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탄 작은 원반은 모선의 정상을 목표로 해서 미끄러지듯 내려갔지만 그것은 지구의 비행기가 항공모함 갑판에 착륙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내가 보고 있자니까 고래의 하품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원형 속의 해치, 즉 입구가 나타났다. 이 모선의 도해(그림 참조)를 본 사람이면 아래쪽을 향해 좀 기울어져 있는 투박한 콧등 같은 부분이 위로 돌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해치는 원통상(圓筒狀)의 선체(船體)의 바닥 가장 말단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바로 뒤에서부터 콧등의 사면(斜面)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착륙한 소형원반은 전진을 계속해서 해치로 들어가 아래쪽으로 기울면서 이 거대한 모선 내부로 진행해 들어갔다. 이때 처음으로 나는 덜컥 주저앉는 듯한 느낌을 뱃속에서부터 느꼈다. 이것은 정찰원반이 이미 자체의 추진력을 쓰지 않고 모선의 인력에 끌려들어 갔기 때문인 듯했다.
그대로 원반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사면을 계속 내려갔다. 정찰원반의 바깥 가장자리를 두 줄의 레일에 올려놓은 그 강하속도는 가장자리 부분의 마찰과 자력으로 조절되어 있다. 조종사 오오손은 그 조작을 완벽하게 몸에 익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번 몸의 균형을 잃을 뻔했을 때 균형을 되찾을 동안 그가 정찰원반을 멈추게 했기 때문이다. 그 뒤 다시 완만하고 미끄러운 활강이 계속된 끝에 우리는 마침내-나의 판단으로-모선의 중간쯤 됨 직한 곳에 도착했다. 정찰원반은 여기서 정지하고 곧 문이 열렸다.
바깥은 플랫폼이었다. 길이 4.5m, 폭이 1.8m가량 되어 보였다. 거기에 남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케이블이 달린 금속제 버클(죔쇠)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어림잡아 160cm쯤 되어 보였다. 내가 보기에 그의 얼굴빛은 지금껏 만나 본 어느 우주인보다도 거무스름했다. 복장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오오손이 입고 있었던 것과 빛깔이나 모양이 같은 갈색의 우주복이었다. 검정색 베레모 밑으로는 검은 머리털이 보일락말락했다.
나는 파아콘의 뒤를 따라 정찰선을 나왔다. 라뮤우가 내 뒤를 이었고 마지막으로 오오손이 나왔다. 베레모의 남자는 플렛폼에서 떠나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웃는 낮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서로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이 플랫폼에서 열 두셋 층계의 계단이 모선의 갑판으로 뻗어 내리고 있다. 나는 안내를 받아 그 계단을 내려가면서 도중에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정찰원반을 받치고 있는 두 줄의 레일은 아래쪽으로 구부러지면서 시계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레일의 사이는 어두운 공간 뿐으로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또 다른 한 쌍의 레일은 정찰원반 옆의 분기점으로부터 쭉 뻗어나가 선미(船尾)의 거대한 격납고, 즉 수용갑판 쪽으로 뻗어 있고 그 안에는 몇 대의 같은 형(型)의 정찰원반이 레일 위에 안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수용 격납고랍니다. 행성 사이를 항행중에 작은 정찰원반은 이곳에 수용되어 있지요.」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 곁에서 잠깐 걸음을 멈춘 파아콘이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제부터 다른 행성으로 떠날 예정이면 우리의 정찰원반도 플랫폼에서는 내리는 동안만 정지하고, 그대로 분기점을 통과해서 장소의 지정을 받은 뒤 이 격납고로 직행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로 되돌아갈 예정이니까 정찰선은 이 플랫폼에서 충전(充電)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나는 뒤돌아 서서 플랫폼의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벌써 그는 정찰선의 가장자리에다 케이블이 달린 버클을 밀어 넣고 있었다. 가장자리와 레일의 양쪽을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충전이라는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이 버클은 내게는 지구의 기계공이 사용하고 있는 커다란 죔쇠처럼 보였다. 그 케이블의 한쪽 끝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버클과 레일을 연결하는 것은 회로를 완전히 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내 사견이지만, 정찰원반의 가장자리 밑에 보이지 않는 접촉점이 있어서 여기에 직접 연결할지도 모른다. 그라나 나는 질문으로 그들을 더 이상 지체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일어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오오손은 자발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소형 정찰원반은 모든 힘을 자체공급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이 모선에서 비교적 짧은 거리가 아니면 날 수 없고 다시 충전을 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육중한 모선과 접촉 지점이나 관측 지점 사이의 연락선으로 사용되고 모선의 동력장치로부터 언제나 재충전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계단 밑에 내려와서 우리는 커다란 조종실로 들어갔다. 방은 장방형이지만 귀퉁이는 둥그렇게 되어 있었다. 크기는 대강 10.5m에 13.5m를 곱한 정도이고 높이는 대충 12m정도였다. 두개의 출입구 문을 빼놓으면 벽은 모두 색채를 띤 빛이 점멸하는 이른바 도형과 도표 따위로 꽉 차 있었다. 정찰선의 그것과 비교하자면 규모도 크고 갯수도 훨씬 많았다.
