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연한 만남
다음날, 사이훙은 고모와 함께 있는다는 조건으로 축제의 나머지를 볼수 있었다. 사찰은 이제 그의 놀이터이자 극장이 되었다. 사이훙은 사찰에서 만난 새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과 신나는 구경거리를 끊임없이 찾아 다녔다.
그러나 타이산의 축제는 종교 행사였다. 축제와 함께 일상적 종교 행사가 매일 벌어졌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북두무(北斗舞)였다.
북두무는 사찰의 가장 신성한 곳에 설치된 무대에서 49일 동안 공연되었다. 이 춤의 목적은 인간과 우주를 합치시키려는 것으로 - 이는 도교의 기본적인 관심사이다 - 북두칠성의 일곱 별들에 살고 있는 성주들을 지상으로 불러오는 춤이었다.
그 일곱 별은 완전한 세계였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신들이 자발적으로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사들이 북두무를 추며 주문을 외우면 그 신들을 불러올 수 가 있었다. 지상에 내려온 신들은 인간들을 축복하고 도움을 주었다. 신들이 직접 내려와 현존해야만 그 축제는 참된 영적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도사들은 몸을 정화하기 위하여 7일간 단식했다. 사찰 중앙 건물 앞에 세 개의 장대와 제단이 세워졌고, 제단에는 향로와 붉은 초, 성화(聖花)와 등잔, 공물들이 놓였다. 큰 원이 제단 둘레에 새겨져 있었는데, 원 안에 북두칠성의 모양대로 일곱 개의 점들이 표시되면 비로소 신들을 맞아들일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사이훙이 북두무 의식을 보러 간 날에는 주지스님이 역경에 나오는 음양 기호와 육효(六爻)가 수놓아진 도복을 입고 사찰에서 나왔다. 축제 기간 동안에 왔다갔다하던 도사들은 대부분 낡고 해어져서 여러 번 기운 너덜너덜한 도복을 입고 있었으나, 지위가 높은 도사들은 깨끗한 도복을 입고 있었다. 주지 스님의 긴 머리카락은 검은 천으로 만든 모자 아래 늘어져 있었다. 기다란 소매로 가려진 손에는 축문이 새겨진 야자나무판과 버드나무로 만든 목검이 들려 있었다. 주지스님은 10센티 정도 되는 밑창이 달린 검은 벨벳 신발을 신고 점잖게 제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신성한 원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제단 앞에서 경배했다.
사람들은 그 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서로 밀치며 원 둘레에 빙 둘러섰다. 무술동작으로 구성된 북두무는 그 자체로 검술이 된다. 주지스님은 북두칠성을 표시하는 각각의 점 위에 차례로 섰다. 인간은 감히 신들을 정면으로 마주볼 수 없기 때문에 나무판을 얼굴 앞에 바짝 대고서 축문을 외운 뒤 각각 신들의 이름을 외웠다.
사이훙은 그 춤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사이훙이 신성한 원 속으로 달려들어가 리듬에 맞춰 주지스님의 비비 꼬인 보법(步法)을 흉내내면서 따라 걸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많은 신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이훙!」
깜짝 놀란 고모가 소리치며 아주 조심스럽게 원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목발에 의지해서 불안하게 걸어 들어온 고모는 재빨리 사이훙을 원 밖으로 끌어냈다.
「아니,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
고모는 차갑게 야단쳤다.
「저 원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신성 모독이란 말이다. 처신을 잘하도록 해라. 너는 참 문제아로구나. 차라리 건달들이 너를 잡아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대는 소리를 무시하고, 고모는 사이훙의 손목을 꽉 잡고 다시 의식을 보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고모님, 저는 잘 보이지 않아요.」
고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이훙은 고모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고모는 사이훙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 그의 손목을 더 꽉 잡았다. 그것은 그가 고모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사이훙은 순간 우울해졌다. 고모는 정말 화가 난 것일까? 고모는 정말 건달들이 나를 잡아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잠시 뒤 고모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시 유쾌해져서 웃고 있었다. 고모는 목발을 잡기 위해 사이훙의 손목을 놓으면서 그에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고모는 다시 춤을 보는 일에 정신을 빼앗겼고, 그 틈에 사이훙은 살그머니 빠져 나갔다.
