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의 사랑을 여러분에게 보낼게요.” 내가 말했다.
“이제 나는 아스트랄 비행을 할 수 있으니까 여러분을 찾아올게요. 이 장소는 우리가 나눈 사랑의 기억이 살아 있는 곳이에요. 바로 이곳에서 나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워 알게 되었어요."
“그래.” 스승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야. 사랑은 다른 모든 것들을 초월해 있어.
사랑은 모든 문을 열수 있는 열쇠야.
그것은 너에게 완벽한 자유를 줄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사랑이 없다면 너의 가슴과 마음은 무뎌져.
아무리 사회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종교 의식에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 해도
너에게 사랑이 없다면 그것들은 단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게 돼.
사랑이 없는 너의 모든 활동들은 결코 너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어.
신을 믿는다고 말한다고 해서 사랑을 실천한다는 의미는 아니야.
세상에는 신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세상의 절반을 파괴하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고
고통에 빠뜨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니?
그 희생자들에게 신을 믿는다는 자들은 어떤 사랑을 가지고 있을까?
내 생각에는 결코 그렇지 않아!"
그가 계속 말했다.
“신을 믿는 자들이 종교적인 관용을 저버리고 종교 전쟁을 일으키고 있어.
그들은 신에 대해 말해. 하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는 사랑이 없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세상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과 반목하고 있어.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인간다운 인간이 될 때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아낌없이 이타적으로 서로 소산을 나누고 음식, 의류 등 생필품들을 나누면서 말이야.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신이라 부르는 초월적 지성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어.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그 관념과 동일시하고 있어.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사고과정의 투사에 불과해. 그런 식으로는 결코 사랑을 알 수 없어.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너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어.
그러면 너의 가슴은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모든 사람을 향해 따스한 애정을 지닐 수 있게 돼.
네게 사랑이 없다면 너는 말로 살아가게 돼.
너의 삶은 말에 의해 유지되게 되지.
너는 유일자 아버지를 숭배할 수 있어.
하지만 너는 여전히 종교적 편견과 파벌을 지니게 되지.
왜냐하면 가슴이 공허하고 마음이 관념과 신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야.
이해를 위해서는 너는 반드시 가슴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만 해.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야.
너는 사랑을 계발할 수 없어.
마음에 의해 방해받지 않으면 사랑은 즉각적으로 현전하게 돼.
너의 가슴이 공허하면 타인과의 교감은 불가능해.
교감이 없으면 사랑도 있을 수 없어.
사랑이 있을 때 가슴을 밝히는 따스함이 있어.
거기에 심리학이나 철학 따위는 필요치 않아.
왜냐하면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하기 때문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서 사랑의 요소가 결여돼 있어.
관계 속에서 관용, 친절, 자비가 부족해.
그들은 문화와 세계 재건을 위해 조직 속에 들어가지만 아무런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해.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할 뿐 아무 것도 베풀지 않기 때문이야.
그들의 마음속에는 세계 재건을 위한 계획들로 가득 차 있어.
하지만 그 한 가지 요소가 결여 돼 있어. 그것 없이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어.
문제는 소위 개혁 시스템이나 청사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있어.
사람들은 하나의 개혁안을 내고 또 다른 개혁안을 내놓아.
하나의 조직을 만들고 또 다른 조직을 만들어.
하지만 그것들은 과거와 동일한 실패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지고 있어.
그리고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랑의 요소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야.
사랑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문제의 열쇠는 관계에 있어. 사랑과 선의 없이는 관계가 불가능해.
문제는 시스템이나 개혁에 있는 것이 아니야.
그것들은 더 많은 혼란만을 초래할 뿐이지.
문제는 관계에 있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올바른 행위가 불가능 해.
그리고 문제의 해결도 불가능하지. 자기 인식이 없이는 관계는 불가능해.
자아 인식과 더불어서만 지혜가 생기고, 지혜와 더불어 사랑이 현전하게 되는 거야.
사랑이 없으면 머리가 아무리 명석해도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어.
만일 관계가 없다면 우리는 더 많은 혼란만을 계속 만들어내게 되지.
너는 사랑과 선의에 대한 책들을 읽어왔어.
하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단순한 잡담이나 넌센스에 불과해.
너는 마음의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신에 대한 믿음 뒤로 숨을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속에서 실재를 재발견해야만 해.
세계에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창조적인 지성과 이해뿐이야.
그렇다면 세계는 무엇이지?
