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양-나치독일의 어제와 오늘

나치독일의 어제와 오늘 - 5. 환상적인 에너지

기른장 2023. 6. 16. 20:23

미립자(微粒子)세계에서의 천재지변이라 할 굉대(宏大)한 섬광(閃光)이 달렘(Dahlem)의 실험실에서 발생하고 난 이후 여기에서 방출되는 핵에너지를 제일 먼저 계산해 낸 사람은 바다 건너의 스웨덴에서 편지로 이 소식에 접한 마이트너(Meitner)여사와 그의 조카 프리쉬(Frisch)박사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의 닐스 보어(Niels Bohr)로부터 핵에너지와 중성자 방출에 대한 중대한 이론에 접한 그는 아인슈타인(Einstein)이 발견해 낸 공식 E = m c² 에 의해 우선 우라니움 원자핵 (U235) 분렬 당시 211.5 메가 전자볼트(MeV)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이트너여사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아 스스로 여러번 계산해 보기도 했다. 결국은 프리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마이트너여사는 프리쉬에게 “이 정도면 육안으로도 이 에너지의 작용이 보일만큼 큰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1그램의 우라니움(U235)이 모두 한꺼번에 핵분렬이 된다면 5 x 10²³ 메가전자볼트(MeV)가 되며 이것은 2억만 킬로 칼로리로 환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원자력은 쉽게 말하면 석탄이 열을 내는 것의 2백5십만 배가 되는 엄청난 에너지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O.R.Frisch, Woran ich mich erinnere. Physik und Physiker meiner Zeit. Stuttgart 1981).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교수 집에 유했던 프리쉬 박사는 스웨덴의 괴데보르그(Goeteborg)에서 한적한 망명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 마이트너여사를 자주 방문하여 오토 한(Otto Hahn)과 슈트라스만(Strassmann)의 실험결과를 토대로 한 논문을 집필해 1월 16일 영국의 학술지 〈자연(Nature)〉에 기고했다. “중성자로 인한 우라니움의 붕괴와 이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핵반응”이란 제목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의 달렘에서의 실험결과가 아직 발표되기 이전의 일이었다. 이 논문에는 핵반응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피력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와 오토 프리쉬(Otto Frisch)는 핵에너지연구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개념인 연쇄반응에 관한 제반 이론에 대해 선구자로 알려지게 된다. 이 논문이 영어로 또 영국의 학술지에 발표되자, 이미 1935년대에 정부에 제출된 무명의 유대인 청년 스칠라드(Szilard)의 서류들이 이로 인해 재검토 되었고 영국의 군부에서는 핵무기의 개발을 위해 스칠라드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때에 뉴욕에서 페르미(Fermi)와 안더슨(Anderson)등과 함께 연쇄반응에 의한 원자로 제작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닐스 보어교수가 미국으로 건너가 강의와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베를린에서 일어난 정보를 이야기하자 미국에서는 이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에 대한 연구가 과열 되기 시작했다. 원자력이나 핵물리학이라는 것이 대중화 되고 사회의 커다란 관심거리로 등장하여 열띤 토론과 호기심이 곳곳에서 고조 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방송국의 전자시스템을 원자력으로 바꾸어야 하고, 미국 전역의 난방 문제를 이 원자력으로 해결하며, 발전소를 모두 원자력으로 바꾸어야 하고.... 또 에너지의 사용처에 대한 이야기들이 돌고 돌아 환상적인데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에너지만 있으면 인간은 지구내의 여행은 물론 마음대로 우주여행을 할 수도 있고.... 이에따른 공상과학소설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의외에도 냉냉한 분위기였다.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전자볼트와 볼트와를 혼동하여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에 의해 원자핵이 분렬 되었을때 무려 20억만 볼트의 에너지가 발생했다고 과장되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달렘의 섬광’에 대한 뉴스로 온 세상이 떠들석 하던 그해 3월 8일 파리에서는 죨리오 큐리부부가 달렘에서와 똑같은 실험을 다시 실시했다. 그리고나서 이들은 알반(Halban)과 코바르스키(Kowarski)등의 프랑스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와 함께 영국의 학술지 〈자연(Nature)〉에 “우라니움 핵분렬에 있어서의 중성자의 방출“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개의 중성자를 핵에 충돌 시킨 경우 2.5개의 새로운 중성자가 생겨나 그 다음의 핵을 분렬시키고 또 다음 세대로 나아가 계속해 핵분렬이 일어나며 이때마다 중성자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 핵반응의 과정에서 중성자의 파장을 형성하게 된다고 하는 이론이 장황하게 전개 되었다. 이 논문에 의하면 이러한 핵반응은 마치도 알프스산에서의 눈사태처럼 겉잡을 길이 없는 돌발사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쇄적인 핵반응을 억제 하든가 또는 중단 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핵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이들은 역설했다. 이제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는 앞을 다투어 핵에너지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러나 핵분렬의 그리고 핵에너지 개발의 원천지인 독일에서는 비교적 잠잠하고 있는 편이었다.

