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는 화려한 불빛과 소음으로 뒤덮인 바쁘고 어수선한 도시여서, 내 산장(山莊)의 조용한 별빛과 평온함과는 매우 큰 대조를 보여 주고 있다. 1913년 2월 18일 , 내가 그 거리로 나선 것은 흥분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비행접시 착륙하다(Flying Saucers Have Landed)》에 언급한 바와 같은, 그 어떤 말할 수 없는 절박한 생각에 휩싸였기 때문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나는 언제나 시가지에 있는 한 호텔에 묵곤 하였다. 그 날 나는 호텔 종업원이 짐을 방으로 날라 놓고 팁을 받고 나간 뒤에도 계속 들뜬 마음으로 방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오후 4시 였다. 어째서 내가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는 채,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다가서서 어수선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물론 어떤 확실한 영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나는 층계를 내려와 로비를 가로질러서 칵테일 라운지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의 호텔 종업원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전에는 의심하고 있었지만, 내 얘기를 듣고 원반(圓盤) 사진을 보고 나서부터는 그도 원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나를 보자 반가이 맞아 주었다. 몇 마디 말을 건넨 후 그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원반 이야기로 흥미를 갖게 되었고, 어느 땐가 내가 이곳에 들르게 되면 꼭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 받았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그는 나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적어도 그때만은 나는 이야기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을 상대로 비공식적인 강연을 할 기분은 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는 유일하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그 무엇인가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승낙하자 곧 많은 남녀가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진지함을 읽은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럭저럭 아마 7시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들과 헤어져서 저녁을 먹으려고 거리로 나가 좀 걷기 시작했다. <그 어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감이 끊임없이 떠올라 혼자 있고 싶어졌던 것이다.
멍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친 뒤 나는 호텔로 되돌아왔다. 로비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는 바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현듯 나는 M양 생각이 났다. 그녀는 나의 젊은 제자로 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당분간 팔로마 산의 우리 산장에 올 수 없게 되었다면서, 다음에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전화해달라는 당부를 내게 했던 것이다. 나는 전화박스로 들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차가 없으니까, 나를 만나러 시내전차로 오자면 그럭저럭 한 시간쯤은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석간신문을 사 들고 별로 탐탁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갔다. 흥미 기사를 읽은 뒤 나는 평소라면 읽지 않고 넘겨 버릴 기사까지도 훑어보았다. 내 의식 전체에 파급되어 있는 안절부절 못하는 느낌을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눌러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 나는 로비에서 M양을 기다릴 셈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예상보다 15분 가량 늦게 나타났다.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그녀의 마음속에 감춰져있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많은 괴로움을 얼마만큼 풀어 줄 수 있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내가 시내로 나와서 자기를 도와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전차 정류장까지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나는, 산장에 있을 때부터 떠나지 않던 그 절박감은 아마도 M양의 그 생각이 텔레파시 메시지로 내게까지 옮아 온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텔 로비에서 다시 혼자가 되어 조용히 앉아 있자니까 이것을 가지고는 설명이 미진함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느낌, 즉 절박감이 아직도 내게서 사라지지 않고 전보다 더 강하게 나를 괴롭혔다.
손목시계는 10시 30분 을 가리키고 있었다. 밤은 상당히 깊은 셈인데, 그 어떤 중대한 일은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은 실망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 좌절의 순간, 두 사나이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두 사나이는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내 앞으로 다가섰을 때, 그들의 태도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 차림새도 흔히 보는 젊은 비즈니스맨과 다른 점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강연을 한 적도 있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도 가끔 출연하므로 팔로마의 언덕에 있는 내 산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접근해 오는 일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가 훌륭한 체격이었다. 한 사람은 180cm 좀 넘는 키에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혈색이 좋은데다 흑갈색의 눈은 커다란 생명의 환희를 나타내는 것 같은 빛을 내고 있었으나, 그 눈길은 이상하게도 꿰뚫는 듯한 힘이 있었다. 그의 검은머리는 물결처럼 굽이쳐 있었으나 모양은 평범했다. 그리고 짙은 갈색 양복에 모자는 쓰지 않았다.
작은 쪽 남자는 더 젊어 보였다. 키는 175cm 정도이고 둥근 동안(童顔)에 살결이 희고, 푸른 눈을 갖고 있었다. 머리털도 구불구불하여 우리와 다르지 않았으나 그 빛깔은 모래 빛이었다. 회색 양복에 역시 모자는 쓰지 않고 있었다. 웃음을 띠면서 내 이름을 부른 것은 바로 그였다.
내가 알은 체하자 이야기를 걸어 온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내 손에 닿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전신에 가득 찼다. 그 신호는 기념할 만한 것으로, 1952년 11월 20일 에 사막에서 내가 처음 만났던 인물이 보여 준 신호와 같았던 것이다(이 사실은 《비행접시 착륙하다》에 자세히 나온다).
