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으로부터 주어진 진리의 전달자로서 마이어의 사명은 지금까지 기술해 온 바와 같이 참다운 인류사와 그 미래나 우주, 생명의 기원 등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역할은 창조의 법칙과 법도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인 것이다.
창조란 무엇인가, 창조의 법칙은 무엇인가?
이 장에서는 예수 생전에 쓰여진 최초의 성서(숨겨져 왔던 기록인 "탈무드 임마누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셈야제의 말 가운데서 찾아 살펴보고자 한다.
창조의 존재
자연계의 생태계는 누군가에 의하여 창조된 것인가 아니면 우연히 발생된 것인가. 이 문제를 푸는 데는 인류 과학자들의 논리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우리 지구인들은 육체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판단할 수 있지만 인력이나 전기와 같이 오감으로 느낄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자연계의 생태계는 너무나 잘 짜여져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우연이라는 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반반인 확률 위에 성립되는 것이지 결코 생태계가 갖는 완전함을 낳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연설은 맞지가 않는다.
그러면 자연의 생태계가 나타내고 있는 완전무결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정체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현대의 세계적 과학자들은 위대한 영지(英智)의 존재를 추측하게 된다. 즉 매크로 세계(천체의 운행)에서 마이크로 세계(전자, 양자 등 미시세계)까지를 일관해서 성립시키고 있는 법칙이나 힘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대자연을 창출한 것이라며 과학자들이 추측한 ‘위대한 영지의 존재’를 셈야제는 창조라는 말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주에는 모든 것을 창조해 내는 존재가 있고, 그것은 힘 중의 힘으로서 힘을 낳고 다음으로 진리, 지식, 영지로서의 확실한 ‘창조의 법칙’ 즉 생태계를 낳습니다. 이 힘이 충만한 존재야말로 창조인 것입니다.”
“창조는 전지, 전능, 편재(偏在)이며 그곳으로부터 무한한 행복, 무한한 아름다움, 무한한 사랑, 무한한 공급, 무한한 가치가 생겨납니다. 인간을 진화시키는 것은 인간 내부의 영(靈), 즉 창조입니다. 그 결과 인간의 영적 지성이 한 단계 높아지며 인격이 강화됨으로써 그의 인생은 보다 더 행복해집니다.”
창조가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은 호흡할 수도 없을 것이고 생각도 인식도 보고 들을 수도 없다. 하물며 외계를 체험한다는 것은 더더욱 바랄 수 없다. 그러나 위대한 것, 영적인 것은 인간 내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내부에 무한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무한한 것, 그것이 바로 창조인 것입니다. 이 무한한 힘을 환기시켜 제대로 활동케 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 목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목표는 영적인 힘을 깨닫고 진화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창조체험을 위한 명상법
셈야제는 영(靈)의 영역은 모든 한계와 물질적 자아의식으로부터의 자유이며 그곳이야말로 창조 그 자체와 접촉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은 창조의 존재, 창조 그 자체와의 영적인 접촉에 대한 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아마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다.
아인슈타인 박사나 유가와 히데키 박사 같은 저명한 과학자들은 그들의 수기에 매일매일의 연구과정 속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자연 속에는 무엇인가 있다. 위대한 존재의 의지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수시로 마주친다”고 기록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FIGU JAPAN 회원들은 진실로 창조 그 자체와의 접촉, 즉 창조 체험을 지향하는 가운데 이미 상당수의 사람이 창조의 존재나 창조 의지의 존재를 확인하는 창조 체험을 하고 있다.
“창조는 인간과의 모든 통신을 초고주파에 의하여 행한다”고 셈야제는 설명해 주었다.
물질세계의 모든 통신이 전파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듯이 창조와 인간의 통신도 파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 그 파장은 초고주파에 속하는 것인데 현재 지구 과학 수준에서는 뇌파와 같이 극히 약한 파장이 포착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인간이 창조와 의식 전달이 될 수 있을 만한 초고주파를 내기 위해서는 의식을 집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집중 훈련인 명상이 필요하다.
마이어는 외계인으로부터의 메시지를 기록한 ‘명상입문’ 가운데서 “명상의 이론은 자기 인식을 얻기 위한 영적 이론이며, 이것은 현실을 인식하고 영적, 정신적 생명 활동의 모든 요소를 지배하는 것이 기초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명상입문은 여러 종류의 종교 단체가 가르치고 있는 호흡 체조가 아닌 독특한 호흡법을 설명하고 있다.
