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이경숙/노자를 웃긴 남자

노자를 웃긴 남자 (제9장)

기른장 2020. 9. 29. 19:17

제9장

 

벌써 9장이다. 이 장은 엄청 쉽다. 누구든 옥편 한 권 들고 앉으면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장이다. 그렇다 해서 우리 주인공 도올이 우리를 웃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주인공은 반드시 웃겨준다. 지금까지 살펴온 것에서 우리가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도올은 한자 읽는 법을 전혀 모른다. 고전의 번역과 해석은 고사하고 한자 공부의 기초가 안 되어 있다. 이렇게 쉽고 평이한 문장을 제대로 못 읽는 것을 보고 내가 뭘 느꼈겠나? 뒷골이 다 당기고 앞골에는 쥐가 난다. 함 보자.

 

持而盈之 不如其已
지이영지 불여기이
揣而梲之 不可長保
취이절지 불가장보
金玉滿堂 莫之能守
금옥만당 막지능수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귀이교 자유기구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첫 번째 구절 ‘지이영지 불여기이(持而盈之 不如其已)’를 도올이 뭐라 했는가 먼저 보는 게 순서겠지. ‘지니고 채우려 하는 것은 그것을 그만두느니만 못하다’다. ‘지(持)’는 ‘가질 지’ ‘지닐 지’다. ‘영(영)’은 앞의 ‘이용지혹불영’이란 구절에서 보았던 ‘찰 영’이다. 그러니까 ‘지이영지(持而盈之)’는 ‘지니고 채우는 것’이라고 번역한 게 맞잖아? 하고 우길 모양인데 이걸 정말 어째야 돼? 이런 한심한 꼴통을 데리고 공부랍시고 가르쳐야 되는 내가 참 기가 막힌다. ‘지(持)’가 들어간 단어를 몇 개 생각해봐봐. 지속(持續), 유지(維持), 지구(持久) 등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이잖아. ‘지(持)’는 포괄적으로 항상성을 의미하는 글자다. 

 

자체의 뜻은 ‘가진다’ ‘지닌다’는 뜻이고 그런 뜻으로 쓰이는 단어는 ‘이력서를 지참한다’ 할 때의 ‘지참(持參)’ 정도가 있어. 이 지 자 뒤에 어떤 다른 글자가 오면 그 글자의 의미를 유지시키는 말이 되는 거다. 뒤에 ‘찰 영’이라는 글자가 오면 ‘지’는 ‘영’을 수식하는 글자로 변한다. 즉 ‘채우는 것을 계속 한다.’가 된다. 바꿔 말하면 ‘계속 들이 붓는다’는 말이다. 만약에 컵에다 물을 계속 들이부으면 어찌 되겠어? 당근 넘쳐버리지? 그래서 ‘불여기이(不如其已)’ ‘(적당한 때에)그만두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거야. 이어서 말하면 ‘채우기를 계속하는 것은 적당히 채우고 멈춤만 못하다’가 된다. 이 말을 ‘지니고 채우는 것은 그것을 그만두느니만 못하다’하고 읽어버리면 도대체 뭔 소리가 되느냐 말이다. 사람이 지닐 때는 지녀야 되고 채울 때는 채워야지 ‘지니고 채우는 짓을 하지 마라’는 소리잖아. 원 세상에…. 여기까지도 괜찮아. 다음 줄을 보면 뒤로 넘어가벼려. ‘취이절지 불가장보(揣而梲之 不可長保)’를 뭐라 하느냐면 이래 놨다.

 

취(揣)를 ‘갈다’라고 해석하면 절(梲)은 분명 ‘날카롭게 한다’는 뜻이 될 것이므로, 이것은 예(銳)의 誤寫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칼이 무딘 것과 날카로움을 비교해보면, 항상 날카로운 것이 무딘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진행한다. 무딘 것이 날카로운 것에 비해 虛가 더 많은 것이다. 날카로움은 무딘 것보다 오래 보존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성격도 너무 날카로운 사람은 虛가 없어 자신을 들볶게 마련이다.
에도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1584~1645)가 무딘 목검으로 당대의 최고 검객 사사키(佐左木小次郎)의 날카로운 진검을 쓰러뜨린 이야기도 결국 이 노자의 虛의 사상을 무술에 적용시킨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인 것이다.
《노자와 21세기》하권 91쪽 상단

