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휘용/푸른행성 지구의 진실

푸른행성 지구의 진실 제5장 인간과 생명체들

기른장 2020. 12. 26. 13:58

제5장 인간과 생명체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알고자 하였고, 다른 생명체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규명하고자 하였다.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표명해 왔고, 각 종교들 역시 인간과 인생에 대하여 정의 하고자 시도하였다. 아직까지 그 누구도 다양한 인간의 속성이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하는 견해나 정의를 내 놓지 못하였다.

 

한 때 동양에서는 인간의 성품이 본래 착하다고 하는 성선설과 본래 악하다고 하는 성악설이 대립하였지만, 이 역시 인간 성품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인간을 획일적으로 정의하고자 시도한 한 가지 예일 뿐이다. 또한 비교적 최근에는 인간의 다양성을 의식수준이라는 척도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 역시 별로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랜 시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사색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아직도 인간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 머물고 있을까? 그것은 모든 것을 보이는 것 즉 현상과 형상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추론해 온 방법론적인 결함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인류가 신의 본질과 근원에 대하여 완전히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명체로서 인간과 그 본질로서의 인간에 대한 구분조차 하지 못하였고, 그 두 가지 속성들이 혼재된 상태로 인간을 규명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일부 종교에서는 인간 자체가 아닌 그 본질 즉, 존재(영혼)에 대하여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물질적 생명체인 인간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립 없이 인간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장에서는 먼저 생명체의 본질에 대하여 살펴보고, 생명체로서의 인간을 조망해 본다.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동식물들과 그 밖의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지구 생명체의 본질

 

지구상에는 현재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지구를 가득 메운 인간을 위시하여 아프리카 초원의 코끼리, 사자, 얼룩말, 그리고 인도 밀림의 호랑이는 물론이고 땅 속의 개미와 진드기 그리고 미생물까지, 지구상에는 정말 다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종류와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종류의 나무들 및 식물들도 지구상에 분포되어 있다.

 

생물학자들은 주로 형상에 치중하여 이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들 생명체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생명체의 본질이 영혼 즉 존재라면,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조그만 생명체라도 거기에는 존재가 깃들어 있지 않을까?

 

존재란 근원의식에 의하여 생성되어 계속된 체험을 통해 변화해 나가는 개별의식 혹은 의식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존재란 자신을 탄생시킨 근원의식이 부여한 고유정보에 탄생 이후의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축적되는 정보가 추가되어 형성되는 의식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존재는 체험을 통해 계속적으로 변해가기 마련이고, 어떤 체험을 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성향은 서서히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각 존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탄생될 때 부여된 정보 혹은 기억이고, 이것이 존재의 본질과 성향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지구는 가이아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행성이며 치유를 위해 반드시 지구에 올 필요가 있었던 존재들과 전체를 느끼고 싶어 했던 존재들의 생생한 체험을 위하여 생성되고 운영되어 온 별이다.

 

따라서 물질지구의 모든 환경과 생명체들은 존재들에게 필요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들판에 핀 야생화 한 송이도 그리고 발에 차이는 돌부리 하나도 누군가에는 필요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특히 지구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흐름이 있고 지구에 온 모든 존재들은 필요할 경우 그 흐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즉 바다에 사는 특정 물고기 떼에 깃들어 넓은 바다 속의 세계를 체험 할 수도 있고, 새가 되어 하늘을 높이 날면서 인간세상과 자연을 조망하며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구에 온 대다수의 존재들에게 필요한 체험은 자신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자각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은 체험이라면 지구상에 머무는 한정된 시간 동안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실 지구에 온 존재들이 수많은 생명체들에 모두 깃들어서 체험을 할 필요는 없고, 또 실제로 그렇지는 아니하다. 따라서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 존재(영혼)가 깃들어 있다' 혹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존재이다'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특정 생명체에 존재가 깃들어 있느냐 혹은 그 생명체의 본질이 존재이냐의 여부는 그 생명체의 흐름이 지구에 온 존재들에게 꼭 필요한 체험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인간과 같이 거의 매순간 복잡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는 생명체에 존재가 깃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도 존재는 스며들어 있다.