이 조종실 네 벽 가에는 3개의 작은 계단식 단(段)이 있어서 대부분의 장치를 거기서 감시하거나 조사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가장 상단에는 주력 망원경이, 가장 하단에는 별개의 망원경이 비치되어 있다. 이 두 개의 망원경으로부터 선내 각 부의 여러 장치에는 전자공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선내 여러 곳에서 이 두 대의 망원경을 마음대로 가동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또 이 방안에는 자동제어장치가 있었지만 상세히 서술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정찰원반 안에서도 이 자동제어장치의 소형을 본 적이 있다. 이 조종실에는 이 밖에도 몇 개의 기계류가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될 수 있으면 이 조종실에 남아서 이러한 도형이나 도표·채광·기계·기구 따위를 자세히 관찰하고 나아가서 그 조작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으나 그러한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는 곧장 이 조종실을 나와 두 번째 문을 거쳐서 옆의 휴게실로 안내를 받았다. 이 방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화려한, 홀이라기보다는 라운지였다. 문턱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일순간, 그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실내에 놀라 숨을 들이키고 소리를 죽였다. 기막힌 그 실내장치에 놀랐을 뿐 아니라 멋진 라운지 가득히 넘쳐흐르는 조화로운 분위기에 감동되었던 것이다.
이 예기치 못했던 체험에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얼마쯤의 시간이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좀더 자세히 알려고 다시 내 주변을 휘둘러 볼 수 있는 침착함을 되찾기에 이르렀다.
천장은 내 어림으로는 약 4.5m, 실내 면적은 사방 12m 넓이였다. 부드럽고 신비한 청색 빛이 실내를 비추고 있었으나 여기서도 조명기구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밝기는 어디나 같았다.
문턱에서 이 호화스러운 라운지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찰나, 나는 순간적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젊은 두 여자가 소파에서 일어나 우리를 영접하러 나온 데 대해 정신을 빼앗겼다.
참으로 기막힌 놀라움이었다. 그 어떤 이유에서 나는 여자우주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름다운 두 여자가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의 출현 그 자체,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 인사하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오면서 확실히 나타내는 따뜻한 태도 등은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우주선의 장려한 실내를 배경으로 완전히 나를 사로잡았다.
둘 가운데서 몸집이 작은 여성이 내 손을 잡았다. 인사의 뜻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내게서 떠나 방 한 귀퉁이로 갔다. 이번에는 키 큰, 아주 젊어 보이는 소녀가 몸을 굽혀서 내 뺨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때 먼저 미모의 여자가 무색의 액체가 담긴 작은 글라스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나를 주려고 가져온 것이다.
두 여자의 따뜻한 환영에 깊이 감동한 나는 고마움을 말하고 글라스를 받아 들었다. 그 물은(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구의 맑은 샘에서 솟은 샘물 같은 맛이 났다. 그 물을 조금조금 마시면서 나는 이성을 되찾았고 이 아리따운 젊은 여자들의 모습을 뚜렷이 내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노력했다.
물을 가져온 여자는 키가 157cm 가량이고 그 살결은 매우 고우며 물결처럼 굽이친 금발이 균형이 잡힌 양어깨 바로 밑까지 아름답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참으로 부드럽고 즐거운 표정을 띠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나의 마음속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반투명이라고 해도 좋을 살결은 점·티 따위라고는 하나도 없고 말할 수 없이 가냘픈 느낌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몸에는 팽팽한 데가 있고 그녀의 살에서는 따스한 미광이 햇무리처럼 발산되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코는 뚜렷했고 작은 귀에 그 흰 이빨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나이는 아주 젊어 보였다. 내 짐작으로 겨우 스물쯤 되었을까. 그 손 또한 가냘프기만 했고 끝이 길면서 홀쭉한 손가락이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두 여자 모두 얼굴이나 손톱에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데 나는 놀랐다. 입술은 두 여자 모두 진한 자연의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눈에 띌 만한 보석류도 몸에 걸치지 않고 있었다. 실지로 그러한 장신구는 그들의 자연미를 깎아내는 구실 밖에 못하는 것이다.
