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제10부 한국형 원자로 개발(1)

기른장 2010. 2. 3. 18:25

01. 우리 것을 만들자

 

내가 1984 4월 이후

한국에너지연구소장(한국원자력연구소장) 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한국형 경수로 개발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내 일생 일대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만약 그때 개발에 실패했다면

현재 한반도에너지기구(KEDO)가 주관이 돼 추진하고 있는

'대북 경수로사업' 에서

북한에 한국형 경수로를 지어 주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솔직히 한국형 경수로 개발문제가

한창 관계기관 사이에서 거론될 때인 1984년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연구소는 그 사업에 뛰어들 형편이 아니었다.

 

국산 중수로 핵연료, 경수로 핵연료 개발사업에 매여 있어

다른 데 신경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업 모두 계획대로 사업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에는 일렀다.

 

이런 와중에서

과기처가 주관하는 원자력위원회와

동자부가 주도하는 장기 전원(電源) 개발회의,

한국전력과 그 산하기관들의 정기회의인 전력그룹협력회의에

모두 참석해 보니

화제가 단연 '한국형 원자로' 개발쪽으로 모아졌다.

 

 원자력발전소 11.12호기인

 '영광(靈光) 3.4호기' 에 설치될 원자로만큼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에너지연구소장과

한전 산하기관인 핵연료주식회사 사장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세 회의에 모두 참석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누구보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손쉽게 간파했다.

 

평소 나는 한국의 과학자는

연구를 위한 연구보다는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 회의 때마다 거론되는 한국형 경수로 개발사업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었다.

 

나는 우리 연구소가

어떤 형태로든 대형 원전(原電) 사업에 참여해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장기 전원개발에 이바지하는 한편

이번 기회에 원자력 기술자립 계기로 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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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포기할 수 없다

 

1984 8월말

나는 아침 일찍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20여명의 주요 간부들이 참석했다.

회의는 서울에 있는 에너지연구소 영빈관에서 열렸다.

 

나는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간부들에게

"우리 연구소에서

 원자로 계통(系統) 설계를 할 수 있겠느냐" 고 물었다.

 

 '원자로 계통설계'

 원자로의 전체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설계로

 원자력의 핵심 기술이다.

 

 통상 웨스팅하우스가 계통설계를 했다면

 '웨스팅하우스형 경수로' 이고,

 

 우리가 계통설계를 하면

 '한국형 경수로' 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계통설계를 '주계약자가 되는 설계'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원자로 계통설계를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원자로를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간부들은 내 말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마치 '지금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잠잠히 있길래

"기탄없이 얘기해 보라" 고 재촉했다.

그제서야 간부들은 하나 둘씩 발언하기 시작했다.

 

 발언 내용은 대개 엇비슷했다.

 한마디로 지금 벌여놓은 사업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데

 무슨 재간으로 가장 어려운 사업에 또 뛰어드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는 바로 인력난이었다.

 

 그무렵 막 착수한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사업에 필요한

 150명 가량의 핵연료 설계 인력도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계통설계까지 넘보는 것은

 지나치리만큼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실패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거냐며

 책임론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대규모 정부 프로젝트에

가장 우수한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연구소가

단순히 들러리를 서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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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타협

 

나와 간부들은 하루종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워낙 중요한 사안인지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장장 20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한 셈이다.

 

그럼에도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현실 여건을 따져보니

인력난 때문에 적극적인 사업참여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우리 연구소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었다.

 

이같은 생각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 없이 절충점을 찾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원자로 계통(系統) 설계는 포기하는 대신

 원자로 본체만 설계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원래 경수로 개발의 중심 역할을 하려면

 계통설계는 우리가 맡아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실 여건과

 앞으로 우리 연구소가 원전(原電) 사업에서 차지할 위상을 함께 고려해

 원자로 본체만 설계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무척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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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수수께끼

 

에너지연구소가 계통설계를 포기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경쟁 기관들에게 알려졌다.

 

 1984 9월 초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한국중공업'에서는

 나에게 각각 번갈아 사람을 보내

 계통설계를 자기네가 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측에서는

"우리 능력은 에너지연구소의 1/10 밖에 안되고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에너지연구소가 60명의 과학기술자들을 빌려주면

 우리 회사도 계통설계를 할 수 있으니

 인력지원을 해달라" 고 나에게 부탁했다.

 

또 한국중공업측에서는

"사실 이번 영광(靈光) 3.4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에서

 우리 회사가 발전기와 터빈 등을 비롯해

 각종 계통설비를 제작하기로 되어 있으니

 사업 성격상 원자로 계통설계도 우리가 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원자로 계통설계를 맡을 경우

  에너지연구소에 몽땅 용역을 줄테니

  측면지원을 해 달라" 고 나에게 간청했다.

 

하지만 나는 두 회사 관계자들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을 만날 때마다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원자로 계통설계를 하기에는

 인력도 부족하고 능력도 떨어지는 회사들이

 어떤 이유에서 계통설계를 하겠다고 나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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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학자와 사업가

 

1984 9월 중순 어느날

한국전력과 그 산하 기관들의 정기 회의(전력그룹협력회의)를 마치고

성낙정(成樂正) 한국중공업 사장과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그의 차를 탔다.

 

도중에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곰곰히 생각해 봐도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게 있다" 고 운을 떼었다.

 

그러자 成사장은

 "뭐가 그렇게 이해가 안되느냐" 며 내게 반문했다.

 

나는 솔직히 궁금증을 털어 놓았다.