백단나무의 진한 향기가 사이훙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찰에 머무르는 동안에 그 냄새가 항상 났었는데, 오늘은 유달리 냄새가 강한 것 같았다. 그는 그 향기가 어디서 나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사이훙은 번쩍이는 청동 기와로 지붕을 얹은 사찰의 중심 건물에 이르렀다. 웅장한 자태로 서있는 그 건물은 3층 높이로 지어져 있었다. 단청으로 장식된 처마에는 용과 불사조 그림들이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짙은 색깔의 나무판들과 붉은 칠을 한 기둥들에 씌어진 금색 글자들이 냉랭하고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실내에서 향 연기가 흘러 나왔다.
사이훙은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 돌문턱 앞에 멈춰 섰다.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사이훙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이훙은 마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순례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틈을 타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내실에 들어서자 금도금된 제단에 사람만한 옥황 상제의 상이 놓여 있었으며, 우측으로는 황후, 그리고 좌측에는 벽운공주(碧雲公主)의 상이 있었다. 그들은 화려하게 조각된 커다란 티크나무 탁자 뒤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제단에는 필요한 공물들이 모두 진열되어 있었다. 큰 향로와 촛불들, 기름등잔, 꽃이 가득 꽂힌 도자기 화병, 밥그릇, 차와 술, 온갖 과일과 사탕, 그리고 5방(五方 : 동 · 서 · 남 · 북 · 중앙)과 5원소(五元素 : 나무 · 흙 · 물 · 쇠 · 불)를 나타내는 청 · 황 · 흑 · 백 · 적색의 다섯가지 약초들. 이것은 지상에서 난 모든 것들이 공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향로에 향을 사르고 여러 신들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경배를 올리는 것은 이러한 정신에서 나온 경의의 표시였다.
사이훙은 경건한 마음으로 계단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옥황 상제를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 옥황 상제는 비단으로 만든 황금빛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왕관 위에 수평으로 달린 평평한 판에 꿰어진 13줄의 구슬들이 옥황 상제의 머리 앞뒤로 늘어져 있었다. 옥황 상제는 호랑이 가죽 위에 모셔져 있었으며, 손에는 예전(禮典)을 들고 있었다. 질흙으로 빚어 구워 낸 옥황 상제의 손과 얼굴은 살아 있는 실물처럼 보였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진짜 사람의 것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예술적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사이훙은 상제의 자비로운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조각상이란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옥황 상제는 도교의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모든 신과 우주를 지배한다. 상제는 하늘의 궁전에 거처하면서 가족과 조정의 신하들에 둘러싸여 우주의 일들을 결정하고, 필요할 경우엔 악과 맞서 싸우도록 하늘의 군대에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옥황 상제의 조상(彫像)이나 두상(頭像)은 일반 가정에 모실 수 없었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사찰로 순례를 와야만 했다.
사이훙은 상제 앞에서 엎드려 절한 뒤 황후상 앞으로 갔다. 황후의 얼굴은 장밋빛 홍조를 띠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귀한 보석으로 만든 비녀로 잘 단장되어 있었다. 황후는 하늘의 과수원에서 연회를 베풀어 신들과 천도를 먹고 있었다. 천도는 3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하늘의 복숭아로, 한 번 깨물어 먹을 때마다 수명이 만 년씩 연장된다는 신들의 과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사이훙은 벽운 공주에게 예배했다. 상제의 따님인 벽운 공주는 비단옷을 입고, 날개를 펴고 있는 세 마리의 새를 묘사한 왕관을 쓰고 있었다. 벽운 공주는 부녀자들을 보호하는 여신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얻고 싶은 여성들은 벽운 공주에게 소원을 빌었다.
병을 고치고 싶다거나, 풍년을 바라거나, 또는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신도들은 모두 타이산의 가파른 산길을 올라 여기까지 와야만 했다. 그들은 공물을 바치고 소원을 빌면서 은총을 기대했다.
사이훙은 특별히 바라는 건 없었지만, 독실한 신도들 틈에 끼여서 기도하는 흉내를 내고 참배를 마쳤다.