바로 너와 나,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 우리 모두가 세계야.”
그러고 나서 그가 말했다.
“나는 지금 너희 둘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얘기했어.
그것은 너희가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야.
제3자에게 말하듯 표현하면 너희 내면에서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가 사라지게 되지."
“예.” 내가 말했다.
“당신이 말씀하는 동안 내 자신의 조건화에 대해 깊은 식별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 그가 말했다.
“지혜를 가져다주는 것은 오로지 자기인식이야.
지혜와 더불어 사랑이 현현하게 되지.
사랑은 모든 문제들의 열쇠야."
우리가 함께한 한 밤의 대화는 내 삶의 기쁨이었다. 이런 대화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비평이나 비난, 두려움 없이 자기 자신을 관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내가 노르부를 보며 말했다.
“오늘 우리가 나눈 교감은 내게 지극히 경이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었어. 노르부, 네가 부러워. 내가 떠난 뒤에도 너는 오늘 밤처럼 언제든 스승님과 함께 나누는 교감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야.”
“저도 오늘 대화로 깊은 변화를 체험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이 여기 오기 전까지 저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어요. 저는 활짝 개화하기를 기다리는 꽃봉오리 같았어요. 우리는 여기 함께 앉아 사랑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들었고 온 존재로 흡수했어요. 이제 제 가슴은 사랑으로 충만해 있어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는 알게 되었어요. 이제 비로소 저는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내가 이해하였듯이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녀가 일어나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소유욕 없이 완벽한 자유 속에서 우리 모두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 서로 의식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서로 가슴을 열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나의 느낌을 말하자 스승이 대답했다.
“그래. 우리는 거짓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 거짓을 지속시키게 돼.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되지.
우리 불행의 원인은 우리가 집착하는 마음에 대한 무지한 인도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불행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게 돼.
이것을 이해할 때 즉각적인 자유가 현현하게 되는 거야.
사람들은 의견이나 믿음들을 계속 만들어 내.
하지만 그것들은 새로운 지식이 나타나면 새로운 것으로 변화될 수 있어.
하지만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실재가 아니야. 왜냐하면 실재는 불변하기 때문이지.
실재-신-사랑은 결코 변할 수 없고, 우리 내면에 항상 현존하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만 해.
우리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고정 관념을 건강과 생명에 대한 관념으로 바꿀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개선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음에 속한 것에 불과해.
네가 그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의 관념과 그 반대 관념이 모두 떨어져 나가게 돼.
그리고 실재가 아무런 노력 없이 현현하게 되지.
실재는 선악, 질병,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해.
인간들이 스스로 그것들에 대한 믿음을 만들고는,
비애와 갈등 속에서 스스로를 구속하게 되는 것이지.
네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너는 진리-실재를 경험하게 돼.
너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지 않게 돼. 그저 알 뿐이야.
그러나 네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겠니?
이해의 근원은 너의 내면에 있는 거야.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면 너는 반드시 타인과 너와의 관계, 너의 반응,
두려움, 적대감, 믿음 등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알아야만 해.
타인에 대한 너의 반응과 너의 생각-느낌-반응에 대한 식별을 통해
너는 너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
너 자신을 이해할 때 너는 네가 어떻게 조건화 되었는지 알 수 있어.
너의 조건, 믿음, 견해, 두려움 등을 너는 알 수 있게 돼.
이 모든 것들은 너의 마음속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것들은 네가 그것들에 힘을 부여하지 않는 한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아.
만일 너의 마음이 고정된 관념과 믿음에 의해 통제되면 너는 결코 진리를 알 수 없어.
왜냐하면 너는 무엇이 거짓인지 모르기 때문이지.
그러나 너의 마음이 이해를 통해 유연하고 자유롭다면 너는 진리를 경험하게 돼.
왜냐하면 너는 거짓을 알기 때문이지.
너는 거짓을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너는 진리를 만들 수는 없어.
왜냐하면 진리는 항상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되면 너는 타인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를 알게 돼.
네 안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전체가 있기 때문이야.
너는 그 일부의 결과가 아니라 전체의 결과야.
전체 속에는 분리란 없어.
이것이 실재야.
그것에 대해 너는 어떤 의견이나 의심을 가질 수 없어.
이 이해만이 먼저 한 개인에게 필요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
그러고 나서 세계 속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지.
왜냐하면 세계는 개인들이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야.