1939년 3월 8일 오토 한(Otto Hahn)은 60세의 생일을 맞이하여 온 가족과 친지들과 제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신문에는 “방사능료법의 선구자“, 독일의 “라디움 발견자”, “핵에너지개발의 세기적인 개척자” 등으로 그의 학적인 업적이 대서특필 되었다. 전세계로부터 약 200개의 편지들과 축전들이 달렘에 있는 오토 한의 자택으로 몰려 들었다. 생일축하선물들 중 가장 인상깊고 아름다운 것은 17세의 아들 한노(Hanno)가 정성스럽게 손으로 쓴 아버지의 기도문이었다. 핵분렬이 성공되고 난 다음날 일요일 아침 오토 한은 실험실 책상앞에 두손 모아 기도하고나서 그 내용을 연구일지에 메모했었다. “탐구자의 기도 (Das Gebet des Forschers)"란 제목으로 예쁜 글씨로 그려진 이 기도문은 금빛의 액자에 넣어진 채 이날 아버지인 오토 한에게 선사 되었고 그의 침실에 걸려졌다. 그리고 학술지에는 그를 기리는 논문들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발표되었다.

독일에서 핵에너지의 이용문제가 제일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1939년 6월 9일 오토 한의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플뤼게(Siegfried Fluegge)박사의 논문이 〈자연과학(Naturwissenschaft)〉지에 발표 되고 난 후 였다. “원자핵에서 방출된 에너지가 현실적으로 유용하게 사용 될 수 있는가?”란 그의 논문이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씌여졌기 때문에 ‘환상적인 에너지’가 자연속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 독일에서는 일반화 되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1m³의 산화우라니움 분말(Uranoxidpulver: U₃O8)속에 있는 원자핵들이 모두 분렬되게 되면 여기에서 방출되어 나오는 에너지를 가지고 1 km³의 물 곧 10억만톤에 해당하는 무게를 27km 상공에까지 올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표현하여 그는 베를린의 반제에(Wannsee)의 호숫물 전체를 성층권에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엄청난 힘이라고 했다. 또 플뤼게는 백만명이 사는 도시전체를 성층권까지 올라가게 할 수 있는 ‘환상적인 에너지’라고 공상과학적인 설명을 가했다. 만일에 이러한 에너지를 현실화 하는 기술만 개발된다면 베를린만한 도시의 규모로 우주선(宇宙船)을 만들어 은하계를 여행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해 8월 15일 일반인들이 많이 읽는 신문인 “도이췌 알게마이네 차이퉁(Deutsche Allgemeine Zeitung)”에 실린 플뤼게 박사의 기사로 인하여 독일국민 전체에게는 원자력이란 개념이 곧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지게 되었다. 그때 당시로서는 히틀러와 나치독일이 기필코 이런 일을 해내고도 남을 수 있으리라는 신념에 대하여 독일국민이면 누구나를 막론하고 의심치 않았다. “원자력의 이용 - 실험실로부터 우란 동력기를 제작하는 공장에 이르기까지 - 달렘의 연구결과”라는 제목의 이 글은 히틀러와 나치수뇌들이 주도면밀히 검토하고 있었고 또 이 ‘환상적인 에너지’에 대한 설명에 대하여 매혹되어 있었다.