즉각 나는 이 사람들이 지구인이 아님을 깨달았다. 악수를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아주 마음이 편안했다. 이윽고 젊은 쪽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을 만나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같이 가시지 않겠습니까?」
「네, 같이 가겠습니다. 」
나는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도 두려움도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로비를 나왔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걸었다. 호텔에서 북쪽으로 한 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차를 세워 두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잠시 그들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참된 친구임을 깨닫고 있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 작정이냐고 묻고싶은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두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차계원이 차를 몰고 오자 젊어 보이는 사나이가 운전석에 앉더니 내게 그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또 한 남자도 앞좌석에 함께 탔다. 차는 문짝이 넷인 흑색 바탕의 폰티악 세단이었다.
핸들을 쥔 사나이는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모양인지 운전이 능숙했다. 나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빠져 나오는 신설 고속도로만큼은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전혀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달릴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흡족해서 이 친구들이 정체를 밝히고, 나를 만나러온 까닭을 설명해 주기를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남을 믿는 태도는, 흔히 오늘날 세계에 판치고있는 불법행위를 생각할 때 어리석은 짓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서양문명 밖에서는, 자신들보다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되는 인물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법이다. 이 같은 예절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은 경의와 겸손, 인내와 신뢰를 나타내는 태도이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어떤 힘의 작용을 감지(感知)했었다. 광대한 지혜와 자비심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나는 그 힘에 압도되어 자신을 어린애처럼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가 시외로 빠져나감에 따라 불빛과 건물이 뜸해졌다. 키 큰 사나이가 이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 참을성이 많은 분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수상하게 여기시는 줄 잘 압니다.」
물론 수상히 여기고 있었음을 나는 시인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아주 만족하여, 두 사람이 나에게 설명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야기를 건 사나이는 웃음을 띠면서 운전석의 사나이를 가리켰다.
「이분은 당신들이 화성(火星)이라고 부르는 행성으로부터 왔고, 저는 토성(土星)이라고 불리는 행성에서 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듣기에 좋았다. 그의 영어는 완벽했다. 젊은 편의 남자도 좀 금속성이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임은 벌써 알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영어를 이렇게까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는가 싶었는데 그들은 곧 눈치를 챘다. 이번에는 화성인이 호텔에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구인이 <연락원, Contact men>이라고 부르는 신분을 가지고 이 지구에서 살면서 일하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지구에서는 옷가지나 식량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필수품을 입수하려면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수년간 쭉 여기서 살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악센트가 좀 우스웠지만, 이제는 그 점도 극복하고 보시다시피 외계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이나 쉬고 있는 동안이나 우리는 지구인 속에 뒤섞여 있지만, 우리가 외계인이라는 비밀은 절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당신이라면 잘 아시겠지요. 우리는 지구인에 대해서 당신들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우리는 그 까닭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도 다른 행성에도 인간이 존재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가 세상의 비웃음과 비판을 받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의 과학자들이 다른 행성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니까 짐작할 수 있지요. 그래서 당신이라면 우리의 고향이 외계의 행성임을 비추기만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수월하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인 가운데서도 생활이나 연구 때문에 타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지구에서 일을 하고 배우려고 이 지구에 왔다고 하는, 극히 단순한 사실을 입 밖에 했다고 해보십시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미친놈 소리를 듣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허가를 얻어서 고향의 별로 단기간(短期間) 돌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당신들도 어쩌다가 기분을 바꾸고 싶거나 옛친구를 만나 보고 싶거나 할 때가 있지요. 우리도 그 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자취를 감추자면 공휴일이나 주말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지구인 이웃들이 우리가 없어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지구에서 결혼해서 가족을 거느리고 있을지는 물어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런 질문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몇 분 동안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어째서 나만이 그들과 우정을 누리도록 선택되었을까? 어째서 내게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지식이 주어졌을까?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무슨 까닭인지 내 마음은 아주 겸허한 기분과 고마움으로 가득 찼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토성인이 조용하게 말을 건넸다.
「우리가 지구에서 이야기를 건 사람은 당신이 처음도 아니고 유일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구 여러 곳에 찾아가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와 그와의 체험을 입 밖에 내었다가 처벌되었거나, 이른바 <사형>을 당한 사람조차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이른바 금성에서 온 <우리들의 형제>와 사막에서 처음 만났다는 당신의 이야기에 힘입어 온 세계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각자의 체험을 당신에게 보고해 올 것입니다. 」《비행접시 착륙하다》발간 후 이 예언의 옳음이 실증되었다. )
이 두 사람의 새로운 친구에게 나는 강한 신뢰감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 우리는 이미 서로 만났던 일이 있는 구면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조차 갑자기 엄습해 왔다. 그리고 또 나는 이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고, 온 세계의 어떠한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그들의 사명을 위한 일이라면 지구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까지도 실행해 보일지 모른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상당한 시간, 아마도 한 시간 반쯤 미끈한 고속도로를 달려왔으나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그때까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만, 사막지대로 들어서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다. 주변은 칠흑 같은 어둠이라 자세한 것을 알 추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부지런히 그들이 한 이야기를 음미하고 있었으나,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거의 대화는 없었다.