그녀들은 모두 비단 같은 감으로 된 옷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옷자락이 길쭉하게 발목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대조적인 색깔로 된 화려한 띠를 질끈 매고 있었다. 이 띠에는 보석류가 박혀 있었다고 생각된다.
작은 몸집의 블론드 여인의 옷은 맑은 담청색이었고 그 조그마한 샌들은 황금빛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고 있는 행성의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카르나(Kalna)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또 한 사람의 키 큰 여성에게 붙인 이름은 일무스(Ilmuth). 그녀는 풍성한 갈색 머리를 카르나와 마찬가지로 양어깨 바로 밑까지 흘러 내리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적갈색을 띤 흑색으로 아름답게 물결치고 있었다. 그 눈에서는 카르나와 마찬가지로 즐거운 표정을 엿볼 수가 있었다. 나는 그녀 역시 나의 마음을 속속들이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것(텔레파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우주인에게서 받은 공통된 인상이었다. 이 아름다운 미녀가 걸치고 있는 옷의 색깔은 차분한 짙은 녹색이었고 샌들은 적동색이었다. 일무스는 파아콘처럼 화성이라는 행성의 주민이다.
이 우주에서 온 여인들에 대해 묘사하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임을 나는 새삼 깨닫고 있다. 아마 나의 불완전한 묘사를 바탕으로 삼아 독자 여러분은 스스로의 상상력의 날개를 펴서 완전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추구해 주기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이 언어라는 것이 참된 실재를 드러내는 데 참으로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글라스의 물을 마신 뒤에 자리에 좀 앉으라는 말에 나는 기꺼이 따랐다.
우리가 들어온 방문 바로 정면 벽에 한 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는 <신(神)>을 그린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때까지 두 젊은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도취돼 있던 나는 이 순간 완전히 그 감격을 잊고 말았다. 이 초상화에서 발산하는 강렬한 빛이 나를 휩쌌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은 나이로 쳐서 18세내지 25세 정도의 한 사람의 <신>의 머리와 가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얼굴은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조화가 구체화되어 있었고 눈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예지와 자비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무아경에 빠진 나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몰랐다. 이 황홀감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나는 스스로 정신을 차려 주위의 상황을 주목하기에 이르렀다. 이 <신>이 누구냐고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카르나가 침묵을 깨고 이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분은 우리들의 <영원한 생명>의 상징입니다. 이제 어느 우주선에도, 어느 가정에도 이 그림이 걸려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나이를 먹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이 상징을 눈앞에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 한쪽에 테이블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많은 의자가 놓여있었다. 이 테이블은 우주선 탑승원들이 식사하거나 회의를 갖는 데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몇 사람밖에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지만 탑승원의 수가 백 명은 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 추측은 확증을 얻을 수는 없지만 테이블의 용도에 대한 상상은 파아콘이 옳다고 시인해 주었다. 나는 또 이 실내의 대부분은 항행중 탑승원이 저마다 부서에 있지 않고 비번일 때 탑승원과 그 방문객의 휴식처로 사용된다고 보았다. 이 넓은 홀의 나머지 부분에는 여러 가지 형과 크기의 긴 의자, 소파 따위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광경은 지구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지구의 것보다는 좀 낮고 훨씬 안락했다. 디자인이나 모양도 월등 우아했고 모두 털이 북슬북슬하고 푹신한 직물로 싸여 있었다. 색깔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풍성하고 따스하면서도 안정된 색을 보는 것은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의자들 옆에는 유리나 수정으로 된 낮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는 재미있는 장식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재떨이 같은 것은 구경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우주인들은 니코틴을 섭취하는 습관이 없음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담배는 주머니에 박혀 있는 채였다. 그러나 딱 한 번 정말로 버릇이 나와서 담배를 꺼냈더니 그것을 본 금성에서 온 작은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피우십시오, 피우고 싶으시면. 재떨이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나 아시겠지요. 이런 묘한 습관에 빠져 있는 건 지구인뿐이랍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담배갑에서 한 개피도 빼지 않고 도로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내 눈으로 보았던 일을 계속 써나가기로 하자. 마룻바닥에는 사치스러운 카페트가 벽면까지 길게 깔려 있었다. 전혀 무늬없는 엷은 다갈색의 융단과 털이 북슬북슬한 부드러운 직물이었다. 그 위를 밟고 걷자니 마음이 춤추는 듯했다.