이때까지 우라니움 핵분렬과 여기로부터 얻어지는 에너지에 관한 논문들이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쏘련 등지로부터 발표된 것들을 헤아리면 일백개가 넘었다. 거의 논문마다 오토 한-슈트라스만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인간이 이와같은 자연의 비밀을 알아냈다고 하는 사실을 무척도 염려하여 미래를 내다 보는 공상과학소설들이 책으로 엮어져 베스트 셀러를 기록 했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웰스(H.G. Wells)의 〈자유로워진 세계(The World Set Free)〉이다. 웰스는 이미 1913년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 이 책을 펴냈다. 이 소설의 처음의 시작은 대략 이러하다.

때는 1933년 영국 런던이다. 러더포드(Rutherford)와 소디(Soddy)의 원자핵에 대한 세기적인 발견에 매혹 된 한 젊은 화학자 홀스텐(Holsten)이 오랜 고심끝에 마침내 핵분렬과 여기로부터 방출되는 핵에너지를 얻는 실험에 성공하게 되는데 그는 인간이 이러한 엄청난 에너지를 평화로운 목적에 사용하기 이전에 먼저 전쟁무기인 핵폭탄을 만들게 될 것을 우려해 자신의 연구결과를 비밀에 부친다. 아래에는 이 소설에서 본 논문과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해 번역한다.

“저녁때에 홀스텐은 오랫만에 시내로 산책을 나갔다. 바로 성 바울 성당 옆을 지날때였다. 미사예배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성가곡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열려진 성당의 문 앞에서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제단에는 촛불들이 켜져 있었다. 묵묵히 그 불꽃을 바라보며 성가음악을 듣다가 그는 웨스트민스터사원 방향으로 향했다. 이때에 문득 자신이 방금 연구실에서 발견한 핵분렬에 대한 사실이 엄청난 비극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저녁때에 그는 마음 속에 결심했다. 절대로 연구결과를 세상에 발표하지 않기로.... 아직은 때가 이르기 때문에 발표해도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어느 누군가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자기의 연구결과를 놓고 심각히 생각할 뿐만 아니라, 세대를 넘겨 가면서 골돌히 연구하다가, 언젠가 세상의 발전이 이 이론을 현실화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때에 핵에너지가 제일 먼저 전쟁에 사용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중략).... 아무래도 홀스텐에게는 자기가 죽기전에 분명코 원자력이 개발되어 엉뚱한데 사용될 것이라는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실험실의 연구결과가 적용단계 및 양산체제의 제작공장에까지 나아가는데는 많은 난관이 있고 또 많은 시간이 경과해야 하겠지만 왜 그런지 수년내에 인류는 이 일을 완수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1933년에는 많은 화학적인 연구결과들이 학계에 발표되었는데, 그중에는 창연(蒼鉛: WISMUT Bi)을 가지고 금을 만들 수 있어 옛날 연금술(鍊金術)의 꿈이 실현된다고 세상을 놀라게 한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이미 핵분렬과 핵에너지에 대한 이론이 대두되어 1933년은 인류사에 있어서는 실로 벅찬 해이기도 했다. 많은 젊은 학자들이 토론과 새로운 기대를 지상에 발표하여, 세계 도처에서는 교육받은 지성인들의 모든 관심을 인류의 미래에로 모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스위스와 같은 산간지역에서는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몰라도 당장에 위험스런 일로 닥치는 산사태와 눈사태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했었다. 이곳의 낙농민들은 자기네들의 경험에 비추어볼때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이 불가능하게 되고, 당장에 해결해야 하는 많은 문제들이 산정상의 만년설처럼 미해결된 채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1953년 홀스텐-로버트의 원자력 동력기가 만들어져 우선 증기기관과 대치 되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유럽의 기차들은 점진적으로 이 새로운 원자력 동력기로 바뀌어지고 있었다. 개인이 타는 자동차들도 새로 개발된 알콜엔진으로 만들어져 유류 값이 대폭적으로 절약되었다. 레드메인(Redmayne)에 의해 제작된 잠자리 날개처럼 생긴 네개의 프로펠라로 수직 이착륙하는 특수 비행기(오늘날의 헬리콥터)는 인류에게 쉽게 “하늘로 뛰어 오르는 시대”를 이룩했다. 이제 원자력 동력기를 더 작고 가볍게 만들 수만 있다면 이러한 엔진을 레드메인 비행기에 장착해 대륙을 마음대로 횡단 할 수 있게 된다. 개인 자동차에서 개인 비행기의 시대의 막이 열렸다. 그래서 유럽의 산업체에서는 원자력 동력기의 소형화제작을 앞을 다투어 서두르게 되었다. ....(생략).... 1956년 7월 2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영국의 비아드(Viard)장군과 프랑스의 두보아(Dubois)제독이 상항실에서 유럽의 지도를 놓고 중대한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것은 중부 유럽지역에서 동서로 세력을 팽창하려고 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침공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홀스텐이 한때에 근심했던 원자탄이 완성되어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 두 장군들은 서로 군사동맹을 맺고 이번의 전쟁에서는 어떤 장군의 이름이라도 거론치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현대적인 전쟁에서는 `나폴레옹’이나 `씨저‘ 같은 이름 대신에 그냥 `명령’만이 있을 뿐이다.....(중략).... 그래서 이 `명령‘에 의해 젊은 비행사 두명은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그날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유럽의 중심부인 베를린으로 향했다. 이 비행기는 마치 태양빛이 구름 사이로 나타나듯 그렇게 소리없이 베스트팔렌(WESTFALEN)과 작센(SACHSEN)을 지나 유럽의 핵심에 위치한 목적지로 날아갔다. ....(중략)....

