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노자를 아느냐
도올의 TV 고전강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한두 횐가 보고는 뭐 신경을 꺼버렸다. 익히 도올에 대해서는 잘 아는 데다가 더 이상 시간을 뺏길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거 볼 시간에 통신 모임방에서 글을 쓰거나 채팅이나 하는 게 훨씬 영양가 있는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몇 달 동안 통신을 하지 않게 된 어떤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매일 습관처럼 하던 PC통신을 하지 않다 보니까 시간도 남고 무료하기도 해서 TV나 보며 소일을 하는데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도올의 TV 고전강의가 재방송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에 같았으면 보지도 않았겠지만 시간이 널널해진 탓에 그걸 들여다보고 있을 수가 있었다. 차라리 안 봤으면 속이 편했을 텐데 막상 보고 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노는 김에 염불하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남는 시간에 도올의 노자강의나 바로잡아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곰곰 생각해보니까 이게 잘못하면 한 사람 잡는 짓이 되겠더란 말이지. 노자강의를 한답시고 풀어 놓은 도올의 썰을 보면 강의가 황당한 것도 황당한 거지만 곳곳에 무식이 철철 넘치는 소리들을 흘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니까 넘어가지 아는 사람이 볼 때는 배꼽 잡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는 거다.
모른 척하고 넘어가? 바로 잡아줘? 고민 같지도 않은 고민을 잠시 하다가 그예 쓰고야 만 것이 바로 이 글이다. 도올의 강의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심각하거나 진지할 필요가 있나 싶고, 뭐 학술적인 격식까지나 갖출 이유도 없어 보인다. 아마도 내 평생에 가장 쓰기 쉬운 글이 아니겠나 생각한다. 깊이 생각하고 다듬고 할 것도 없어.
애들한테 논술이나 작문 가르칠 때 ‘이렇게 써야 된다’고 가르치기 보다는 ‘이렇게 쓰면 안되는 거다’ 라고 말하는 게 훨씬 쉽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쓰면 안 되는’ 졸문의 표본을 추출하기가 명문을 얻기보다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도올의 TV 강의 교재 《노자와 21세기》는 고전 번역의 오역 ․ 악역의 환상적인 모델이다. 이런 텍스트가 있으면 노자를 설명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왜냐하면 정답과 대조해볼 수 있는 오답이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노자의 설이 어떤 사람한테는 별로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진짜 탄복할 만큼 재미난 내용이 많다. 그리고 이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한문으로 쓰인 고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 감이 잡힐 거다. 한문고전 번역의 방법론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한글 전용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한글 전용 세대가 이 사회의 주역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한문 교육을 철폐하는 것은 선조의 위대한 학문적 유산의 90%를 내다버리는 일이다.
대한민국 동양학의 자칭 대가라는 도올의 한문 번역 꼬락서니를 이 참에 봐주기 바란다. 이런 수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도올 정도의 실력으로 전문가연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게 바로 한국의 실력이고 이 나라 학문이 어디에 와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럴 때 노자 얘기도 들어보고 한문 고전의 해석법도 봐두는 기회로 삼으면 다 도움이 된다. 배우는 게 남는 거다.
이 글의 제목은 ‘노자를 웃긴 남자’다. 누가 주인공인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rnflafh&categoryNo=7&logCod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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