"아니 成사장님,

 우리 에너지연구소는 3백여명의 고급 인력이 있어도

 원자로 계통설계를 할 엄두를 못내는데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는 고작 2명의 박사 밖에 없고,

 더욱이 한국중공업은 관련 박사가 1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계통설계를 하겠다고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

 

成사장은 나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韓박사는 너무 순진하네 그려" 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더니 나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는 솔직히 설명했다.

 

"韓소장은 사업을 몰라도 한참 몰라.

 사업이라는 것은

 미리 모든 것을 갖춰놓고 시작하는 게 아니야.

 일단 사업을 따내면 돈이 들어와.

 

 그 돈으로 부족한 인력을 뽑으면 되고

 필요한 기술은 외국서 들여오면 돼. "

 

나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았다.

단순하면서도 귀중한 경영원리를 깨달은 느낌이었다.

 

 이 논리 대로라면

 우리 에너지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소 전신)

 얼마든지 원자로 계통설계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경수로 개발의 중심역할을 하려면

어떻게든 계통설계를 맡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원자로 계통설계는 꼭 우리 연구소가 맡아야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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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정해진 결론

 

그러던 차에 한 통의 공문서가 내게 날라왔다.

1984 918일 최동규 동력자원부 장관실에서

원전(原電) 관련기관 대표자 회의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영광(靈光) 3.4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에서

 각 기관이 맡아야 할 역할을 분담하는 회의였다.

 

 나는 이 회의에서

 우리 연구소가 원자로 계통설계를 맡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회의에 참석해 보니 낌새가 이상했다.

유독 나에게만 사전에 회의 자료가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회의 자료에는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가

 내가 소장으로 있는 에너지연구소로부터

 60명의 과학기술자들을 지원받아

 원자로 계통설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틀림없이 이같은 사실이 새 나가면

 내가 크게 반발할 것을 우려해

 내겐 회의자료를 전달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나는 즉각 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자 동자부 관계자는 마치 실무자의 사무 착오인양 둘러댔다.

 

 그러나 회의가 진행될수록

 동자부와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간에

 무언가 사전 의견조율을 한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회의자료에 나와 있는대로 얘기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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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마지막 반론

 

할 수 없이 나는

'할 말은 해야겠다' 고 마음 먹고 발언권을 신청했다.

모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영광 3.4호기 건설사업 가운데에,

  원자력발전소 건설 분야에서 우리가 달성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원자력 기술자립을 이룩하려는 게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남의 힘을 빌려 발전소를 건설했지만

  이제부터 우리의 독자 기술로 원전을 건설하려면

  가장 핵심 역할은 당연히 준비된 기관에서 맡아야 합니다."

 

참석자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말의 의미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개의치 않고 발언을 계속했다.

 

 "우리 에너지연구소는 다른 기관과는 달리

 '원자로 계통설계를 할 만한 '고급 인력이 3백여명이나 있습니다.

  이들에게 계통설계를 맡기면

  틀림없이 한국형 경수로를 차질없이 개발해 낼 것입니다. "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돌연 회의장은 돌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까지 회의는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가

당연히 계통설계를 맡는 쪽으로 진행됐었다.

특히 동력자원부 관계자들이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고 갔다.

 

동자부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의 주무 부처이므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는 그것을 문제 삼으려는 게 아니었다.

 

 이번 원전(原電) 사업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원자로와 각종 설비 등 발전소에 들어갈 온갖 시설들을

 우리 힘으로 건설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 기관들의 능력에 맞게

 적절히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특히 원자로 계통설계야말로

 원자로의 전체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설계로

 가장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원자로 계통설계를 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원자로를 독자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인력도 충분하고 능력도 있는 기관이

 계통설계를 맡는 게 순리였다.

 

나는 발언을 계속했다.

 

 "얼마전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에서 나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들 능력이 비록 에너지연구소의 1/10 밖에 안되지만

  60명의 과학기술자들을 빌려주면 계통설계를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굳이 우리 인력을 빌려 계통설계를 할 바엔

  우리 에너지연구소가 직접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

 

당시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의 원자력 전문인력이라고는

사장인 정근모 박사와 신재인 박사 밖에 없었다.

 

반면 에너지연구소에는

국내외 유수대학 출신의 박사 등 고급 두뇌들이

무려 3백여명이나 포진해 있었다.

 

참석자들도 내 발언에 대해

'말인즉 옳다' 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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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역부족

 

그러나 동자부와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간에는

이 회의가 열리기 전에 이미 깊은 얘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한 동자부 관계자가 내 발언에 이의를 제기했다.

 

"韓소장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 에너지연구소는

 중수로.경수로 핵연료 국산화사업에

 전 인력이 매달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원자로 계통설계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계통설계는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가 맡는 게 낫다고 봅니다. "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즉각 반박에 나섰다.

 

"아니 우리 연구소 과학기술자들이

 핵연료 국산화사업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원자로 계통설계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60명이나 되는 우리 인력을 빌려 계통설계를 하려고 합니까.

 앞뒤가 안 맞는 얘기 아닙니까. "

 

나는 마지막으로

"원자로 계통 설계만큼은 능력있는 기관이 해야 한다"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애초 이 회의가 열리기 전에

최동규 동자부 장관실에서 결론은 나 있었다.

단지 토의라는 형식을 빌렸을 뿐이다.

 

결국 영광 3.4호기 원자로는

동자부가 의도한 대로

계통설계는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가 맡고

우리 에너지연구소는 원자로 본체 설계만 하기로 결정됐다.

 

아쉽지만 마음을 고쳐 먹는 수 밖에 수 없었다.

'이왕 이렇게 결정됐으니

 우리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