“순수 명상법의 호흡법은 호흡을 조절하거나 인공적인 리듬으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호흡은 자연스러운 본래의 호흡에 맡기고 자연의 흐름을 항상 지켜야 됩니다. 이 자연의 호흡법을 냉정히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데서만 호흡의 균형이 잡히게 되고 호흡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대자연의 근원, 창조
1975년 5월 15일 셈야제는 마이어와의 18번째 접촉에서 또다시 창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창조의 존재는 지구인에게 놀라운 출현이며 갑자기 눈앞에 거인이 우뚝 선 것과 같은 기이한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무엇인가 커다란 구원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예컨대 대자연 그 자체가 창조의 구현이고, 자연계를 망라하고 있는 동식물계의 질서인 생태계 형태는 창조의 의지, 즉 창조의 법칙이 현재화(顯在化)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있는 것은 이 생태계적 형태 법칙은 인간의 사고(思考)세계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사고, 생태계 파괴나 보호에 의하여 일어나는 연쇄적 현상도 동식물계와 동일하다. 말하자면 인간의 사고 생태계의 파괴로 인하여 일어나는 언밸런스 현상이 각종 질병이다. 어쨌든 지구인에게는 의식의 한 구석에도 전혀 없었던 창조라는 존재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며 생명 중의 생명, 진리 중의 진리라는 것을 셈야제는 다른 시점에서 지구인에게 창조의 진실을 설명하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창조는 무한한 아름다움, 아름다움 중의 아름다움, 끝이 없는 무한하고 강렬한 행복, 영지능력 그리고 절대적 확실성입니다. 인간이 이것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자기의 모든 기쁨이 근원적으로 무한한 창조의 환희로부터 온 것임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이 창조를 향하면 향할수록 지성은 그 빛을 더하게 되고 그의 인격은 힘차게 성장하며 그의 모든 생활과 활동이 축복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평안, 행복, 건강을 손에 넣기 위하여 이용하는 지적, 물질주의적 수단이 모두 거짓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창조 에너지의 무한함
창조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자기를 제어하고 있는 영적 인간에게 흘러들어 오는 것이다.
이 커다란 영적 성과는 감나무 밑에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해서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먼저 영적인 사고 방법, 즉 창조적 사고 방법을 습득하고 그 절대적 정당성과 확실성을 인식한 바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의 성과가 나타나면 그 체험자는 크게 발전하게 되며 그의 영력은 점점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면 영력이란 무엇인가?
영력이란 창조의 에너지를 의미하고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과 같이 어떠한 주문을 외고 행하는 초능력과 같은 부분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초능력은 확실히 창조 에너지의 부분적 활용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실제 창조의 에너지는 무한한 것이어서 결코 초능력과 같은 낮은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초능력적인 현상은 창조의 무한한 능력 중 먼지와 같은 부분적 응용에 불과한 것이다.
2천 년 전 그리스도라고 불리운 임마누엘이 행한 산을 옮기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도 모두 창조 에너지의 극히 작은 부분을 활용한 것이라고 하면, 창조의 무한한 능력을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힘은 본래 모든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임마누엘이 행한 것과 같은 기적은 모든 인간이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외계인은 설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 에너지의 상속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심령치료도 이 에너지의 활용이며 실제적인 것이다. 단 개중에는 엉터리 같은 거짓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창조의 법칙과 법도의 준수
셈야제는 영력(창조 에너지)의 확대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법도를 지켜야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인간이여, 끊임없이 감성을 예민하게 하고 다음을 자각하십시오. 자기 내부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존재가 자기로서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무한한 힘을 주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망상으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려고 무한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십시오.
인간이여, 자기의식의 깊은 곳은 창조의 빛, 영지, 지식, 진리, 논리, 사랑의 대해(大海)에 싸여 있다는 것, 그것들이 자기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력하게 자각하기 바랍니다. 그 구체적 표현으로서 창조의 법칙으로 나타나는 전능한 의지를 받아들여, 이 법칙의 절대 확실성을 자기 규범으로 삼고 이 법칙을 유효하게 활용하도록 하십시오.”
“인간이 행해야 할 가장 시급한 것은 이기주의, 유물주의, 교만, 질투, 탐욕, 선망 등과 같은 물질주의적, 지적 사고력을 배제하고 인내하며 고도의 이해력을 육성하고 우주적, 보편적 사랑의 인식과 실천, 영적 지식을 깊게 함으로써 자기 내부에 있는 무한한 영적 능력을 증대시키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창조 법칙의 인식과 법도의 준수가 가장 확실히 보증되기 때문입니다.”
