 체험을 위해 스스로 설계하여 살았던 것임을 알게 된다. 이러한 자각을 통해 사람들은 내면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내면의 소리에 따라 생활하며 전체에 머무르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제까지 자신이 해 오던 모든 일들을 중단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오직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여 생활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항상 전체에 머물기 위해서는 전체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제까지의 삶을 갑작스레 청산하는 것은 전체의 진정한 사랑을 느끼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들은 망각으로 인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체의 사랑은 모든 존재들 속에 그리고 펼쳐지는 모든 것에 항상 녹아들어 있었다. 각자가 환생을 거듭하며 살아온 모든 삶의 모든 순간에도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였던 감동적인 삶에도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을 괴롭혀 온 전생의 순간들에도 전체의 사랑은 녹아들어 있었지만, 자신이 망각과 분리에 힘을 실었기에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생활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순간들을 느껴보고 그 순간들에 전체 혹은 전체의 사랑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항상 전체에 머무르게 된다. 이렇게 내면의 소리는 존재들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 지구상의 대부분 존재들에게는 전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나'가 절대적이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무리 설득력 있다고 해도 그 존재를 바꾸어 놓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외부의 목소리는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든 자신이 거부해 버린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결코 거부할 수 없으며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결국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 다시 말해 자신이 녹아들어 있는 전체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내면의 소리가 일관성 있게 계속해서 느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망각에서 기억으로 돌아올 수 있고 자신의 본래 자리로 되돌아 올 수 있게 된다.
전체는 항상 하나로 머무르며 사랑으로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지만, 분리와 망각에 힘들 실어온 사람들을 존재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가 필수적임을 느꼈다.
전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로 믿어온 존재방식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우쳐주기 위해서는 전체가 두 인간체로서 환생하는 것이 필요 하였다.
지구상의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망각이 효력을 발휘하는 시스템을 지닌 인간체 및 망각과 분리를 고통으로 느껴지는 시스템을 지닌 인간체로 환생한 것이다. 그 두 인간체가 만나면서 진행되어온 힘겨운 과정들 속에서 모든 존재들을 망각에서 기억으로 인도할 수 있는 에너지적인 작업들이 계속 진행되어 왔다. 아직도 그 과정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그 과정상에서의 하나의 완결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손에 든 당신은 내면에서 자신을 기억으로 이끄는 진실한 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것을 요약 한다면
제1단계 내면의 소리 느껴지기 시작함.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
외부의 사건들 및 상황들이 동시에 전개됨.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엄청난 혼란과 고통을 받게 됨.
제2단계 내면의 소리가 전체의 소리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함.
그 소리가 매사에 엄청난 불편함을 초래하고 성가시게 함.
모든 가치, 모든 지식, 모든 관념의 의미 없음을 돌아보게 함.
‘나’ 의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됨.
제3단계 전체에 머물고자 함.
전체에 머물고자 하지만 쉽지 않음
지나온 기억들 중 필요한 기억이 되살아남
제4단계 전체에 머무름.
분리에서 하나로
아주 오래 전, 우주에서 부조화에 물들어 고통 받는 존재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지구라는 특별한 행성이 만들어졌고, 전체가 머물게 되면서 지구에는 완전한 조화, 진정한 사랑의 에너지가 구석구석 스며들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을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이 지구로 오게 되었고, 오랫동안 전체에 녹아든 채 황홀한 시간들을 보내었다.
이것이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레무리아의 기억이다. 절대적 평화, 절대적 조화의 기억을 간직한 채 지구상의 존재들은 물질화 시대로 첨벙 뛰어 들었고 이후 망각과 분리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전체는 물질 이면에 여전히 녹아들어 있었지만, 사람들은 물질에 빠져 전체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하였고, 전체를 잊고자 하는 염원 때문에 결국 전체를 완전히 망각하게 되었다. 깊은 집단적 최면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렇게 전체에 대한 망각과 전체로부터의 분리를 선택한 인간은 자유의지를 노래하며 내면의 부조화를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부조화는 당연하다고 믿으며 살게 되었고 그 믿음에 따른 행위들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부조화는 진실이라고 결론지었다. 세상의 부조화에 의한 인간의 고통은 인간 자신들의 믿음에 따른 결과였지만 사람들은 전체를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도 하였다.
인간의 이기심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인간의 역사는 폭력성과 잔인성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많은 종교들이 생겨났고 인간은 그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절대자를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그 누구도 전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어떤 종교이든 인간이 이야기하는 절대자의 모습은 진정한 전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지구의 마지막 시기인 지금은 모든 존재들이 망각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이지만, 아무도 전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본래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인간은 그 동안 먼 길을 걸어왔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이아프로젝트를 구상할 때 전체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동안 펼쳐졌던 모든 것은 미리 예정된 것이었다.
분리에 빠져 본래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이 보이는 인간들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궁극적인 치유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계획된 것이었다.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질만을 인식한 채 에너지 세상에 대해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나'라고 여기고 있으며 자신들이 필요한 체험을 위해 물질세계로의 환생을 거듭해 왔음을 눈치조차 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을 망각에서 기억으로 이끌기 위한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고 이제 그 과정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앞으로의 과정은 매우 강도가 높게 펼쳐질 것이고 거의 모든 존재들은 이 과정에서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또 가능하면 거기에서 빠져 나오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그 누구도 기억으로 가는 이 대열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 모두가 함께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으며, 다른 길은 전혀 없다. 기억하지 않는 다면 사람들은 결코 존재로 돌아갈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동안 전체와 분리되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단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임을 알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인생을 마음대로 그리고 멋지게 살았다고 여겼던 인생의 매순간이 사실은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가장 행복했던 것으로 보이는 삶이라 할지라도, 매순간 무엇을 느끼고 지내왔는가를 기억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매우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체에 녹아들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존재도 진정한 평화의 조화를 누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로써 그동안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부조화는 극복 되고, 본래의 자리 즉 모두가 하나로 녹아든 자리로 되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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