 

땅에서 살든, 공중을 날아다니든 혹은 바다에서 살아가든 관계없이, 개체로서 활동하는 거의 모든 동물들에게는 존재가 스며들어 있고, 집단으로 서식하는 동물들에는 집단별로 존재가 스며들어 있다. 곰이나 호랑이는 물론이고 소나 말과 같은 가축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개나 고양이에도 존재가 깃들어 있고, 하늘을 높이 나는 독수리에게도 존재가 깃들어 있다.

 

특히 바다에 사는 고래의 경우 아무런 제약 없이 넓고 깊은 바다 이곳저곳을 헤엄쳐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깃들기에는 아주 적합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구상에 온 존재들 중에서 순수한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는 존재들이 고래나 돌고래에 깃든 채 전체와 공명하며 바다 속을 느끼면서 지내왔다.

 

존재는 비단 움직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한 자리에 고정되어 살아가는 식물 특히 나무에도 깃들어 있다. 움직이는 동물에 비하여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나무로서의 체험은 얼핏 보이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나무의 체험은 전체를 느끼며 지내는 것뿐만 아니라, 땅 밑의 수분을 흡수하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입하여 자신의 잎과 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제6장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나무가 자신의 몸을 유지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정보)의 교환은 그 양과 질의 측면에서 현재 인간이나 동물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고, 또 나무는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 지구의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해 왔다.

 

이제까지 나무로의 환생은 자신의 에너지를 순수한 상태로 유지해 온 존재들 즉 전체를 망각하지 않은 존재들에 의하여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순수한 존재가 나무에 깃들어 체험하게 될 때는 특별한 한 그루의 나무에 스며드는 경우도 있지만, 한 지역의 나무 일부나 전체 혹은 특정 종류의 나무들 전체에 스며드는 경우도 많다.

 

비슷한 경우로 바다의 물고기는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 무리의 물고기 떼에 한 존재가 깃드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존재가 머물고 있는 특정 물고기 즉 일종의 본부 역할을 하는 물고기가 인간이나 큰 물고기에 잡히는 경우, 그 존재는 잡히지 않은 다른 물고기 개체로 즉시 옮겨서 머물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 본 생명체들에는 존재가 깃들어 있고, 존재들은 자신이 깃들어 있는 생명체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다시 말해 본래 존재가 깃들게 되어 있는 생명체인 경우, 그 생명체는 존재가 깃든 상태에서 살아 있지만 존재가 몸을 빠져나가면 그 생명체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지구상의 생명체들 중에는 존재들의 체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에너지 정화 등 지구 전체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경우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잘 자라게 한다든지, 특정 동물 집단에 의식을 불어넣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나 양들이 경우, 존재가 깃들어 있기도 하지만 데바가 대신 의식을 불어 넣고 있는 경우도 많다. (제6장 참조)

 

 

전체의 대행자로서의 인간

 

전체는 가이아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물질화된 행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핵심에너지에 손상을 입은 존재들에게 생생하고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치유에 필수불가결하고 그러한 체험은 에너지체가 아닌 물질화된 신체를 지니고 물질세계에서 지낼 때 가능할 것임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치유를 목적으로 지구에 온 존재들 중에는 자신의 본래 진동수 즉 차원의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차원이 비교적 낮은 존재들도 부정성에 많이 감염되었지만 차원이 높은 존재들도 많았다.

 

존재들의 진동수 혹은 차원이란 얼마나 많은 기억이 가능한가를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차원이 높으면 보다 많은 기억을 할 수 있고 보다 복잡한 것을 인지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차원의 높낮이는 결코 존재의 가치나 중요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모든 존재들은 차원과 관계없이 우주를 펼쳐 나가는데 있어 꼭 필요하였기 때문에 근원의식들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다. 따라서 우주에서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상승하고 싶어 하거나 혹은 자신의 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를 부러워하거나 질시하는 일은 결코 없다.