 

지랄 났다. 지랄이 난 게 아니고 인물이 났다. 김씨 가문에 인물 났어. 여기서 ‘갈다’가 왜 나오고 목검이 왜 나오고 미야모토 무사시가 뭐 때문에 등장하는 거야? 다른 노자 주해서를 봐도 대부분 ‘취이절지’를 ‘칼을 갈아서 날을 세운다’는 뜻으로 풀고 있긴 하다. 도올 머리에 유별나게 독창적인 뭐가 나오겠느냐마는 그래도 연구씩이나 했으면 기존의 해석이 틀린 것쯤은 바로잡을 줄 알아야지. 안 그래? 앞 넘이 틀린 걸, 뒤넘이 그대로 이어받고 그 뒤 넘이 도 그걸 그대로 갖고 간단 말이야? 이래서 무슨 학문의 발전이 있겠니?
그래 저 문장이 안 읽혀서 멀쩡한 글자를 괜히 바꾸고 자빠지나? ‘취’자가 ‘헤아릴 취’고 ‘잴 취’지 무슨 ‘갈다’라는 말이야? 그리고 ‘절’자를 어쩐다고? 이게 오자니까 ‘날카로울 예’자로 바꿔야 해석이 된다고? 에라이, 밥 팔아 똥 사먹을 넘들.

 

‘절’은 ‘기둥 절’ ‘막대기 절’인데 기둥 중에서도 들보 위의 짧은 기둥인 동자주(童子株) 즉 ‘쪼구미’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센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바로 집을 크게 지으면서 쪼구미 숫자를 세고 있어도 불가장보(不可長保)니라. 즉 ‘오래 보존할 수 없느니라’는 뜻이다. 암만 기둥이 많이 늘어서 있는 큰집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 집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는 말이다. 진시황이 아방궁을 짓고서 그 속에서 산 것이 몇 년이나 됐어?
집이란 건물 자체가 오래 못 가는 것이라는 말이겠지만 그 속에서 사람이 사는 날은 더 짧다는 말일 수도 있다. 기둥을 센다 또는 잰다는 말을 원문의 글자를 바꿔가면서 ‘날카롭게 간다’하고 자빠지니 암만 좋게 얘기하고 싶어도 이게 안 되는 거야.

 

한자도 제대로 못 읽는 게 또 해놓은 소리 함 봐봐. 뭐라고? 미야모토 무사시가 사사키 고지로오를 이긴 이유가 노자사상을 무술에 적용시킨 탓이라고. 우리 노자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실 판이다. 어찌 노자사상을 설명하면서 노상 꺼내는 이야기가 깡패 아니면 칼잡이야? 노자가 제일로 싫어하는 부류가 그런 폭력을 쓰는 인간들이다. 노자가 싫어하는 소리만 잘도 골라서 하고 앉았지. 밉다 밉다 하니까 이래도 밉냐는 식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지만 소설 내용을 사실 그대로의 상황으로 인정해준다 치더라도 둘의 승부에 노자사상은 아무 관계가 없다. 태양의 위치를 싸움에 이용하는 미야모토 무사시 특유의 동물적인 싸움 감각과 기 싸움에서 사사키 고지로오가 밀렸기 때문에 승패가 갈린 것이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무사시가 둘의 실력에는 큰 차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사를 하늘에 맡겨버리고 무심의 일격으로 승부를 지으려 했던 데 반해 고지로오는 그래도 자기가 상대보다 한수 위라는 실력의 차이를 믿고 또 그것으로 승부를 지으려고 기술에 집착했다는 마음가짐의 차이는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명한 두 검객의 승부에서 목검의 무딤과 진검의 날카로움은 어떤 변수도 되지 못한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무딘 목검을 썼기 때문에 사사키 고지로오를 이긴 것이라면 왜넘들은 전부 다 목검만 차고 다녔을 거야. 미야모토 무사시가 결투장으로 정해진 섬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노를 깎아 목검을 만든 이유는 노자의 무딤의 허를 싸움에 이용하자는 게 아니고 극히 산술적이고 물리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고지로오가 쓰던 칼은 당시의 일반적인 왜넘 칼보다 한 자나 길어서 옆구리에 차고 다니지 못하고 등에 매고 다녔던 물건이다. 칼이 길다는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기운이 좋다는 뜻이다. 맥아리 없는 넘은 긴 칼을 쥐여줘도 힘이 딸려서 휘두를 수가 없는 거야. 상대가 긴 칼을 쓴다고 지도 칼을 길게 만들어 덤비면 칼에 못 이겨서 지 풀에 자빠져버린단 말이다. 칼의 무게를 늘리지 않으면서 길게 만드는 방법이 뭔가 골똘히 생각했던 끝에 나온 것이 바로 그 목검이야. 그리고 그 길이의 싸움에서 미야모토 무사시가 이기게 됐던 거고. 사사키 고지로오의 장검이 먼저 미야모토 무사시의 머리에 동여맨 수건을 날리지. 그와 동시에 목검이 고지로오의 대갈통을 부쉈던 것인데. 무사시가 만약에 짧은 칼로 싸웠다면 목검이 고지로오의 대갈통을 까기 전에 고지로오의 칼끝에 수건이 아닌 목이 먼저 날아갔을 거야.