특수임무를 띤 정찰기 정도로 보이는 이 원자력 비행기는 그렇게 높이 날지는 않았다. 약 300미터 정도의 고도였기 때문에 구름 사이로 시내의 모습이 명료하게 들어났다. 때는 새벽이라 주위는 훤히 밝았는데도 길가의 가로등과 큰건물들에는 전기불이 켜져 있었다. 하펠(HAVEL)과 반제에(WANNSEE) 호수가 바로 밑에 내려다 보였다. 호수에 면한 포츠담(POTSDAM)과 슈판다우(SPANDAU)가 베니스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비행기는 시내로 진입했다. 샤르롯텐부르그(CHARLOTTENBURG)궁이 내려다 보이고 베를린의 중앙에 우람하게 위치한 브란덴부르그(BRANDENBURG) 개선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조정사는 바로 이 근처에 독일군 사령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부조정사는 약 70센티미터의 직경인 검은 공처럼 생긴 폭탄을 손에 쥐고 세루로이드로 된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그러면 공기가 이 폭탄의 내부로 스며들어 그곳에 담겨진 카롤리눔(Carolinium: 웰스가 지어낸 방사성원소 이름인데,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함’으로 이후에 알려진 플로토니움과 같은 동위원소를 미리 예견한 것으로 본다)을 산화시키게 된다.