만일 네가 이 사실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너는 다름 아닌 우리가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뿌린 대로 거두리라.'
안의 것대로 결국 밖의 것도 되게 마련이지.
너의 마음속을 들여다봐.
그러면 너의 생각-느낌-반응이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사회는 우리 자신의 투사야. 세계 역시 마찬가지지.
네가 잔인하고, 적대적이고, 완고하고, 탐욕스럽고, 시기, 질투, 미움에 차 있으면
너는 너의 몸과 환경 속에 동일한 것을 만들게 돼.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정직해야만 해.
너는 자기 자신의 생각-느낌-반응에 대해 자각해야만 해.
그렇게 되면 너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돼.
너는 실재를 가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게 될 거야.
그리고 너는 얼마나 많이 '나'라는 것을 앞세우고 있는지 알게 될 거야.
예수는 이렇게 말했어.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은 자아를 상징하는 것이야.
그것은 실재를 가리고 있는 거짓말쟁이이고 사기꾼이지.
실재의 작용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것은 창조적인 지혜, 사랑, 힘이야.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초월해 있어.
거짓이 죽을 때 실재가 현현해.
그리고 진정한 관계가 존재하게 되지.
그것은 자유, 행복, 번영, 호의, 사랑을 의미해.
마음의 깊은 층에는 감추어진 자아가 있어.
그것은 유아기 때부터 커가지.
대부분의 동기는 일련의 잘못된 관념들 속에 감추어지게 돼.
이것이 바로 내적인 혼란, 분노, 편견의 원인이야.
마음은 갈등하는 욕망들 사이에서 사나운 투쟁을 하게 되지.
우리는 칭찬하고, 받아들이고, 거부하고, 비난하고, 판단해.
이 모든 것은 이 조건화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야.
우리는 그것들이 실제라고 믿고 있어.
우리가 어떻게 거짓이 존재하고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기 전까지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자아가 이 모든 것의 허구성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은 자기 자신을 투사하기를 그치게 돼.
왜냐하면 자아는 자기 자신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자아는 악마야. 자아는 그것을 알아야만 해.
그래야만 더 이상 투사 행위를 그치게 되고 작동이 멈추게 돼.
그렇게 되면 고요가 현현하게 되지. 그것은 만들어진 고요가 아니야.
자아가 작용하기를 멈출 때 실재가 아무런 노력 없이 현현하게 돼.
실재는 사랑, 지혜, 창조성이야.
실재는 자아가 사라질 때 작동하게 돼.
그것이 바로 주님을 위해 길을 예비하는 것이야. 내 말 이해되니?”
“예.” 내가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이해됩니다.
의식의 표면에서 무엇이 발생하는지 알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의식의 깊은 층에서 일어나는 감추어진 투쟁, 복잡한 생각-느낌-반응이 그치게 됩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마음은 자연스럽게 고요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고요 속에서 자유가 현현합니다.
이제 실재를 감추고 있는 것이 녹아사라지고 실재가 현전하게 됩니다."
“그래, 맞아. 아들아. 하지만 그것이 지적인 앎에 그쳐서는 안 돼.
그것은 능동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만 해.
마음이 사라지면 실재의 생명이 현현하게 돼.
그러나 만일 네가 말만 한다면 너의 마음은 관념으로 가득 차게 되고
너의 가슴에서는 사랑이 사라지게 돼."
“예.” 내가 말했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길을 믿을 때 어떻게 해서 그 길을 믿게 되었는지 식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른 믿음에 대해 반감을 가질 때도 그 이유를 식별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이 단지 믿음의 문제이고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뿐만 아니라 불신이나 선입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 그가 말했다.
“탈출구는 없어. 너는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그 문제와 직면해야만 해.
설령 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상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야.
너는 그것을 이해해야만 해. 그러면 너는 네가 어떻게 조건화되었는지 알게 돼.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얻을 수 없어. 비록 어렵다 해도 철저한 정화 과정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단순히 자신의 생각-느낌을 통제하고, 그것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시간의 낭비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조건화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만 합니다.
만일 내가 단순히 나의 생각-느낌을 통제하려고만 하면 이해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조건화를 이해할 때 우리는 자유롭게 됩니다."
“그래, 맞아. 아들아.
저항하고, 부인하고, 받아들이고 하는 행위는
자신의 조건들을 보호하려는 노력 속에서
사람을 더욱 몰지각하고 편협하고 보잘 것 없게 만들 뿐이야.