사이훙은 제단을 떠나려고 막 일어서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가운데 있는 키가 큰 사람은 길게 수염을 길러 자상해 보이는 도교의 장로였다. 은처럼 하얀 머리칼을 상투 틀어 비녀를 꽂은 그는, 검은색의 소박한 겉옷을 하얀 도복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두 명의 젊은 시승이 따르고 있었는데, 나이 어린 그의 제자들 같았다. 회색 옷을 입고 상투를 튼 그들의 얼굴은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사이훙은 그들에게로 가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
갑자기 부드럽고 흥겨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사이훙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근처에는 제단 앞에 서 있던 순례자들밖에 없었다. 그때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사이훙은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진 사이훙은 그 늙은이가 자기를 속인 것에 화가 나 그를 걷어차려고 재빨리 일어섰다. 두 명의 시승이 사이훙을 제지하려 앞으로 나섰다. 사이훙은 떼를 쓰면서 그들을 계속 발로 걷어차며 몸부림쳤다.
문간에서 요란한 비명 소리가 날 때까지 신도들은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사이훙의 고모는 사이훙이 유괴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내를 가로질러 달려왔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도사와 두 시승이라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아이들을 유괴해서 노예로 팔아먹거나 몸값을 요구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도와줘요! 포졸! 포졸!」
고모는 사이훙을 구해 내려고 소리치며 그 도사를 때리려고 목발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 도사는 그저 유쾌하게 웃기만 하다가 긴 소매를 들어 고모의 얼굴 앞에서 한 번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고모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도사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사이훙에게로 돌아섰다. 사이훙은 그가 축제에서 공연하던 마술사인지, 마귀인지, 아니면 진짜 도사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자기도 고모처럼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그의 마음은 모든 생각이 사라져 버린 공백상태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한 순간, 도사와 사이훙 사이에 신비로운 영적 대화가 이루어졌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이훙은 깊숙한 내면에서 조용히 불타오르는 무엇인가를 느꼈다.
사이훙은 천천히 상황을 의식하게 되었다. 깜박이는 노란 촛불 아래 천천히 혈색을 되찾아 가는 고모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황홀경에서 깨어나서는 사이훙의 손을 잡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사이훙과 고모가 거처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별채의 한쪽에서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사이훙의 고모는 부모님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손님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손님들은 아까 보았던 도사와 시승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쩔뚝거리며 걸어오는 고모를 조용히 불렀다.
「메이홍, 얘기는 모두 들었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이분은 산시성 근방의 화산파 장문인이시다. 내 오랜 지우이자 나의 정신적 스승이시지.」
할아버지는 그 도사를 향해 돌아섰다.
「대사님, 만약 제 딸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제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메이홍은 곧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대사는 메이홍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저 사소한 사건이었을 뿐이오.」
대사는 웃으며 사이훙에게로 돌아서서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대사는 매우 사려 깊은 눈길로 사이훙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관 선생.」
「네, 대사님.」
「이 아이가 당신의 손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이 아이의 이마에 푸른 별이 하나 있군요. 이 표시는 대단히 특별한 것이오.」
사이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도 없었으며, 할아버지가 그 도사에게 이례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도사의 너털웃음과 자상한 눈빛에는 사이훙도 호감을 느꼈다.
가족들은 대사의 말이 이어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잠깐 뒤 대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아이의 정신은 먼지로 뒤덮인 속세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한 가지 임무가 주어지죠. 만약 이 아이가 자신의 과업을 완성하려고 한다면 오랜 시간 훈련을 받아야 할 겁니다.」
「대사님, 당신께서 그 훈련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할아버지가 말했다.
대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맑은 두 눈은 붉게 타오르는 석양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
「글쎄요.…… .나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출가한 사람입니다. 이제 와서 내가 제자를, 특히 저렇게 어린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이훙은 다음날 아침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다. 할아버지를 따라 타이산에서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일출봉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 봉우리는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산둥성은 아직 어둠과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광포하게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이 창백한 빛살을 받아 조금씩 밝아져 갔다. 창백한 빛은 곧 붉어져 막 밤을 지난 눈부신 태양을 불태우고 구름까지 붉게 물들였다.
사이훙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축제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야외극, 도교 의식, 그리고 어제 만난 대사.…… . 타이산에서 일어난 축제의 풍요로운 이미지들은 떠오르고 있는 태양의 열기 속에서 하나로 녹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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