그러자 독일의 전투기 두대가 갑자기 높은 상공에서 쏜살같이 내려오며 이 연합군 비행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조정사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공격을 피해야 했다. 폭탄을 손에 든 부조정사는 그 순간 뇌관의 안전핀을 이빨로 물어 빼내고는 비행기 밖으로 내어 던졌다. ”폭탄이 낙하 합니다“고 그는 큰소리를 질렀다. 비행기는 다시 위로 치솟았다. 그러나 폭탄의 위력이 몰고 오는 공기의 진동과 폭풍으로 인해 비행기가 옆으로 위로 마구 밀리기 시작했다. 조정사는 안간 힘을 다해 비행기의 방향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했다.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라고 하는 녹색지대에는 벌써 커다란 분화구와 같은 모습이 연기와 불길 속에 보였다 가리웠다 했다. 비행기가 점점 고도가 높아지자 육안으로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곧 부조정사는 두번째의 폭탄을 높은 고도에서 낙하했다. 그런데 이 폭탄은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러자 불길과 연기가 베를린 상공 전체를 뒤덮었다. 독일 전투기의 공격을 피하는 곡예 조정을 하다보니 세번째의 폭탄이 떨어져 저절로 세루로이드 손잡이가 벗겨졌다. 기내에 있는 이 폭탄에 공기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에 안전핀이 벗겨지는 날에는 그대로 폭발하게 된다. 부조정사는 결사적으로 기내에 이리 저리 딩구는 폭탄을 품에 안았다. 그가 안전핀을 확인코저 손에 잡은 순간 비행기는 독일군의 기관총을 맞아 큰 충격을 일으켰다. 무의식중에 안전핀이 뽑혀지자 부조정사는 당황한 나머지 폭탄을 바닥에 떨어 뜨렸다. 몇초 이내에 이 세번째의 핵폭탄이 비행기 안에서 폭발했다. 비행기와 조정사들은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하늘 공중에서는 또 하나의 엄청난 불덩어리와 연기구름이 좌우 상하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불바다가 된 베를린 시내 위로 내려 앉았다. 태양이 작열하게 떠오르는 아침이었는데도 그때는 밤과 같이 어두었다. 핵폭탄에서 발생한 미립자들이 태양빛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전쟁사에서 이와같은 연쇄반응의 효과를 가진 폭탄이 사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일회적인 폭발력에 의한 피해범위로 그 위력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날밤 처음 베를린에 투하된 원자탄의 위력에 대해서는 전문학자들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연합군이 이날 사용한 원자탄은 그 내부에 정제된 칼롤리눔이 산화되지 못하도록 처리된 금속용기 속에 들어 있었다. 폭탄의 외부에 장치된 세루로이드 손잡이를 당기면 내부의 금속용기가 열려 공기가 들어감과 동시에 그속에 들어 있는 칼롤리눔이 곧 산화하기 시작한다. 뇌관의 안전핀은 순간 핵분렬을 가능케 하는 별도의 장치인데, 안전핀을 뽑으면 산화되고 있는 칼롤리눔은 핵분렬의 반응을 일으켜 불과 2, 3분 이내에 오래도록 꺼지지 아니하는 불덩어리로 변하게 된다.

재래식 대포나 로켓트에 장착하는 폭탄은 모두가 일회적인 폭발력을 가진데 비하여 이 원자탄은 연속해서 폭발하는 것이 특성이다. 칼롤리눔은 인공 방사능 원소로서는 가장 긴 시간동안 에네르기를 방출한다. 이른바 방사능원소의 반감기라고 하는 기간으로 인해 이 폭탄의 파괴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러한 칼롤리눔의 반감기는 17일이다. 핵폭탄이 지상에서 폭발되면 굉대한 에너지방출로 인해 분화구가 생겨나는데 그 내부에서는 계속해서 핵반응이 일어나 카롤리눔의 경우 17일 동안이나 분화구의 주변으로 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방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핵폭탄은 폭발시점으로부터 칼롤리눔의 함유량에 따라 수년간 또는 수개월간 또는 적어도 수주간 핵에너지를 분출하게 된다. 이때의 핵에너지의 영향 반경은 여러 킬로미터로 확산된다. 이러한 핵폭탄을 누구나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한 사람의 오판으로 인해 도시의 절반이 순간적으로 파괴될 것이다. ....(중략)....

이와같은 원자탄의 사용은 국제적으로 금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세계가 파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핵에너지는 지구만을 멸망케 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전체를 멸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핵무기사용에 대해 아무런 제한 조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자탄 사용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해 더 큰 위력을 가진 핵폭탄을 개발하려 하기 때문에 핵전쟁은 계속하여 확대되어만 간다. 1959년에 이르러서는 전세계의 이백여개의 도시가 원자탄 투하로 인해 완전히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다가 깨어났을때에 주변이 완전히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보고 놀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다.

홍수나 화산분출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의 재해는 피할 수도 있고 피해자들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릴 수도 있다. 그러나 파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사용된 핵폭탄의 위력은 피할 수도 없고 또 피해자를 구명하는 방법도 없다. 핵폭탄의 위력에 따라 한 도시가 완전 증발 되든가 아니면 일순간에 고요한 죽음의 도시로 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가 서로 대립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온 민족과 온 국가가 모두 공동평화에 참여하는 이른바 ‘세계공화국’이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계공화국’의 기본법으로는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다가오는 핵전쟁의 피해와 멸망을 막는 길이다.” (참고문헌: H.G. Wells, The World set free, New York 1914).