이 창조 법칙의 인식과 법도의 준수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인간에게 놀라운 영력, 즉 창조로부터의 에너지가 주입된다. 이것은 현실 생활에서 실제적인 힘으로 증명되며, 나아가서는 그 인간의 생활 전체가 자유자재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자기의 의지대로 현상계에 나타나게 된다. 그 의지는 결코 우연이라든가 운이 좋았다는 따위의 불확실한 성질의 것이 아니고 ‘창조로부터의 존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 확신하게 될 것이다.
창조적 인간이 되려면
현대 사회는 어떤 분야에서든지 창조성을 요구하고 있다. 각 기업의 사원 교육에서도 반드시 창조성의 필요성이 역설되고, 교육계도 표면적일망정 개성을 중요시한 교육이 제창되고 있다. 예술계도 말할 것도 없이 평범한 사람보다는 개성 있는 사람이 돋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구인은 인간 사회에 활용될 수 있는 편리함을 주는 창조성만을 요구하고 있지 결코 그 근원에 이르려는 의식은 없다. 다시 말하면 갑자기 큰 돈(창조적 의식)이 쏟아지기만을 원하고 있지, 그 많은 돈을 보내준 이에 대한 아무런 감사도 할 줄 모른다. 누구로부터의 선물인지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하물며 감사하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성은 끊임없이 자기에게서 벗어나 창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 내부의 창조를 인식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데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항상 자기 내부에서 자기 자신이 창조의 일부임을 의식하고 사고하는 사람만이 ‘창조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 인간의 특성을 셈야제의 말을 통해서 들어보기로 한다.
“창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일상적 지각에서 의식할 수 없는 것을 영적으로 확실히 의식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모든 사물, 모든 생명 속에 존재하는 ‘창조적 현재(顯在)’를 항상 보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창조의 법칙이 실천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그는 창조의 법칙을 실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창조의 일부인 ‘자기의 영(靈)’이라는 존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이 창조적 실재의 힘은 영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 힘이 미치는 범위는 모든 세계, 모든 영역입니다.”
‘창조적 인간’이란 창조성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창조적 지식의 원천적 존재를 완전히 인식하고 있는 인간이다. 그는 일반적 지구 사회에서 일컫는 직관적인 인간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창조적 인간이 되려면 본질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자기 분석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능력 개발법은 외계인이 전해준 본질적 방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인생의 궁극 목적
창조는 살아 있고, 그리고 항상 깨어 있다. 창조는 완전하고 무한한 의지의 소유자이고 그 의식으로써 만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함, 무한한 의지, 그러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창조라고 한다면, 그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과 의식의 교류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 창조와 인간은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의식의 교류가 안되겠는가. 창조는 지금까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은 만들어 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사고력이나 의식도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창조와 서로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기껏해야 80년에 불과한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한정된 지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인간의 사고력은 결코 창조가 무의미하게 인간에게 갖추게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태고적에 그 사실을 잊어 버렸을 따름이다”라고 외계인들은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사고능력은 창조와 의식을 교류함으로써 창조로부터 배우고, 무한히 환생을 되풀이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창조와 일체화되기 위한 통신기능이라고 외계인은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가라는 인간의 오랜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도 논리적인 해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창조와 교류하여 창조로부터 배우고 궁극적으로는 창조와 일체가 되는 창조체험에 대해서 셈야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창조체험의 길은 의식적으로 ‘영(靈)’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진리에 관한 지식을 모으는 것으로써 촉진됩니다. 만물 가운데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비현실적인 종교나 인간적 무지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인간적 무지와 오도된 교리를 내포하고 있는 종교는 만물의 가치의 근원, 생명의 생명, 모든 지성의 빛, 즉 영과 창조를 인간으로부터 가리고 있습니다.”