앉으라는 말에 나는 긴 의자에 가서 걸터 앉았다. 양쪽에는 파아큰과 라뮤우가 있었다. 정면에, 이야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에 같은 형과 크기의 긴 의자가 있고 거기에 두 미녀가 오오손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나는 아직도 빈 글라스를 손에 들고 있었던지라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앞에 있는 낮은 테이블 위에 글라스를 내려놓았다.
이 글라스의 재질이 재미있었다. 수정같이 투명하고 아무런 무늬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지구에서 보는 유리와도 다른 느낌이었다. 플라스틱도 아니었다. 어떠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으나, 이것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실내 비품에서 눈에 띄는 특징을 두루 살핀 다음 나는 벽면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오른쪽으로 좀 열리다 만 커다랗고 솜씨가 일품인 문짝이 있었으나, 손잡이나 자물쇠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카르나는 이것이 창고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일단 우주 깊숙이 연구 여행을 나오면 이 우주선은 오랫동안 고향의 행성으로 돌아가지 않을 때가 흔히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중에 언제나 다른 행성에 내리는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필수품이나 비품을 비축해 둘 큼직한 저장실이 필요한 것이지요. 저기 보세요. 저기 반대편 벽의 문은 저장실 문과 아주 같지요. 그러나 저기는 조리실이랍니다.」
그 문은 내가 식당이라고 생각한 방 옆에 있었다.
오른쪽 문 가까운 벽에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흥미 있게 검토했다. 그것은 어떤 도시의 그림이었으나 언뜻 보기에는 지구의 여느 도시와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다만 지구의 도시는 흔히 정연한 사각형의 짜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환상형(環狀型)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물론 건물은 아주 달랐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구에도 숱한 건축양식이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여기 건물에 가까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는 아담하고 경쾌한 미(美)가 극치에 이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있는 지구의 건축가는 많지만 아직도 완성한 사람은 없고 우리 인류가 꿈꾸고 있는 이상도시(理想都市)임은 분명하지만 지구에서는 아직 구경한 일이 없다. 물으나 마나 나는 여기 이 그림은 이 모선의 고향인 금성의 도시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으니 역시 그러했다.
그 문 건너편에 또 한 장의 그림이 있었다. 구름과 산, 농원(農園)을 흐르고 있는 냇물 따위를 그린 전원 풍경이다. 만일에 농가가 이 일대에 흩어져 있고 역시 환상(環狀)으로 놓여 있지 않았다면 자칫 잘못하면 지구의 풍경으로 알고 넘어갔을 것이다. 농가의 이러한 배열은 이 농촌을 조그마한 자급자족의 공동체로 만드는 데 있어서 장방형보다도 훨씬 더 효과를 올릴 수 있음이 분명했다. 거기에는 마을 사람에게 중요한 일용품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모조리 갖추어져 있다. 금성에서는 일용품의 배당은 물론 모든 면에서 참된 평등이 실현되고 있었다. 따라서 다른 도시로 여행한다면 이는 오락이나 개인적 이유를 빼놓고는 있을 수가 없다.
반대편의 벽, 즉 길쭉한 테이블 건너편에 거대한 모선의 그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그림이 우리가 타고 있는 모선을 나타내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는데, 이 의문이 내 마음에 떠오르자 바로잡아 주었다.
「아니지요. 우리의 모선은 훨씬 작은 것입니다. 이 그림의 모선은 배라기보다는 여행하는 도시라고나 할까요. 그 길이는 몇 킬로미터에 걸쳐 있습니다. 우리 배는 겨우 600m에 지나지 않거든요.」
독자 여러분은 틀림없이 이런 대규모의 우주선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일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우리가 기계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위대한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할 줄 알게 되는 날, 거대한 우주선 내부에 도시를 건설하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런던이나 로스앤젤레스는 폭이 대략 64km에 가까운데 거의가 미발달한 기계력과 인력으로 쌓아 올려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는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인력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지구인도 우주도시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카르나(Kalna)가 설명했다.