웰스의 공상과학소설 〈자유롭게 된 세계(The World Set Free)〉를 부분적으로나마 우리말로 번역해 보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동맹을 맺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공격한다고 한 그 사건이 문자 그대로 그 이듬해 8월에 세계대전으로 생겨났다. 먼저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발칸의 사건으로 인해 선전포고를 했고, 여기에 프랑스, 영국, 쏘련, 미국등의 더 확대된 연합군이 대두된 것이 다른 점이었다. 또 홀스텐이라고 하는 화학자의 핵분렬에 대한 성공이 1933년이라 했는데, 1938년 오토 한이라고 하는 독일의 화학자요 핵물리학자에게서 우라니움의 핵분렬은 성공되었다. 1956년 6월에 세계전쟁과 함께 핵무기가 사용된다고 했는데,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1945년 8월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우라니움과 플루토니움 (웰스는 칼롤리눔이라 불렀다)으로 제조된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이야기 된 모습 그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는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웰스는 원자탄이 일본에 사용된다는 것도 예언한 셈이다. “일본에는 애국을 부르짖는 과격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일본이 세계공화국에 흡수되는 것은 국가적인 그리고 민족적인 수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오오사까 근처의 핵물리학 실험실과 병기창고를 점거했다. 자기네들의 욕구가 관철되지 않고 일본이란 국가가 세계공화국에 병합되면 그때에는 원자탄을 사용해야겠다는 극한상항에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일본에 대한 답변은 오직 때를 포착한 핵무기사용 밖에는 없었다.” 이러한 서술 속에서 우리는 웰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1910년대의 지식으로도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웰스의 이 소설에 영향 되어 문자 그대로 그 내용을 믿고 핵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세계를 건져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된 젊은 학자는 1933년 독일을 떠난 스칠라드(Szilard)였다. 그는 빈에서 이 소설을 영문으로 탐독하고나서 런던으로 향했다. 이 여행에서의 가장 큰 목적은 웰스를 직접 만나보기 위한 것이었다. 1932년 영국의 핵물리학자 채드위크(Chadwick)에 의해 중성자가 발견되자 스칠라드에게는 영국에 있는 어느 누군가가 1933년에 핵분렬작업에 성공을 거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웰스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한개의 중성자로 한개의 원자핵이 분렬되고나면 여기에서 또 다른 중성자가 생겨나 다른 원자핵들을 분렬하게 되는 이른바 핵 분렬에 있어서의 연쇄반응이 일어나리라고 하는 것이 지금은 상상이나 가설만이 아니라고 스칠라드는 확신했다. 이제 곧 엄청난 핵에너지가 웰스가 말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원자탄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1933년 9월 웰스와 만나 대화하고난 후 스칠라드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인류가 자기파멸을 초래하는 전쟁을 그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비극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그는(웰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확신이라고 하면서 그는 인간은 어디엔가 영웅적인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인간이 본래는 평화롭고 전원적인 곧 정(靜)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른바 좋은 의미의 이 영웅적인 혈통이 때로는 무엇엔가 동(動)적인 충동을 일으켜서는 투쟁하고 전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이로 인하여서 전쟁의 참상이 생겨나며 영원히 인류사에서는 전쟁이 없는 시대란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영웅적인 생각을 없이 하기 위하여는 인간에게 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반문하여 “지금 선생님의 그 의견에 나도 동의 하리라는 생각으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고 당혹한 나의 모습을 표현했다. 인류를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은 오직 그것 하나 밖에 없다고 웰스는 그때에 확실하게 말했다. 자기자신보다는 아직 젊은 사람이기에 간곡히 조언 한다고 하면서 그는 나에게 “핵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핵에너지를 통해서만 인간은 지구를 떠나거나 더 나아가 태양계를 벗어나 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부언했다. 그러면 인간은 이 세상이 얼마나 작고 하염 없으며 이 안에서 빼았고 빼았기고 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를 배우게 된다고 역설했다. (참고문헌: S.R.Weart & G.W.Szilard, Leo Szilard: His Vision of the Facts, Cambridge/Mass. 1978).