너는 자신의 무지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쓰게 돼.
그러나 너 자신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될 때 투쟁은 그치게 되지.
그리고 마음은 고요해 지게 되고, 그 고요 속에서 실재가 조용히 현현하게 돼."
“이해됩니다. 그것을 저는 지금 체험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 아들아. 너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만 해.
그렇게 되면 마음은 서서히 느려지게 돼.
그러나 네가 억지를 부려서 분석하려들면 대립된 것을 만들어내게 돼.
그렇게 되면 그것은 혼란만 더 부추기게 되지.
어떤 억압, 비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없이 너의 생각-느낌을 식별하고,
마음의 구성 요소들을 초연하게 낱낱이 들여다보게 되면
너는 그 모든 사고 과정을 초월한 불변의 존재, 실재, 영원, 현존을 자각하게 돼.
실재는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전체야.
너는 그런 실재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따라야만 해.
그렇게 되면 그것은 너에게 자유를 가져다 줘.
너는 심적인 혼란, 신조, 견해, 분리로부터 해방되게 돼.
너는 예수처럼 그리스도 요가를 체득하게 돼.
그러면 내면에 항상 계시는 아버지가 작동하게 돼.
그리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고 편협한 너의 조건들을 벗어나 아버지 자신의 일을 하게 되지.
말 그대로 종교적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 요가를 수행하는 것이야.
그것은 조직화된 특정한 종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야.
특정 종교에 의존하게 되면 비종교적이 돼.
그것은 신조를 통해 분리와 갈등을 낳게 돼.
불화, 경제난, 전쟁, 기아, 탄압 등에 대한 책임은 분리에 있어.
인간 자신이 그 원인이야.
우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원인을 알 수 있어.
그 얼굴에 바로 '분리'라고 씌어 있잖아.
사람들은 갖가지 이름으로 자기한테 딱지를 붙이고 있어.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유일한 하나의 생명이야.
이 사실을 이해하면 너는 모든 존재들에게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고
어떤 국가, 도그마, 조직에 의해 제한되기를 거부하는 진정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어.
아들아, 진정한 종교는 모든 신조, 국적, 사상을 초월해 있어.
이것을 아는 것이 '모든 것 속의 하나, 하나 속의 모든 것'을 깨닫는 출발점이야.
이것이 세계 평화와 번영, 그리고 개인적 행복으로 가는 길이야.
우리가 말 그대로 종교적이 될 때 결과적으로 세계 평화와 영혼의 평화가 도래하게 돼.
그리고 그리스도-영의 내적인 평화, 지혜, 사랑은 모든 영혼들을 일깨우고
분리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게 되지.”
“예.” 내가 말했다.
“예수의 이 말씀은 단지 분리와 신조만을 설교하는 자들의 방식을 요약한 것이군요.
기록된 바, 이사야의 이 예언은 진실로 위선자들, 바로 너희들에 대해서일 지니라.
“이 사람들이 입술로는 나를 경배하나 저들의 가슴은 나로부터 떠나 있구나.
저들이 나를 숭배함은 헛되도다. 저들이 가르치는 교의는 단지 인간의 율법에 지나지 않도다."
“그래, 아들아.” 그가 대답했다.
“예수는 사람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전통, 신조, 교의 등의 허상을 보여주고 있어.
그것들은 오히려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어.
사람들은 그것들에 대해 무지해. 왜냐하면 그들은 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허세, 의례, 전통을 떠받들고 있어.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그들을 파괴하고 있지.
그들은 입으로만 사랑을 외칠 뿐, 분리, 적대감, 투쟁, 전쟁, 비참함 만이 가득해.
슬프게도 사랑과 호의는 없어.
올바른 사고는 거짓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알아차릴 때에만 가능해.
거짓에 대한 진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거야.
이것을 알 때 비로소 올바른 사고가 가능해.
올바른 사고가 자유라면 조건화된 사고는 억압이지."
“예.” 내가 말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그 문제들은 우리가 탐닉하는 심리학이나 철학 체계 또는 관념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마음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한 분리와 불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 목격하고 있지만 그 위험성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적, 종교 신조, 정치사상 등에 갇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런데 거기에는 덧붙여야 할 것이 있어.
자아와 자아의 본질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만 너는 조건화된 사고를 발견할 수 있어.
너는 타인을 모방하고 있을 뿐이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아직 없다는 걸 알아야만 해.