 

고지로오만한 검술의 달인이 상대와의 거리 측정을 잘 못 하고 칼을 휘둘렀던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상대의 의표를 찌르고 길다란 목검을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이 그 길이에 헷갈린 것으로 볼 수 있어. 그래서 한치 빠르게 칼을 휘두른 것이고. 미야모토 무사시가 섬에 다다라 배에서 뛰어내렸을 때 사사키 고지로오가 뱉은 첫마디가 ‘목검이로군’이었어. 이 말 뒤에 숨은 속내는 ‘제기랄 죽이게 기네’라는 거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해.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 간의 승부가 어디서 갈리는 것인지 알 수 있으려면 도올은 아직 한참 멀었어.

 

여담이지만 같은 종류의 병기에서 긴 것은 짧은 것을 이긴다는 것은 고금의 진리야. 이 단순한 사실을 경허하게 받아들인 것에 무사시의 뛰어남이 있어. 긴 것에는 긴 것으로 싸워야지 짧음을 기술과 정신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거야. 이런 싸움의 진리를 무시해서 진 것이 훗날의 태평양 전쟁이야. 무기의 열세를 야마토다마시(大和精神,일본혼)하나로 우겨보려고 든 왜넘들은 자기네 숭상하는 검술의 달인이 남긴 교훈을 잊은 넘들이야.

 

이런 승부의 갈림을 노자사상에서 찾는 꼬락서니를 보면 한마디로 놀고 자빠졌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어. 미야모토 무사시를 들먹이면 사람들이 유식하다고 봐주는 거야? 그러려면 제대로 알고 구라를 풀어야지.

 

깡패들의 희생정신을 노자에서 찾은 도올이니만큼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맥이 풀려버린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계속하자.

 

‘금옥만당 막지능수(金玉滿堂 莫之能守)’는 ‘재물과 보화를 집안 가득 채워도 그것을 지킬 수 없다’로 번역하면 된다. 우리의 건아 도올도 이런 정도는 풀 수 있다고 믿고 넘어가자. ‘부귀이교 자유기구(富貴而驕 自遺其咎)’를 ‘돈 많고 지위 높다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길 뿐이다.’ 라고 한 도올의 번역은 대단히 훌륭하다. 칭찬을 해주고 싶다. 그 다음 문장까지도 준수하게 번역하고 있다. 박수! ‘공수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를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이다’로 멋지게 번역해놓았다. 번역도 자꾸 하다보면 느나보다. 공부도 자꾸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이고, 오픈 게임이었고, 도올의 진짜 실력은 지금부터 나오는 게 아닌가 은근히 기대가 된다. 독자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얼른 다음 장으로 가보자.

 

도올 번역

 

지니고서 그것을 채우는 것은
때에 그침만 같지 못하다.
갈아 그것을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할 길 없다.
금과 옥이 집을 가득 메우면
그를 지킬 길 없다.
돈 많고 지위 높다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길 뿐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
하늘의 길이다.

 

바른 번역

 

(무엇이든지)채우기를 계속하는 것은
(적당한 때에)그만둠만 못하느니라.
(집이 크다고 하여)아무리 기둥을 세어도
그것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금은보화가 집안에 가득해도
그것을 지킬 방법이 없느니라.
부유하고 고귀함을 자랑하면
스스로 허물이 될 뿐이니
공을 이루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