스칠라드는 이러한 웰스의 생각에 자극되어 핵물리학을 공부하되 핵분렬로부터 얻어지는 핵에너지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곧 인류구원의 사업과 관련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환상적인 에너지’는 과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이상향(理想鄕)으로 인류를 인도하게 될 것인가?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이 이상향에 들어간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그냥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는 핵물리학과 같은 과학적인 분야에서가 아니라 인간자체를 규명하는 철학이나 도덕이나 종교의 차원에서 생각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웰스는 철학과 종교에서가 아니라 미래의 ‘환상적인 에너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1933년 스칠라드가 독일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가능성과 세계대전의 발발을 우려하여 영국정부에다 핵무기 개발 연구계획서를 제출한 일이나 그가 미국에 건너가 페르미와 안더슨과 더불어 우라니움 동력기인 원자로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한 것이나 그리고 뉴 멕시코에서 오펜하이머(Oppenheimer)등과 함께 실지로 원자탄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한 사건등은 인류구원이나 인류평화를 위한 것과는 반대되는 인생의 행로였다. 그러나 스칠라드는 독일의 나치독재이념이 세계를 지배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리고 세계대전을 속히 종식 시키기 위해 원자탄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 했으나 자신의 본 뜻은 웰스의 간곡한 권유인 핵에너지의 평화적인 사용에 있었으며, 이렇게 하여 인류구원의 길에서 자신의 생의 보람을 찾고저 한다고 자기의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1939년 우라니움의 핵분렬이 성공되어 세계의 도처에서 ‘환상적인 에너지’ 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젼들이 학술적인 토론으로, 기술개발의 원리로, 공상과학소설의 테마등으로 과열 되었는데, 아직까지는 이러한 ‘환상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정도의 핵분렬과 연쇄반응이 실험실의 규모나마 수행 되지는 못했다. 핵에너지를 불에다 비교한다면 1938년까지의 연구개발은 성냥개피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것 하나로는 인류에게 유용한 열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시금 인간은 밤하늘의 별들과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는 태양을 관찰했다. 별이나 태양이 끊임없이 빛이나 에너지를 발하고 있는 것은 그 속에서 무엇인가 영속되고 있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27년 독일 괴팅겐대학에 유학왔던 오스트리아 출신과 영국 출신의 두 젊은 학자들에 의하여 태양의 핵반응이 다시금 고찰되었다. 후터만스(Fritz Houtermans)와 아트킨슨(Robert E. Atkinson)에게서 처음으로 태양의 에너지는 핵분렬이 아니라 핵융합의 반응에서 비롯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소들이 융합하여 헬리움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태양의 에너지는 방출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연쇄반응은 후에 바이츠제커(Carl Friedrich von Weizsaecker)와 베테(Hans A. Bethe)에 의해 체계적으로 다시 설명 되었다. 한번은 후터만스가 괴팅겐대학에서 어느 여학생과 밤에 산책을 나간 일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후터만스에게 “저 하늘의 별들이 왜 저렇게 반짝 반짝 빛나는지 아세요?” 하고 물었다. 후터만스는 서슴치 않고 “네, 바로 어제 이후로 내가 그 이유를 압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별들 역시 태양처럼 핵융합의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후터만스와 아트킨스의 괴팅겐에서의 연구결과가 학계에 알려지자 쏘련의 기술과학 정책수립의 총책임자인 부카린(Bucharin)은 핵물리학자 가모프(Gamow)에게 태양의 핵반응을 실험실에서 성공해내어 그 에너지로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겠는가를 문의했다. 가모프는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이야기했다. 쏘련에서는 1949년 처음으로 우라니움 핵분렬에 의한 원자탄 폭발실험을 마친 후 계속 핵융합(核融合)의 원리에 의한 원자로설계에 학자들은 총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이 핵융합의 유토피아적인 원자로는 오늘날까지도 실현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숙원으로 남아 있다.(참고문헌: E. Rebhan, Heisser als das Sonnenfeuer, Muenchen 1992).