“인간이여, 창조의 영지에서 힘을 얻어 내십시오. 영적 인간은 창조에 몇 십억 번 닿지 않고서는 자기 손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만물과의 영적인 일체감을 체험하고 있는 자에게는 증오나 탐욕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진화의 49단계
셈야제는 어느날 마이어에게 창조의 법칙과 법도로서 존재하는 마흔아홉 가지의 인간 진화단계 표를 주었다. 인간은 창조와 교류하고 배우면서 무수한 환생를 되풀이하여 결국에는 창조와 일체가 되는데 마흔아홉 가지 단계는 창조와 일체가 되어가는 순서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진화라는 것은 이 경우 본질적인 면에서의 진화를 의미하며 결코 물질과학적인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과학적 진화는 인간의 지능과 사상이 다양하게 표현된 결과적 현상일 뿐, 그 하나하나는 보편적인 근원성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화 측정은 지능의 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필연적 단계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해설된 인간 진화단계는 창조가 법칙화한 7×7=49 단계의 표라고 외계인은 설명한다. 각 주요 단계는 크게 일곱 단계로 나뉘며 주요 단계 각각은 또다시 일곱 개의 세부 항목으로 설명되고 있다. 전부가 마흔아홉 단계이지만 현실적인 인간의 생애로는 마지막 단계까지 도저히 도달할 수는 없다. 표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나 처음 인간으로서 이 세계에 탄생하는 제1단계에서는 ‘백치적 지능 상태’로 일생을 마치게 되고 마지막 마흔아홉 번째 단계에서 창조와 일체화가 되어 있다. 이 제1단계에서 마흔아홉 가지 단계까지를 인간은 대략 6백억 년에서 8백억 년 걸려 무수한 환생를 거듭하며 마치게 되는 것이다.
다음 표를 보아주기 바란다. 지면 관계상 우리 지구인과 관계가 깊은 단계만 게재한다.
(1) 초보적 인생
(2) 이성적 인생
① 이성의 초보적 발달 단계
② 이성의 효과적 실현과 그 응용 단계
③ 높은 영향력의 초보적 인식과 승인 단계
④ 높은 영향력의 지식을 갖지 못하고 그것을 맹신하는 단계
⑤ 고급 권력에 대한 신앙, 악에 대해 미신과 공포를 가지며 선을 경배하는 단계(종교가 싹트는 시기)
⑥ 진정한 현실에 대한 초보적 인식 단계(⑤와 ⑥은 현재 평균적 지구인의 단계)
지식에 입각한 발달 단계, 연구, 영에 관한 초보적 인식과 그 이용 단계(영적 치료나 텔레파시 등)
⑦ 지식과 영지의 초보적 발달 과정
(3) 지성적 인생
① 지성의 고도한 발달, 고도의 기술, 영적 초보지식에 입각한 제2 단계의 이용, 원시적 성생활에 의한 생명의 생산 과정
② 지식, 진리, 영지의 깊은 이해와 응용 과정. 신앙생활이 서서히 붕괴되는 과정
③ 지식과 영지의 최초의 실용화 과정 (②와 ③은 교양 있는 지구인, 예컨대 과학자 등의 현단계)
④ 자연법칙의 승인과 실용화, 초기술 개발, 인간에 의한 인공적 생명의 생산 과정(인조인간, 기계인간, 로봇)
⑤ 영적 인식에 입각한 지식과 영지의 자연에 대한 응용, 종교의 고도한 붕괴 과정
⑥ 영지, 진리, 논리에 입각한 생활 과정
⑦ 진정한 절대로서의 현실에 대한 초보적 인식 과정(극한과 영을 파악한 소수의 지구인 과학자 단계)
(4) 실재적 인생
(5) 창조적 인생
① 생명의 생산과 제어 과정
② 기계적 생명의 제작 과정
③ 물질적, 유기적 생명에 대한 영력을 통한 지배의 발달 과정
④ 모든 종과 생명 형태에 대한 의지를 통한 지배 과정
⑤ 인식의 단계, 전생의 추상 과정
⑥ 영지의 왕인 야훼, 최종 단계에서 두 번째의 최고의 힘에 관한 지식 과정
⑦ 영적 평화, 보편적인 사랑, 창조의 조화에 대한 인식(셈야제 같은 외계인은 현재 5, 6, 7의 단계에 있음)
(6) 영적 인생
(7) 창조 안에서의 인생
(1)의 초보적 인생 단계의 인간은 이성이 풍부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병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즉 백치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는 인간으로 탄생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며, 사실은 이것이 건강한 성장 과정인 것이다. 또한 이 모든 발달 단계는 인간의 일생이라는 짧은 시간으로는 도저히 도달하기 불가능한 과정이며, 여기에서 환생와 영계의 필연성이 생겨난다.
여기서 간단히 영계에 대한 설명을 해두기로 하자.
진정한 영계의 모습
영계에 관한 이야기는 그 동안 많이 알려져 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 스웨덴보르그(1688~1772년)의 저서 “천계의 비밀(Arcane Celestial)”과 “영계일기(The Spiritual Diary)”를 생각할 수 있다. 스웨덴보르그는 인류 사상 최대의 불가사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 신비 사상가일 뿐만 아니라 9개 국어를 말하고 있으며 스무 가지의 학문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보기 드문 천재였다. 그 어느 것을 보아도 그것은 이미 현대의 수준에 도달한 학설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인생의 후반 30년 동안 모든 학문에서 벗어나 영계와 현상계를 왕래하며 영적 생애를 마쳐, 유럽에서 큰 화제를 남겼다.