그러나 너는 적대감을 가지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네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어.
너는 올바른 조망 속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봐야만 해.
그러면 마음속에서 혼란이 사라지게 되고 마음의 구성 성분을 식별할 수 있어.
마음에 속한 이 모든 것들이 물러날 때
현존하는 실재, 지혜와 사랑이 모든 인간의 가슴 속에 현현하게 돼.”
그가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려니 마치 그리스도 앞에 있는 느낌이었다.
"나를 보낸 그 분이 내 곁에 있다. 그는 나를 홀로 남겨두지 않았다. 나는 그를 즐겁게 하는 일을 항상 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생명나무의 무성한 가지들 위에서 나는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푸른 잎들 사이로 나의 노래가 울려 퍼질 때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나와의 일체성을 깨달았다. 나의 생명만이 그들의 양식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갈지라도 나의 초시간적 상태는 변함없을 것이다. 시간의 세계 속에서 잠자고 있는 혼들이 깨어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의 우주적 자유 속으로 들어오라. 내 노래의 리듬은 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는 가슴들을 흔들어 깨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일어나 가노라. 일어나 가노라."
그가 이 말을 할 때 내 곁에는 노르부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해처럼 빛나는 예수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 체험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최후의 만찬을 가졌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히말라야를 되넘는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잠사르 암자에서의 체류는 내게 있어서 경이로운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영원히 머물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이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스승이 말했다.
“네가 여기 계속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누구보다도 우리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단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높은 존재들이 있어.
이 일을 인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야.
대의를 위해 우리 자신의 개인적 욕심을 버린다면 결국은 커다란 축복이 우리에게 내려올 거야.”
저녁 식사를 위해 우리는 함께 앉았다. 마지막 저녁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주 행복했다.
노르부가 특별 요리를 준비했다. 차가운 소스를 바른 닭고기, 삶은 계란, 손수 만든 특별한 빵, 갓 만든 야크 버터가 나왔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녁 식사 후 우리는 다른 때보다도 더 오래 앉아 있었다. 밤이라도 샐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승과 노르부도 마찬가지 느낌인 것 같았다.
노르부가 기타를 치며 직접 만든 가장 좋아하는 연가戀歌를 불렀다.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녀는 타고난 창조적 예술가였다. 그녀는 한 번 들으면 그대로 연주하고 노래 부를 수 있었다. 그녀의 음악은 창조적이고 독창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의미까지 담겨 있었다. 그 속에는 온갖 색대의 컬러가 빛을 발했다.
방안 전체를 붉게 비추며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함께 앉았다. 평화가 주위에 드리워졌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 그리고 채울 수 없는 빈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노르부도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별의 시간이 가까웠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살아 있는 혼속에 있는 유일자,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이별이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우리의 추억은 아침 이슬처럼 새로우리라.
스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르부가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램에 대한 만족감과 성취감이 흘렀다.
나 역시 그것을 느꼈다. 그녀가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나도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나는 모른다. 한 순간 아니면 한 시간, 아니 한 세기.
내가 깨었을 때는 마치 수백 년 동안 잠을 잔 느낌이었다.
그것은 놀랍기 그지없는 체험이었다.
노르부도 나와 같은 체험을 하였다. 우리는 함께 깨어난 듯 했다.
스승이 미소 지으며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말했다.
“얘들아, 너희는 함께 체외유리 상태를 체험했어. 그것은 지복의 체험이야.
너희는 고급한 차원에서 하나의 혼이 되는 경험을 했어.
너희의 소원이 영적으로 성취된 것이지.
하지만 그 체험의 본질 중 한 단편만을 너희는 상기할 수 있어.
나는 너희 둘이 동시에 체외유리하고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어.
너희는 동일한 것을 체험했어. 그것은 혼 상태에서 너희의 소망이 절정으로 성취된 거야.
그것은 몸속의 생명력이 영적인 원천으로 올라갈 때 경험하게 되는 황홀경이야."
노르부는 이제 뭐라 형용할 길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 이상 분리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은 혼의 포옹의 결과였다.
더 이상 육체적 접촉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소유욕이 없고 가슴이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체험이다.
참된 사랑은 주고받는다는 생각 없이 주고받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으려면 오로지 체험으로만 가능하다. 어떤 언설로도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현존의 은총이었어." 나의 스승이 말했다.
스승의 노력의 절정이 이러한 성취로 보답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요가의 최고 성취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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