갑자기 차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나의 생각은 깨졌다. 평탄한 고속도로에서 꺾이어 황량하고 울퉁불퉁한 비좁은 길로 차차 들어선 탓이었다. 화성인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좀 놀랄 것입니다.」
이 길을 약 15분쯤 달렸으나 다른 차와는 한 대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어 나는 지상에서 부드럽고 하얗게 빛나는 물체를 보고 완전히 흥분하고 말았다. 차는 그 물체로부터 약 15m 앞에 정차했는데 그 물체의 높이는 4.5m~6m쯤 되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약 3개월 전에 내가 처음으로 마주쳤던 그 원반, 말하자면 정찰원반(偵察圓盤=Scout Ship) 비행체와 똑같았다.
차가 정지했을 때, 빛나는 우주선 곁에 한 남자가 지상에 서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뒤 나의 동행인이 소리를 내어 그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그 원반의 부품을 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그에게로 걸어갔다. 그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내가 처음으로 접촉했던 우주인인 금성인 이었던 것이다. 내가 크게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스키복 비슷한 우주복을 입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엷은 갈색 벨트로 허리를 두른 아래위로 오렌지빛 줄무늬가 있었다.
그의 빛나는 미소는 나와 마찬가지로 이 재회를 기뻐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인사를 나눈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려올 때 이 우주선의 조그마한 부품이 망가졌어요. 그래서 여러분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새것을 만들고 있던 중입니다.」
나는 그가 모래 위에 놓인 조그마한 도가니 속의 것을 끄집어내는 것을 신기한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잘되었군요. 이제는 더 손볼 곳이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나는 그가 거의 완벽한 영어로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놀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사투리가 약간 섞인 영어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해 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나는 질문을 삼가기로 했다.
그 대신 나는 몸을 굽히고 떨어져 있는 극히 작은 주조(鑄造)금속 덩어리 같은 것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그것을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약간 뜨거웠지만 손에 잡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슬며시 손수건에 싸서 조심스럽게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 금속 조각은 아직도 내가 보관하고 있다. 세 사람의 우주인은 나의 이 묘한 행동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으나, 그 웃음 속에는 사람을 우습게 보는 오만함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금성인은 내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그런 물건을 뭣에 쓰려고 합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우주인이 다녀갔음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로 삼고 싶다고 설명했고, 나아가서 우리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일을 공표했을 때, 내가 <모든 것을 날조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데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구체적 증거>를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그는 대답했다.
「알 만합니다. 지구인들은 정말 기념물 수집을 좋아하는 인종이군요. 그러나 헛일입니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 합금의 내용물은 지구에 있는 금속과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행성에서도 금속은 모두 같거든요.」
여기서 독자 여러분에게 말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만나 본 우주인 가운데 지구인과 같은 이름을 말해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까닭을 내게는 설명해 주어서 나는 알고 있지만 여기에 자세히 적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 점에 대해서 그 무슨 신비한 내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은 이름의 개념과는 아주 다르다는 점만을 밝히는 데 그치겠다.
실지로 이 새로운 친구들을 이렇게 이름 없는 상태로 만나 보아도 내게는 조금도 불편이 없지만, 아마도 독자 여러분은 반드시 갈피를 못 잡으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이 책에서는 앞으로도 여러 번 언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이름을 붙여 두고 싶다. 왜냐하면 지구의 우리들은 서로가 이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친구들을 위해서 이제부터 소개하는 이름은 결코 그들의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 이 점은 반드시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을 고른 데 대해서 나 자신은 내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으며, 이 책을 통해서 저마다 이름을 갖게 된 우주인에 대해서 그 이름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울러 밝혀 두고자 한다. 아까 그 화성인을 나는 파아콘(Firkon)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토성인은 라뮤우(Ramu), 그리고 금성인에게 준 이름은 오오손(Orthon)이다.
'외계문명 > UFO와 우주법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장 우주인 성자와의 회견 (0) | 2022.06.15 |
---|---|
제4장 처음으로 대기권 밖을 보다 (0) | 2022.06.15 |
제3장 금성의 모선 (0) | 2022.06.15 |
제2장 금성 정찰원반의 내부 (0) | 2022.06.15 |
책을 옮기면서 (0) | 202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