 

치유를 위하여 지구에 온 존재들 중 4차원미만의 존재들은 비교적 단순한 체험만으로도 치유가 가능하지만, 4차원이상의 존재들은 그들 자신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보다 다양한 체험들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존재들이 깃들어 필요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생명체가 요구되었는데, 이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었다. 다시 말해, 가이아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계획 중의 하나가 바로 무수히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생명체 즉 인간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설계된 지구상의 인간은 전체의 대행자로서의 흐름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인간의 신체는 모든 생명체의 흐름을 구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오직 한 가지 흐름만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다른 동식물들과는 달리, 인간의 몸은 모든 동물들의 소리를 흉내 낼 수 있고 모든 행위들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예를 들어, 토끼의 형상을 한 생명체는 오직 토끼의 소리, 토끼의 뜀박질, 토끼의 습성 등 토끼의 흐름만을 나타낼 수 있고, 고양이의 형상을 한 생명체는 오직 고양이의 소리, 고양이의 걸음걸이, 고양이의 습성 등 고양이의 흐름만을 나타낼 수 있다.

 

다시 말해 토끼나 고양이가 다른 생명체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토끼나 고양이에 깃든 존재는 오직 토끼의 흐름이나 고양이의 흐름만을 체험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인간의 형상을 한 생명체는 인간의 모습을 유지한 채 원하는 소리를 내고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특정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거나 특정 동물의 행위를 흉내 낼 수 있고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길게 기르거나 완전히 잘라 버릴 수 도 있으며, 손톱이나 발톱을 기를 수도 있고 짧게 깎을 수도 있다. 특히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들판을 달리는 말처럼 질주할 수도 있고, 비행기를 만들어 새처럼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신체상의 다름을 표출하며 이를 중요시하기 시작한 것은 분리로 빠져든 이후의 일이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형상과 현상에 집착하게 됨에 따라, 사람들은 차별화된 옷, 독특한 헤어스타일, 혹은 특별한 장신구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상대적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본질을 기억하고 있었던 초기의 인간들은 그러한 다름을 구현할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않았으며,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도구의 사용 역시 인간들이 분리에 빠져들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간에게 모든 생명체의 흐름을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은 인간을 전체의 대행자로 설계하였기 때문인데, 물질화 초기의 모든 동식물들은 인간의 그러한 위치를 알았고, 또 그렇게 대하였다. 따라서 물질화 초기 지구는 인간을 중심으로 모든 동식물들은 완전한 조화 속에 머물렀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생명체들을 존중하였으며 전체 속에 녹아든 채 살아갔고, 아무런 근심 걱정도 갈등이나 고통도 없었다.

 

전체의 대행자인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체험의 도구는 '마음'이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을 통해 에너지를 바꾸고 물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였다. 물질화 초기 인간의 물질적 몸은 에너지적인 몸(오라)과 완전히 연결되어 있었고, 필요하다면 마음을 통해 무엇이든 물질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모든 동식물들의 파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 혹은 어떤 동식물들과도 완전한 의사소통이 가능하였다. 극히 불완전한 의사소통 수단인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지금처럼 말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온갖 종류의 갈등과 불편함은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먼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순간이동 능력과 아무리 무거운 물건이라도 공중에 들어 올릴 수 있는 공중부양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의 인간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다양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능력들도 마음을 통해 언제든지 구현 될 수 있었다.

 

초기 인간들은 지금은 파괴되고 변형되어 사라져버린 완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늙고 병드는 현상이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필요한 체험이 끝나 죽을 때가 다가오면 자신의 몸을 빛으로 화해서 물질지구를 떠나 영계로 향할 수 있었다. 현재 일부 사람들이 보여주는 영적 능력과는 비교되지 않는 능력을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 고유의 것으로 인식한 채 살았다.

 

또한 초기의 인간들은 전체에 녹아 든 채 생활하고 있었고, 그들의 두뇌는 항상 전체와 공명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인간들은 무엇을 알고자 하면 두뇌에 이미 기억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분석을 통해 유추하게 되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체와 자신의 두뇌가 공명함으로써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알아 낼 수 있었다.