1934년 러더포드, 올리판트, 하르테크에 의해 중수소의 핵융합원리가 발표되자, 태양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핵융합의 방법으로 또 하나의 다른 핵폭탄을 만들 수 있음이 고안되었다. 1951년부터 미국에서 핵실험에 의해 완성단계에 이른 수소폭탄이 바로 이 원리에 의한 것이었다. 핵물리학에 있어서 ‘환상적인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핵분렬과 핵융합에서 가능하다고 하는데 대한 제반이론들은 이미 1930년대말에 거의 완벽한 정도로 체계화 되어 있었다. 다만 어떻게 이를 실현하는가 하는 과정만이 문제였다. 지금까지의 연구 및 실험의 결과에 의하면 핵분렬에서 ‘환상적인 에너지’를 얻으려면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화학원소 주기표에서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원소기호 92)의 핵을 분렬 시키는 방법이다. 마이트너여사와 그의 조카 프리쉬가 계산해낸 바 우라니움(U235)의 핵분렬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211.5 메가전자볼트(MeV)인데, 이를 235개의 핵입자(Nukleon)로 나누면 핵입자당 발생하는 에너지는 0.9 메가전자볼트 정도이다. 이에 반하여 핵융합에 있어서는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가 서로 융합하여 헬리움을 이루는 과정에서 또한 에너지가 방출된다. 두개의 중수소(DEUTERIUM: 1 PROTON + 1 NEUTRON)가 융합하여 헬리움(HELIUM: 2 PROTON + 2 NEUTRON)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4 x 7 메가전자볼트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그중에서 융합에 필요한 에너지 2 x 2 메가전자볼트를 제하면 24 메가전자볼트는 외부로 그냥 방출해내는 에너지이다. 이것은 헬리움의 네개의 핵입자(Nukleon)가 융합하는 순간 제각기 6 메가볼트의 핵에너지를 방출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핵분렬의 방법보다도 핵융합에서 얻어지는 에너지는 6배가 넘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런데 핵을 융합 시키기 위하여는 매우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수소폭탄 안에는 핵융합을 일으키는 일종의 뇌관장치에 해당하는 소규모의 우라니움이나 플루토니움 핵폭탄이 장착되어 있다. 이 원자력의 힘을 동원해 수소들의 일시적인 핵융합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핵분렬 방법에서 얻는 에너지의 6 배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발생하며 또 동시에 다량의 헬리움이 생겨난다. 즉 수소폭탄 폭발 당시 태양내의 핵반응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핵분렬에서 방출되는 굉대한 원자력을 가지고서만 핵융합이 가능하리라 한번 생각해보면 태양내에서 벌어지는 양성자(Proton)들의 융합 과정은 어느 때인가 핵분렬에서 나오는 에너지에서 시발했으리라는 가설이 입증될 수 있다. 따라서 태양이나 별들의 탄생은 약 100억만년전 엄청난 규모의 핵폭발(Urknall 또는 BIG BANG)이 있은 다음 여기로부터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들간의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게 된데에 기인한다는 우주기원론이 이미 이때에 새롭게 대두되어 칸트-라플레이스(Kant-Laplace) 이론에 수정을 가하거나 아니면 전폭적으로 이를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1938년말 ‘달렘의 섬광’으로 인해 ‘환상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눈 앞에 다가서자, 20세초의 공상과학적인 이야기가 모두 비현실적인 픽션의 세계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예언으로 생각되었고 또 이 예언이 아주 가까운 장래에 성취되리라는 과학적인 신앙을 낳기도 했다. 옛날 그리스의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 가지고 인간의 세계로 내려왔는데 이로 인해 신들로부터 그는 큰 형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달렘의 섬광’은 또하나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낳았다. 20세기의 프로메테우스인 핵물리학자들은 이번에는 단순한 의미의 불을 훔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태양을 훔친 것이다. 이러한 20세기의 과학자들은 핵융합에 의한 태양에너지의 원리를 알아냈다. 엔트로피(Entropie)의 원리에 의해 언젠가 태양이 에너지를 잃게 될때에 인간은 스스로 조그마한 규모의 위성태양을 만들어 지구 주위를 돌게 할지도 모른다. 이 위성태양의 수명은 지구내에 얼마나 많은 중수소가 존재 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구에는 다른 원소 보다도 수소가 비교적 많이 존재하며 또 여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중수소의 량도 적지는 않은 셈이다. 핵분렬과 핵융합의 원리를 가지고 폭탄을 만들지 말고 인류의 에너지공급문제에 사용한다면 여기에 필요한 원자재는 지구내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출처 : 나치독일의 어제와 오늘 - 金政陽 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