「이 같은 우주선은 수없이 만들어져 있지요. 금성뿐만 아니라 화성이나 토성 그 밖의 행성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렇다고 한 행성이 전용하려고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 목적은 전우주 공동체의 모든 시민을 위한 교육과 오락에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탐험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세계에서는 여행은 일부 소수자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권리입니다. 우리들의 별에서는 달마다 주민의 4분의 1이 이러한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 다른 행성에서 머물기도 합니다. 지구의 여객선이 외국 항구에 정박하는 일과 같지요.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광대무변한 우주를 배우고 당신네들의 《성서(聖書)》에도 적혀 있듯이, <아버지>의 집에는 <많은 성(城)>이 있음을 이 눈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각 행성에 있는 지혜의 전당에는 여러 가지 기계장치가 있어서 우리 시민은 그것을 사용해서 다른 행성의 상태와 태양계 그리고 우주 그 자체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제적인 체험은 불가능하지요. 그 점, 우리들이나 당신네들이나 같지요. 그래서 이 그림에서 보신 바와 같은 우주선단(宇宙船團)을 건조한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조그마한 인공행성이라고 해도 괜찮겠지요. 이 안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석 달 이상 생활하고 즐기고 하는 데 소요되는 일체의 것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고사하고, 실물의 행성은 모양이 구형인데다 <신> 힘으로 창조되었고 그리고 중심이 되어 있는 태양의 주위를 타원 궤도로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의 이 조그마한 인공행성은 모양이 원통인데다가 우주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고 있는 동안에 별을 수놓은 천공의 개념이 내 마음속에서 점점 크게 전개되어 갔다. 나는 카르나가 말하는 <다른 행성>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속의 의문에 답해서 오오손이 입을 열었다.
「우리의 선단은 태양계 안의 다른 행성을 방문할 뿐만 아니라 가까운 다른 태양계의 행성에도 찾아갑니다. 하지만 우주에는 아직도 무수한 태양계가 있으며 그 가운데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성이 있답니다. 우리들도 아직 가보지 못한 별이 쌓이고 쌓였지요.」
여기서 또다시 어떤 의혹이 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찾아간 이른바 그 <다른 행성>에서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자문해 보았다. 금성인의 눈이 반짝이면서, 입가에는 씩 웃음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내 심중의 질문을 그는 알아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구의 인간만이 유일한 예외랍니다. 다른 우주세계의 사람들은 모두가 매우 우호적입니다. 그들도 거대한 우주비행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동포들의 오락과 교육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행성을 찾아가면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그들도 또한 친구로서 우리의 행성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들 우주선이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 곳은 지구뿐입니다. 지구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조그마한 행성에 붙박여 있지 않고 우주에 대해서나 우주인에 대해서 보다 이해심이 있는 태도를 보여 줄 때까지 지구 가까이로 접근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은 연구에 소모되는 일정시간 이외에도 많은 여가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행성에 도착하면 즐거운 모임이 열립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하고 그는 매우 분명히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다른 행성들의 사람들이라도 서로 낯선 사이가 아니라 모두가 친구들이지요. 따라서 어디를 가나 반드시 환영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행성을 광대한 생명의 바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들이 갈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행성도 앞으로 우주선이 보다 훌륭히 개량되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태양계에서 멀리 떨어진 별이라면 우리도 거기까지 가는 데 2, 3년은 걸립니다. 그러나 태양계 안이라면 행성 사이의 거리는 몇 시간이나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지구에서의 거리의 개념을 되새기면서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먼 거리를 그처럼 단시간에 갈 수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날 수 있지요?」
「스피드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지구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 주고 있지요. 일단 우주선이 출발해서 바깥 세계인 우주공간으로 나가면 우주선의 스피드는 우주의 활동과 똑같이 됩니다. 지구의 비행기처럼 인공적인 추진력을 사용하지 않고서 우리는 우주의 흐름을 타고 여행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정복하려는 초기단계에서는 금성인 이나 다른 행성인도 현재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그러한 난문제에 직면했었음을 그들이 거리낌없이 시인했을 때 나는 지구의 발달 가능성에 대해서 적게나마 계속 희망을 품을 수가 있었다. 우주여행을 하려면 기본원리로서 자연력인 인력(引力, gravity 중력)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거듭 강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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