 

두뇌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현대인의 두뇌 중 실제 사용되고 있는 부분은 전체 용량의 극히 일부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본래 디자인될 때에는 초기의 인간들처럼 전체와 공명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두뇌의 용량 및 기능이 설계되었는데 사람들이 전체를 망각하여 전체와 공명하지 못하게 된 이후에는 본래 설계된 두뇌 용량의 극히 일부만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물질화 초기의 순수한 인간들은 전체 속에 녹아들어 전체의 대행자로서의 모든 것을 갖춘 채 생활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내면에 부조화를 지닌 존재들이 인간으로 환생하여 자신들의 부정성을 표출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점차 달라지게되었다.

 

사람들에게 '나' 라는 인식이 강화되기 시작하면서 '나'가 모든 것에 우선하게 되었고 주위 사람들과의 조화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과의 조화는 점차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또 물질적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한다' 인식은 인생을 자신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존재의 본질과 근원은 점차 망각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본질과 근원을 완전히 망각한 채 자신을 '전체'의 위치에 놓게 되었고 전체 혹은 근원의 존재 여부마저 자신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인간 내면의 부정성이 표출되고 존재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망각이 진행되면서 인간은 모든 면에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발산해 온 부조화의 에너지는 초기 인간들이 가지고 있었던 완전한 유전자를 파괴하고 변형시켜 왔으며, 이 결과 지금의 거의 모든 인간은 초기 인간들이 가지고 있었던 본래의 완전한 유전자를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변형된 유전자로 인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생활하게 되었고, 초기 인간들처럼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고 죽을 때는 빛으로 화하여 떠난다고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또 자신을 근원으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인간의 두뇌는 더 이상 전체와 공명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필요한 무언가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답답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간의 삶을 통해 습득된 불완전한 지식을 '지혜'라고 부르며 인간사회에서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겨졌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후대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전체와의 공명이 끊어져 거의 완전한 무지 속으로 빠져든 인간은 매순간 불안해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잊고 인간 스스로를 물질에 한정시킴으로써 마음을 통한 물질화는 물론이고 텔레파시, 순간이동 등 초기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던 대부분의 능력들은 거의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아주 예외적으로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능력이 발현되고는 있지만, 이는 그러한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 정보의 일부가 남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통해 물질세계와 겹쳐 있는 에너지 세상에 순간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거나 부수는 것은 아직도 가능하다. 또한 계속해서 어떤 것을 상상하거나 원함으로써 하나의 의식체를 만들거나 혹은 물질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인간이 가진 그러한 능력은 물질화 초기의 그것과는 결코 비교될 수도 없다. 전체 속에 녹아 든 채 생활하던 초기의 인간들은 필요한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능력 즉, 진정한 전체의 대행자로서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본질과 전체를 망각 하고 자신을 물질에 한정시킨 채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간들은 그 모든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창조한다는 인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현대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레무리아 후기 고형화 시대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고, 지구의 물질화 이후 처음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성의 구분은 존재들로 하여금 보다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이아프로젝트 