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혼란기, 원자력과의 새로운 인연(2) 07. 불꺼진 연구실 1982년 3월, 나는 12년 가까이 몸담아 왔던 국방과학연구소(ADD) 를 떠나 대덕(大德) 공학센터장에 취임했다. 새로운 일 터인지라 나름대로의 포부와 기대도 컸었다. 그러나 막상 부임해 보니 예상과는 달리 분위기가 축 가라앉아 있었다. 대량감원 바람이 불던 ADD 보다 상황은 훨씬 좋지 ..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30
제6부 혼란기, 원자력과의 새로운 인연(1) 01. 인원삭감 태풍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왔다. 새로 집권한 신군부는 미국을 지나치게 의식, 朴대통령이 애착을 갖고 추진해 왔던 자주국방정책을 대폭 손질했다. 그동안 자주국방정책이 미국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 한미관계를 악화시키는 주..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30
제5부 탱크용 레이저 무기 개발(2) 08. 뒤바뀐 입장 휴즈 에어크래프트社는 우리가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 장치를 독자 개발한다는 소문을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미 개발을 끝낸 사실도 모르고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장치 가격을 3분의 1로 깍아 줄테니 한 대당 30만 달러에 사라" 고 내게 전화를 걸어 제안해 왔다. 불과 3년 4..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30
제5부 탱크용 레이저 무기 개발(1) 01. 다시 돌아온 '친정' 1978년 7월 나는 다시 국방과학연구소(ADD)로 돌아와 레이저.야시(夜視) 장비 부장을 맡았다. 1년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레이저실은 레이저부로 한 단계 격상됐다. 연구원들도 늘어나 부서 분위기가 한층 활기차 보였다. 그동안 나는 탄약개발부장을 맡아 국산 벌컨..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30
제4부 벌컨포 문제를 해결하라(2) 09. 최종 결론 나는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 미국측에 제시하기 위해 연구진들과 함께 은밀하게 데이터 분석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은 풍산금속에서 했다. 혹시 비밀이 새 나갈 것을 염려해 풍산금속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저녁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했다. 수없이 많은 시험을 해 봐도 결론은 같았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29
제4부 벌컨포 문제를 해결하라(1) 01. 산 넘어 산 1977년 6월 초순 어느날, 김성진(金聖鎭.69) 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이 급히 나를 찾았다. 늘상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별다른 생각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의 방에 들렀다. 그는 육사 11기로 1960년대 초반 미국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함께 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나와는 매우 각별한 ..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29
제3부 사기꾼들의 농간(2) 09. 사기 행각 저지를 위해 미국의 최대 원자력연구소인 로렌스 리버모아를 비롯, 로체스터 대학의 레이저 핵융합연구소 등 세계적으로 유수한 연구소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것을 '마치 개발이 끝난 것' 으로 말하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가 추진하는 레이저 프로젝트를 성사..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29
제3부 사기꾼들의 농간(1) 01. 의문에 싸인 인물 1976년 2월 초순 어느날,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산부장인 성기수(成琦秀.65) 박사가 급히 내 방에 들어왔다. 가끔씩 국방과학연구소(ADD) 를 방문하던 터라 별다른 생각없이 그를 반겼다. 그런데 이날 따라 成박사는 왠지 상기돼 있었다. 평소 침착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29
제2부 레이저 무기 개발 (2) 10. 자네가 애국자야 그로부터 보름 후인 1975년 가을 어느날, 박정희 대통령이 홍릉 레이저실을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다. 金총리가 레이저실 방문 직후 청와대에 가서 "국방과학연구소에 '이상한 광선'이 있더라" 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 연구진은 무척 긴장하면서도 속으론 반갑기 그지 없었다. 앞으..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25
제2부 레이저 무기 개발 (1) 01. 새로운 도전 1972년 12월 중순 어느날 나는 청와대 오원철(吳源哲·71) 경제 2수석의 방에서 그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레이저 무기와 야시(夜視)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吳수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앞으..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10.01.25