그가 영계에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을 기록한 방대한 저서는 현재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어쨌든 그는 인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초인이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영계를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영능력자 또는 종교인들에 의한 영계의 이야기는 너무도 많지만, 그 일부는 논리성에서 벗어난 다분히 환상적이거나 망상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마이어가 순수령(純粹靈), 즉 마흔아홉 가지 단계를 다 마친 존재로부터 전달받은 영계의 전모는 참으로 논리적인 것이었다.
순수령이 전하는 영계의 개요와 그 존재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영계라는 진실의 세계에서 물질적 사안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물질적 문제는 우리들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현상의 세계에서는 높이 평가되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무가치하다. 종교에서는 물질세계에서 중요한 인물은 영의 세계에서는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고 주장하나 결코 그렇지가 않다. 물질적 세계에서 낮은 자가 영의 세계에서 위대하다고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계라고 하는 진실의 세계에서는 모든 면에서 조화와 평화가 절대적 평등 아래 지배되고 있다.
인간이 영계로 가면 뛰어나다든가 뒤떨어진다든가, 물질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의 인간이 영계에서는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진다든가 반대로 제일 변변치 못한 자가 가장 위대한 자가 된다든가 하는 것도 없다. 영계에서 모든 생명은 균형이 잡힌 이상적인 조화로 평등한 지위가 주어진다. 그것은 영적 크기와 관계없이 물질세계에서 살고 있을 때의 사회적 지위나 빈부의 차이와도 무관하다. 영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다. 그것은 인간이 이 세계에서 살고 있을 때 만들어낸 마음의 상태이지 천국이나 지옥이라는 장소가 아니다.
마음이 흡족하고 평화롭게 산다면 그것이 천국이며 불평불만만 있고 마음의 평화가 없는 삶이 곧 지옥이다. 영계의 존재 이유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았을 때까지 수집한 지식의 정리 정돈, 선별에 있다. 우주의식이 가득찬 영계에 가면 모든 인간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논리적으로 할 수 있게 되므로 생전에 체득한 자기의 인식이 바른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올바른 것은 자기 스스로의 잠재의식 속에 챙겨지고 틀린 것은 다시 환생함으로써 바로 잡아가는 사이클을 반복하게 된다.”
이와 같은 영계에 대한 설명이 많은 점에서 앞서 소개한 스웨덴보르그의 영계 체험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의 본질
이해하기 어려운 창조에 관한 설명들을 사랑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마무리지어 보고자 한다. 외계인은 사랑이란 살아 있는 모든 것, 존재하는 모든 것과 자기를 동일시(일체화)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정의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그 정의대로 표현된 ‘상태’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라 지구인의 행동을 측정해 본다면 지구인의 사랑은 분명히 합격권 내에 들 수 없다. 우리는 그 점에 관한 셈야제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랑이야말로 인간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옛부터 말해왔기 때문이다. 설령 그 참다운 의미는 모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만물과 일체가 될 수 있을까요? 그들은 한번쯤 진정한 나의 존재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육체(몸)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치 보물단지라도 다루듯 자기의 육체를 보살피고, 영양을 섭취하며 헌신적으로 다듬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체를 자랑하고 보잘 것 없는 장식품으로 치장하며 자기 육체에 대한 환상을 그립니다.
약간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그는 괴로워하며 심성이 고약해지고 남에게 불친절해지며 기분이 상하여 때로는 울부짖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낮춰 자살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육체를 절대적이라 생각하여 장식하고 걱정하며 자만하고 문제시합니다. 그에게는 신체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영의 발달을 자기 스스로 저지하게 됩니다. 흔히 그는 육체 제일주의 관념을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물질과 재산에까지 확대합니다. 또한 남이 자기 육체를 우연히 건드려도 노여워합니다.
그러면 영적 진리를 통찰한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는 이 세계와 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자기와 일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와 영의 영지, 지식, 진리, 사랑, 인식을 체득한 자는 만물이 모두 진리로부터 출현했고 지금도 출현하고 있는 중에 있으며 미래 영겁에 걸쳐 출현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 스스로를 살아 있는 모든 것, 이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과 동일시(일체화)하는 것입니다. 동일시란 우주의식이며 사랑의 본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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