진행상 지구에 온 존재들에게 가능한 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였고, 이를 위해 특별한 생명체인 인간이 설계되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인간 및 다른 생명체들을 탄생시킬 때 서로 조금씩 다른 흐름을 구현하는 신체 즉, 남성체와 여성체를 디자인함으로써 훨씬 다양한 관계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명체들에게는 남성과 여성이 생겨났고, 존재들이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관계를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남녀 신체는 대기와 대지로 구현된 전체의 두 흐름을 상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남성의 성기는 전체의 흐름 중 대기의 펼쳐짐을 반영하여 디자인 되었고, 여성의 성기는 대지의 수용성을 반영하여 그 형태가 결정되었다. 또한 대지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듯 여성의 가슴에서 아이가 젖을 먹고 자랄 수 있게 되어 있고, 반면 남성의 가슴은 대기가 존재들을 포용하고 있는 것처럼 아이에게 직접 젖을 주지는 못하지만 아이를 포옹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물질화 초기, 인간이 전체 속에 녹아들어 있을 때 남녀 간의 성관계는 너무나 특별하고 성(聖)스러운 것이었다. 남녀가 성관계를 가질 때는 구체적인 행위는 기억하지 못한 채 하나의 느낌에 머무르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지구가 물질화된 이후, 이렇게 전체(하나)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남녀 간의 성관계를 통해서 가능했기에, 그 행위는 너무나 신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망각이 시작되면서 성관계를 가질 때 사람들은 더 이상 완전한 전체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완전한 하나의 느낌 대신에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남성과 달리 여성은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자궁을 몸속에 지니고 있는데, 자궁은 단순히 태아가 자라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자궁은 남녀를 통틀어 전체(혹은 하나)의 에너지 자체가 머무르는 신체상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성과 여성이 하나일 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가능하도록 한 신체상의 설계는, 전체의 두 흐름 즉 대기와 대지가 하나인 자리에서의 사랑이 모든 존재들을 가능하게 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신체상의 설계로 인하여, 남성과 여성의 신체가 하나로 융합될 때 인간은 전체의 대행자로서 존재들을 물질계로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이고, 이는 하나의 전체 혹은 하나의 근원이 모든 것을 낳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인간의 망각이 시작되면서, 남성과 여성간의 신체적 차이에 대한 본래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져 갔고, 남녀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신체적 차이에 의하여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물질화 초기에는 신체상의 다른 부위들이 어떤 흐름이 어떻게 반영되어서 그러한지를 알고 있었고 남녀는 자신들에게 부여된 신체상의 차이로 인한 특성을 완전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각 이후에는 호기심의 차원에서 신체적인 차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남녀의 차이란 신체상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고 신체에 깃든 존재의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인간사회는 남녀의 신체상의 차이를 존재의 가치와 결부시켜 차별하게 되었고, 남녀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요구하게 되었다. 특히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여성에 대한 비하와 차별은 점차 심해졌는데, 이는 사람들 내면의 부조화 에너지에 기인한 것이었다.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 8차원의 세 존재들은 자신들이 처음 고통에 빠져든 이유가 자신들 내면에 심어진 두 번째 근원의식의 속성인 조화와 이해를 추구하는 속성 혹은 여성적 성향에 기인한 것이라 여겼기에 그 속성에 대하여 깊은 반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부조화가 심어진 모든 존재들은 여성성에 대한 비하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이 인간사회에 반영된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고착화됨에 따라 여성으로 태어난 대부분의 존재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힘들어하게 되었고, 특히 부조화 에너지를 가진 존재일수록 그런 경향이 많았다. 그것은 여성의 신체가 지닌 특성들, 예를 들어 희생이나 수용 등이 그 존재에게 심어진 부조화 속성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질화와 더불어 사람들은 아이들을 낳고 키울 수 있게 되었는데, 아이들과 관련된 체험은 전체에 대한 또 다른 체험이었다.

 

아이들은 본래 전체에 녹아든 순수한 존재들의 흐름을 구현하여 디자인 되었다. 따라서 아이에 깃든 존재의 내면의 부조화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아이는 누구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으로 태어나고 성장한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아이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부모에게 맡겨야 한다. 이러한 아이들을 낳고 키워보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과 전체와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의미 역시 인간의 망각과 더불어 변화 되었다.

 

초기의 부모들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있는 아이를 전체의 대행자로서 양육한 반면, 망각 이후의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인내심이나 이해 등을 증대시킬 수 있음에 큰 의미가 있었다. 다른 경우라면 무시하거나 넘겨버릴 것들이지만, 자신의 신체를 통해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돌보고 이해하려는 체험이 부모들에게 일어났는데, 이는 부모들이 아이를 자신들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신체를 통하여 태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만 근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자신의 연장선으로 인식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 가족, 내 친척, 내 나라 등 자신들과 깊은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혹은 집단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돌보고자 하는데, 이것 역시 현상의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고 겉모습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의 분화

 

물질화 초기에는 대륙도 하나, 바다도 하나 그리고 인종도 하나였다. 사람들은 모두가 옅은 갈색을 띤 채 투명해 보이는 모습 즉 인간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인간이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 색깔 그리고 상당한 외형상의 차이를 보이는 여러 인종으로 분화된 것은 대륙의 이동 이후의 일이었다.

 

제4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물질화 이후 고요하고 평화스럽던 대지는 대륙의 이동이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변하고 분화되기 시작 하였다. 대지 속에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에너지들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표출되지는 않고 있었는데 대륙의 분리와 더불어 이 다양한 에너지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분화의 에너지들은 각 대륙별로 지형을 변화시키고, 기후를 변화 시키고 그리고 생명체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경우 머무는 대륙과 지역에 따라서 신체적 모습과 유전자들은 변화되기 시작하였는데, 분화의 에너지는 피부와 머리카락 색깔을 변화시키고 신장을 키우거나 줄이기도 하였으며, 또한 눈동자의 색깔조차 변화 시켰다.

 

예를 들어, 현재의 백인종은 땅의 에너지 때문에 피부색이 옅어진 경우이고, 흑인과 황인종은 각 대륙 특유의 에너지 때문에 각각 검은색과 노란색이 더욱 드러나게 된 경우이다. 또한 같은 인종이라고 해도 거주하는 지역의 고유한 에너지로 인하여 이목구비나 머리카락 색깔 등이 점점 다르게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인간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동식물에게도 일어났다. 지역 고유의 에너지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따라서 대륙이동 이전에 있었던 동식물의 원형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분화 되었으며, 또 무수히 많은 변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각 대륙별 인종과 동식물들의 특징은 이렇게 대륙 이동 이후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에너지 변화의 과정 속에서 퇴화되어 멸종되거나 혹은 변형된 채 그 종을 유지하는 생명체들도 많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이들은 본래의 완전한 인간에서 퇴화된 채 영영 사라졌거나 혹은 변형된 채 종족을 유지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예티(yeti)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의 산속인간들을 비롯하여 중국의 예렌(yeren), 북미의 빅풋(big foot 혹은sasquatch), 인도네시아의 오랑 펜덱(orang pendek), 몽골과 소련의 알마스(almas), 호주의 요위(yowie) 등이 바로 이들의 후손인데, 이들은 특별히 에너지 변화가 심했던 지역에 거주했던 인간들의 후손이다. 당시 그들 조상들에게 있었던 극심한 에너지 불균형 상태는 그들의 유전자에도 영향을 미쳐, 세계 곳곳에는 반인반수로 불리는 변형된 인간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지구상에는 소위 인류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여러 화석들이 남아 있다. 이 화석을 남긴 주인공들 중 상당수는 지구의 물질화가 일어날 때 최초의 인간으로 태어나기로 예정된 존재들이었는데, 물질화가 진행되는 기간 중 전체에 머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질화의 경도(硬度)를 이기지 못하여 퇴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살다간 존재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정상적인 인간들의 눈을 피해 몇 명이 함께 모여 지내다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였고, 생식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현재 인류학자들이 인류의 조상으로 말하고 있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austlalopithecus) 등 고인류 화석들 중 상당수는 물질화의 과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생겨난 미완성 인간의 화석들이다. 물질화의 미완성 정도에 따라 이 화석들에 나타나는 두개골 등의 크기와 과학자들의 추정연대도 당연히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인간의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위의 사람들과 매우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매순간 상황들을 인지하고 또 그것에 반응하고 있는데, 그 반응들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미리 예상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어떤 때에는 자신에게 조차 의외로 여겨질 만한 것도 적지 않다. 또한 그 반응은 상대방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별다른 이유 없이 매우 냉정하게 대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상황에서 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 양식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매우 안정되어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행동에 근거하여 인간을 정형화해 보려는 이제까지의 수많은 시도들을 의미 없게 만들었으며, 인간을 규명해 보려는 많은 학자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인간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또 인생이란 미리 계획되어 전개되는 것임을 알지 못한 채 드러나는 모습만을 관찰해서 인간을 설명한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그 몸에 깃들어 있는 존재(영혼)라고 할 수 있지만, 의식의 측면에서 바라 본다면, 인간이란 인간의 몸을 지닌 채 매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의식(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순간순간에 반응하는 그 의식이 몸에 깃들어 있는 존재 그 자체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의식은 인간의 본질인 존재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인간의 의식은 몸에 깃들어 있는 존재들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지만, 그 인간체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중요한 요인들도 있다. 즉 인간의 의식은 육체의 탄생 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정보, 살아오면서 받아들이거나 형성되어 온 지식과 관념, 태어나기 전 미리 설계된 인생의 프로그램 등에 의해서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존재란 탄생 시 근원의식으로부터 부여받은 기본적 속성에 이후의 체험들이 덧붙여져 형성된 의식체이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은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요소들과 근원의식으로부터 부여된 존재의 본래의 성향 및 지구에서의 전생들을 포함하여 존재로서 지나온 과거의 체험들이 복잡하고 묘하게 얽힌 채 형성된다.

 

그런데 제8장에서 언급하듯이, 존재들이 망각에 빠져든 이후 전형적인 인간의 몸에는 한 존재가 아닌 여러 존재들이 함께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한 인간의 의식은 실로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에 의해 구성된다. 하지만 인간의 의미는 인간 그 자체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이 인간이라는 몸을 빌어 체험을 하고 있다는 점에 있고 특정 인간의 몸에 어떤 존재가 깃드느냐에 따라 그 인간은 아주 다른 의식체로 변모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인간의 몸이라도 이제까지 지구상의 인간으로 환생하지 않고 주로 고래나 나무에 머물었던 순수한 에너지의 존재가 깃들게 되면, 그 사람은 나무를 사랑하고 고래와 바다를 그리워하며 인간사회의 모든 것에 대하여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그렇지만 사랑이 넘치는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인간으로서의 다양한 전생들이 있는 존재가 그 몸에 들어오면, 그 존재가 구체적으로 어떤 전생들을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체로 인간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자신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활동하게 된다.

 

또한 같은 존재가 남성의 몸에 들어가는 경우와, 여성의 몸에 들어가는 경우도 신체적 특성에 따른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대체로 여성의 몸에 들어가면 남성으로 태어나는 경우보다 좀 더 사람들을 잘 수용하고 보살피는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신체란 체험을 위해 몸에 깃들어 있는 존재를 담고 있는 그릇 혹은 운반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를 '나'로 여겨 왔는데, 이는 본질을 알지 못한 채 그 본질을 담고 있는 운반체만을 인지해 온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화된 인간은 지구의 물질화와 더불어 존재하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에는 우주의 어느 곳에도 그와 같거나 비슷한 생명체 혹은 의식체는 없었다.

 

인간이란 지구에 오게 될 존재들을 위하여 근원이 특별히 고안한 물질화된 생명체이다. 다시 말해, 존재들이 필요한 체험을 가장 효과적이고 생생하게 할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그동안 지구에 온 모든 존재들은 특정 생명체에 깃든 채 생생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체험들을 해 왔고, 또한 그 체험들은 확실한 기억으로 각 존재에게 하나하나 각인되어 왔다. 그렇게 각인된 기억들은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 되살아 날 것이며, 각 존재들은 자신이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행위들을 해 왔는지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완전한 자각 및 치유로 이어질 것이다.

 

지구상의 물질화된 모든 생명체가 다 그러하듯이, 지구의 마지막 시기가 끝나면 인간이라는 생명체 역시 사라질 것이고, 오직 존재들의 기억에만 남게 될 것이다.

 

 

동식물들

 

전체의 대행자로서의 흐름을 구현하기 위해 고안된 인간과는 달리 동식물들은 오직 그들에게 부여된 흐름만을 구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토끼는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없고 신체의 특성상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기도 어려우며 물고기는 물고기의 흐름만을, 그리고 각종 식물은 그 종의 흐름만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흐름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인간으로 환생하는 경우와 달리, 어떤 존재가 동식물로 환생한다면 비교적 좁은 범위의 체험만이 가능해진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비교적 단순한 존재들(4차원미만)의 체험을 위하여 도입되었다.

 

치유가 필요한 존재들 중에서 차원이 높아 복잡하게 기능하는 존재들의 경우 동식물로 환생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복잡하지 않은 존재들의 경우, 여러 동식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신체에 부여된 속성들을 체험하면서 치유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토끼의 귀여움과 순함도 사자의 위엄도 각각 그 동물의 신체상에서 주어진 것일 뿐, 그것이 존재의 본래 속성은 아니라는 것을 지구의 마지막 시기에 알게 됨으로써 존재들은 치유된다.

 

이러한 자각은 사람들로 환생한 존재들이 '나'의 의미 없음을 인식하게 되는 시기와 같은 때에 일어나게 된다.

 

동물들의 경우 그들이 육지에 서식하든 혹은 해양에서 서식하든 상관없이 대부분 존재들이 깃들어 있다.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가축이나 애완용 동물에도 존재들이 스며들어 있고, 물고기를 포함한 바다의 많은 생명체들에도 존재들은 스며들어 있다.

 

야생동물이나 해양생물 중 개체로서 활동하는 동물에는 각 개체마다 존재가 스며들어 있고 쥐나 어류와 같이 집단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물에는 집단별로 존재가 깃들어 있다. 그런데 바다의 물고기 떼에 스며들어 체험하는 존재의 경우, 물고기로서의 체험도 의미가 있지만 바닷물이 주는 편안함으로 인하여 휴식하는 의미가 강하다.

 

지금 지구상에는 사자나 호랑이 등과 같이 육식을 하면서 강한 공격성을 나타내는 동물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동물들도 물질화 초기에는 모두 초식성이었으며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들이 육식성으로 바뀌고 또 공격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대륙이동 이후 인간의 부정적 파장이 발산되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인간이 발산하는 부조화 파장이 그 동물들에게 내재되었던 흐름 혹은 성향을 드러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 현재 동물들의 세계에는 '먹이사슬' 즉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먹고, 작은 동물은 그보다 더 작은 동물을 먹거나 혹은 식물을 먹는 일종의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이 역시 대륙이동 이후 인간의 내면에서 부조화 파장이 뿜어져 나오면서 시작된 것인데, 인간들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이나 재도를 만들었지만, 동물들의 경우 자연의 틀 안에서 그러한 질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대다수의 동식물들은 먹이사슬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이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지구 시스템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식물들은 물론이고 많은 생명체들은 자신이 인간이나 큰 생명체의 먹이가 됨을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

 

특히 작은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힐 때에도 자신들이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결코 한탄하거나 기피하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구상의 생태계는 유지되어 온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비교적 단순한 존재들의 체험을 위해 도입되었지만, 일부 생명체들은 지구의 시스템 유지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바다에 가재나 게, 조개 등의 경우는 바다의 오염물질들을 분해하여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미생물들 역시 부패된 물질을 분해하여 흙으로 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일부 미생물들이 인간과 동물들의 질병을 유발시키고 있지만, 이들 병원균들은 인간이 분리에 빠진 이후 발산하기 시작한 부조화의 파장 때문에 변형된 변종 미생물들이다. 본래의 미생물들은 주로 죽은 생명체의 몸에서 활동하거나 살아있는 몸에서는 이롭게 작용 하였지만, 이들 변종 미생물들은 살아있는 동물들의 몸에서 활동하여 각종 질병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 동식물들은 존재들의 체험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지구 에너지 시스템의 유지에도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고래, 돌고래 등의 해양 동물과 나무들이 여기에 속하는데,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제6장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